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37화 (137/352)

〈 137화 〉 135. 죄와 벌 1

* * *

시트라씨가 있던 건물은 성전.

성전은 얼마 전 완성이 끝났다. 마을 광장 근처에 목재도 아닌 벽돌 같은 고른 크기의 흰 석재로 쌓인 투박한 형태의 직사각형 건축물. 내부에는 회칠해서 새하얀 모습.

칙칙한 중세 마을 한가운데 그리스에서 성전만 따로 떼어 가지고 온 듯한 백색의 존재감.

시트라 씨는 이제 성전에서 기거하는 중이다. 가끔 저녁을 먹으러 사제들을 데리고 여관을 방문하는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분이랑 대화하면 피로가 높아진다.

이 인간은 눈치가 너무 빨라.

시트라 씨는 심문관. 직업적 특성인지는 몰라도 전생의 형사 이런 직업군 사람들처럼 뭔가 사람을 훑어보는 시선이랄까? 그런 기묘한 시선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죄책감이나 불안감에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의 의미를 너무 잘 꿰뚫어 본다.

그래서 대화하면 불편한 것이다.

불편한 시트라 씨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환자가 생겨서요.”

내 말에 그제야 내 옆에 서 있는 마리나를 확인한 시트라 씨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 이분 왜 이러시는 거죠?”

죽어가는 눈빛의 마리나의 눈빛. 며칠 전만 해도 멀쩡한 애가 다 죽어가는 눈빛으로 멍하니 오면 당연히 놀라겠지.

“좀 참혹한걸. 봐서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참혹이요?”

당연히 되물을 만했다. 이런 한적한 마을에 참혹한 장면이 뭐가 있겠나. 뭐 몬스터 습격이라 봐야 사람 한둘 죽는 건데 이 세계 사람치고 그런 거로 놀랄 사람은 드무니까.

하지만 목이 잘린 오십여 구의 시체 같은 대량 학살은 의미가 다르겠지. 전쟁터도 아니고 그런걸 어디서 봤겠나. 더군다나 그곳에서 머리만 건져 상자에 담아오면 그건 또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현장 정리도 했을 테니….

로리엘이 크게 일을 벌였다는데, 말괄량이 리젤다 씨가 ‘크게’라고 표현한 걸 보면 그게 그냥 큰 것 같지도 않고.

“마차에 습격이 있어서요.”

“습격이요?! 감히 어떤 놈들이!”

시트라 씨는 악을 처단하는 정의의 사도답게 습격이라는 단어에 안광을 폭사하며 눈을 부라렸다. 이럴 땐. 딱, 이단 심문관이 맞는 것 같다.

“어, 일단 처리를 다 한 것 같은데. 아 참. 두목은 잡아 왔거든요.”

“아, 그렇지 않아도 러셀 씨를 찾아뵙고 싶었는데. 잘되었습니다.”

“어, 저를요?”

또 성국 방문 이야기가 나오려나? 세계수님에게 초대받긴 했는데, 가면 왠지 난장판을 구경할 것같은 느낌이란 말이지.

“예, 그 마을에 세우셨다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예? 법이요?”

시트라씨는 반짝반짝한 눈망울로 한껏 무엇인가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왠지 불안한데 이거…. 생각하지 못한 법 이야기가 나와서 당황했지만 일단 마리나가 먼저.

“이, 일단 마리나를 좀…”

“저런! 엘리아, 젠드라!”

깜짝 놀란 얼굴로 시트라 씨가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르자 정신적 충격을 받은 엘프들을 위해 파견되었다는 두 여사제가 나와 마리나를 데려갔다.

잠깐 충격을 받은 것 같으니. 정신 정화를 시행하고, 심신을 안정시킨 다음에 돌려보낸다기에 감사함을 표하고 밖을 나서려는데 다시 들려오는 시트라의 목소리.

“저희가 법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말았죠?”

“그, 그렇죠…”

나는 시트라 씨와 성전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법에 대한 그녀의 의견을 들어야 했다. 법이 무슨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그 죄인에 대한 처벌이 너무 느슨하다랄까? 물론, 저는 자애와 순결 교단 소속인지라 죄인들도 자애로 대해야 함이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자애로운 어머니의 마음처럼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는 들어야 하는 법. 아무래도 러셀님이 처벌이나 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것 같으니, 제가 도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아… 마을 광장에 써 붙인 처벌 규정이 뭔가 마음에 안 드신 느낌이었다.

“어떤 부분이?”

“모름지기 죄인이란 피가 튀고 뼈가 부러져야 그때부터 죄를 자백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죠. 뭐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 참회를 보이는 놈들도 있지만 일단 시작은 피와 뼈일까요?”

뭔가 대단히 흉악한 놈들을 다루시는 분이라 그런지 처벌기준이 조금 높으신가? 피와 뼈라니 자애의 교단 아니셨냐고요.

이쪽 감성으로는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긴 한데. 곤장 치는 거, 아직 못 보셨나? 나는 일단 시트라 씨에게 마침 신선하게 입고된 죄인의 심문 입관을 제안했다.

