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 146. 축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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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새벽 물안개가 짙게 깔린 마을 옆 강변. 그 뿌연 안개를 헤치며 나와 벨릭은 장어 잡는 갈대 묶음을 살펴보러 강변에 나와 있었다.
아내들이 남자 몸에 좋다니 여관에 장어가 떨어지면 예민한 반응을 보여, 이전의 장어 사건 이후로 꾸준히 장어를 잡아다가 여관 물통에 채워두는 중이라 오늘도 장어 수거를 나온 것이다.
원래는 이실리엘. 리젤다, 발레리가 전담하는 일이지만 벨릭이 새벽부터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나에게 찾아와 고민거리를 털어놔 벨릭을 데리고 한적한 이곳으로 온 것이다.
갈대로 촘촘하게 엮은 바구니를 들고 나를 따르던 벨릭은 며칠 사이에 기가 다 빨린 듯한 모습.
“형님, 저는 형님을 만나고. 계속 형님을 알아가면서, 존경심만 느는 것 같습니다.”
벨릭이 하나 남은 눈을 끔뻑거리면서 말했다.
“무슨 소리냐? 그건.”
갑자기 새벽부터 헛소리를 꺼내는 벨릭을 쳐다보자. 녀석이 정말로 존경심 가득 담긴 눈망울로 말했다.
“하나도 이렇게 힘든데 셋이나, 형님은 진짜 존경받기 마땅하십니다.”
나는 벨릭을 보고 한숨을 한번 쉬었다.
“벨릭아. 예전에 내가 살던 동네에는 이런 말이 있어.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
“네? 그게 무슨?”
“사고 친 놈이. 수습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새끼 진짜. 나는 인마 너를 알아갈수록 답답함만 늘어! 속이 터진다. 터져.
“저,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걸요?”
“이 새끼야! 안 해서 문제라고! 안 해서!”
이 새끼를 진짜 어쩌지? 이 새끼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소리가 저 주둥이에서 나왔나? 나는 벨릭의 주둥이를 잡아 뜯으려다 에브리나가 생각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 답답함은 이제 내 몫이 아니라 에브리나의 것.
나는 이세계의 바보온달을 위해 오늘도 몸과(?) 마음을 다해 애쓰는 평강공주를 위해, 벨릭에게 장어탕이나 끓여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나는 촌장님, 마을 사람 몇몇, 시트라 씨와 함께 신전에서 회의하는 중이었다. 신전이라는 게 생기니 마을 주민들이 모일 장소도 생기고 나쁘게만 생각했는데 좋은 점도 있었다.
“그러니까 장사도 하고 축제도 열어보자고?”
“예, 그러니까 매년 사냥철이 찾아올 때, 마을 문을 걸어 잠그고 소극적으로 대하기보다, 좀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비용도 받고 그러자는 겁니다. 마을 밖 목책에 붙어서 야영하는 사람들이 금액을 내긴 하지만 뭐 거의 소액이고 마을에 불편만 끼치고 도움이 안 되잖아요?
어차피 오는 사람을 막지는 못하니, 마을 안에 수로도 만들고 화장실도 만들어서 사용하게 하는겁니다. 물론 비용을 받고요. 식사도 판매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마을 차원에서 크게 말이죠. 수익은 사냥철이 끝나면 일부는 마을 공동 기금으로 놔두고 나머지는 일한 만큼 나누고요.
그리고 축제는 사냥철 시작에 신전에 무사와 축복을 기원하는 제사도 드리고, 이때가 농사일도 시작될 시기니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 이런 느낌으로 하면 좋겠네요. 사냥철이 끝날 때 감사한 마음을 담아 또다시 제사를 지내는 거죠. 마침 딱 수확기니 시기도 맞고요.
그리고 그 제사가 끝나면 사냥철이 잘 끝난 것과 추수를 축하하면서 축제를 여는 겁니다.
뭐 그냥 사냥한 짐승 몇 마리 굽고, 사냥 기간에 번 돈으로 맥주 좀 풀고 그러는 거죠. 음유시인도 좀 부르고요.
초기 시설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돈과 이번 축제 비용은 제가 낼 테니, 매년 수익에서 일정 부분씩 갚아나가면 됩니다. 저한테.”
“흠…. 나쁘지 않은 생각 같은데?”
턱을 잡고 고민에 빠진 촌장님.
이번 사냥 시즌이 끝나고 여관 일을 도우며 제법 짭짤한 돈을 만지고 있는 마을 주민들 몇몇은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솔직히 이런 시골 마을에 일할 거리가 어디 있겠나 농사일 외에는 뭐 가끔 낚시나 사냥이 있는데, 마을 주민들의 사냥은 올무 같은 걸로 작은 짐승을 잡는 정도, 늪지 근처는 위험한 생물이 많아서 애초에 일반인이 사냥은 불가능하다.
마을이 발전하려면 일거리가 필요하고 사람들도 유입이 되어야 하는데, 가끔 찾아오는 유입 인원은 영주의 악행에 질린 가족 단위 도망자들.
그러니 사냥 시즌에 맞춰 목책 밖에서 무단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을 전부 손님으로 받고, 손님들에게 필요한 일들을 일종의 마을 단위 공공사업으로 벌이자는 것.
