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51화 (151/352)

〈 151화 〉 149. 축제 7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여관의 전 직원과 마을 사람들과 함께 준비된 요리재료들을 나르고 마을의 목책 문을 활짝 열었다.

“자 풍유의 축제의 시작입니다. 웜 포트에서는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자자 신전으로! 작은 제사 후에 맛난 음식과 맥주가 기다리고 있어요. 모두 무료에요!”

며칠 전부터 목책 밖의 사람들에게 축제가 열린다는 것을 알려두었기에, 목책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마을 광장 여기저기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음식의 냄새가 솟아오르고 몰려드는 사람들로 마을 광장은 금방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음식은 신전 행사 후에 드립니다. 다들 신전으로!”

촌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람들이 처음 열리는 축제에 신기해하며 신전으로 몰려들었다. 신전 내부는 곧 사람이 빽빽하게 차고, 창문 밖에도 안을 보려고 사람들이 여기저기 매달리기 시작했다.

흰 성전이 오늘만큼은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들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신전의 제단 뒤 한쪽에서 시트라 씨와 두 사제분이 걸어 나오셨다. 시트라 씨는 리허설과 같은 순서로 이단 심문관의 정복을 입고 매력적인 걸음으로 중앙으로 걸어 나오더니, 입술을 열어 말씀을 시작하셨다.

“신들의 보살핌으로 풍요로운 결실을 보았으니, 그에 감사한 저희 들의 마음을 올려 드립니다.”

시트라 씨는 나와 연습했던 이야기를 말씀하시며, 몇 가지 음식이 차려진 제단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두 손을 들고 제단 너머 열린 창을 바라보는 모습을 취하셨다.

원래 신전은 저 열린 창에서 빛이 들어와 제단을 비추는 형태로 만들어졌다는데, 시트라 씨가 자세를 취하자마자 열린 창에서 눈 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오더니, 제단과 시트라 씨를 밝게 비추기 시작했다.

시트라 씨 어제 뭔가 결심한 모습을 보여주시더니 이런 준비를 하셨다니. 시트라 씨를 비추는 빛이 얼마나 밝은지 무슨 신이라도 현신한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구슬픈 하프 소리. 그리고 흰 드레스를 입은 발레리가 한쪽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영혼은 신께로 돌아가고~ 전사는 잠이 드네~ 오 신의 축복이로다~”

신전 안에 발레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목소리에, 다들 감동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 감동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렸다.

“이게 무슨 제사라고?”

“풍유 감사의 제사라고 하던데?”

“노래 부르는 사제님을 보니 풍, 풍유가 확실히 맞는구먼”

그 말에 신전 안의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노래는 매년 발레리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뭔가 직관적인 홍보랄까.

발레리의 노래가 끝나자 시트라 씨가 천천히 일어나 뒤로 돌았다. 그런데 시트라 씨의 등 뒤에 리허설 때 없었던 후광 같은 것이 비추고 있었다. 시트라 씨는 생각보다 무대 체질인 것 같았다. 약간의 힌트로만 이런 광경을 연출하시다니.

내가 감동하고 있을 때.

시트라 씨의 입이 열리고 왠지 전혀 다른 사람인 것같은 고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완벽한 분위기와 완벽한 연출. 아주 감동적이었다.

“자녀들이여 그대들의 마음이 하늘에 닿았다. 오늘의 축제를 우리가 축복하노라.”

묘한 떨림이 있는 목소리. 몇몇 사람은 그 목소리만으로도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자 가라! 이제 가서 축제를 즐기라!”

시트라 씨의 축제 시작 선언이 끝나자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며 마을 광장으로 뛰어나갔다. 풍유 축제의 시작이었다.

짧고도 완벽한 연출. 어제 넷이 연습했던 것보다 완벽한 제사였다.

나도 다른 준비를 위해서 사람들을 따라 나가려 일어섰는데, 뒤에서 무엇인가가 쓰러지는 소리와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털썩

“시, 시트라님. 이게 어떻게!”

뒤를 돌아 상황을 확인하자. 두 사제가 놀란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진 시트라 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의 표정으로. 손까지 떨리는 모습.

무대 울렁증? 공포증? 긴장감에 실신하신 건가? 그렇게 용감하게 잘하셨는데 왜?

쓰러져서 크게 다치신 건 아닌지 내가 시트라 씨에게 다가가 그녀를 살펴보려 하자, 두 사제분이 단호한 표정으로 나를 붙잡으며 막아섰다.

“자, 잠시만요! 안 됩니다. 지금은!”

“기다리셔야 합니다.”

둘의 제지에 시트라 씨를 다시 바라보자, 시트라 씨는 제단 너머 창에서 비추는 빛 속에서 잠들 듯 쓰러져 있었다. 시트라 씨가 쓰러졌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빛. 나는 그 위화감을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어? 설마?”

내 말을 이해한 것인지 두 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분위기를 보니 그거였다. 신내림? 강신? 신탁? 아까 그 목소리가 그럼?

