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41화 (141/352)

〈 141화 〉 139. 죄와 벌 5

* * *

대늪지의 사냥철은 두 달을 훌쩍 넘어 이제는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마을 앞에 진을 치던 상인들도 절반은 돌아간 상황. 내가 황금마차로 물품을 대부분 독점하자 다들 포기하고 되돌아간 것이다.

물론 몇몇이 모여서 무리를 이뤄 늪지까지 도착한 마차들도 있었지만, 물건 없이 달랑 몸만 가서 돈으로 물건을 사려 했다가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거나, 몬스터들과 과욕의 대가를 치르신 분들도 있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상인들은 독점 계약을 맺은 사냥 파티를 기다리거나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은 상인들. 이들은 목책 주변에서 한 달에서 두 달 가까이 야영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내가 거의 모든 물품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그것이 백 프로는 아니고, 수량이 많아져 나도 가치가 낮은 물건은 구매 품목에서 제외하다 보니. 이들의 기다림이 마냥 헛고생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어딜 가나 사람들이 몰려들면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생겨난 자잘한 도난이나 분쟁은 내가 해결해왔지만, 결국 오늘 큰일이 터지고 말았다.

“어떤 새끼들인지 확인할 수가 없으니, 다들 마차를 마을에서 멀리 빼시오!”

“아니, 마을 밖이, 다 마을에 땅도 아닌데!”

“마을 밖에 펼쳐진 밭들이 전부 마을에서 경작하는 농지이고, 마을 주변은 대부분 어디서나 마을의 땅으로 인정받는데 지금 당신들이 하는 짓은 도를 넘어섰소! 더 말할 것도 없소 다들 마차를 빼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촌장님이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마을 밖 목책 입구에서는 벌어진 촌장님과 상인들의 입씨름은 이제 무력 충돌로 번져 나가려 하고 있었다. 촌장님 뒤로 곤봉이나 창, 메이스를 손에 탁탁 내리치는 마을 주민들의 성난 모습이 보였다.

마을 주민들이 이렇게 화가 난 이유는 다름 아닌 배설물 때문. 상인과 용병들의 도를 넘은 행태에 결국 마을 사람들이 폭발하고 만 것이다.

사람들은 중세 정도의 세계를 더럽고 냄새나는 세계쯤으로 보통은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구에 국한된 이야기. 이 세계에는 몇 가지 위생을 위한, 법보다 높이 지켜지고 있는 불문율이 몇 가지 있다.

첫째가, 배설물을 함부로 아무 곳에나 버리지 않는다.

몬스터가 활개를 치는 세계이니 후각이 뛰어난 몬스터들이 배설물의 냄새를 따라 습격해 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생겨난 불문율 같은데.

도시에서는 해가 지면, 배설물을 처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밤새 배설물을 모았다가 성문이 열릴 때 가지고 나가 배설물을 버리는 곳에 버린다.

우리 마을도 마을에 화장실은 없지만, 결코 사람들은 배설물을 아무 곳에 버리지 않는다. 화장실이 없어도 사람들은 배설물 통에 배설물을 모았다가 평원 저 멀리 파묻어 처리한다.

우리 여관은 내가 만든 화장실이 있고 화장실에서 모은 오물을 애니의 남동생이 매일 아침 평원에 나가 파묻고 온다.

사냥하러 다니는 용병들이나 야영할 때도 땅을 파 배설물을 처리할 정도니까 비교적 누구나 지키는 편이다. 안 지키는 놈은 생각 없고 이기적인 놈으로 비난받을 정도니까.

둘째가, 수원지를 더럽히지 않는다.

도시나 성 같은 곳에서 나온 배설물을, 강이나 하천에 버리는 자는 극형에 처할 수도 있다. 이건 작은 마을에서도 마찬가지. 몬스터들로 안전한 지역이 드물고, 그런 곳에서 수자원은 아주 중요한 자원인데, 이를 더럽히는 자는 극형으로 다스려진다.

우물에 몸을 던지는 건 이 세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일. 강을 낀 도시에서조차 강으로 몰래 오물을 버렸다가 걸리면 극형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저렇게 화가 난 이유도. 상인과 용병들의 배설물 처리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배설물을 모아 잘 처리하던 상인과 용병들이었는데, 어디를 가나 쓰레기는 있고 누군가가 먼저 함부로 버리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로 시작된 무단 배설물 투기는, 결국 너도나도 마을 주변 아무 데나 배설물을 버리는 상태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마을에서 그란 폴을 오가는 길 한가운데 배설물이 뿌려지기도 했었다.

그리고 오늘 강가에 물을 뜨러 갔던 마을 아낙들이 강에 버려진 배설물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 소식은 마을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마을 수원지인 강에 배설물을 버리다니 외지인들의 행패가 지나쳤소!”

“나쁜 새끼들 이건 우리 전체를 모욕하는 일이요!”

“목책 밖에서 돈도 거의 받지 않고 머물게 해줬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마을은 삽시간에 끓어올랐다. 마을 남자들이 모두 무장하고 목책 밖으로 몰려나온 것은 한순간. 그래서 지금 이렇게 마을 목책 밖에서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을의 군 통수권자인 내가 이런 자리에 빠질 수 없는 일이니 나도 당연히 끌려 나왔고.

하, 정말 더러운 새끼들. 진짜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도둑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바람 불 때 모닥불 안 꺼지게 한다고, 목책 옆에서 모닥불 지피다가 목책을 태워버릴 뻔한 새끼들도 있었으니까.

