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 148. 축제 6
* * *
“흑… 시르케는 이제 노예예요.”
“아니, 인마 직원!”
“주인에게 막 이런 일 저런 일 당해버리는 노예일까요? 흑…”
“아니, 이 새끼가! 직원이라니까!”
시르케는 이야기와 노래 대결에서 진 후. 여관 주크박스로 낙찰되었다.
원래는 축제만 쓰고 풀어주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무슨 소원인지를 안 정했네? 내친김에 여관 망할 때까지 여관에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도 해주고 노래도 불러주라고 말했다.
그 소리에 놈은 울면서 땅을 구르며 다시 생떼를 부렸지만. 이실리엘이 눈을 부라리니 조용히 마차에 올랐다. 그 후로는 저렇게 노예 타령하면서 나에게 영원히 붙들린 것 같은 소리를 해대고 있다.
정신건강에는 좋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여관에 노래할 놈 하나 필요하긴 했으니 잘된 것.
시르케가 연주하고 발레리가 노래하면?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마을로 돌아가는 내내 계속 저 지랄 중인 시르케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외모는 성인 여성인데 애가 좀 모자란 것 같으니 살살 달래봐야지. 예전에 봤던 레우케 요정들은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마을로 복귀하는 내내 징징거리는 시르케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야 시르케야 너 내 이야기 어땠어?”
“아름다운 표현도 없고 너무 저속했어요! 하, 하지만 재, 재미는 있었어요.”
이야기에 목숨 건 애들이라 그런지 그래도 이야기 평가는 정직했다. 재미없다고 할 줄 알았는데?
“너 이것보다 내가 더 재미난 이야기 많이 아는데 말만 잘 들으면 가르쳐줄 수도 있어”
“에이 그것보다 재미있다고요? 이야기를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보통 아무리 재주꾼 음유시인이라도 수십 가지 이야기를 알고 있지는 않다. 보통은 몇 가지가 고작. 얘들이 떠도는 이유 중 한 가지인 것이다. 몇 번 이야기하면 레퍼토리가 떨어지니 다른 고객을 찾아 떠나는 것.
“너, 내가 그런 이야기 수십 가지는 알고 있는데 어때? 말 잘 들으면 내가 하나씩 알려준다.”
“믿을 수 없어요. 시르케한테 거짓말하는 거예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복귀하는 마차 안에서 나의 18번 인어공주 이야기를 시르케에게 들려주었다.
“왕자를 이 칼로 죽이면 너는 되돌아갈 수 있어! 언니들이 말했어요! 그럼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네? 그, 그래서 인어공주가 언니들 말대로 왕자를 죽였어요? 여기서 끝내면 어떡해요!”
인마 이게 바로 60억 지구인 지혜의 정수 절단 신공이라는 것이다! 시르케는 안달이 난 상태였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모으는 것이 인생의 낙인 놈들이니 참지 못하는 것.
“내가 뭐라고 했지?”
내가 조용히 물었다.
“말 잘 들으면 하나씩 알려준다고…”
하는 짓은 애 같은데 머리는 나쁘지 않은지 시르케는 이내 조용해졌다. 나는 그때 서야 조용해진 마차를 느끼며 그렇게 웜 포트를 향해 마차를 몰았다.
하지만 마을까지 이어질 줄 알았던 평온은 금방 깨져버리고 말았다. 얼마 되지 않아 시르케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말이다.
“이제 말 잘 들었으니까요. 다음 부분 이야기해주세요.”
아… 이 새끼!
음유시인도 구했고 맥주도 잔뜩 사 왔으니 축제의 일차적인 준비는 끝났다. 복귀 후 시트라 씨에게 물어보니 성국에서도 아주 긍정적으로 반응했다고.
잘 살펴보고 종교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면 시트라 씨가 판단해서 편의를 봐주라고 했다나? 이세계 종류 시트라씨 덕분인지 요즘 점수가 나쁘지 않았다.
행정적 정차가 마무리되었고 음유시인도 구했으니 다음은 음식을 준비할 차례.
축제는 간편하게 들고 다니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국룰이니 일단은 꼬치다. 조류나 소, 돼지 같은 고기들로 메인을 준비하고, 곱창이나 간 심장 같은 부위들도 꿀 섞은 소스를 발라 달콤하게 굽기로 했다.
신선한 채소들도 사이사이 끼워 넣고. 물론 소금구이도 있다.
물론 축제니, 꼬치는 완성품을 먹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직접 구워주기로 했다. 여관 테이블을 밖으로 꺼내고, 모험가들이 사용하는 무쇠솥에 숯불을 집어넣어 테이블 위에 올린다. 그리고 바로바로 테이블 위에서 굽는 것이다.
맛있는 냄새가 나야지. 축제 아니겠나.
이 음식은 한나 아주머니 애니가 맡기로 했다.
그리고 축제하면 뭐다? 당연히 지짐이, 부침개, 빈대떡! 요것도 작은 무쇠솥을 화로처럼 이용해서 팬에 굽기로 했다.
