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 150. 하수공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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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반응이 아주 좋았다. 날카로웠던 마을 주민과 상인들의 신경전도 다 같이 먹고 마시며 춤추는 사이에 다 풀려버렸다.
축제를 열기를 잘한 것 같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나도 내년에는 일부 품목을 상인들에게 수수료 조금 받고 넘겨주기로 약속해줬다. 내 수입이 조금 줄어들긴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전체 수입과 마을에도 도움이 되니, 그 정도는 양보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내년에는 화장실도 만들고 야영지도 근사하게 만들 예정이니, 그것만으로도 돈이 되니까 말이다.
축제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는데, 사람들이 마을 광장에서 술에 취해 나뒹굴 때. 나는 술 취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을 몇 명 모아 내일 아침 모든 인원을 먹일 스튜를 트롤 솥에 끓였다. 해장 스튜랄까?
고추는 아직 못 찾아서 매운맛은 못 내니까, 마을에서 넘쳐나서 버릴 지경인 무를 잔뜩 넣고 시원하게 끓인 것. 말린 생선 한 상자와 허브를 넣고 토마토도 갈아 넣었다.
목욕탕으로 쓰던 솥에 부어지는 재료의 양에 마을 주민들도 놀라며 신기해했다. 나야 전생에 이런 대규모 요리를 텔레비전이든 어디서든 볼일이 없지는 않았지만, 여기 사람들에게는 처음 접하는 정말 엄청난 양인 것이다. 당연히 신기할 수밖에 없는 것.
여기 넣는 양파를 까는데, 양이 많아서 토끼 수인 둘이 눈물을 엉엉 쏟았을 정도니까.
중간에 한번 맛을 보았는데, 뭔가 생선 맛이 진하게 나는 토마토 국 같은 느낌이었다. 뭔가 조합이 이상해 보여도 영원의 스튜 따위보다야 훨씬 진하고 풍부한 맛.
꺼끌꺼끌 미끌미끌한 귀리죽이나 보리죽보다야 아침으로는 훨씬 좋을 것이다. 해장으로 맛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스튜가 어느 정도 끓자 나는 아침 배식을 맡은 마을 주민들에게 스튜를 넘겼다. 스튜야 불 조절만 해서 물이 부족하면 더 부으면서 푹 끓이면 되니까 이제 걱정은 없다.
나는 내 다음 임무를 찾아 이동했다.
나의 다음 임무는 사람 셋을 치우는 것.
그렇다! 축제 분위기와 술에 취한 세 아내를 옮겨야 하는 것이었다. 먼저 셋을 여관 일 층으로 하나씩 업어 옮겼다. 하나 데려다 놓으면 하나가 사라지는 통에 몇 번이나 찾아다녀야 했다.
자꾸 어딜 가는 거냐 너희들. 으아아!
그렇게 한밤중의 술래잡기가 끝나고 여관 일 층에 셋을 몰아넣고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여관까지 가서도 한 명씩 품에 안고 삼 층까지 세 번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는 현실에 여관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셋이라는 삶의 무게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는 여관 홀 테이블에서 실실 웃으며 널브러져 있는 셋 중에 제일 먼저 이실리엘을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었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 이실리엘의 방으로 갔다.
“러셀, 아하하하…”
“그래, 이실리엘 자자 침대에 누워서.”
이실리엘은 아까부터 계속 웃고 있었다.
“러셀 같이 자야죠!”
“아니, 리젤다 좀 옮겨두고 알았지?”
나는 술 취한 이실리엘을 달래 침대에 눕힌 후, 이실리엘의 방에서 나와 다시 아래층으로 가 리젤다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리젤다의 방으로 이동.
“안 돼요. 못 나가요.”
“잠깐만 리젤다, 이것 좀 놓고 발레리만 두고 올게. 알았지?”
방에 들어서자마자 목을 끌어안고 아무 데도 못 간다는 리젤다를 달래느라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간신히 침대에 눕히고 다시 아래층.
마지막 발레리의 차례. 얜 좀 특별히 무거운 것 같았다.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한데.
“러셀, 노래 들려줄까요? 헤헤”
“무슨 노래?”
“응? 침대 위에서 남편한테만 들려주는 야. 한. 노. 래?”
나는 발레리도 침대에 눕힌 후, 잠깐만 나갔다 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재빨리 방에서 빠져나왔다. 오늘은 어느 누구도 나를 유혹하지 못한다.
나도 오늘은 편안한 잠을 맞이하고 싶으니까. 셋에게서 도망쳐 나온 나는 간신히 침대에서 편안한 밤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축제의 밤이 저물어갔다.
“뭐, 뭐야? 이게 웬 물이야!”
“어디서 온 물이야?”
며칠 후 아침. 여관 주변은 때아닌 물난리로 북새통이었다. 목욕탕에서 쓰던 물을 갈기 위해 도랑으로 물을 버렸는데 도랑이 막혀있는 것을 확인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밖에서 천막을 치고 자던 용병들은 난리가 난 상황.
도랑에서 넘친 물로 여관 주변은 금방 물바다로 변했다. 다행스럽게 애니의 남동생이 막힌 도랑을 재빨리 청소해서 물을 빼냈고, 뭐 남은 물이야 금방 다 스며들기야 하겠지만. 그간 미루던 배수 시설을 한번 점검해야 할 필요가 느껴졌다.
