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 141. 죄와 벌 7
* * *
“하지만 저는 순결의 이단 심문관인데….”
자애와 순결의 교단 사제나 수녀들도 결혼은 할 수 있다. 다만 순결이 더럽혀지면 두 가지 성력 중, 순결에 관한 성력은 사라지고 자애의 성력만 남아 반쪽짜리 사제가 되니 다들 극도로 기피하는 것뿐.
신성력 반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능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신앙의 증거가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종교인인 자기들에게는 죽기보다 더한 고통이다.
그때 비교적 느슨한 교단 출신인 생명과 치유의 교단 소속 사제 둘이 웃으며 말했다. 저쪽 교단은 자유롭게 연애도 가능하고 결혼도 자유롭다.
“시트라님, ‘순결만’ 지키면서 그 안에서 자유롭게 연애하면 되시는 것 아니겠어요?”
“예? 그 무슨?”
“저희가 그 방법에 대해서는 천천히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하, 하지만 그분은 아내가 있는데. 이 이것은 불륜….”
두 사제는 시트라의 말을 듣자 서로 바라보고 씩 웃더니 말했다.
“어머 거기까지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아내가 있다는 건 이미 검증이 되어있다는 것.”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시트라는 두 사제의 눈빛에서 예전 마주쳤던 음란한 서큐버스가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시트라가 점점 둘에게 궁지로 몰릴 때 밖에서 러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십니까!?”
시트라는 깜짝 놀랐다. 러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당사자가 나타났으니 말이다. 화들짝 놀라서 밖으로 맞으러 가려고 하자 두 사제가 자신을 붙잡았다.
“어머, 그냥 나가시면 안 됩니다. 준비하셔야죠.”
약간은 신난 듯한 목소리로 사제들은 한 명은 러셀을 맞으러 나가고, 한 명은 자기 얼굴에 화장을 시작했다. 시트라는 결단코 태어나서 한 번도 화장해본 적이 없었다. 딱히 교단에서 화장을 금지하지는 않지만, 굳이 할 필요를 못 느낀 것.
지금이 태어나서 처음 하는 화장인 것이다.
“아 아니 화, 화장을 왜?”
“러셀님에게 잘 보이고 싶지 않으십니까?”
“아니 그렇지만….”
“그러면 잘 보이기 싫으십니까?”
시트라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굳이 대답하자면 후자이니까. 얼굴의 흉터도 조금은 가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얼굴에 흉터도 어느 정도 가려질 겁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지 가슴을 찌르는 사제의 목소리. 시트라는 잠자코 화장을 받을 수 받게 없었다. 어색하진 않을까? 이상하진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옅은 화장이 다 끝날 때쯤.
러셀을 맞으러 갔던 사제가 들어와 웃으며 말했다.
“러셀님은 시트라 씨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네요. 아마도 ‘단둘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요? 아마 ‘단둘이’ 어디선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면, 데이트라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사제가 놀리듯 말했다.
“그, 그냥 다, 다른 일로 오셨겠죠.”
시트라는 재빨리 일어나 러셀을 향해 갔다. 단둘이, 데이트 같은 말을 의식하니 얼굴이 조금 붉어지는 기분. 마음을 추스르며 성전 입구가 보이는 곳에 다다르자 러셀이 한껏 손을 흔들며 자신에게 인사를 해왔다. 저런 해맑은 모습이라니.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심술도 났다. 난봉꾼….
“아, 안녕하세요, 시트라 씨!”
“네, 난, 난봉꾼 러셀 씨 또 어쩐 일이신가요?”
러셀이 질색하는 소리인 난봉꾼. 놀려주고 싶었다.
“예, 그 난봉꾼이 시트라 씨랑 ‘단둘이’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요.”
갑자기 의식하고 있던 사제들의 말이 떠오르며 정신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단, 단둘이? 데, 데이트? 머릿속이 혼란해지고 잠시 자기가 들었던 것이 그것이 맞는지 머릿속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어? 시트라 씨?”
자신의 정신을 깨우는 러셀의 목소리.
“예!? 다, 단둘이 말이죠. 어, 그…. 어, 어디로 갈까요? 아, 아니 무슨 일 때문에?”
화들짝 놀라 대답했는데 실망스러운 말이 들려왔다. 데이트가 아니라는 말.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왜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지? 시트라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바로 러셀이 여러 가지 칭찬해주어서 기분은 다시 좋아졌지만….
결국 러셀을 데리고 시트라는 자기 방으로 향했다. 둘이 이야기해야만 하는 조용한 일인 것 같은데 아무 데서나 할 수 없으니.
차를 가져오며 또 자신을 놀리는 사제들. 예민한 반응이 나왔다. 부끄러웠으니까.
그리고 방에서 많은 일이 있었는데, 러셀과 대화가 끝나자 시트라가 기억하는 것은 딱 한 가지였다. 사제들이 몰려들어 궁금함에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캐 물었을 때, 시트라가 멍한 얼굴로 말했다.
“제, 제 몸에서 조, 좋은 내, 냄새가 나, 난다는군요….”
“어머 어머! 러셀씨, 그렇게 안 봤는데. 그렇게 직설적으로….”
스물다섯 시트라의 수줍은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다음날 시트라 씨와 찾은 밖의 야영지. 범죄자 색출을 위해서 마을 남자들과 엘프들까지 다 데리고 출동했다.
