〈 154화 〉 152. 하수공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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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과 모험가들이 과연 사냥철에 맥주를 얼마나 마셨을까? 그 대답이 궁금하면 우리 여관 뒤 공터를 보면 된다. 황금마차를 운영하면서 맥주를 팔고 빈 맥주 통을 여관 뒤에 쌓아둔 것이 엄청난 양으로 쌓여있으니까 말이다.
‘와 진짜 이놈들 많이 마시긴 많이 마셨구나’
쌓인 통을 보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오크통도 여기서는 제법 비싼 물건인데 놔두면 모험가들이 땔감으로 쓸 것이 뻔하니, 혹시 쓸데가 있을까 싶어 중간중간 공병 수거하는 것처럼 수거해서 쌓아둔 것인데. 이게 생각보다 많아져서 여관 뒤 공터에 이삼백여 통 쌓여서 뒹굴고 있었다.
전생에 한국인들이 술 소비를 많이 한다고 했었는데 용병, 모험가들 이분들 마시는 양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양이다.
내가 여기를 찾은 이유는 이 통을 이용해서 하수관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뚜껑과 바닥을 떼어낸 오크통은 아주 훌륭한 하수관이지 않겠나?
내 계획은 뚜껑과 바닥을 떼어낸 오크통에 안팎으로 천연타르를 발라 말린 후, 이걸 연결해서 하수관으로 쓰는 것이다. 큰 통은 맨홀로 쓰고 말이다.
작은 오크통이 높이가 두자 정도 되니까 열 개면 육 미터 백 개면 육십 미터이다. 마을 여기저기 설치해야 하니 많은 양이 필요하겠지만, 부족한 양은 그란 폴 여기저기 버려진 오크통이나 도시 사람들에게서 폐 오크통을 구매하기로 했다.
이쪽은 가구 같은 것이 비싸니, 오래된 오크통은 보통 물건을 담아두거나 하는데 가구 대용으로 많이 쓰인다. 의자로 사용되기도 하고. 아마 도시에서 작은 폐 오크통 두 개에 일 동화에 산다고 하면 줄을 설 것이 뻔하니 오크통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여관 뒤에서 하수관으로 사용할 오크통을 확인하고 바로 촌장님을 찾았다.
우기가 끝나고 석 달 사냥철이 지나면 그에 맞춰 한번 추수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추수가 끝나면 밭을 갈아엎고 바로 파종하는데 파종이 끝나면 마을 사람들에게는 잠깐 한가한 기간이 찾아온다. 싹이 틀 때까지 별로 할 일이 없는 것.
물론 잡초 제거야 모든 가족이 달라붙어 항상 하는 일이니, 논외로 치고 말이다.
남부의 농한기는 우기 삼 개월뿐이다. 그러나 그때는 외부 활동하기는 힘들다. 그러니 뭔가를 하려면 이때가 제일 좋다고 할 수 있다.
“하수도? 그게 뭔가?”
촌장님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도시의 하수 시설은 지하에 매설된 것이 아니라, 길 양쪽에 배수로가 있는 형태이니. 이곳에서 하수관은 생소한 개념이니 당연한 질문이었다.
“마을에서 사용한 오수나 빗물을 강으로 흘려보내는 길을 땅속에 만드는 것입니다. 비 온 후 마을의 땅이 진흙탕이 되는 걸 막아주죠.”
“그건 나쁘지 않겠구먼. 매번 비가 온 후. 진흙탕은 짜증나니 말이야.”
비가 오면 마을 내부는 진흙투성이가 되기 일쑤다. 우리 여관이야 자갈을 주워다 사람이 다니는 길에만 깔아두어 최대한 흙이 드러나는 걸 막고 있지만, 사람들이 자주 이용해 흙이 드러난 곳은 비가 오면 웅덩이나 진창으로 변하곤 하니까 말이다.
“내년에 사냥철을 대비하려면 미리 준비도 해두어야 하고요.”