마을의 배수 시설은 물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생겨난 작은 도랑으로 흐른 물이 강으로 빠져나가는 형태. 비가 오면 작은 도랑이 되지만 평소에는 마른 건천의 형태이다. 요즘은 우리 여관의 목욕탕 때문에 그렇게 마르지 않은 상태지만 가끔 흙이나 풀들로 막히면, 이렇게 때아닌 물난리가 난다.
우리 여관은 물을 많이 쓰니 배수 시설을 손볼 필요가 느껴졌다.
더군다나 목욕탕 물을 갈 때 여관 식구들이 총동원되어 물을 길어오고 있는데, 여관 근처에 우물을 파든지 강물을 끌어오든지 할 필요도 있었다.
드워프를 고용해서 석재로 하수로를 만들까? 돈이 많이 들겠지? 목재로 하면 몇 년 지나면 썩어버리겠지?
조금 한가한 정오 내 방 책상에서 여러 가지 고민을 이어가고 있을 때.
똑똑
“누구세요?”
“러셀 손님이 장비를 맡겼는데, 한번 내려와 봐야 할 것 같아요.”
발레리였다. 나는 발레리와 한나 아주머니 집으로 향했다. 요즘 장비 손질은 한나 아주머니 댁에서 하고 있으니 그리로 향한 것이었다. 발레리와 여관에서 나와 한나 아주머니 댁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홀에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장비를 손질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러셀, 어서 와요.”
주변을 보니 대부분 장비는 손질이 끝난 상태였고 직원들의 한 가운데 무릎아래까지 오는 부츠 한 개가 세워져 있었다.
일반적인 갈색 부츠인데 검은색의 무엇인가가 덕지덕지 칠해진 그런 느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닦을 수가 없어요.”
한나 아주머니의 난처한 표정 애니와 토끼 수인 자매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부츠를 들어보았다. 그리고 표면을 만져보았는데 검은 것은, 아주 오래되었는지 전부 말라붙어있었다. 바닥을 확인해도 바닥까지 말라붙어 흡사 코팅한 것처럼 보였다.
일단 단검으로 바닥을 긁자 바닥에 말라붙은 부분이 조금 떨어져 나왔다. 늘어 붙은 쪽은 아직은 덜 마른 상태였는데, 손가락으로 만져보니 뭔가 찐득한 접착제 같은 느낌.
“어디서 이런 건지는 물어봤나요?”
“늪에 있는 검은 웅덩이에 빠졌다고 하더라고요.”
늪에 있는 검은 웅덩이, 검은색, 접착제? 뭔가 생각이 날 것도 같은데?
“애니 독한 술 좀 한 잔만 따라와 줄래?”
“알았어! 러셀.”
애니는 내 부탁에 여관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손에 든 잔에 독한 술 한잔을 따라서 가지고 왔다. 보통 여기서 독한 술이라면 증류주 중 진짜 엄청 독한 놈들을 가리키는데, 농도가 진짜 장난이 아니게 엄청 독하다. 숙취도 엄청나고.
나는 그 술을 천에 충분하게 바른 후, 부츠에 눌어붙은 검은 것을 충분히 적셨다.
그리고 잠시 후 조심스레 부츠를 닦아내자 늘어 붙은 그것이 일부분씩 닦이거나 떨어져나오기 시작했다.
“오, 역시 러셀이네요.”
“역시 우리 주인님이네요.”
“근데 이거 부츠 주인에게 손질 힘들다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
독한 술 한 병에 십 동화 내외 정도 하는데, 동화 두 개만 받고 독한 술로 닦기에는 손해가 막심하니 어쩔 수 없었다. 주인한테 이야기하고 손질할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더군다나 독한 술로 닦는다고 깨끗해질 보장도 없으니.
“더는 안되나요?”
“응 힘들 것 같아. 깨끗해진다는 보장도 없고. 이 부츠 주인이 누구지?”
“그거 안톤 씨 거예요.”
“그럼 안톤한테 그렇게 말해두고, 내가 찾아간다 그래.”
안톤은 며칠 전에야 사냥을 끝내고 자기 파티원들과 여관에서 묵는 중이다. 내가 사냥 끝날 때 여관으로 찾아오라고 했더니 파티원들까지 다들 데리고 찾아온 것이다. 애가 좀 싹싹하고 눈치가 빨라서 벨릭 보다는 이야기가 잘 통하는 편인데 뭐 벨릭 만큼 깊은 맛은 없는 놈이었다.
그런데 안톤 이놈 여자한테는 엄청 치근덕대는 것 같은데, 웃긴 것이 안톤의 파티에는 여자가 한 명도 없었다. 벨릭에게 슬쩍 물어보니 하도 여자에게 치근덕거려서 여자들이 안톤의 파티는 꺼린다나? 웃긴 놈이었다.
나는 발레리와 함께 검은 것을 닦은 천과 부츠에서 떼어낸 검은 조각들을 가지고 부엌으로 왔다.
“러셀 그런데 그건 왜 가지고 온 거에요? 그 검은 건 뭐죠?”
나는 발레리의 질문이 들려오는 가운데 그 검은 조각 중 제일 큰 것을, 아직 화로에서 죽지 않은 숯 위로 던졌다. 그러자 그 검은 것이 끓어오르듯 부글거리더니 곧바로 검은 연기를 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천연 아스팔트인 천연타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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