“어, 그럼 범죄자도 한 명 있는데. 그, 한번 보시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아! 그렇습니까? 기대되는군요. 제가 성국에 있을 때는, 뭐 제 자랑이긴 하지만. 제 손길만 가면 죄를 토해내지 않는 놈들이 없었는데 말이죠. 굳이 고백관에게 까지 가지 않아도, 넘기기 전에 이미 죄를 마지막 한 톨까지 다 낱낱이 고해바치곤 했죠.”

그렇게 고백관이라는 건 범죄자의 죄를 실토하게 하는 성국의 사제를 가장한 전문 고문 기술자라는 이야기를, 아주 즐거운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시트라 씨의 말을 들으며 광장으로 향했다.

내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단 심문관이라는 거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성전에서 나와 범죄자들을 묶어두는 기둥이 있는 곳을 바라보자 이미 촌장의 두 아들이 아까 잡혀 온 마차 강도 두목을 기둥 근처 형틀에 묶어두고 곤봉으로 괴롭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빠악

“이 새끼! 달려들어?”

거리를 좁혀 그쪽으로 다가가자 둘이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두들겨 패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로이드의 밤탱이가 된 눈.

딱 봐도 형틀에 묶이는 걸 반항한 것 같았다.

“이 새끼가 도망을 치려고…”

로이드가 씩씩대면서 말했다.

“마을 주민에게 상해를 입히면 곤장이 몇 대지?”

“열 대입니다.”

내 말에 대답한 건 두 놈이 아닌 옆에 있는 시트라 씨였다. 아니, 암기하고 다니신다고요? 시트라 씨의 눈을 보니 이분은 ‘진심’인 것 같았다.

“어, 네, 맞습니다. 열대. 그럼 열 대로 시작하죠. 다들 곤장 준비해.”

원래 곤장이라는 건 죄인을 두들겨 패는 도구를 말한다. 곤과 장으로 나누는데 곤이라는 건 우리가 사극 같은 데서 한 번쯤은 본 그 넓은 몽둥이를 말한다.

크기에 따라서 소, 중, 대곤으로 나누며 별도로 치도곤이라고 좀 넓은 놈이 존재한다.

장은 가시나무 가지로 만드는 일 미터 정도 되는 몽둥이를 말하는데, 그걸로 치는 걸 장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어떻게 부르든지 그건 내 맘. 느낌 좋고, 어감 좋게 엉덩이 때리는 걸 곤장이라고 정했다.

“무,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형틀에 묶인 놈이 자신의 운명을 감지했는지 몸을 떨며 외쳤다.

­촤악

촌장님 댁 첫째가 놈의 엉덩이를 까고 물을 뿌렸다.

“어멋!”

시트라님이 그 모습을 보고 내 뒤로 살짝 숨으며 얼굴을 붉히셨다. 아니 피와 뼈는, 되는데 엉덩이는 안된다고요?

형틀에 묶인 놈은 자기 엉덩이가 사방에 드러나자 황당한 얼굴로 소리를 질러댔다.

“이,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내가 누군지 알고! 나 헤론에게 감히!”

“너무 빠르게 치지 말고, 한 대 치고 시간을 두고 치라고 알았지?”

“네! 러셀님!”

“퉤퉤.”

촌장은 두 아들놈은 손에 침을 뱉더니 누가 먼저 칠까를 정하더니, 로이드가 먼저 잘 깎아 만든 곤을 들어 바람 소리가 나게 내리쳤다.

­후웅

­쫘압

“끄허허허허억…”

로이드는 곤을 내리치고 엉덩이에 ‘꾹’ 눌러 지짐이까지 선물했다. 역시나 사람은 다 비슷하다. 어떻게 하면 더 아프게 칠까 궁리하고 있었구나? 너.

그리고 텀을 두고 내려쳐지는 두 번째 로니의 곤.

­부웅

­쩌억

“끄아아악!”

곤이 휘둘러지는 소리와 찰진 타격음 그리고 놈의 비명이 마치 한 세트처럼 마을 광장에서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씩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아니, 먼저 이야기를 예 잠시만 저기…”

­짜아악

“끄헙.”

“잠 잠시만요. 예 제가! 제가 두목 맞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쫙.

“끄허억.”

다섯 대가 되자 이미 놈의 엉덩이는 시퍼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사제님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쇼. 제가 잘못했습니다. 죽일 놈 맞습니다. 마차 습격 지시도 제가 했습죠. 살려주십쇼.”

놈은 고작 다섯 대만에 빠르게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이해하고 죄를 토설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건 시작도 안 했고, 넌 인마. 지금 로이드 눈탱이 밤탱이 만든 것으로 맞고 있는 건데?

그리고 추가로 이어진 세대.

­쫘아악

­짜악

­쭈아악

내려쳐진 곤 주변으로 핏방울이 튀어 오르고 놈의 고개가 떨궈졌다. 아마 엉덩이가 터진 것 같았다.

하긴 조선시대 기록에는 한 대만에 피가 터지고 스무 대 치면 장형으로 죽이겠다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니, 여덟 대면 실신할 수도 있지.

“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내가 익살스럽게 말하자.

나의 말에 시트라 씨가 재빨리 놈에게 다가가 마치 더러운 벌레가 닿는 게 싫다는 표정으로 발끝을 놈의 머리끝에 살포시 올리더니,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으로 신성력을 끌어올려 놈의 엉덩이를 원래 상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할 건. 다 해야겠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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