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46화 (146/352)

〈 146화 〉 144. 축제 2

* * *

여관 마당에서 작은 축제 같은 저녁 식사가 마무리되고, 용병들은 저마다 여기저기 앉아 맥주를 마시며 자기들끼리 사냥을 축하했다.

안주는 염장한 구운 햄이나 소시지, 구운 고기를 팔았다. 원래 술 마시고 행패 부리는 것 때문에 여관에서는 특별하지 않으면 술을 팔지 않았는데, 사냥이 끝난 용병들의 기분을 위해서 당분간 만취하지 않을 정도로 팔기로 한 것.

맥주는 통으로 파는데 작은 맥주 통 하나에 5 동화에 팔고 있다. 황금 마차의 절반 가격으로 말이다.

그렇게 식사가 마무리되었어도 목욕을 기다리는 손님들의 시간을 정하고, 목욕탕을 청소하고, 장비를 손질하는 분주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성수기라 도저히 여관 직원들로만 여관을 운영할 수 없어서, 부족한 일손을 돕기 위해서 평원 엘프들과 수인들까지 나서서 여관 일을 돕고 있었다.

평원 엘프들이 방긋방긋 미소를 지으며 일하니, 요즘은 이곳은 엘프의 눈물 여관이 아니라 엘프의 미소 여관이라고 불러야 할 판.

남자 용병들은 예쁜 엘프들이 여기저기 지나다니며 음식을 나르자 다들 헤벌쭉한 얼굴로 엘프들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눈치를 보는 상황.

나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술 취한 용병이 객기에 여급 손이라도 한번 잡아볼 만한데 다들 조심하는 눈치였다.

꼬치인가 꼬추인가 그거 안톤이 여관에 들르면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가 조금 한가해진 밤. 목덜미를 주무르고 있자 리젤다가 깜짝 놀란 얼굴로 달려와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러셀! 벨, 벨, 벨릭이 에브리나랑 사귄 데요! 대, 대체 어떻게!”

리젤다의 부릅떠진 눈은 그녀가 지금 얼마나 놀랐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성벽 위에서 나한테 물구나무서기를 들켰을 때도 이렇게 안 놀랐는데 말이다.

“응 나도 아까 들어오면서 둘이 깍지 끼고, 자기라고 하는 거 보고 놀라긴 했어.”

“네에?”

리젤다의 눈은 불신과 경악으로 물들어 동공에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다, 당연히 에브리나가 먼저 꼬리 쳤겠죠?”

“어허, 어디 우리 예쁜 아내의 입에서 꼬리라는 단어가. 덮쳤다고 하는 게….”

나와 리젤다가 그렇게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을 때 벨릭이 여관 안으로 들어섰다. 저녁을 먹고 쉬다가 출출해져서 나왔는지 육포를 뜯으면서 말이다.

“형님, 형수님 뭔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십니까?”

“야 너 확실히 말해봐! 너, 에브리나랑 사귀는 거 맞아?”

웃으며 다가온 벨릭은 곧바로 리젤다에게 추궁받아야 했다. 믿을 수 없는 그 이야기가 사실이 맞냐며…

하지만 벨릭이 우물쭈물하며 말을 못 하자 리젤다는 벨릭의 귀를 잡아 빈 테이블로 끌고 갔다. 벨릭은 처음 우리 여관에 왔을 때처럼 리젤다에게 귀를 잡혀 테이블로 끌려갔다.

“아니, 형수님 이거 좀 놓고! 리젤다? 말, 말할 테니까.”

“너 왜 말을 못 해?”

테이블에 강제로 앉게 된 벨릭에게 리젤다가 다소 앙칼지게 질문했다. 뭐랄까 분위기가 누나가 동생이 못된 여자랑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런 반응이랄까?

“그,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그런데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우리 자기 여기서 뭐 해?”

에브리나였다. 에브리나는 도착하자마자 눈도 좋은지 벨릭의 한쪽 귀가 빨갛게 된 것을 확인하더니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다.

“아니, 대체 귀는 어쩌다 이런 거야? 어머 어머, 빨개! 호 해줄까? 호?”

“괘, 괜찮아 아니, 형님도 계시는데… 이따가 방에서…”

에브리나의 호들갑에 나의 예쁘고 착한 아내 리젤다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맙소사. 리젤다가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다니.

“하하, 그 지금 벨릭에게 둘이 어떻게 사귀게 되었나 들으려고 하던 참이었어요.”

나는 아내의 표정을 지키기 위해서 재빨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머! 그런 건 저한테 물으셔야죠. 우리 자기는 아무래도 그런 이야기는 부끄러워서 잘하지 못할 거예요. 호호.”

그렇게 시커멓게 된 리젤다의 안색과 함께, 묻지도 않은 에브리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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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오는 게들에게 꼬박 하루를 도망치던 에브리나는 제일 먼저 지치고 말았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자신을 챙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자신은 고정 파티도 아니고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쓰러지면 이들이 자신을 데려간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믿을만한 사람을 찾기 힘들어 고정 파티를 하지 않은 결과가 이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결국 제일 먼저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마법사에게 하루 넘는 시간 동안 잠도 못 자고 이어지는 강행군은 애초에 무리였기 때문이다. 다리가 풀려 풀썩 주저앉으며 다 포기한 듯 외쳤다.

