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140. 죄와 벌 6
* * *
“어? 시트라 씨?”
시간이 정지하신 시트라 씨를 깨웠다.
“예!? 옛!? 다, 단둘이 말이죠. 어, 그…. 어, 어디로 갈까요? 아, 아니 무슨 일 때문에?”
시트라 씨가 갑자기 고장이 나버렸다. 얼굴은 또 왜 저렇게…? 뭔가 오해할만한 말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시트라 씨가 무안하지 않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말을 이었다.
“하하, 누가 보면 제가 시트라 씨한테 데이트 신청이라도 한 줄 알겠네요. 그 다름이 아니고 마을에 문제가 생겨서 상의해보려고요. 그러니까 마을에…. 시트라 씨?”
또다시 내 얼굴을 바라보고, 멈추신 건지. 아니면, 다른 생각에 빠지신 건지 알 수 없는 시트라 씨를 다시 주목시키고 이야기를 이었다.
“데, 데이트는 아니라는 거군요…. 그래요…. 그러면 상의 할 것이?”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은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마을에 큰 사건이 터졌는데 전문가이신 시트라 씨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시트라 씨는 제가 아는 최고의 이단 심문관이시니, 물어볼 분이 시트라 씨밖에 없네요. 요전번에 같이 밤을 보내면서 저희 좀 친해졌으니 말이죠. 하하”
뭐 솔직히 밤에는 별로 친해지지 못했지만, 도시에서 범죄자 혼내주면서 매우 친해졌으니까 말이다.
“큼큼…. 뭐 칭찬하신다고 해도 별건 없습니다. 이,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죠.”
확실히 내 착각이 맞는 것 같았다. 목소리는 이내 이전과 같아졌으니까 말이다.
잠시 후 나는 시트라 씨에게 안내되어 한 개인 숙소에 들어섰다. 상당히 단출한 방이었는데 여자 사제복들이 몇 벌 걸려있어 시트라 씨의 방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여기는 시트라 씨의 방인가요?”
“예, 아무래도 둘이 조용히 이야기하려면 당장은 이곳밖에 없어서…”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아까 입구에서 나를 맞았던 사제분이 차를 가지고 들어오셨다. 그리고 차를 테이블에 올려두고는 나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두 분 좋은 시간 보내세요.”
“쓸,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시트라 씨가 예민하게 반응하셨는데, 아무래도 여자방에 남자를 데려오니 눈치가 보이셨나? 아! 그러고 보니 여자방에 남녀가 단둘이 있는 것이었다.
여기도 남녀칠세부동석 같은 문화가 있나?
순결의 사제라는 특수성 때문에 생각지 못했는데 괜히 또 의식하니까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준비된 차를 시트 씨와 마시며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때 걸려있는 옷 중에 좀 특이한 옷이 눈에 들어왔다. 특이라기보다는 좀 야하네. 사제복이랑은 좀 다른 것 같은데? 붉은색과 흰색으로 만든 좀 특이하게 생긴 옷이었다.
눈치 빠른 시트라 씨가 내 시선을 확인했는지 설명을 해주셨다.
“보시는 옷은 이단 심문관의 정복입니다. 행사 때나 입는 것이죠. 활동성을 중요시해서 다리 쪽이 허리까지 트여 있는 게 특징이죠.”
그랬다. 흡사 전생의 차이나 드레스 같은 모습의 이단심문관 정복이었다. 시트라 씨가 그걸 입은 모습이 상상이 안 되어 무심코 시트라 씨의 다리를 바라보자, 그 시선을 느낀 시트라 씨가 화들짝 놀래며 말했다.
“무, 무슨 상상을 하시하는지, 알 것 같은 시선인데. 러셀 님 조, 조금 부, 부끄럽군요.”
나는 화들짝 놀라 시트라 씨에게 말했다.
“아, 아뇨 그, 오, 옷을 입은 모습을 상상하다가, 아니 이게 그러니까.”
“큼큼….”
다시 어색한 상황. 나는 상황을 모면해보려 아까부터 방에서 풍기는 좋은 냄새를 칭찬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침향으로 허브를 좋은 걸 쓰시나 봅니다. 방에 좋은 향이 나네요.”
“침향은 쓰지 않는데요?”
“어? 하지만 이 좋은 냄새는….”
내가 그 좋은 향이 나는 곳을 찾으려, 냄새를 맡으며 고개를 시트라 씨의 침대 쪽으로 향하자 시트라 씨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막아섰다. 내 얼굴이 시트라 씨의 배와 부딪히고, 그때 서야 야 그 향이 침대가 아니라 시트라 씨에게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그게….”
“그, 조, 좋은 향이 난, 난다는 건 칭찬이니까 가,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시트라 씨의 얼굴은 다시 붉게 물들었다.
‘아! 이게 아닌데.’
자꾸만 노력해질수록 어색해지는 분위기에 우리는 그렇게 차만 홀짝거리면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더 이상 참지 못하겠던지 시트라 씨가 먼저 말을 꺼내셨다.
“상의할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어떤 일 때문에 저를 찾아오신 거죠?”
