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36화 (136/352)

〈 136화 〉 134. 황금마차 10

* * *

“러셀, 일어나봐요.”

이른 새벽 단잠에 빠진 내 귓가에 이실리엘의 목소리가 나직이 들려왔다. 옆에 느껴지는 체온을 더듬어 이실리엘을 잠결에 품으로 끌어당기자 품속에서 이실리엘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발레리와 리젤다가 돌아올 시간이 좀 지난 것 같은데요?”

“응?”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비틀거리며 창가로 향했다. 첫 태양이 막 떠오를 것처럼 지평선 너머에 실 낮 같은 빛무리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확실히 평소라면 이 시간이면 도착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

“아직 안 돌아왔다고?”

“네.”

“어제 일보다 늦었으면 성안에서 갇혀서 못 나올 수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럴까요?”

나는 다시 침대 안으로 기어들어 가 침대에 걸터앉은 이실리엘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깼어?”

“아, 그 리젤다에게 시킨 물건이 기다려져서…”

아참 리젤다가 황금마차를 따라갔지? 리젤다가 이실리엘의 심부름을 하러 가야 한다며 상행을 따라갔기에 이유를 이실리엘에게 물었다.

“하암… 걱정하지 말고 자. 그런데 리젤다한테 무슨 심부름 보낸 거야?”

“넷?! 아 그, 그냥 별거 아니에요.”

이실리엘이 말을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거 뭔가 수상한데? 나는 이실리엘을 품에 안고 비장의 무기 간지럼을 시작했다.

“아…. 하… 앙… 안 돼요. 러셀 하 흑… 큭큭…”

“자 빨리 비밀을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이야! 헤헤…”

나는 악당 같은 웃음을 지으며 엘프가 과연 간지럼을 타는가에 대한 고찰을 시작했다. 이 철학적이고 해학적인 주제는 겨드랑이와 옆구리를 파고드는 나의 강력한 간지럼에 이실리엘이 얼마 안 돼 몸을 늘어트리고 항복을 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아! 풉… 알, 알았어요! 큭… 무, 무희, 무희 복을 사 오라고 했어요! ”

“응? 뭐, 뭘 사러?”

“무, 무희 복이요!”

아니, 정말 그걸 사러 갔다고?

간지럼을 태울 때보다 더 빨개진 얼굴이 된 이실리엘이 부끄러운지 침대 속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희소식을 듣고 분노한 나의 응징(?)에 간지럼을 태울 때보다 더 큰 심음을 터트린 후에야 다시 잠이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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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잠을 설쳤기에 느지막하게 잠에서 깼다. 여관에 손님이 없으니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아침은 어제 잔뜩 끓여둔 스튜에 빵을 적셔 먹고 오후 촌장의 두 아들을 데리고 마을 순찰을 나섰다. 촌장님에게 일단 군권과 사법권을 넘겨받았으니 이렇게 촌장의 두 아들을 데리고 주기적으로 순찰을 돌고 있다.

요즘 몰려든 상인과 용병들 때문에 사소한 도둑질이나 폭력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었기에, 똑같은 모습으로 무장한 두 놈을 데리고 이렇게 과시하듯 순찰을 하는 것이다.

마을 목책을 한 바퀴 돌면서 망가진 곳, 보수할 곳을 확인하고 두 놈을 통해 촌장님에게 알린다.

일단 얘들은 내 부관 겸 호위 같은 걸로 정했다. 예전에 도둑들에게 얻었던 장비 중에 괜찮은 것들을 챙겨 한 벌씩 입히고 허리에는 곤봉 그리고 창으로 무장시켰다. 용병 단이었던 놈들이라 그런지 갑옷이나 무기가 같은 종류가 제법 있었기에, 두 놈은 충분히 무장시킬 수 있었다.

둘의 무장한 모습에 촌장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하긴 백수인 두 아들놈이 취직했으니 얼마나 기쁘시겠나.

이놈들이 입고 있는 거, 평범한 농부가 사려면 기약이 없는 것이니 말이다.

솔직히 이런 중세분위기 물씬 풍기는 마을에서 농부 아니면 할 일이 전혀 없다. 그러니 집안 농사를 거드는 착한 놈들 아니면, 젊은 애들은 좀 뭐랄까? 어디서 구한 술이나 퍼먹고 작은 짐승들 잡아서 먹으며 저희끼리 낄낄거리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나이를 먹은 분들이 요즘 젊은 놈들은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차며 지나가는 건, 아마 전생이나 이곳이나 비슷한 것 같았다. 하긴 고대 수메르에서 나온 점토에도 요즘 젊은 놈들 뭐 하는지 모르겠다는 글이 쓰여있었다고 했었지?

시대와 차원을 불문하고 젊은 친구들의 일탈은 아주 일상적인 느낌이었다.

촌장의 두 아들도 뭐 다른 젊은 친구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기에, 바람이 잔뜩 들어서 만날 놀기만 했단다. 농사일은 안 돕고 용병이 되겠다니 뭐니. 헛소리만 해대서 촌장 부부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저런 좋은 장비 때깔 나게 입고 마을 경비라도 하고 있으니 그나마 안심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요놈들은 비교적 쓸만하게 만들 계획이었다. 너희들 선임병 벨릭이 돌아오면 말이다.