야영지는 비교적 깨끗한 상태였다. 어제 내 경고를 받아들였다는 증거. 애초부터 이렇게 하면 좀 좋았나. 꼭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소리를 치고, 경고하고, 겁을 줘야지 일이 돌아간다는 게 어디나 똑같다니. 슬픈 현실이 아닌가.
“자 모두 모여주세요!”
나는 다소 무질서하게 보이는 마차와 천막들의 중간에 있는 조그마한 공터에 자리를 잡고 외쳤다.
“무슨 일이야?”
“아침부터 뭐지?”
마차와 주변 막사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마을 수원지인 강에서 배설물을 버린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서, 자애와 순결 교단의 이단 심문관께서 도움을 주겠다고 하셔서 모시고 왔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범인 취급을 받는 건 싫으실 테니 협조해 주시면 빨리빨리 끝내도록 하죠.”
내 말에 모여든 사람들이 웅성거리더니 그중에 점잖게 생긴 한 명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아마도 상인 중 힘깨나 쓰는 모양.
“그란 폴 가죽공방의 헤드슨이라고 합니다. 질문이 있는데, 할 수 있습니까?”
그래도 예의 바르게 물어오기에 질문을 허락했다.
“예, 말씀하시지요.”
“그 색출이라면 어떤? 이단 심문관님께서 나서실 일인가 싶기도 하고. 아무래도 이단 심문관님이라면 좀 꺼려지는 게….”
남자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긴 나도 갑자기 전생에서 국정원 요원한테 심문받는다면 겁나긴 할 것 같았다. 비교적 정상적인 질문.
내가 질문에 대답 하려 하는데 시트라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질문에는 제가 대답하죠.”
시트라 씨는 오늘 이단심문관 정복을 입은 상태. 긴 붉은 부츠와 붉은 장갑, 허리에서 시작된 긴 옆선이 드러나는 치마의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자애와 순결의 교단은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큐버스 같은 음란한 마물 전문이라는데, 이열치열 같은 원리로 음란함으로 음란함을 이기는 것인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나야 친하니 저 옷을 입은 시트라 씨가 야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마 여기 모인 사람들은 사신의 제복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시트라 씨의 흉터 있는 입술이 열리며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먼저 웜 포트에 신전이 건설된 것은, 다들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야영지에서 다친 몇 명이 신전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으니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역시나 다들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신전에서 성수를 만드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 보통은 신전에 있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만드는데, 웜 포트는 아직 우물이 없어 강물을 떠와 축복해 성수를 만듭니다. 그런데 그 강물에 누군가 더러운 것을 뿌렸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시트라 씨의 말에 웅성거림이 커지기 시작했다. 질문을 했던 남자도 저런 대답은 예상 못했는지 식은땀을 훔치는 모습이었다.
근데 사전에 이야기를 나눈 바로는 저게 거짓말은 아니란다. 사제분들이 가끔 성수를 만들고 계신다는 것.
그리고 이어지는 시트라 씨의 목소리.
“새로 지어진 신전이 정상화될 때까지. 저 고위 이단심문관 시트라가 책임자로 파견되어있는 상태. 그러니 제가 나서는 것은 당연하겠죠. 더 질문 있으십니까?”
남자는 알겠다며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혹시 누구든 큰 천막 한 개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내 말에 아까 가죽공방의 허드슨이라는 남자가 나서 흔쾌히 자신의 천막을 빌려주었다.
“천막 안에서 이단 심문관님께서 신성력으로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신다고 하니, 안내를 따라서 한 명씩 천막 안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외쳐 방식을 설명했다. 그리고 시작된 개인 심문
시트라 씨와 내가 천막 안에 자리를 잡고, 마을 주민들에게 이끌려온 상인이나 용병들이 한 명씩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면 시트라 씨가 신성력을 뿜으며 진문을 하는 것 그리고 답변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시트라 씨가 알 수 있다는 설정.
그렇다. 진실과 거짓 따위를 알 수 있는 신성력은 없는 것. 다만 시트라 씨가 이단이나 범죄자들 상대로 많이 해보신것이라 하니 일단 따라보는 것.
잠시 후 첫 번째 남자가 들어왔다.
의자에 고압적인 자세로 앉은 시트라 씨가 맞은편의 의자에 안내되어 앉은 남자에게 질문을 시작한다.
“당신은 강가에 더러운 것을 버렸습니까?”
시트라 씨의 손에서 신성력을 뿜은 빛이 천막 안을 밝히며 흘러나왔다.
“아, 아닙니다. 저, 저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흐음….”
시트라 씨가 다소 이해할 수 없다는 음을 흘리며 손의 신성력이 더욱 밝게 빛나자 남자가 기겁하면서 외쳤다.
“저, 정말 아닙니다. 마, 마을 근처에 몇 번 그냥 버린 적은 있어도, 강가는 절대 아닙니다!”
“좋습니다. 당신은 결백하군요.”
남자는 기쁜 얼굴로 일어서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 다시 남자를 부르는 시트라 씨의 목소리.
“잠깐 이상한데요?”
그리고 시트라 씨의 손에서 다시금 터져 나오는 빛.
남자는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말했다.
“으아아… 저, 정말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시트라 씨의 얼굴에 걸리는 미소.
“확실하군요. 나가셔도 좋습니다.”
오 뭔가, 조였다 풀어줬다 조였다 풀어주는 심리적 압박의 고수. 시트라 씨는 멋진 여자였다.
“머…. 멋있습니다! 시트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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