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39화 (139/352)

〈 139화 〉 137. 죄와 벌 3

* * *

어색해진 분위기.

시트라 씨의 반응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그냥 조용히 있어야지 하고 생각했더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닥불 앞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하게 된 것.

밝아지는 느낌에 마른세수하며 주변을 확인하자 멀리 지평선에서 첫 번째 태양이 솟아오르고, 강가에서는 물안개가 퍼져 나가고 있었다.

깜짝 놀라 시트라 씨를 확인했다. 그녀는 모닥불 한편에서 가죽 깔개 위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살짝 감은 눈 위에서부터 얼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상처. 아무리 종교인이라도 여자는 여자라서 내색하지는 않아도 많이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트라씨는 좀 더 자게 두고 아침이나 준비할까? 하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자 성역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았고, 늑대 몇 마리가 시체를 물어가려고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이 밝아오자. 로리엘이 만들었다는 현장이 아침 태양에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이건 정말….”

“이, 이 무슨…”

내 목소리에 잠에서 깬 시트라 씨도 그 모습에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 험한 꼴 많이 보았을 이단심문관 조차 깜짝 놀라게 하다니 로리엘 당신은….

녹색의 도화지 위로 검붉은 물감으로 여기저기 획을 그어놓은 듯한 모습과 한쪽에 쌓여있는 머리 없는 시체들. 군데군데 타들어 간 풀밭.

“무슨 마물의 푸줏간 같은 모습이군요….”

종교인다운 소감이었다. 나도 본 적은 없지만, 왠지 상상되는 모습.

이걸 그냥 두면 늑대나 몬스터들이 몰려들 것 같아 일단 기름을 뿌려서 불을 붙였다. 곧 검은 연기가 머리 위로 솟아올랐다.

그냥 봐도 좀도둑 같은 놈들인데 왜 우리 마차에 덤벼들었지? 한두 번은 도둑놈들이 꼬여 들 거로 생각했지만 얘들은 급이 좀 낮아 보였으니까 말이다.

“다음번에는 쓰레기 말고 좀 더 쓸모 있게 태어나라…”

타는 시체를 보면 한마디 던지자 이어지는 시트라 씨의 목소리.

“이런 놈들에게 축복까지…”

딱히 축복은 아니었는데, 시트라 씨가 느끼기에는 그랬나?

로리엘이 만들어둔 현장 때문에 어제의 어색함이 다소 풀어진 것 같기에 조금은 다행이었는데 여기서 아침을 만들어 먹을 수는 없었다. 일단 육포를 시트라 씨에게 나누어주면 말했다.

“여기서 아침 먹기는 그른 것 같으니, 도시 가서 사 먹죠.”

“어제 저녁 먹을 때는 안 보여서,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원효대사 해골 물이 생각나는 상황이었다.

결국 아침도 먹지 못하고 시트라 씨와 다시 마차에 올라 그란 폴로 향했다. 로리엘이 만들어둔 붉은 이정표를 따라서 말이다.

이거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거지?

한참을 로리엘이 만들어둔 이정표를 따라 도시 쪽으로 이동하는데 말을 탄 기사 몇 명과 병사들이 저 앞에서부터 로리엘이 만들어둔 붉은 이정표를 따라 우리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도 있습니다!”

“대체 어떤 놈들이 죽은 거지?”

순찰대인 듯한데 로리엘이 만든 현장을 발견하고 확인을 하는 모양.

“수고하십니다.”

“어디서 오는 길이지?”

선두의 기사가 날카롭게 물어왔다.

“아, 웜포트에서 오는 길입니다.”

“오다가 무슨 이상한 것 보지 못했나?”

“웜포트 쪽으로 가다 보면 사체를 모아 쌓아둔 것이 있어서, 불을 놓고 오는 길입니다.”

“현장이 훼손된 것 같군. 혹시 시체는 몇 구나 있었나?”

내 말에 기사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불을 놓아서 시체를 태웠다고 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조사하고 있는데 현장이 훼손되면 짜증이 날 수 있겠다 싶었다.

“그건 뒤에 실려있는 놈에게 물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뭐?”

도적단 두목 헤론이라는 놈은 어제 시트라 씨가 신성력으로 재워둔 상태, 그렇게 해야 식량도 안 들어가고 운송하는 데 좋다나? 시트라 씨가 놈을 기사들에게 보이기 위해 놈을 깨우자, 놈이 화들짝 깨어 살려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살, 살려주세요! 살… 어?!”

그리고 기사들을 보더니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뭐야? 이 새끼 헤론 아니야?!”

기사들은 놈의 얼굴을 한눈에 알아봤다. 확실히 현상금 걸린 놈이 맞는 듯했다.

잠시 후 우리 마차는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마차 뒤에 사병들을 태우고 그란 폴로 향했다. 마차 안에 실린 머리통 오십여 개와 헤론을 보더니 기사들의 반응이 급 호감으로 돌아섰기 때문이었다.

“아, 러셀 님이셨군요!”

기사 한 명이 내가 웜 포트의 여관주인이라니 아는 척을 해왔다.

“저를 아십니까?”

“어휴 부기사단장 헤럴드…. 아 지금은 모험가 길드 부 길드장이죠. 헤럴드님이 뵙게 되면 실수하지 말라고 얼마나 신신당부하시던지. 그나저나 헤론 이 새끼가 러셀님의 마차를 털려고 했다고요?”