내년에는 목책을 좀 더 넓혀서 마을 밖의 사람들은 최대한 안쪽으로 받아들여 돈도 받고 편의 시설도 제공하기로 했으니, 수도 시설을 만들면 하수 시설은 따라와야 하니 미리 어느 정도 기반을 깔아두면 나중에 한결 수월할 것이 뻔했다.
“일단 들어가는 비용은 제가 내겠습니다.”
“아니, 이 사람 그래도 마을에 필요한 건데 마을에서…”
“마을에서는 인력을 지원해주시면 되니까요.”
“그래, 뭐 그럼 그렇게 하지. 자네한테는 항상 신세만 지네,”
“저도 마을 주민이니까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촌장님이 내 어깨를 두드리셨다. 뭐 자리 잡고 살면 다 내 고향이니.
촌장님과 이야기를 끝내고 여관으로 돌아와 안톤을 만났다. 뭐 일단 활쏘기를 가르쳐주기로 했으니 상태 점검이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야 안톤 활 가지고 밖으로 나와봐라.”
질리지 않고 또 다른 여자 용병에게 작업을 걸고 있는 놈을 불러냈다. 진짜 대단한 놈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활에 대한 마음은 진짜인지 두말하지 않고 뛰어 올라가더니, 자기 활을 가지고 내려왔다.
그리고 안톤이 활과 화살을 가지러 올라간 사이 예쁜 수강생이 하나 더 늘었다.
활을 쏜다는 소리를 들은 리젤다도, 활을 무척이나 좋아하니 이런 자리에는 빠질 수 없었는지, 북부에서 가져온 자신의 활을 가지고 내려와 신이 난 표정으로 우리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리젤다의 모습은 어서 활을 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습이랄까?
‘아, 그러고 보니… 리젤다도 나한테 활 쏘는 거 배우고 싶다고 했었지?’
리젤다가 가시에 쓰러졌다 기운을 차릴 때 병상에서 소원이라기에 약속했었는데, 이제야 기억이 났다.
‘이번 기회에 안톤을 가르칠 때 같이 좀 봐줘야겠다.’
리젤다와의 약속을 잊은 것에 미안한 생각이 들 때, 활 쏘는 자리가 생기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엘프들도 몇 명 몰려들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그때 리젤다가 물었다.
“러셀, 저도 쏴도 되죠?”
“그럼. 물구나무만 서지 말고, 말이지.”
얼굴이 빨개진 리젤다가 진정될 시간을 허락하고, 나는 목책 한쪽을 숯으로 검게 칠해 과녁을 만든 후 안톤에게 말했다.
“자 일단 한번 쏴봐 뭐가 문제인지 한번 보자.”
안톤이 가져온 활은 전형적인 단궁 형태의 컴포짓 보우였다. 나나 엘프들이 쓰는 활은 리커브 보우라고 화살을 거는 부분이 사수와 반대쪽으로 되어있는 것이고, 안톤이 가져온 활은 사수 방향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안톤이 가져온 활은 복합재료를 사용해서 크기는 작지만, 장력이 나쁘지 않고. 활이 짧아 연사하기 좋다는 장점이 있다.
활만으로 따진다면 나나 엘프들이 일발필중의 저격수를 지향하는 형태라면, 안톤은 소총수 정도를 지망한다고 할까?
“그, 그럼 쏴, 쏴보겠습니다.”
안톤이 긴장된 모습으로 활을 들어 시위에 화살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위를 한껏 당겼다.
활대와 시위에 걸린 화살이 소리를 내며 당겨지는 그때 나는 소리를 버럭 질러버렸다.
“동작 그만!”
“예!?”
“너, 왜 활을 그따위로 쏘냐?”
“예?!”
“아, 아니다 일단 쏴봐.”
다시 자세를 잡은 안톤이 시위를 놓자 공중을 날아 목책에 박히는 화살. 안톤은 내 지시로 열 발을 연속으로 쏘아냈다. 하지만 화살의 명중률은 절반 정도. 은 등급 치고는 처참한 솜씨였다.
내가 좀 전에 화를 낸 이유.
이 새끼 활을 눕혀서 쏘고 있었다.
“너, 근데 왜 활을 전부 눕혀서 쏘냐?”
