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143. 축제 1
* * *
“형님!”
“리젤다! 이실리엘님! 로리엘님!”
“엠마!”
“밥 내놔라 인간!”
여관은 오랜만에 몰려든 손님들도 북새통이었다.
사냥철은 이제 막바지. 마지막까지 대박을 노리는 파티들은 아직 남아 사냥을 이어가고 있지만, 벌 만큼 번 친구들은 이제 슬슬 복귀를 하는 것이다.
나도 이번 시즌 황금마차 운행을 며칠 전을 마지막으로 끝마쳤다.
마지막이라는 통보에 용병들의 그 아쉬워하는 눈빛이라니. 거의 야영지 대부분이 내가 보급하는 식량에 의존하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남은 파티들은 마지막 보급이 떨어지고 사냥한 고기로 버틸 수는 있겠지만, 아마 남은 이들도 식량이 떨어질 때가 되면 슬슬 도시로 복귀 여정을 잡을 것이다.
그리고 평소라면 그란 폴로 직행할 용병들이지만. 빨리 처리해야 하는 부산물이나 돈 될만한 건 전부 나한테 넘겨 홀가분한 상태. 그런 와중에 따듯한 목욕을 할 수 있다는 나의 광고가 기억난 용병들이 여관으로 몰려드는 것.
몇 달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장비도 늪지에서 많이 손상된 상태인데. 이걸 여관에서 장비 손질에 목욕까지 할 수 있고 세탁도 해준다고?
돈도 많이 벌었겠다 자신들에게 관대해진 용병들은 금액은 생각지 않고 여관으로 몰려들었다.
이번 시즌 용병들은 저번 시즌보다 두 배 넘는 돈을 벌 수 있었다고 했다. 중간중간 도시로 가서 부산물을 넘기고 복귀하는 시간이 사라지니 효율이 오른 것.
관대해진 용병들 덕분에 우리도 성수기 요금을 적용해, 1박에 4 동화라는 다소 치사한 금액을 적용하고 있지만, 자리가 없어서 되돌아가는 손님들도 많은 상태였다.
물론 잠은 못 자더라도 따듯한 식사와 목욕은 각각 2 동화로 서비스하니, 여관 앞에 천막을 치고 잠은 천막에서 자고 밥과 목욕만 하는 용병들까지 생겨나는 상황이었다.
“이 녀석들 왔구나!”
여관으로 들이닥치며 여관에 혼란을 가중하는 벨릭의 파티를 반갑게 맞이했다. 두 달 넘은 사냥으로 애들이 노숙자에 가깝게 변해있었다.
“형님 저희 숙소 있습니까? 이거 어째 다른 사람들 같이 노숙해야 할 분위긴데?”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벨릭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새끼 이거 날 뭐로 보고.
“너희 숙소는 옆 건물로 가, 거기 방 세 칸 비워놨으니까 남자는 방 하나 쓰고, 두 개는 여자들 나눠 쓰라고 해. 애니 동생한테 말하면 안내해줄 거야.”
내 말에 다들 기쁜 웃음을 지으며 밖으로 나가려는데, 벨릭이 믿을 수 없는 말을 했다.
“크헤헤. 역시 형님! 그럼 저희 방 배정받고 씻으러 갑니다?”
이건 분명 큰일이었다. 이 새끼가 먼저 씻으러 간다고 말하다니….
“야 벨릭아, 너 이번에 사냥 갔다가. 늪지에서 무슨 이상한 버섯을 먹거나, 트롤 같은 애들한테 머리 잘못 맞은 거 아니지?”
“예? 그게 무슨?”
벨릭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씻기 싫어하는 네가 먼저 씻는다니 이상해서 말이지.”
“하하하…”
“호호…”
에브리나와 브릴다, 그 감정에 인색한 다크 엘프인 에우로라, 아우로라까지 내 말에 폭소.
“아니, 형님 또 시작이시네.”
“아니, 여자라도 생겼으면 모를까 네가 먼저 씻는다니, 그게 좀 이상하잖… 어?”
벨릭에게 농담을 하고 있는데 벨릭 옆에 에브리나가 벨릭의 손에 조심스럽게 깍지를 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 맙소사! 대체 언제!? 아니, 마법사면 이 세계 초엘리트인데, 노가다 십장급인 벨릭이 그런 마법사를! 것도 에브리나 씨를? 같은 용병이라도 급이 다르다고 급이! 벨릭아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이 새끼!
잠깐, 이 새끼 이거 숙맥인데 어떻게… 설마…
에브리나씨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니 몇 달의 사냥터 생활인데 조금 반질반질한 것 같은 느낌. 먹힌 건가? 그런 건가?
나는 깜짝 놀란 정신을 차리고 벨릭인지, 에브리나인지 누가 더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커플 맞춤 서비스를 해줬다.
“아니, 잠깐 그, 방은 그럼 너희 둘이 써야겠네?”
내 말에 에브리나가 벨릭의 팔에 매달려서 웃으며 말했다.
“아주 고마워요!”
“아, 아니, 에브리나. 그 치만… 그 동료들도 있고…”
“그래서? 싫어? 자.기.”
오우! 자기! 풋풋해! 캬… 좋을 때다! 좋을 때.
“마틴아 너는 마크랑 같은 방 써야겠다. 거기 침대 하나 남으니까 마크한테 말해둘게. 우리 벨릭 장가는 보내야지. 그렇지?”
내가 웃으며 말하자. 마틴이 아주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쪽 손을 내 귀에 가져와 속삭였다. 아주 심통 난 목소리로 말이다.
