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133. 황금마차 9
* * *
옆에서 달리던 부하 중 세 번째 놈의 머리가 꿰뚫렸을 때, 헤론은 품에서 준비했던 그것을 꺼내 들었다. 뒷골목의 흑마법사에게 거금 3 금화를 주고 구매한 화살 막는 토템.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저능한 놈들이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는 몇 가지 이유 중의 하나가 토템이라는 것인데, 토템은 몬스터의 주술사라는 존재가 인간이나 몬스터의 머리뼈로 만드는 흉악하게 생긴 장식물을 말한다.
이 토템은 다양한 능력이 있는데 이번 습격에 가지고 온 것은, 토템 중 모험가나 토벌대들을 가장 당황하게 만든다는 바로 화살 막는 토템.
물론 그냥 들고 있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흑마법사의 말로는 토템에 갓 죽은 생명체의 신선한 피를 먹여야 하고 생명체가 고등할수록 효과가 좋다고 했다.
헤론은 품에서 꺼낸 토템에 방금 쓰러진 부하의 머리통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듬뿍 먹였다. 기괴하게 생긴 해골의 눈으로 피가 빨려들 듯 사라지고 해골의 안광이 번쩍거리나 싶더니…
시잉
툭
멀리서 날아오는 화살이 발치에 떨어지는 게 보였다. 신분도 확실하지 않은 흑마법사의 물건이라 내심 불안했는데 성공이었다.
“크하하하. 저년들은 이제 활을 쏘지 못한다! 가자!”
“와아…!”
헤론은 호기롭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 소리에 뒷골목 부랑자들로 이루어진 도적단들이 신이나 괴성을 지르며 마차를 향해 달렸다.
한 손에 곤봉이나 단검, 쇼트 소드, 블랙잭등 조잡한 무기투성이지만 개중 창이나 가죽 갑옷으로 무장한 놈도 섞여 있었다.
“근데 씨발. 너무 먼 거 아뇨?”
“정찰하는 새끼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냥 뛰어! 이 새끼들아!”
한참을 달리다 생각보다 먼 거리에 부하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헤론이 빽 소리를 지르자 다들 조용히 입을 닫고 달렸다. 부하들은 알고 있다 저 더러운 성질에 오늘같이 칼 빼 들고 설치는 날이면, 트집을 잡아 한두 놈 손목 자르는 건 일도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대장은 좀 화가난 것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부하들의 생각처럼 헤론은 지금 심기가 무척이나 불편한 상태였다. 화살 막이 부적으로 일단 화살을 막아내긴 했지만 부하들의 모습을 보니 부아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 신호 화살의 소리가 이상하게 끊겨버려 우왕좌왕한 것도 있지만, 매복한 곳에서 튀어나와 마차를 멋지게 덮치는 것을 상상했었는데.
몇 개의 마력 등에 의지하기에는 사방이 너무 어두워 몇 놈은 부싯돌을 튀기며 횃불을 붙이느라 늦어지고, 앞에 먼저 뛰기 시작한 놈은 달리고…. 일사불란한 모습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차까지 너무 멀었다. 왜 마차가 저렇게 멀리 사버렸는지는 모르지만, 마차를 돌려 상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해야 했기에 헤론은 부하들을 닦달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이마에 땀이 솟아오르고 입에서 단내가 올라올 때쯤 마차를 등지고 호리호리한 몸의 엘프 하나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도적들이 든 횃불에 비친 엘프의 녹색 머리카락과 긴 귀가 어둠 속에서 뚜렷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저, 저년은 내 것이다! 상처 없이 잡아!”
헤론의 말에 몇 놈이 허리춤에서 볼라(Bola)를 꺼내 돌리기 시작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제대로 돌리는 놈은 한두 놈. 나머지는 자기 볼라에 눈알이나 머리통을 얻어맞고 주저앉는 모습이었다.
‘저런 병신같은 새끼들!’
헤론의 분노가 더욱더 증가할 때.
푸화악
밤 어둠을 찢으며, 달려오던 엘프의 주변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빛보다 비교적 어둠에 익숙한 도적들의 시야를 빼앗으며, 불꽃으로 된 여자 엘프의 모습으로 변했다.
“뭐!?”
헬론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들려오는 비명들.
“끄헉…”
“뜨학…”
주변을 둘러보니 비명 하나에 부하들의 목숨 하나가 사라지고 있었다. 두 개의 붉은 단검이 시야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며 부하들의 목숨을 추수하듯 거둬 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대여섯의 부하의 머리통이 잘린 생선 대가리처럼 바닥을 굴렀다.
“이런 니미…”
헤론도 한때 하부조직원이긴 했지만, 암살자 길드에 몸담았던 적이 있었다. 토벌당해 다들 뒈져버렸지만, 그때 보았던 금 등급 암살자들도 저런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는데, 실수였다. 정보를 조금 더 수집해야 했는데… 어쩌면 여관주인 새끼가 붉은 초승달을 잡은 게 아니라, 저 엘프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다 뒈지겠다. 모두 흩어져서 튀고, 살아남는 새끼는 은신처에서!”
