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40화 (140/352)

〈 140화 〉 138. 죄와 벌 4

* * *

헤럴드 씨의 인사에 릴리아나 누님이 이마를 부여잡으셨다. 하긴 멀쩡한 처녀 그것도 자애와 순결 교단의 이단 심문관에게 부인이라는 호칭을 썼으니까 말이다.

아마 시트라 씨가 사제복 위에 로브를 입고 있어서 사제복을 못보신것 같았다.

“영감, 내가 이름하고 특징하고 외우라고 줬어? 안 줬어?”

재빨리 다가가서 부 길드장의 옆구리를 찌르며 릴리아나 누님이 눈치를 줬다. 바보 같은 상사 때문에 고생한다는 신세 한탄은 많이 들었는데 이런 종류의 고생이었다니.

“웜 포트! 은발. 얼굴에 상처. 내가 누구라 그랬어!”

그때야 뭔가 알아차린 표정을 지은 헤럴드 씨는 재빨리 사고를 수습했다.

“어이쿠. 제가 나이를 먹어서 실수했군요. 순결 교단의 이단 심문관님을 뵙습니다.”

“네. 아, 안녕하세요.”

다행스럽게 시트라 씨는 화가 났다기보다는 약간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하긴 순결한 처녀한테 비 처녀냐 물으면 좀 부끄럽긴 하겠다고 생각하며, 찾아온 용건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자리에 앉았다.

“러셀이 헤론을 잡아 왔어요!”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 릴리아나 누님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셨지만.

“헤론? 뒷골목의 헤론?”

“그럼 헤론이 다른 새끼가 또 있어요?”

뭐 내가 잡은 게 아니라 로리엘이 잡아 온 것이지만.

“으하하핫! 그 새끼가 드디어 잡혔구먼!”

헤럴드 씨는 아주 대소를 터트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몇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한 표정이랄까? 그렇게 한참 폭소를 터트린 헤럴드 씨가 릴리아나 누님의 눈치를 다시 받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이런 죄송합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그런데 어떻게?”

그나저나 만나는 사람마다 이걸 말해야 하네…

결국 나는 다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황금마차를 오십 명이 넘는 놈이 습격했다는 사실과 놈이 살기 위해 헤럴드 씨를 만나려 했다는 사실.

헤럴드씨는 특히나 마차를 습격했다는 부분에서 이마에 핏대를 세우시며 흥분하셨는데, 아까 인자한 모습과는 정말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 죽일 놈이!”

그렇게 한참 현상금과 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경비병 한 명이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경비병이 전한 이야기는 헤럴드 씨를 아까보다 더욱 흥분하게 만들어 버렸다. 헤론이라는 그놈 새끼가 입을 꾹 닫고 국법대로 처리해달라고 했다는 것.

이곳이 중세 어림한 문화환경이라 인권이나 처벌이 마음대로일 것 같지만 나름의 기준은 있다. 범죄자가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어느 정도의 고문을 할 수는 있지만, 죄를 자백하면 고문이 금지되는 것.

더군다나 고문 방법도 너무 잔인하거나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는 것은 금지된다. 그리고 고문 시에 사제가 대동하게 되니 자백을 못 받았다며 계속 고문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헤론 이 새끼는 영주 성에 감금되자마자 빠르게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정보는 불지 않고 뒈지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내 처지에서는 약은 오르지만, 현상금은 받을 수 있고, 추가 보상이 깎이니 짜증은 나지만. 그래도 공돈이 몇 골드나 생길 것이니 괜찮지만. 헤럴드님 입장에서는 자기까지 팔아먹고 마지막까지 사람을 열받게 하니. 당연히 빡이 칠 수밖에…

“뭐 어느 정도 예상을 못 한 바는 아닌데…”

현상금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시트라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뿌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리며.

“범죄자가 마지막까지 회개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제가 직접 나서야겠군요. 러셀님,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예?”

자애한 우리 순결의 이단 심문관님께서는 몹시 화가 나신 것 같았다.

성국 교단의 이단 심문관이 범죄자를 직접 본다고 하는데, 그 누가 막을 수가 있겠는가. 결국 나와 헤럴드 씨, 릴리아나 누님과 시트라 씨는 다 같이 영주 성의 지하감옥을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와… 지하감옥 말로만 들어봤지. 음침하고 냄새나고 끔찍한 환경이었다. 아무래도 환기가 안 되니 습하고, 화장실은 오물통으로 대신하니 악취. 여기저기 벽에 걸려있는 횃불에서 나는 그을음이 섞인 냄새 속에는 고통과 죽음이 물씬 배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계단을 내려가 감옥들을 지나는데 시트라 씨가 나에게 말했다.

“비교적 감옥의 환경이 좋군요. 이래서야 죄인들이 회개를 과연 할 수 있을지….”

나는 그 말을 듣고 성국 지하감옥은 절대 구경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단 심문관들이 성국에서 키운 괴물들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상처 빼면 순수한 처녀인 시트라 씨는 상당히 뒤틀려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헤론이라는 놈이 갇혀있는 곳에 다다르자, 놈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맞았다.

