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47화 (147/352)

〈 147화 〉 145. 축제 3

* * *

에브리나는 온 힘을 다해 통을 밀고 기어 나왔다. 이런다고 기뻐할 거로 생각한 건가. 바보 멍청이 같으니…

단순한 남자의 단순한 생각.

그리고 그렇게 기어 나온 옆에는 엠마가 헐떡거리며 쓰러져 있었다. 앞을 보자 벨릭이 소리를 지르며 게를 막아내고 있었다. 온몸에 피를 칠한 채 땅에 뿌리를 내린 듯 그 자리에서 더는 물러나지 않으며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벨릭의 핏방울이 바닥으로 점점이 떨어져 내렸다. 벨릭의 생명도 지금 흐르는 저 붉은 핏방울이 끊기면 끝이나겠지…

한발이라도 더 마력을 돌려 화염구를 벨릭의 앞으로 던지고 싶어, 화염구를 만들어보려 했지만. 빈 물병처럼 마력은 한 방울도 더 흘러나오지 않았다.

아, 정녕 끝인가.

세계의 신비와 비밀을 탐구하는 마법사의 힘도, 모든 생물들을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 앞에는 무의미하구나….

그때. 말발굽 소리와 나팔 소리가 들리며, 함성과 함께 구원이 찾아왔다. 사람들의 비탄과 울음 섞인 목소리가 환호로 바뀌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러셀의 목소리.

“벨릭, 기사들이 입구로 온다! 입구를 열어야 해!”

피투성이인 벨릭이 러셀의 한마디에 마을 사람들과 입구를 향해 무모한 전진을 시작했다. 아 안 되는데… 이미 지칠 대로 지쳤을 텐데. 저 바보는 정말 바보처럼 웃으며 다시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던 에브리나에게, 마치 기적처럼. 마력이 아주 조금 차오르는 느낌이 찾아 들었다. 화염구를 만들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마력이지만, 에브리나는 망설이지 않고 비틀대며 일어났다. 그리고 모든 마력을 영혼까지 불어넣듯이 짜 넣어 새알 크기의 화염구를 하나 만들어 벨릭의 앞으로 쏘아내고 땅바닥으로 처박혔다.

자기의 화염구를 확인한 벨릭의 털북숭이 입에서 흰 이빨이 보이는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큰 사건이 끝나고 정신이 들고 나서부터는 에브리나는 벨릭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을 표현했다. 마법사들은 탐구하는 자, 성찰하는 자 자신의 마음 따위를 모른다면 마법사 실격이니까.

그래서 식사 중에 벨릭이 좋아하는 걸 덜어준다거나, 물을 챙겨다 준다거나, 벨릭이 좋아하는 간식을 챙겨준다거나, 하는 등의 작지만 눈에 띄는 행동들로 벨릭에게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벨릭은 눈치채지 못했다. 아… 둔한 남자였지…

보통, 이 정도면 얘가 날 좋아하는 것인가? 생각할법한 행동들을 이어갔는데, 얜 이런 쪽으로는 뇌가 발달하지 않은 느낌. 전혀 의심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반해버렸는데.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벨릭의 눈치와 에브리나의 인내심이 기나긴 싸움을 시작했다.

긴 싸움이 이어지던 중 쓰러진 리젤다를 위해서 검은 연꽃을 구하러 갔던 벨릭은 그날 눈 하나를 잃고 말았다. 연꽃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달려가다 리자드맨들의 매복에 걸려 어둠 속에 날아온 화살에 눈을 맞은 것.

자신이 조금만 신중했더라면, 쉴드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더라면, 벨릭의 눈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눈물과 분노가 터져 나왔다.

화염구 다음의 마법. 노력해도 얻지 못했던 불의 비가 지팡이 끝에서 터져 나와 벨릭의 눈을 저렇게 만든 도마뱀들을 숯덩이로 만들었다.

“내! 내가! 쉴드 마법을 준비했더라면!”

절규하며 불의 비를 뿌리는 가운데 에브리나의 머리가 무엇인가로 덮였다.

“네 잘못 아니다. 내가 잘못한 거야.”

눈물 가득한 눈으로 손의 주인을 보니, 벨릭이 눈에서 피를 흘리며 자기 머리를 큰 손으로 덮어주고 있었다. 여전히 멍청한 미소까지 띠며.

크고 따듯한 손이었다. 그냥 그런 기분이었다.

그 후에는 벨릭을 향한 마음이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노골적으로 마을을 표현하고, 따로 불러내 보기도 하고 여러 노력을 했지만, 벨릭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느낌.

결국 자기의 인내심과 벨릭의 눈치의 싸움은 긴 우기를 지나 사냥철까지 이어졌다. 이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상황.

모르는 사람이 이상할 지경.

“언니, 안타까워 어째요.”

“에브리나 다시 생각해봐라. 저 수컷은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아니 에브리나 같은 암컷이 그렇게 마음을 전하는데,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봐서는 번식에 문제가 있음이 틀림없다!”

벨릭과 마틴이 보급을 위해 여관으로 간 사이 여자들끼리 대화 중에 나온 말이었다. 엠마의 안타까움과 브릴다의 분노. 그녀들은 벨릭의 만행에 대해 안타까움과 비난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때 이야기를 듣던 아우로나 에우로나가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분명 벨릭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체의 문제가 아닌 뇌와 정신의 문제. 아마 이런 식으로 평생을 신호를 줘도 벨릭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저희 넷이 도울 테니 방식을 바꿔보시죠.”

“어, 어떻게 말이죠?”

“뇌나 정신으로 문제가 있어 알아차리지 못하니, 정상인 몸에 신호를 보내보죠.”