헤론은 신속했다. 후회는 짧고 행동은 빠르게.
모험가 길드와 자경단의 몇 차례 걸친 빈민굴 소탕에서 그는 그냥 살아남은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자신을 지금까지 생존하게 해준 능력을 끌어올렸다. 암살자들의 밥벌이 기술 중 하나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기술 말이다. 그리고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헤론은 그란 폴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부하들의 비명과 불타오르는 엘프에게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그란 폴로 내달리는 헤론의 뒤를 쫓듯이 이어졌다.
“끄허억…”
“커흑…”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헉… 헉…”
눈앞이 노래지고 전신에서는 땀이 비처럼 바닥으로 뿌려졌다. 더군다나 어둠 속에 숨어든 상태니, 정신적인 피로도 상당했다. 다리도 후들거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같이 그란폴로 뛰던 부하들의 생명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기 때문이다.
“크아악…”
지금, 이 순간에도…
‘뭐지? 언제까지 따라오는 거지?’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띄엄띄엄 이어지고 있었다. 목덜미가 섬찟섬찟하게 느껴졌다.
‘씨발, 대체 언제까지 따라오는 거야!’
헤론은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도주를 결정했을 때 열 명이 조금 넘게 뒈졌던 상황이었는데 떠오른 달빛에 드러난 부하들은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제일 뒤에서 헉헉거리며 뛰던 놈의 목이 기괴한 방향으로 몸에서 미끄러지듯 발치로 굴러떨어지며,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히익!”
헤론은 다시 몸을 돌려 달렸다. 살기 위해서는 달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든 생각.
‘내가 왜 달리지? 난 어둠 속에 스며든 상태인데?’
그렇다. 어둠 속에 스며들어 보이지도 않는 상태인데 왜 부하들과 같이 달리고 있단 말인가. 자기 바보 같음을 한탄하며 헤론은 옆으로 슬쩍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풀숲에 엎드렸다.
“헉… 헉…”
헤론은 엎드려 생각했다. 자기 인생 중에 가장 바보 같은 선택 첫 번째가 태어난 마을의 촌장 딸을 건드리고 도망친 것과 두 번째가 모험가 길드 부 길드장 헤럴드에게 뇌물을 먹이려 했던 것, 그리고 지금 이 마차 습격이 될 것 같다고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풀숲에서 숨을 고르고 비명과 발소리가 다 사라질 때쯤. 이제는 괜찮겠지? 안심하며 조심스럽게 헤론이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귓가에 들리는, 아름다운 여자의 목소리.
“여깄네?”
그리고 헤론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동이 터올 때쯤. 어젯밤의 참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하얗게 타버린 초원과 사방에 널린 머리 없는 시체들.
그리고 그란 폴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길게 늘어진 핏자국과 시체들. 현장은 참혹하고 끔찍한 모습 그 자체였다.
일행은 어제 밤새 날뛰다 도적들을 따라 사라진 로리엘을 이 자리에서 기다렸다.
그 덕분에 일행은 어제 밤새 첫 번째 마차에서, 잘하지도 못하는 남부어로 쏟아내는 시리엘의 한탄을 들어야 했다.
“엘프 해야 한다. 자연 사랑, 로리엘 나쁘다. 풀 다 죽었다.”
“엘프는 안된다. 이러면.”
“로리엘, 재미 위해서. 불의 정령으로 안 태웠다. 사람. 단검 재미 위해서.”
아마도 불의 정령으로 다 태워 죽일 수 있는데 단검으로 상대하기 위해서 정령으로 직접 공격하지 않은 것을 비난하는 듯했다.
엘프의 풀과 나무 사랑하는 마음이 가슴에 새겨지고, 그리고 시리엘의 한탄이 지겨워질 때쯤, 새벽 첫 태양의 빛을 받으며 로리엘이 한 남자의 다리를 질질 끌고 오는 것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로리엘님!”
마리나와 수인들이 달려 나가 로리엘을 도왔다.
“이놈은?”
“두목 같아서 잡아 왔다.”
어디까지 달려갔다 왔는지 모르지만 로리엘은 땀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녹색의 머리카락 끝이 땀에 젖어 물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마리나가 로리엘의 안위를 확인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위아래로 움직이는 고개.
로리엘이 없을 때는 그렇게 말이 많던 시리엘 이였지만, 로리엘이 돌아오자 물의 정령을 불러내 땀을 씻어주는 모습.
로리엘은 그대로 마차 위로 올라가더니 자기 할인은 다 했다는 듯 모포를 휘감고 마차에 기대 눈을 감았다.
마리나는 깨달았다. 이 참혹한 현장의 뒷정리는 자신의 몫이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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