이 음식은 이실리엘, 리젤다, 발레리가.
그리고 트롤의 솥에는 나를 여기까지 있게 해준 음식. 스튜! 물론 영원의 스튜 아니고 나의 진품 스튜이다.
빵도 구워서 산더미처럼 준비하고.
그렇게 음식 준비에 한창일 때 누군가 내 옷깃을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옆을 돌아보니 에밀이었다. 에밀이 뭔가 망설이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말했다.
“러셀, 근데 나도 음식.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아니, 요 녀석 뭐가 먹고 싶은가? 귀여운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무슨 음식을 하고 싶은데?”
“쥐! 통구이!”
로리엘은 새고기, 이실리엘은 양고기, 에밀은 쥐 고기인가…
취향이 다들 확고 하구만. 결국 다른 테이블 하나를 마련해서 에밀의 쥐 고기 통구이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자기 음식을 만드는 자리가 완성되니, 에밀은 신이나 내일 쓸 쥐를 잡는다며 평원 엘프들이랑 평원으로 달려 나갔다.
예쁜 엘프들이 머릿결을 휘날리며 평원으로 내달리는 모습이 동화의 한 장면 같았다.
직원들과 아내들의 음식 준비가 한창일 때. 나는 발레리 시르케를 데리고 신전을 찾았다. 내일 풍유 감사제를 위해서 시트라 씨와 리허설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시작은 처음에 시트라 씨가 신전 제단 앞으로 나와서 ‘신들의 보살핌으로 풍요로운 결실을 보았으니 그에 감사한 저희 들의 마음을 올려드립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빛이 나는 신성력 한번 신전 안에 꽉 차게 뿜어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
“꽉 차게 말입니까?”
“아, 어렵나요?”
“아닙니다. 최대한 밝게 해보겠습니다.”
시트라씨는 무슨 큰 임무라도 맡겨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트라씨가 자신의 부분을 걸어 나오며 연습하는 사이에, 나는 시르케와 발레리를 데리고 다음 순서를 연습시켰다.
“시르케 시트라 씨의 신성력의 빛이 시작되면, 바로 하프로 잔잔하게 연주를 넣어 알았지?”
“알았어요! 이거 잘하면 이야기 다음 부분 들려주는 거지요?”
인어공주의 결말이 궁금한 시르케는 현재 아주 말을 잘 듣는 상태. 기대감이 너무 커서, 이거 거품 방울 엔딩 말했다가 화가 난 독자에게 테러당하는 건 아닌지 몰라…
“그건 축제 끝나고.”
“히잉…”
이세계는 성가라든지 신을 위해 바치는 노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성전에서 종교 음악이 빠지면 뭔가 섭섭하잖냐. 그래서 여관에 모든 사람을 모아 여러 가지 아는 노래들을 다 수집했다. 성전에서 울리면 성스럽게 들릴 것 같은 노래들을 수집한 것이다.
뭐 전생의 성가도 이런 식으로 시작하지 않았을까?
벨릭의 이상한 괴성부터 한나 아주머니의 중부지역 노래까지 아주 많은 노래가 이어졌지만, 의외로 당첨은 리젤다가 부른 노래가 되었다.
북부에 죽은 전사를 기리는 노래. 무척 장엄하고 슬픈 곡조의 노래였다. 듣는 순간 신전에 무척이나 어울릴 것 같아서, 시르케의 연주와 발레리의 노래로 한번 해봤는데. 이게 대박이었다.
종교적인 음악을 알고 있는 내가 들으면, 꼭 신전에서 쓰려고 만든 노래처럼 들렸으니까 말이다.
시르케의 연주가 시작되고 발레리가 목소리가 신전에 울려 퍼지자, 우릴 보고 있던 두 사제분과 연습 중인 시트라 씨도 깜짝 놀라서 발레리가 부르는 노래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세 명의 사제들이 몰려들어 칭찬이 이어졌다.
“이, 이게 무엇인가요? 신성력이 막 요동치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머 사제님도? 저도 그런 감상이었어요!”
“러셀 씨 이 노래는?”
“북부의 죽은 전사를 기리는 노래라는데. 그, 뭐 신전에서 신들이 허락하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바치는 거라고나 할까요? 감사함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죠.”
세 사제는 나의 말에 아니, 그런 깊은 뜻이?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세 사제의 요청으로 발레리의 노래와 시르케의 연주는 몇 번이나 이어졌다. 몇 번의 리허설이 끝나고도 계속된 요청으로 두세 번은 더 불러주고 나서야, 우리는 세 사제에게서 해방되어 여관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여관으로 돌아오는 길.
인어공주 이야기를 졸라대는 시르케에게 마지막 부분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으아아아아! 러셀, 너는 악마다! 마족이다! 인어공주를 물거품으로 만들다니! 아무리 이야기라지만 너는, 너는… 흐흐흑…”
흙바닥을 구르며 시르케가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내가 만든 이야기인 줄 알고 있으니, 내가 인어공주의 결말을 너무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모양.
아니, 친구야? 나도 그거 주워들은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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