“크헤헤헤, 다들 열 받으셔서 행차하셨구먼? 그런데 어쩌나? 나는 죄를 다 자백해 버렸는데? 크헤헤헤헤”

놈이 철창 뒤에서 우리를 비웃으며 배를 잡고 땅을 굴렀다.

그때 들리는 시트라 씨의 목소리.

시트라 씨는 놈을 보고 살짝 미소 지으며 말을 시작했다.

“나, 성국의 자애와 순결의 교단 소속 고위 이단심문관 시트라는, 저자의 몸을 덮고 있는 문신이 악마나 마족들의 숭배와 관련된 것인지 심히 의심되는군요. 의혹을 살펴보기 위해서 저자를 고문실로 데려갈 것을 제안. 아니, 명령합니다. 이것은 성국 이단 심문관의 고유 권한으로 영주는 이를 응해주셔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우! 이 누님 사이다. 그걸 그렇게 엮는다고? 몸에 그린 문신으로 이걸 이렇게 엮어내다니 이단심문관 그거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들리는 대폭소 소리.

“푸헤헤헤 푸헤헤헤헤… 이 새끼, 넌 곱게 뒈지긴 그른 것 같다.”

헤럴드씨가 벽을 잡고 웃고 계셨다. 릴리아나 누님께 등짝을 찰싹찰싹 맞으면서 말이다.

놈은 시트라 씨의 말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갑자기 발작하며 외쳤다.

“이, 이단 심문관이 왜? 거, 거짓말이다! 저년은 그냥 사제라고! 웜 포트의 사제인데 거짓말하는 거라고!”

놈의 말에 시트라 씨가 입을 삐뚜름하게 해 놈을 비웃으며, 자신의 순결과 자애의 로자리오를 들어 신분을 나타냈다.

그 모습에 기사와 간수들이 화들짝 놀라 예를 표했다.

“자애와 순결의 딸을 뵙습니다!”

살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누가 교단을 가지고 사기를 치겠냐 이 덜떨어진 새끼야.

신들이 직접 신력을 내려주고 기적을 행하는 이곳에서 종교의 권한은 막대하다. 그러니 이곳에서 종교라는 것은, 국법 위에 존재하는 성역이다. 그러니 이단심문관 그것도 상급 이단 심문관이 직접 방문하니 다들 빠릿빠릿하게 그녀의 명령을 따랐다.

잘못해서 밉보였다가는 이단, 불신이야!

놈은 울며불며 잘못했다고 다 불겠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아무도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그리고 재빠르게 놈은 지하감옥 한편 고문실로 이동되었다.

하지만 고문실 안쪽을 슬쩍 살펴본 시트라 씨는 뭔가 맘에 들지 않는 표정이더니, 다시 간수들에게 말했다.

“죄인을 회개하게 할 도구가 무척 빈약합니다. 이래서야 어찌 죄를 실토하게 할지… 형장으로 일단 끌고 갑시다.”

울부짖는 놈을 끌고 우리는 마을 광장 중앙의 형장으로 이동했다.

평소에는 연단으로 쓰이는데, 교수형 같은 걸 할 때는 알뜰하게 처형대로도 쓰이는 구조물 앞에 다다르자, 헤론이라는 놈은 눈물 콧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트라 씨는 범죄자를 매다는 티자 모양 형틀을 끌어내려, 그곳에 놈을 묶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끝나자마자 웃으며 나를 보고 말했다.

“자 러셀 씨, 나머지는 이제 러셀 씨가 지도해 주세요.”

이분은 다 계획이 있으셨다.

형틀에 묶여 놈이 비명을 지른다. 뭐가 시작될지 알고 있는 느낌? 하…. 그러나 아쉽게도 곤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전생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는 민족.

곤이 없는 우리에게는 장이 있었다.

“그 마을에서 쓰는 몽둥이는 곤이라고 하는데, 아쉽게 곤이 없어서 장으로 대신 하겠습니다.”

“어머, 장은 뭔가요?”

호기심 어린 시트라씨의 질문.

나는 사병들이 사용하는 창대를 몇 개 부탁했다. 곧이어 놈의 볼기가 까지고 물이 뿌려졌다.

­촤아악

그리고 내가 직접 나서 시범적으로 묶여있던 헤론의 엉덩이를 후리며 외쳤다.

­부우웅

­짜악!

“한대요!”

놈은 얼마 안 돼 눈물 콧물을 흘리며 자신의 죄와 정보를 낱낱이 실토하고 자신이 이단 악마 숭배자임까지 고백하고 말았다.

그리고 놈의 고백이 끝나자 얼굴에 아주 만족한 미소를 띤 시트라 씨는 표정과는 다르게 아주 엄숙하게 말했다.

“죄인이 모든 죄를 자백했으니. 죄인에게 사형을 집행합니다.”

“사형은… 장 천대!”

시트라 씨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퍼지고, 놈의 낯빛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놈은편안한 죽음을 사정했지만, 처형은 멈추지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지친 간수들이 몇 번 교체되고야 형이 마무리되었다.

골고루 다진 고기가 된 헤론은 부하들의 머리와 함께 도시밖에 내걸렸다.

놈의 죄에 어울리는 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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