강이라서 배설물은 흘러가겠지만 자기들도 처먹는 물에다가 이건 좀 아니잖아?

“러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 러셀 저 새끼들 이렇게 두면 안 되는 것 아니겠나!”

잔뜩 흥분한 마을 사람들이 의견을 구해왔다.

내가 만든 마을 법률은 이런 부분까지는 없으니 난감한 상황.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을 일단 진정시키고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방법뿐.

“일단 상인 여러분들은 목책 주변 배설물 지금 당장 치워주십시오. 냄새로 몬스터가 몰려들 시에 마을에서는 절대 지원하지 않을 테니, 지금 당장 모두 달려들어 배설물을 모아 처리해 주십시오. 지금 주변 이 상황이 말도 안 된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시겠죠?”

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자 상인들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다들 아무말도 못하고 헛기침만 해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이냐고 도시에서도 안 이러는데….

“그리고 강에 배설물 버린 사람은 각오하는 게 좋을 겁니다. 누군지 찾아내서 대가를 치르게 할 테니까요. 마을 주민 여러분 일단은 저희도 강가를 청소하고 돌아가죠. 무력 충돌은 자제해야죠. 일단은 같은 인간끼리니까요.”

“참고로 없던 일로 하고 그냥 지나가는 건 아닙니다. 로리엘, 불도마뱀.”

­푸확

내 옆에서 불꽃이 치솟으며 로리엘이 소환한 도마뱀 모양의 불꽃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솟아올랐다.

그리고 내 주변을 슬슬 돌며 상인들을 위협했다. 저번에 소환할 때 조심해달라고 해서 그런지 불의 정령이 제법 가까운데 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들 불의 정령에 시선이 모였을 때, 딱 한 마디만 했다.

“지금부터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천막이고 뭐고, 다 깡그리 태워버릴 테니까 그런 줄 아쇼!”

나는 일단 상인과 용병들에게 준엄하게 경고한 후 마을로 들어왔다.

“러셀 때문에 일단 참기는 했는데, 왜 봐준 건가? 그냥 다 깡그리….”

촌장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는 마을 사람들을 이해시켜야 하는 상황.

“일단 밖에 상인들이 그란 폴 상인이 대부분이라서, 도시에서 물건을 구매해야 하는 저희 처지에서는 무력 분쟁까지 가면, 아마 나중에 마을에서 물건을 사거나 오가는 일이 번거로워질 겁니다. 앙심을 품은 습격이 있을 수도 있고요.”

“범인이 누구인지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같은 죄를 물으면, 당연히 불만이 생겨날 수 있고 선의의 피해자도 생길 수 있으니 그것도 조심해야 하고요. 도시에 마을에 대한 나쁜 소문이 돌면 피해를 보는 건 저희니까요.”

마을 사람들은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다들 내 이야기에 납득은 하는 눈치였다. 솔직히 밖에 놈들이 우리한테만 물건값을 올리거나 물건 판매하지 않는다면 생필품을 구하러 다른 도시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기니 말이다.

최후의 상황에는 척질 걸 각오하고 저지른 후 물건들을 길드에서 구매해도 되고, 릴리아나 누님을 통해 부 길드장 연줄을 이용해도 되겠지만 그건 정말 최후의 방법. 되도록 범죄자만 특정해서 문제를 해결해야지 이건 크게 벌릴수록 우리도 상인들도 손해였다.

“근데 범인은 어떻게 잡아낼 텐가?”

촌장님이 물어오셨다.

“그건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전문가?”

나는 며칠 만에 다시 비교적 법과 정의의 전문가인 시트라씨를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분이 또 이단 심문관이니 범죄자도 잘 잡으실 것이 아닌가.

“계십니까!?”

아무도 없어 보이는 빈 신전 안으로 소리를 치자, 시트라 씨와 기거 중인 두 여사제 중 한 명이 어디선가 달려 나왔다.

“네, 여기…. 어!? 러셀 씨, 여긴 어쩐 일로?”

“아, 시트라 씨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요.”

몇 번 여관에 와서 시트라 씨와 식사하고 가신 적이 있는 분이라서 그런지, 사제님이 아는 척을 해오셨다.

“아, 잠시만요! 시트라 씨가 좋아하시겠다.”

‘사람 만나는 게 드물어서 그런가? 뭐 나 따위를 만나는 게 좋기까지….’

잠시 기다리자 신전 한쪽에서 화장기까지 느껴지는 얼굴의 시트라 씨가 약간은 볼이 상기된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걸어오고 계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시트라 씨!”

그란 폴 동행에서 제법 친해졌다는 생각했기에 나는 시트라 씨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네, 난, 난봉꾼 러셀 씨 또 어쩐 일이신가요?”

역시 시트라 씨도 나와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 생각하셨는지 농담까지 해오셨다. 저번에 오해를 풀고 사과까지 하셨는데 또 난봉꾼이라도 하시는 걸 보니 장난을 치고 싶으신 듯했다.

처음 해보시는 농담이라 어색했는지 약간 볼이 상기된 모습.

“예, 그 난봉꾼이 시트라 씨랑 ‘단둘이’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요.”

나는 잠깐 시간이 멈춘 줄 알았다. 시트라 씨의 귀와 얼굴이 실시간으로 빨갛게 물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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