아니, 왜 높으신 분이 하필 작은 마을 행사에…

“괘, 괜찮은 겁니까?”

내 부탁 들어줬다가 괜히 사람 잡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어 물었더니, 두 사제가 그냥 한동안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아니, 높은 분이 왜 작은 마을 축제 따위에…”

또 한동안 복잡해질 것이 뻔했다. 작은 마을에 신이 잠시 내려왔다 갔으니, 성지 같은 것이 되는 건 아니겠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시트라 씨 덕분에 낮아졌던 경계심이 다시 차올랐다.

“발레리, 시르케와 축제의 흥을 좀 올려줘 나는 시트라 씨 좀 살펴보다 갈게 알았지?”

“알겠어요. 러셀! 저만 믿으세요!”

“오늘 축제 잘 끝나면 다른 이야기 꼭 약속이다!”

일단 발레리와 시르케에게 축제의 분위기를 띄워줄 것을 부탁했다. 다른 것들은 미리 지시해두었으니 시트라 씨를 살펴볼 시간은 충분하니까.

시르케와 발레리는 재빠르게 신전을 빠져나가 광장 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시르케의 연주 소리와 사람들의 환호가 신전의 열린 문으로 조용히 흘러들어왔다.

“이거 괜찮은 거 맞겠죠?”

걱정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어 사제들에게 상태를 물었는데, 둘 다 정확히는 모르는 상태인 것 같았다.

“그게 저희도 잘….”

“성국에 보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 말에 사제 둘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으로 깜짝 놀랐다. 그리고 둘 다 달려서 숙소 쪽으로 가려다 다시 한번 놀라더니, 한 명은 남고 한 명은 안으로 사라졌다.

저기도 초유의 사태에 정신을 못차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트라 씨를 한참을 바라보고 있을 때 창문에서 비추던 빛이 점점 약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내가 사제를 바라보자 무슨 말인지 이해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시트라 씨를 품에 안아 들고 한번 가봤던 그녀의 숙소로 이동했다. 안아 든 시트라 씨는 방에서 처럼 달콤하고 좋은 향기가 났다. 그리고 시트라 씨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그녀의 체구가 작다는 사실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그녀의 방에 도착해, 사제의 도움으로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깨어나려면 시간이 좀 걸리나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따라온 사제의 대답. 나는 손을 들어 시트라 씨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뭐 열이 나는 건 아니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

“괜한 부탁드려서 고생만 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내 말을 부정하는 사제의 목소리.

“설마요. 시트라 씨도 어제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셨고, 오늘 영광스러운 경험도 할 수 있었는데 도리어 감사해할 겁니다.”

그녀의 표정은 한치의 의심도 없는 확신의 표정.

“그냥 저는 일반인이라 그런지 종교인의 삶은 잘 이해를 못 하겠어요, 높은 분이 내려왔다 가셨으니 이분도 더 높은 자리에 오르시겠죠? 그게 시트라 씨가 원하는 행복해지는 길일까요?”

나는 시트라 씨의 이마를 한번 쓸어 넘겨주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데 삶에 휩쓸리는 게 그렇게 좋은 건 아니니까… 왠지 걱정도 되고, 순수한 분인데…

그리고 앞으로 있을 일들이 다 내탓일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괜한걸 부탁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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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 밖으로 걸어 나오자 광장에서 에브리나와 키스를 하는 벨릭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에브리나의 얼굴이 벨릭의 털속에 반쯤 처박혀 있었는데…키스 맞겠지?

아내들은 뭘 하나 궁금해서 전을 굽는 곳을 확인하기로 했다.

조금 걷자 저 멀리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드는 테이블이 보이고,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 손에는 음식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음식 테이블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의외로 에밀의 쥐 고기 테이블이었다.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러나던 사람들도, 에밀이 입에 들이미는 쥐 고기를 맛보고 눈이 휘둥그레져 다시 주문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친화력이 뛰어난 모습.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아내들의 모습.

발레리는 웃는 얼굴로 한 손에 맥주잔을 들고 마리나와 어깨동무한 채 서부의 것으로 보이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이실리엘은 얼굴 여기저기에 반죽을 바른 채 전을 굽고 있었다. 리젤다는 테이블 위에서 물구나무를…

“리젤다!”

나는 화들짝 놀라 리젤다가 물구나무서고 있는 테이블로 달려갔다.

우리 용병 출신 리젤다 씨는 전을 구워야 한다는 사명도 내려놓은 채, 무엇 때문인지 물구나무를 서시다가 술이 잔뜩 취한 모습으로 내 품으로 안겨들었다.

역시나 이분은 물구나무가 특기셨다.

“러셀! 헤헤… 러셀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전을 굽는 이실리엘에게 물었더니 이실리엘도 술에 좀 취했는지 발그레 물든 볼로 대답했다.

“목이 말라서 둘이 한잔 두잔 마시다 보니, 흐에…”

즐거운 축제의 시간이 깊어가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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