“아… 그게 그러니까…”
안톤의 설명을 들으니 나무 등급 시절, 용병 일은 하다가 죽은 용병의 장비를 운 좋게 발견한 안톤은 거기서 활과 화살을 분배받았단다. 물론 팔아버려야 했지만, 활 쏘는 모습을 멋지다고 생각했던 안톤은 혼자서 활 쏘는 연습을 시작한 것.
문제는 아무도 활 쏘는 법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고 혼자서 독학을 하게 되니, 처음에 화살을 떨어뜨리지 않고 활대에 올려서 쓰기 위해 눕혀서 쏘던 버릇이 굳어졌다는 것.
그러니까 컴퓨터로 치자면 타자 치는 걸 주먹구구로 하다 보니 시작한 게 독수리 타법이었고. 독수리 타법이 굳어져 고치지 못하고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뭐 초보자 입장에서 화살을 눕혀서 쏘게 되면 화살을 활대 위에 올리고 쏠 수 있으니, 화살을 떨어트리지 않고 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자세로 쏘게 되면 조준이 힘들고, 상하운동만 생각하면 되는 세워 쏘기 상태와는 다르게, 조금만 틀어져도 활이 목표한 곳과 다르게 날아간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니 초보 때처럼 화살을 단순히 날리는 게 목적이라면 모르겠지만 좀 더 높은 경지를 바라본다면 반드시 고쳐야 했다. 그리고 이 자세로 잘 쏘려면 기본자세부터 다듬고 충분히 연습한 후에 응용 편으로 좋은 거지 절대 초보가 쏠만한 자세가 아니다.
그러니까 안톤 이 새끼 문제는 야매로 독학한 궁술이 문제였다.
“너 근데 은 등급은 어떻게 달았냐? 활을 이따위로 쏘는데?”
“제가 무기도 잘 써서…”
“그럼, 그냥 무기 쓰자 안톤아. 너 이거 고치려면 쉽게 안 돼.”
내가 안톤에게 힘들 것처럼 말하자 놈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리며 말했다.
“형님 제발! 부탁입니다! 제 평생소원입니다.”
“너 멋지게 활 쏘는 모습으로 여자나 꼬셔보려고 하는 거 아니지?”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안톤이 갑자기 아무 말도 못 하고 뭔가 큰 것을 들켰다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뭐야? 이 새끼 이거 농담이었는데 진짜였어?’
식은땀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는 안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새끼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리라 마음을 먹었다. 너는 인마 궁수 전에 인간이 되어야겠다.
나는 안톤에게서 활과 화살 세 발을 넘겨받고 안톤을 보며 말했다.
“잘 봐라.”
나는 똑바로 서서 과녁에 화살을 날리고 재빨리 옆으로 굴렀다. 그리고 구르는 것과 동시에 활대에 화살을 걸며 무릎앉아 자세로 변경, 두 번째 화살을 과녁으로 날린 후. 마지막으로 다시 원래 자리로 구르며 앉아쏴 자세로 변경, 안톤이 쏘는 것처럼 활을 눕혀서 마지막 화살을 과녁으로 날렸다.
콰 과 곽
내가 순식간에 두 번을 구르며 화살을 발사하자 화살 세 발이 연속으로 목표에 정확히 박혔다.
그 모습에 리젤다도 엘프들도 안톤도 놀라 입을 떡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트리플 샷 같은 한 번에 쏘는 기술도, 권능이나 받은 능력을 쓰는 것도, 아닌. 순수한 육체의 기술. 나의 오리지널 롤링 어택 아니, 그냥 구르며 쏘기니까 말이다.
군대에서 세 자세로 총 쏘는 방법에서 따온 것이다. 구르며 활을 시위에 거는 기술이 핵심. 훈련만 되면 상대의 공격을 피하거나 혼란을 주며 다양한 자세로 연사를 이어가는 방법이다.
“배우고 싶지 않냐?”
“배…”
“배, 배우고 싶어요!”
안톤의 목소리를 가로채며 들려온 더 큰 소리는, 나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리젤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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