“몸이요?”

그렇게 시작된 음모.

처음에는 사냥캠프에 설치된 해먹을 자르는 것부터 시작했다. 벨릭과 에브리나의 해먹 끈을 잘라버리고 둘이 바닥에 방수포를 깔고 잘 수밖에 없게 만든 것.

그리고 새벽 추울 시간에 에브리나가 벨릭의 품으로 파고드는 것.

그것이 계획이었다. 계획은 순조로웠다.

처음에는 어떤 새끼가 해먹을 잘랐다고 흥분했지만, 방법이 있나? 러셀의 황금마차가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습지의 물안개가 진하게 깔린 밤. 타닥타닥 타는 모닥불 소리와 풀벌레 소리만이 가득한 밤. 에브리나는 조용히 일어나 벨릭의 품으로 스며들었다. 어제 러셀의 여관까지 다녀온 벨릭의 품에서는 다행스럽게 냄새가 나지 않았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뭐라고 하는지 보자고 했지?’

에브리나는 기대감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침.

“우아앗! 야! 에브리나 언제 내 자리로 온 거야. 깜짝 놀랐네. 잘 때 조심해서 자라. 잘못하면 늪지까지 굴러가겠어. 크하하”

­빠직. 빠각. 쨍그렁. 와장창.

에브리나의 가슴속에 무엇인가가 망가져 버렸다.

고작 그런 반응이라고? 벨릭은 부끄러워하지조차 않았다.

그날 밤 에브리나는 벨릭을 데리고 황금마차가 서는 평원 어림까지 걸어갔다. 할 이야기가 있다고 불러낸 것이다.

“에브리나 너무 멀리까지 오는 거 아냐? 위험하지 않을까?”

벨릭이 자신을 따라오며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에브리나는 자신이 생각한 위치까지 벨릭을 끌고 오자 손에서 이글거리는 화염구를 꺼내며 벨릭에게 나직이 말했다.

“벨릭, 결국 네가 이겼어. 벗어…”

무엇인가 놓아버린, 포기해버린 얼굴의 에브리나.

“뭐?!”

에브리나의 말에 벨릭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벗으라고요! 벨릭. 두 번 말 안 해요.!”

“야! 야 에브리나 왜 그래! 잠깐만 야!”

“빨리 안 벗으면 그냥 다 같이 죽는 거예욧!”

에브리나가 소리를 지르며 화염구의 크기를 더 키우자 벨릭이 화들짝 놀라며 윗옷을 벗어 던졌다.

“자자 됐지?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진정하고. 어? 에브리나 제발.”

“몰라? 이래도 몰라? 바지도 벗어요!”

벨릭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에브리나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바지를 일단 벗었다. 속옷 한 장만 걸칠 벨릭이 부끄러워 풀숲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에브리나가 로브 앞섬을 풀어헤치자 에브리나의 새하얀 나신이 달빛에 드러났다.

­꿀꺽

벨릭이 그 모습에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까지 해야 반응이 조금 온다니, 그 모습에 에브리나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벨릭, 이리 와봐요.”

벨릭이 주춤거리자 다시 에브리나의 손에 만든 화염구에서 불꽃이 피어오르고.

“이제부터 쭈뼛거리면 그냥 이거 발아래 던질게요. 이리 빨리 와요.”

벨릭이 에브리나 앞으로 퉁겨지듯 다가갔다.

“안아요.”

“뭐라고?”

­푸화악

다시 더욱 크게 점화되는 화염구. 벨릭은 에브리나의 알몸을 죽기 살기로 부둥켜안았다. 에브리나의 차가운 피부와 부드러운 촉감이 벨릭의 볼로 전해져왔다.

그러자 에브리나의 손에든 화염구가 사라지며 들려오는 소리. 에브리나가 자기 손으로 자기 몸뚱이를 가리키며 말하고 있었다.

“벨릭? 이제부터 이건 벨릭 거예요. 알았죠? 누구 거라고요?”

“내, 내 것!”

그리고 에브리나가 벨릭의 머리통을 검지로 꾹꾹 누르며 말했다. 달빛 아래 에브리나의 눈빛이 시리게 빛나고 있었다.

“그럼 이건 누구 거지?”

“내, 내 아니, 에브리나 꺼….”

“그럼, 내가 지금 왜 이럴까요?”

“어? 미쳐… 칠 것 같이 내가 좋아서?”

에브리나는 지금이 벨릭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똑똑해진 순간이라고 확신했다. 그래 육체에 물어야 했다. 그것이 정답이었다.

에브리나는 러셀이 왜 벨릭은 육체로 교육해야 한다고 떠들었는지 조금은 알것 같았다. 그리고 에브리나의 교육(?)도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에브리나의 말이 다 끝나자. 리젤다는 내 옆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리젤다는 어느샌가 에브리나의 옆에서 그녀의 머리를 부둥켜안고 머리카락을 쓸어주고 있었다.

마치 새끼를 돌보는 고양이처럼.

아까는 지키는 대상이 벨릭이었지만 이제는 그게 에브리나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나도 이야기가 끝나자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도로 벨릭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빠악

“끄아악! 혀, 형님 왜, 왜 그러세요!”

“벨릭아, 형은 네가 정말 더럽게 부끄럽구나.”

나는 내 한심한 동생을 내려다봤다. 눈치 고자 새끼.

“러셀 그래도 우리 자기 너무 때리진 마세요. 그간 제 마음을 힘들게 했지만 두 대 정도면 제 마음이 풀려서 괜찮을 것 같아요.”

­빠악 빠악

"헥! 켁!"

벨릭아 왜 부끄러움은 형과 형수의 몫이냐?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