“구석 방으로 보내세요! 밤마다 야영지에서 둘이 몰래 하다가 걸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목소리는 왜 그렇게 큰지!”
나는 그 말에 벨릭에게 엄하게 주의하라고 경고할 수 밖에 없었다.
“손님, 밤에 너무 시끄럽게 해서, 다른 손님들의 수면을 방해하면. 쫓아낼 수 있으니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벨릭의 일행들이 입을 가리고 킥킥거리고, 에브리나는 뻔뻔한 얼굴로 걱정하지 말라며 벨릭을 끌고 사람들과 사라졌다.
벨릭의 뒷모습이 마치 연행당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은 나의 착각이겠지?
그날 점심, 몰려든 손님들로 인해 여관 부엌은 마비 상태였다. 몰려든 손님의 숫자를 세어보니 주방의 가용인원을 넘어선 것. 경험 많은 직원인 한나 아주머니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하고 계셨다.
나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바쁜 일손을 돕기 위해 여관 잡일꾼으로 클레스가 변경된 촌장의 두 아들들과 우리 마을 똥지게꾼 처녀 세 명으로, 녹이 나기 시작해 창고에 넣어두었던 트롤의 거대한 솥을 여관 마당으로 끌어냈다. 그래 목욕탕으로 쓰던 그것 말이다.
솔을 이용해 최대한 녹이 난 부분을 닦아내고, 기름을 칠하고 달구어 다시 광을 냈다. 무쇠의 좋은 점이 표면에 녹이 나더라도, 충분히 녹을 벗겨내고 기름으로 코팅하면 다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관 앞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솥을 올렸다.
“지금부터 할 음식은 소고기국밥이다!”
나는 직원들에게 외쳤다. 그래 나는 국밥충이 되기로 한 것이다!
사냥철 용병들은 가죽과 뿔 돈이 되는 쓸개나 간, 심장, 눈알 같은 것은 말려거나 처리해 내다 팔지만 고기는 거의 버리는 수준이다. 맛없는 것도 있고, 너무 무거워서 내다 팔 수도 없고.
그렇기에 황금마차를 운행하며 버리는 수준의 고기들을, 마을 사람들과 마을의 공용 마차로 실어와 마을의 창고와 여관 창고에 빽빽하게 장기 보존용 염장 햄이나 훈제로 만들어두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고기는 아주 대단한 먹거리니 내 의견을 다들 좋아했기에 나의 여관과 마을 창고에 고기가 넘치는 상황.
그리고 대규모 인원을 먹여야 하니 국밥만큼 좋은 게 없는 것이다.
염장한 소 두 마리를 토막을 쳐 트롤 솥에 넣고 끓였다. 무와 허브, 양파, 홍삼을 좀 넣고 팍팍 끓였다. 뽀얀 국물이 우러나게.
땅속에 구덩이를 파고 불을 지피는 것이라 잘못하면 불이 꺼지거나, 산소가 부족해 연기가 많이 날 수 있어, 부엌에서 풀무를 가져와 똥지게꾼 세 여인에게 번갈아 가며 풀무질하라고 임무를 주었다.
‘퓩…퓨욱…’ 하는 풀무질 소리와 함께 솥에 국물이 끓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거의 저녁때가 가까워져 오자 내가 원했던 구수한 냄새와 뽀얀 국물이 올라왔다. 고기는 다 건져내 식혀서 잘게 찢고, 무와 허브를 넣고 소금을 포대로 가져와 삽으로 퍼넣어 간을 했다. 그리고 각종 채소도 넣고, 한번 맛을 보니 채소 사골국에 고기가 잔뜩 들어간, 약간 그런 느낌?
화덕에서는 애니와 한나 아주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며, 빵이 아니라 대규모 인원을 위해서 난을 굽고 있었다. 밥을 할 수도 있지만. 소규모라면 모르겠지만 큰 솥에 대규모로 하면 삼층밥이 될 것은 당연지사. 쪄내는 방법도 있지만 쪄낼 솥도 부족하고.
오늘은 빠르게 대규모 인원을 먹이는 게 중요했다. 그러니 반죽해서 바로 구우면 되는 난이 제격.
이분들이 음식의 궁합을 따지시는 분들도 아니고, 처음 접하는 음식에 어울리느니 마느니 평가를 하실 리도 만무. 내가 사골국 같은 국밥에 난을 먹이면, 이제 이쪽 사람들은 다들 국밥을 먹을 때 난을 생각할 것이다.
아무렴.
탱탱탱탱
이실리엘이 국자로 솥뚜껑을 두드려 식사 시간을 알렸다.
“자자 식사 시간이에요.”
여관과 마당으로 울려 퍼지는 이실리엘의 목소리.
용병들에게 목기에 가득 담긴 국밥과 밥은 없지만, 난이 배식 되었다. 용병들은 난을 국밥에 찍어 먹기도 하고 고기와 채소 비율이 높아 걸쭉한 소고기 국을 연신 퍼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맛있네! 웜 포트 여관 식사는 엄청 맛있다더니 소문이 진짜였구먼?”
“식사도 식사지만 여관이 깨끗해서 좋더라고. 옷 세탁도 해주고 말이야.”
“목욕은 어떤가요? 전 이제 밤에 목욕을 안 하면 잠이 안 와요.”
두런두런 모여 식사하는 용병들의 칭찬.
사냥철 마무리를 축하하는 작은 축제가 우리 여관의 마당에서 열린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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