“아, 너무 졸리고 힘들어서 더는 못 걷겠어! 헥헥”

‘그냥 두고 가라 너희들을 비난하지 않을 테니…’

에브리나는 마음먹었다 이들을 비난하지 않기로, 이런 상황에서 저들도 방법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애초에 자신은 파티원도 아니고…

그런데 그때.

파티의 멍청이, 냄새 벌레, 눈치도 생각도 없는 남자 벨릭이 아무 말 없이 다가와 주저앉은 자신을 등에 업었다.

아니, 사제인 엠마나 궁수인 리젤다가 아니라 왜 나를…

놀라고 멍한 정신으로 벨릭의 등에 엎드려 나직이 말했다.

“고마워 벨릭…”

업힌 벨릭의 등에서 조금은 고약한 냄새가 올라왔지만 에브리나는 왠지 그 냄새가 그때만큼은 싫지 않았다.

쓰러지듯 잠들었다. 그리고 흔들림에 정신을 차렸을 때, 자기를 등에 업은 벨릭은 마을 입구로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 게들이 몰려든 상황, 화염 구를 날려 길을 열고 벨릭의 등에 매달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봤다.

자신을 내려서 같이 뛰라고 할 만도 했지만, 벨릭은 결코 자신을 놓지 않았다. 벨릭의 목덜미에서 진한 땀이 줄줄 흐르고 흐르는 땀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에 사무칠 때.

멀리서 화살이 날아와 길을 열고 목책 문으로 다크 엘프들의 얼굴이 보였다.

결국 살았다! 살아남았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주저앉아 큰 목소리로 울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았다는 감격에 여기까지 자기를 업고 온 벨릭에게 매달려서 울고 싶었는데, 이 새끼 눈치도 없이 리젤다를 다독이는 러셀에게 안기려고… 엠마 브릴다와 함께 벨릭을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젠장. 마음에 찾아온 감동이 뭔가에 깨어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쉬지 못하고 이어진 마을 방어전.

화염구를 날려 게들을 태우고 또 태워도 게들은 끝없이 밀려들었다. 마력이 차오르는 대로 마법구를 계속 날려댔지만, 게는 줄어들지 않았다.

에브리나는 마음먹었다. 여기서 살아난다면 빨간 옷은 다 태워버리기로. 아주 지긋지긋했다.

땡볕과 빗속에서 얼마나 게를 막아냈을까.

에브리나는 눈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은 그래도 마력을 채우기 위해서 잠깐잠깐 쉴 수 있었지만, 자기 근처의 벨릭은 멍청하게도 쉬는 법이 없었다. 숨도 돌리지 않고 창을 찔러대는 벨릭. 인간 같지 않은 강인한 체력. 자기를 여기까지 반나절을 엎고 와서 쉬지도 못하고 이어진 전투인데 불평 한마디 없이 창을 내지르고 있다.

조금 마음이 안타까워 아무도 모르게 벨릭 너머에 화염구를 한 번씩 슬쩍슬쩍 더 던졌다.

그러나 절망이 밀려들어 왔다.

물레방아 간 근처의 목책이 무너져 게들이 밀려오고 있다는 것.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러셀의 지시를 듣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에브리나! 가자!”

자신을 부르는 벨릭의 목소리.

홀리듯 그의 부름대로 사지로 걸어 들어갔다. 벨릭의 목소리 속에는 자신이 거부 못할 무엇인가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현장으로 가자 밀물처럼 밀려오는 게들의 파도, 간신히 마력을 짜내 몰려오는 입구로 두 발의 화염구를 날렸지만, 강물에 돌멩이를 던져넣는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걸 못 막으면 여기서 모두 죽는다.

마력을 한계까지 짜내 두 발을 더 쥐어짜듯 쏘아내고 마력 탈진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손가락 하나 들 힘도 없어 머리까지 바닥으로 떨어질 때. 방어진을 뚫고 몰려오는 게들. 그중 게 한 마리가 자신을 발견하고 바스락거리며 다가와 집게발을 들어 올렸다.

­콰직

그러나 게의 집게발은 그 목적을 다하지 못하고 깨져나갔다. 벨릭이었다.

“우리 마법사는 전사가 지켜야지 그렇지?”

씻지 못하고 꼬질꼬질한 얼굴에 원래도 털북숭이라 놀림을 받는 벨릭인데, 깍지 못해 더 덥수룩한 수염 사이에 흰 이빨이 보였다.

그는 웃고 있었다.

바보… 웃기는 상황 아닌데…

그리고 가물가물한 시야 속에서 벨릭이 허리춤을 잡아채 자기를 어깨에 올리더니 마을 안쪽으로 후퇴를 시작했다. 사람들의 비통한 목소리와 울음이 귓가로 들려왔다.

아 끝이구나 마지막이구나… 가물가물한 시야에 어느 집에 벽면이 눈에 들어오고, 문을 열고 우당탕거리며 안으로 들어간 벨릭은 쓰러진 자기 위로 무언가를 뒤집어씌우며 말했다.

“이렇게라도 살면 좋겠는데…”

그리고 소리도 시야도 모두 작게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악취. 아마도 어느 집, 빈 오물통을 자기에게 뒤집어씌운 듯했다.자기라도 살려보려고…

하… 바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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