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 151. 하수공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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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러니까…. 타르 웅덩이에서 나온 거겠지? 지표면으로 흘러나온 원유가 증발할 건 다 증발하고 남은 게 걸쭉하게 변한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맞겠지? 나도 전생에 미국 여행을 계획하다가 로스앤젤레스 근교 관광 안내 책자에서 한번 본 것이 다니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남부 습지 지형이 플로리다 늪지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타르 웅덩이는 또 예상외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타르 웅덩이면 당연히 원유도 있는 걸까? 원유가 있으면 좋기는 하겠지만 원유가 있어도 그걸 어떻게 정제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안다고 해도 그런 시설을 만들 재주도 없으니 그림의 떡이긴 한데….
발견한 타르 덕분에 아주 행복한 상상들이 이어졌지만, 결론은 이 상태 이상으로는 사용 방법을 모른다는 것.
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쓸모가 많았고, 현재 나한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었다. 내가 며칠 동안 하던 고민을 날려줄 방법이 이것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검은 액체의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안톤을 찾으러 가기로 했다. 그리고 부엌에서 나와 안톤을 찾으려는데, 홀 한쪽에서 여자 모험가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꺼져 안톤. 귀찮으니까?”
“그러지 말고 롤린? 신드라였나? 아무튼 아름다운 그대 함께 한잔?”
안톤이 여관 테이블에 앉아서 다른 여자 모험가들에게 작업을 걸고 있었다. 잰 여관 도착하는 순간부터 지치지도 않고 저러는 중이었다.
발정 난 똥개 새끼처럼.
내가 분명 경고했는데도 저런다. 경고를 무시하는 자 슬슬 응징이 필요한 때였다.
“야, 안톤. 너, 손님들한테 추근대면 내가 어쩐다고 했지?”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안톤이 고개를 천천히 돌려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눈을 질끈 감으며 변명을 시작했다.
“아, 아뇨. 형님, 이 친구는 저랑 아주 친한 케롤린? 아 애나였나? 암튼 그렇습니다.”
싸늘한 표정의 여자가 말했다.
“멍청이야! 내 이름은 벨라고 초보 모험가 시절에, 네놈 새끼랑 이미 한번 잤어. 이 조루 새끼야.”
여자 모험가는 화를 버럭 내고는 쿵쾅거리는 발걸음으로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저것이 안톤이 자기 이름을 못 기억해서 화를 낸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문제일까? 궁금해졌다.
“그, 그래 벨라! 그런데 벨라양? 내가 조루는 아닌데? 다른 사람이랑 착각한 건 아닐까?”
은근슬쩍 여자를 따라 올라가려는 안톤의 뒷덜미를 채서 자리에 다시 앉혔다. 어딜 도망가려고.
“안톤아? 내가 분명 경고했을 텐데, 여자를 꾀는 것은 상관없지만 뭐라고 했지?”
“여관을 시끄럽게 하, 하면 아,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기억력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일까? 아! 여성분 말대로 참지 못하는 그것 문제일까? 확 쥐어 터트릴까?”
꿀꺽
안톤의 침 삼키는 소리가 여관 1층 전체로 흘러나갔다. 그리고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그 새끼 그거 쥐어 터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형님.”
“어머! 킥킥.”
에브리나와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서던 벨릭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옆에 에브리나의 웃음은 덤이었다.
“야! 베, 벨릭! 무슨 소리를 너는 그렇게 험하게 하냐! 이 새끼야!”
벨릭의 말에 안톤이 그게 무슨 끔찍한 소리냐는 표정으로 항의 했다.
멈추지 않으면 만담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기에 일단 안톤을 조용히 시키기로 했다. 물어볼 게 있어서 찾았는데 이놈 새끼 헛짓 때문에, 시간만 낭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물어볼 게 있는데?”
“예, 그 어떤? 참고로 조루는 절대 아닙니다.”
진짜 이 새끼가.
“한 번만 더 헛소리하면 머리통에 구멍 날 줄 알아라.”
“히익!”
나는 이제야 본론을 꺼낼 수 있었다. 뭐하나 물어보기 참 힘드네! 진짜.
“말씀하시죠. 혀, 형님!”
“너 부츠에 묻은 그 검은 것, 어디서 그런 거냐?”
“아! 그거! 그것 때문에 정말 죽다 살았죠! 그게 그러니까….”
이번 사냥철 안톤의 파티는 초중반까지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을 한 것이 강을 넘기로 한 것.
중부에서 발원한 강은 그란 폴을 지나 우리 웜포트를 거쳐 늪지대로 흩어지거나 바다로 흘러간다. 강 건너를 가려면 그란 폴에서 다리를 건너 계속 내려오거나 늪지대 아래쪽까지 가서 얕은 곳으로 지나가야 하는데, 모험가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냥 웜포트 쪽에서만 사냥을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냥철에 몰려든 사람이 많아 안톤이 모험을 하기로 한 것. 모험가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라 몬스터들의 서식 정보가 부족해서 좀 위험했지만, 원래 사냥하던 곳은 경쟁이 치열하니 강을 건너는 모험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파티원 한 명이 낙엽이 잔뜩 쌓여 디딜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곳을 밟고, 검은 늪에 빠졌단다.