에브리나 때문에 수정구로 얼굴 슬쩍 보고 목소리 한번 들은 게 다인 영감인데 부기사단장이었다고? 그러니까 헤론 이 새끼가 경비대장이 아니라 부 길드장한테 가자고 했구먼.

“아, 부 길드장님이 예전에 부기사단장님이셨군요. 이놈이 저희 여관 직원들이 있는 마차를 오십 명이나 되는 부하를 이끌고 공격해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다친 분들은?”

“다행스럽게 한 명이 정신에 깊은 상처를 입어서 신전에서 치료받고 있습니다.”

­부웅. 빠악

“끄하악…”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사가 들고 있던 창을 휘둘러 마차 뒤에서 눈치 보고 있던 헤론이라는 놈의 머리통을 후렸다. 놈의 머리통에서 피가 주변에 앉아있던, 병사들에게 튀자 병사들이 인상을 찌푸리곤 헤론을 마차 바닥에 처박고는 발로 밟아댔다.

“너, 이 새끼. 이번엔 진짜 큰 사고 친 거야. 누굴 건드린 지, 알긴 하냐?”

기사의 호통과 병사들의 발길질에 놈이 몸을 웅크렸다.

“저놈이 큰 사고 많이 쳤나 봅니다?”

기사의 날카로운 반응에 물었더니, 놈의 죄목이 기사의 입에서 줄줄 흘러나왔다. 부녀자 납치 강간, 인신매매, 마약 유통, 강도, 살인, 사기, 폭행 무슨 범죄 은행같은 놈이었다.

놈의 죄가 기사의 입에서 하나씩 나올 때마다 마차 뒤에서 병사들이 놈을 발길질로 인디언 밥을 먹이고 있었다.

“뒷골목에서는 놈을 숨겨주니 잡을 수가 없었는데, 큰 시름 덜었습니다. 부하까지 한꺼번에 거의 다 죽은 것 같으니, 진짜 러셀님 덕분에 큰 골치가 사라지게 생겼습니다.”

기사의 말에 다른 병사들도 발길질을 멈추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래 이놈 마을에서 처형하려고 했는데, 그란 폴 가면 뒷골목의 쓰레기들 위치와 죄목을 아는 대로 전부 불겠다고 해서 데리고 오는 겁니다. 그란 폴에 좀 도움이 될까 싶어서 말이죠.”

원래는 보상이 탐난 거지만 뭐 틀린 말은 절대 아니니.

기사가 그 말에 얼굴을 반색하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역시 헤럴드님이 중요한 분이라고 한 이유가 있군요. 하하”

그렇게 마차 뒤에서는 병사들의 화기애애한 인디언 밥 놀이가 이어지는 가운데 마차는 그란 폴에 도착했다.

헤론이라는 놈은 도시 입구에서 경비에게 인도되었다. 머리가 담겨있던 통도 그 자리에서 넘겨주었다. 기사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니 알아서 처리해 주겠거니 생각하고 기사를 따라 부 길드장을 만나러 갔다.

기사와 함께 길드로 들어서자 아무래도 사냥철이라 그런지 조금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테이블 몇 개에 용병들이 있긴 했는데 아직 점심때도 되지 않았음에도 대부분 술 취한 모습이었다.

그래 전형적인 길드의 모습, 오랜만에 용병 길드에 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뭐야? 이게 누구야? 러셀 아니야?”

길드 접수창구에서 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릴리아나 누님이 달려나와서는 내 가슴을 찰싹찰싹 때리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우앗! 누님 아파요. 아프다고요.”

“아니, 너는 누님 보고 싶지도 않았냐? 지 부인들만 보내고 한 번도 안 오고! 이 새끼! 이놈 새끼!”

여전한 릴리아나 누님이셨다. 이 편안함. 이래서 연상이랑 사귀고 결혼하는 것 같았다.

“근데 어쩐 일이야?”

나는 릴리아나 누님에게 아내들이 탄 마차가 습격받아 그 범인인 헤론을 잡아 왔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놈이 부 길드장 헤럴드에게 정보를 토해내겠다고 맹세했다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진짜? 헤론을 잡아 왔다고?”

옆에 있던 기사가 고개를 끄덕여 나의 말이 맞음을 확인해주자 놀란 누님은 나를 끌고 부 길드장의 집무실로 향했다. 좀 늦긴 했지만 안면이 있던 시트라 씨와 인사를 나누며 말이다.

부 길드장의 집무실은 단출했다. 고급스러운 것과 거리가 먼 성격인지 깔끔하고 장식품 하나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벽에 걸리거나 오크통에 꽂혀있는 여러 종류의 무기들만이 내부의 유일한 장식이었으니 말이다.

부기사단장 이었다던데 첫인상은 동네 할아버지 같은 모습의 인자한 얼굴. 당연히 저게 본모습은 아니겠지.

“반갑습니다. 부 길드장 헤럴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러셀이라고 합니다.”

부 길드장 헤럴드 씨와 인사를 나누자 헤럴드 씨가 시트라 씨에게도 인사를 했다.

“옆에 부인께서도 안녕하십니까?”

“부, 부인 이라니…”

시트라 씨의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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