“아! 그게 그러니까……”
나는 오전에 있었던 일을 시트라 씨에게 이야기했다. 마을 주변의 배설물. 강까지 더럽혀진 상황. 마을 사람들의 분노. 충돌 위기. 범인을 잡아야 하는 그런 상황까지 말이다.
“저런. 아주 파렴치한 놈이 목책 밖에 있는 것 같군요. 그런 것이라면, 제가 도움이 될 수 있겠군요.”
시트라 웃으시며 씨는 아주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아,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정말 난감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시트라 씨의 손을 잡고 연신 감사하며 기뻐했다.
시트라는 자신의 감시 대상 러셀이라는 인물을 오늘도 먼발치에서 확인했다. 요즘 성국의 최대 관심사는 러셀이라는 인물.
북부 다섯 왕국이 막아내고 있는 북부 전선의,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한, 아름다운 괴물들 엘프. 그 엘프 중 가장 지위가 높다는 높은 엘프와 결혼한 남자.
북부 다섯 왕국과 성국이 맺은 비밀 조약 중 하나는, 북부왕국이 엘프들의 동향을 파악해 성국에 전달해 주는 것인데.조약이 무색하게도러셀이라는 저 남자로 인하여, 그 엘프 괴물 중 가장 강한 한 마리가 중부를 가로질러 남부 그것도 최남단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만 것.
그것이 러셀의 첫째 아내였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들의 실체를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결혼을 꺼릴 텐데. 어떻게 보면 정말 대단한 남자.
하지만 그의 여관에서 생활하며 같은 마을에서 그를 겪으며 든 생각은 평범한 남자. 하지만 딱히 뛰어난 것 같지는 않은데 사람들이 따르고, 그의 여관의 음식과 서비스는 평범한 사람이 생각하기 힘든 그 어떤 것이 있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은 아마도 명백한 사실 같았다.
그리고 그간 그에 대해서 알아낸 것이 하나더 있다면, 종교와 관련된 것을 꺼린다는 것. 그가 이단이나 악마 숭배자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엘프는 악마나 마족들의 기운에 아주 민감해서 그것들을 혐오하니, 높은 엘프가 같이 산다는 것만으로도 러셀의 무죄가 증명되는 것.
하지만 왜인지 그는 신전이나 자신을 꺼렸고 그가 자신의 여관에서 일하는 용병을 데리고 먼저 신전을 방문했을 때는 반가움 마저 느꼈다.
또한 그가 만들었다는 법은 자신을 호기심에 빠트리기 충분했기에 그것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더 터.
그의 방문은 왠지 모르게 자신을 들뜨게 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그와 함께 범죄자를 교화하며 보낸시간.죄인이 죄를 자백하며 죽음을 바라는 모습에서 짜릿한 감동과 희열 까지 느꼈다.
그를 향한 존경심이 솟아났다.
그리고 그와 단둘이 마차 여행. 뒤에 잠든 범죄자가 실리긴 했지만 깨어있는 사람은 단둘이었다.
마차를 타고 가며 러셀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대상의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한참을 대화를 이어가며 마차를 타고 가다 보니 순수하게 웃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임무인데 임무를 망각할 정도로.
용병이었다는데 용병이라기보다 명가의 귀족 청년처럼 예의 바른 남자. 음식을 먼저 챙겨주고 잠자리를 봐주는 등 배려심이 깊은 남자.
그의 아내들이 왜 이 남자를 좋아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사소한 오해로 어색해진 야영지. 꾸벅꾸벅 조는 그를 누워서 한참을 올려다보았었다. 그러다 잠이 들었었다.
시트라의 나이 스물다섯.
지금까지 한 번도 남자를 사귀거나 남자와 교제한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시트라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자애와 순결 교단의 고위 이단심문관. 이단 심문관이 되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자신처럼 다섯 살에 신성력이 발현되어 교단으로 뽑혀와 교단에서 자란 몸은 교단 내에서만 쭉 생활하게 된다.
자애와 순결의 교단이라는 이름처럼.
시트라가 몸담은 교단은 처녀가 아니라면 사제나 수녀가 될 수 없다. 물론 남자도 마찬가지. 그런 생활을 해온 시트라였기에 러셀과 동행한 삼일의 여정은 정말 독특한 경험이었다.
그와 같이 범죄자를 혼내주고 죄를 토해내게 하고, 그놈을 결국 죄대로 처벌하는 성취감 있는 일을 남자와 단둘이 하는 경험은 처음이었으니까 말이다.
둘이 같이 마을로 돌아오고 나서 그 여운에 며칠을 멍하게 보냈다. 성국에 보고를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 못할 만큼.
자기의 그런 모습에 성국에서 자신을 돕기 위해 파견된 두 사제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시트라님 무슨 일인가요? 삼 일간 둘이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이걸 뭐라고 말하지? 처음 느끼는 감정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둘의 설득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둘은 웃으며 말했다.
“시트라님 첫사랑이 찾아왔네요. ‘단둘’만의 삼일간의 데이트. 사랑에 빠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죠.”
“예?! 그, 그럴 리가 저는 이, 이단 심문관이란 말입니다!”
“이단 심문관도 여자랍니다.”
사제들이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시트라의 말이 마치 어리석은 것이란 듯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