“와! 진짜 뭐가 그렇게 찐득거리는지.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늪에서 빠져나와서도 그 검은 게 닦아 지지가 않아서 주변 풀에다 막 문질렀는데도 안 닦였다니까요?”
“너 어딘지 거기 확실히 기억하냐?”
“어휴 당연하죠! 제가 그래도 파티 리더에 궁수인데 기억력 하나만큼은…”
말말말. 진짜 말이 많은 새끼였다. 안톤 닥치게 하려고 재빠르게 본론을 꺼냈다.
“너, 이번 사냥 끝나고 좀 쉬다가 뭐할 거냐?”
“저야 뭐 또 애들 데리고 사냥이나 나가야죠.”
“너 내가 그럼 돈벌이 하나 만들어 줄 테니까 해볼래?”
“돈벌이요?”
안톤이 눈을 끔뻑거렸다. 갑자기 돈벌이 만들어준다니까 이게 무슨 소리? 라는 느낌.
“너, 그거 검은 액체. 중간크기 오크통에 한가득 떠올 때마다 십오 동화씩 줄게 어때?”
“예?”
여기서 중간크기 오크통은 한 이십오 리터 정도 되는 오크통을 말하는데, 꽉 차면 30킬로 정도 되고, 용병들은 그 정도는 두 개 정도까지 가뿐하게 지고 갈 수 있으니. 부담되는 무게는 아니다.
“아니, 그걸 그만큼이나 준다고요?”
오크 귀때기나 리자드맨 벼슬 같은 거 잘라가도 몇 동화 못 받는데, 이 정도면 아주 군침이 돌 금액이다. 안톤의 머릿속에 계산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눈알이 사정없이 굴러가는 느낌.
사냥하다가 파티원이 한통씩만 가지고 와도. 은화, 한 개가 그냥 떨어지니 부수입으로 짭짤할 것이다.
내가 언제 직접 가서 퍼오냐. 애들 시켜야지 은퇴한 모험가가 자꾸 필드 나가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외주를 주는 것.
내가 타르를 구하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천연타르는 방수를 위해서 사용할 경우 아주 엄청난 성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구하려는 것이다.
마을 오두막들은 대부분 목제 지붕이나 지푸라기, 갈대 등을 엮어서 만든 지붕이라 시간이 지나면 갈라지거나 오래돼 물이 새기 마련이다. 특히 목제 지붕은 타르 한번 발라서 굳혀주면 그냥 쓰는 것보다 수명이 오래가고, 하수관을 만들 때도 타르로 코팅한 목관을 쓰면, 그냥 목관보다 내구성이 뛰어나 오래 쓸 수 있으니 지금 상황에서 딱 필요한 물건인 것.
하지만 나의 군침 넘치는 제안에 곰곰이 생각하던 안톤의 입에서는 예상 못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저, 형님. 제가 그까짓 거 돈 안 받고도 가져다드릴 수 있는데,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
공짜로 가져다준다는 것도 이상한 일인데 부탁? 거기다 왠지 껄렁한 놈이 공손한 자세로 말하니 신기하긴 한데. 부탁 뭔지나 들어보기로 했다.
“부탁이 뭔데?”
“그, 저…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건방지고 무례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절대 형님을 우습게 보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니고, 정말 존경하는 마음에 말씀드리는 거니까 혹시라도 거절하시더라도. 그, 노여워 마시고…”
“안톤아 너는 다 좋은데 말이 너무 많아. 그냥 머리통 터트리고 싶어지게. 그냥 빨리 이야기하면 안 되니?”
내가 짜증을 내면서 안톤의 머리통을 움켜쥐자 안톤이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말했다.
“궁, 아니 활, 활쏘기를 좀 배, 배우고 싶습니다!”
“뭘 배우고 싶다고…?”
나는 이제야 안톤의 입으로 화살 꼬치인지 화살 고추의 비밀을 들을 수 있었다. 안톤의 말로는 붉은 초승달 그놈들의 머리에 박힌 화살을 보고, 존경하는 마음이 들어 그라 폴 모험가들이 지은 별명이라나?
개 같은 이명. 바람의 궁수, 화살 비, 좋은 것도 많은데 뭔 닭고치도 아니고. 용병 새끼들한테 무슨 센스를 기대하냐, 더 더러운 것 아니니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안톤은 자신도 내 실력을 존경하기에 궁술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안톤은 원래 활이 주 무기인데 실력이 정체되어서 배움을 청하고 싶다는 것.
“역시나 힘들겠죠? 갑자기 저 같은 놈이…”
나는 뒤를 돌아 한쪽 테이블에 딱 붙어 앉아서 에브리나에게 입술을 잡아먹히고 있는 벨릭을 향해 소리쳤다.
“벨릭아! 여기 네 후임 들어왔다. 후임 받아라!”
벨릭도 안톤도 서로 내가 한 이야기의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활쏘기라면 이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분들이 여관에 네 분이나 계시니. 안톤 이거 이놈 행운아였다. 물론 기초체력 훈련은 내가 담당한다.
나는 어리둥절한 두 놈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벨릭도 그만 꽁냥 거리고 훈련도 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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