내가 요놈들을 어떻게 굴려야 할까 고민하며 걷고 있을 때, 마을 광장에 걸어둔 간단한 법률을 적은 목판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안에서 행패를 부리면 곤장 5대,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면 곤장 10대, 금전적 손해를 입히면 5배 보상 정도로 큼지막한 형량을 정해 마을 광장 한편에 목판에 새겨 박아두었다.

벌써 다섯 대 맞고 실려 나간 놈이 서넛은 된다.

“저 러셀님, 오늘은 목책 밖에는 안 돌아보십니까?”

촌장의 아들 둘 중 형인 로니가 물어왔다. 그러자 내가 말하기도 전에 동생인 로이드가 툴툴대며 로니에게 말했다.

“아니, 형 러셀님이 말씀 안 하시는데 그런 것 뭐 하러….”

로니는 약간 에프엠 적인 성격이고 로이드는 대충대충 이랄까?

“아니, 가야지 가보자고.”

내 말에 로이드가 형 로니를 바라보며 입을 삐쭉거리며 따라왔다. 그런 건 뭐 하러 이야기해서 고생하게 만드냐는 뜻이겠지?

괜찮다 얘야 지금 기억이 행복한 기억이 될 테니까 말이다. 로이드에 모습에 나는 유격 체조 도입을 심각히 고민했다.

이 새끼 이거 빠져 가지고…

그리고 그렇게 둘을 데리고 마을 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 나의 황금 마차들이 문으로 들어섰다. 벌써 여섯 번째 상행. 자 오늘은 돈을 얼마나 벌었을까?

“러셀!”

“러셀 다녀왔어요!”

마차 위에 타고 있다 문앞에 선 나를 본 리젤다와 발레리가 멈춘 마차에서 뛰어내려 나를 향해 달려와 안겼다.

“아이고 천천히 남편 다칩니다!”

이번에는 달려드는 발레리를 받아낼 수 있었다. 그래 이 정도 대시면 충분히 받아낼 수 있지. 저번은 점프 고도가 너무 높았어. 솔직히 말이야.

“왜 이렇게 늦었어?”

“습격이 있었어요!”

리젤다의 외침에 뭐가 있어? 감히 어떤 새끼들이… 불쌍하게 불나방이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아니, 어떤 새끼들이? 자살희망자인가?”

내 말에 리젤다가 웃으며 말했다.

“러셀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니까요.”

“러셀, 두목도 잡아 왔어요!”

발레리에 말에 로니와 로이드를 바라보자 두 놈이 ‘씩’ 미소를 지으며 마차를 향해 달리며 물었다.

“도둑놈 새끼 어디 있습니까?”

이 새끼들 엉덩이 까고 물볼기 치는데 너무 재미를 들인 것 같았다. 그렇게 마지막 마차에서 두 놈의 손에 이끌려 꼭 뒷골목 보스같이 생긴 몸에 문신 그득한 놈이 끌려 내려왔다.

입에 물린 재갈을 로니가 풀어주자 놈이 사납게 외쳤다.

“너희들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나 첫 번째 마차에서 눈을 비비며 내린 로리엘이 그놈을 쳐다보자 놈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딱 봐도 누구한테 털렸는지 알겠네.

“로리엘, 수고했어. 씻고 푹 자고 일어나 내가 맛있는 거 해줄게.”

“정말이냐?!”

로리엘은 맛있는 거란 소리에 언제 졸린 눈을 했냐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시리엘이 내려 나에게 자신도 고생했으니 맛있는 걸 내놓으라 말했다.

“고행? 고생 나도 했다. 맛있는 거 나눈다!”

“그래, 알았어. 둘 다 고생했어.”

그렇게 여관으로 뛰어가는 두 엘프를 보내고, 마차를 끌고 갔던 수인들과 고생했다며 인사를 나누는데, 첫 번째 마차 한편에 쪼그리고 앉아 멍한 눈을 한 마리나가 눈에 들어왔다.

뭔가 넋이 나간 모습.

“얜 왜 이래?”

내 물음에 리젤다가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그게 로리엘님이 좀 너무 크게 일을 벌이셔서… 그거 거의 혼자 수습하셨거든요.”

“로리엘이? 대체 뭘 했기에?”

나는 네 번째 마차에서 참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우!”

아니 오십 개도 넘어 보이는 머리통이 뼈나 뿔 같은 부산물을 담아갔던 상자에 가득 담겨있었으니 말이다. 나도 깜짝 놀랐는데 마리나는 PTSD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용병도 용병 나름이지. 이런 걸 대체 어디서 보겠느냐고.

로리엘 요즘 무슨 스트레스 받는 일 있나? 아까 신나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나는 다른 마차들을 보내고 마리나를 부축해 내가 이 마을에서 가장 불편해하는 분이 일하고 계신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원래 산재 일어나면 작은 회사는 사장이 다 병원 데려가고 하는 거니까 말이다. 진짜 마리나야 너는 사장 잘 만났어!

그분이 일하는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얼굴에 상처 자국이 있는 여성이 우리를 웃으며 맞았다.

“어머, 러셀님 신전에는 어쩐 일로? 이곳을 상당히 피하시는 느낌이었는데?”

이단심문관 시트라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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