그리고 축제도 열어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유치, 홍보도 하고, 전생의 관광지 느낌으로 한 철 장사를 크게 하자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머릿속에서 계획을 정리하고 있을 때 내 이야기에 의문을 가지신 한 분. 시트라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셀 씨, 그런데 제사라면? 저희 성국에서는 신께 제물 따위는 올리지 않습니다만 그건 악신, 마신들의 몹시 나쁜 행동인데?”
여기 신들은 제물이 포함된 제사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신전은 어디에나 작은 직할지가 있고 그 직할지의 영주 같은 느낌이라고, 직할지가 없는 신전은 성국에서 생계를 지원해준다고 했다. 시트라씨의 말을 들어보니 종교인들은 재물에 연연하지는 않는 느낌이었다.
여기 종교 생각보다 상식적이었다.
나만 힘들게 했지…. 알고 보니 원주민들에게 대우가 나쁘지 않은 것이 종교였다.
“어, 그러니까 사냥과 농사가 시작할 때. 신들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과 늪지에 축복의 말씀을 해주시는 거죠. 예를 들어 ‘올해는 많은 수확과 사냥의 결실을 볼 수 있게 축복합니다.’ 이런 말 한마디면 되는 거죠. 그리고 제사는 처음 수확한 곡식과 과일을 사냥한 고기를 차려두고 이런 좋은 걸 수확할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하는 거죠.”
“오오…. 감사! 그래요! 사람들에게는 항상 감사가 부족합니다! 그런 것이라면, 성국에서도 흔쾌히 허락할 것 같네요.”
대답하는 시트라 씨의 표정은 기쁨으로 물들어있었다. 요즘 시트라씨를 겪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시트라씨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순수한 사람이라는 것. 그녀는 증류수같이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분노해야 할 일에 크게 분노하고 기뻐해야 할 일에도 크게 기뻐하는 것이었다.
내가 시트라 씨를 바라보며 웃자 시트라 씨의 귀가 살짝 붉어졌다.
“왜, 왜 그러시죠?”
“아뇨.”
시트라 씨와 이야기가 끝날 때쯤. 촌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의견은 정해진 상황 촌장님이 거부하실 리는 없었다. 마을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분이시니까.
“그래, 뭐 러셀이 우리에게 나쁜 걸 제안할 사람도 아니고, 올해는 그럼 어떻게 하겠나?”
시원한 승낙.
“올해는 제가 마을 주민들과 외부 손님들을 위해서 축제를 열겠습니다. 다들 참석해서 즐겨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아 참, 시트라 씨는 사냥철이 끝난 것을 축하하는 제사를 성국에 한번 문의해 주시겠어요? 축제는 삼사일 후에 열고 싶은데…”
“알겠습니다.”
촌장님과 마을 사람들은 기대감 가진 얼굴로 신전을 떠나고 나는 시트라 씨와 단둘이 남았다. 시트라 씨와 단둘이 의논해야 할 것이 있는 상황.
“러셀 씨는 안 돌아가시나요?”
“돌아갔으면 좋겠나요?”
“옛! 아, 아니 그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다들 떠났는데도 신전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질문한 시트라 씨.
피해자를 돈까지 쥐어가며 몰래 마차에 태워 보내는 시트라 씨를 보고 난 후. 왜 이렇게 시트라 씨를 놀리는 게 재미있지.
나는 유부남, 시트라 씨는 순결의 사제, 결코 이상한 소문이 나거나 특별한 관계가 될 수 없는 사이. 그런데도 설레는 소녀처럼 놀라는 모습이 재미있는 것이다.
“시트라 씨랑 둘이 정할 게 있어서요.”
“무! 무엇을?”
“제사와 축제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를요.”
“아, 아하! 그, 그렇군요. 이, 이름이라…”
사냥과 추수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들어간 것이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사냥제나 수확제 같은 건 너무 한쪽에 쏠리는 느낌이라서요.”
그렇게 신전 앞에서 둘이 고민을 하고 있는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셀!”
여관 쪽에서 발레리가 걸어오다 나를 발견하더니, 큰 가슴을 출렁거리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새빨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뛰는 한걸음마다 솟아오른 가슴에 얼굴이 사라지는 모습.
“발레리 뛰, 뛰지 마! 넘어진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발레리를 향해 외쳤다. 가슴이 얼마나 출렁거리는지 위로 솟아오를 때는 그 출렁임에 발레리가 같이 솟아오르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같이 본 시트라 씨가 자기 가슴을 한번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멍한 목소리로.
“풍, 풍만 아니, 푸, 풍유제….”
나도 달려오는 발레리를 바라보며 귓가에 들려온 시트라 씨의 그 말을 납득 할 수밖에 없었다.
발레리 덕분에 사냥철 시작을 알리는 제사는 풍유 기원제. 사냥철이 끝나고 추수를 감사하는 제사는 풍유 감사제. 축제는 풍유 축제로 제사와 축제의 이름이 순식간에 결정되었다.
풍유 축제를 어떻게 열지에 관한 생각을 위해, 오늘 밤 발레리에게 쪼끔만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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