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129. 황금마차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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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과 늪지대의 경계선에 점점이 바둑알처럼 늘어선 모닥불이 수십 개에서 이제는 백여 개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늪지대 사냥을 꺼리던 파티들도 황금마차가 어떤 물품이라도 구해준다는 소문을 듣고 늪지로 몰려들어 벌어진 일이었다.
늪지대가 돈이 되는 건 맞는데. 그 불편함 때문에, 사냥을 꺼리던 파티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
호황. 말 그대로 호황이었다.
늪지대 사냥의 가장 큰 문제라면 수면, 음식, 안전.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황금마차가 다양한 음식을 계속 공급해주니 불편함이 해결되고, 사냥터에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서로서로 보호받기 좋은 상태가 되니 사람이 더욱 몰려들고 있는 것.
수면에 대한 문제도 내가 해먹을 팔아먹고 있기에, 늪지에 방수천 깔고 자는 것보다 비교적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늘도 한사람이 해먹을 사러 왔다.
“그, 혹시 해막? 해묵? 뭐더라 그게? 그, 나무에 거는, 떠 있는 침대?”
“아 해먹? 해먹을 왜?”
“아니, 그 다른 파티 보니까 그걸 쓰던데 그건 얼마요? 벨릭이 여기서 샀다던데?”
덥수룩한 수염을 한 손으로 꼬아대며, 대머리 용병이 이름도 잘 기억 못하는 해먹을 사러 왔다며 한 말이었다.
“아하, 벨릭 친구분이시구나? 개당 25 동화인데 친구분이니까 20 동화만 주셔.”
“그, 그래 내가 벨릭 친한 친구라고. 20 동화? 좋구먼! 자자 여기여기.”
단순한 용병들은 참 이게 좋다. 응, 원래 가격 20 동화야.
저렇게 해먹을 한 명한테 팔고 나면, 해먹을 사간 놈의 근처 야영지에 있는 놈들이 한두 명씩 해먹을 또 사러 온다.
손재주 좋은 평원 엘프들이 부업으로 만드는 해먹은 만드는 족족 팔려나가는 것.
“러셀, 물건 다 팔렸어요!”
해먹을 마지막으로 재고를 확인하던 발레리의 외침이 들려왔다. 행복한 외침이었다.
재빨리 두 손을 모아 확성기처럼 만들어 손님들을 향해 장사가 끝났음을 알렸다.
“자자 오늘 장사는 끝입니다. 다들 그럼 열흘 후에 뵙겠습니다.”
“벌써 끝이야? 아 밀튼 이 새끼야 그러니까 일찍 오자고 했잖아!”
“이렇게 빨리 물건 떨어질 줄 알았나…. 열흘이나 기다려야 하나?”
늦게 도착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손님들이 있는 반면 일찍 도착해 원하는 물품을 손에 넣고 만족스러운 대화를 이어가는 손님들도 있었다.
“아니, 이거 필요한 물건을 다 구해다 주니, 늪지 사냥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니까? 잠자리 빼고는 불편한 게 별로 없으니, 아예 그냥 오두막 하나 짓고 눌러앉고 싶다니까.”
“작년에는 진짜 개구리 뒷다리 씹으면서 한 달을 버텼는데. 하루 사냥 끝나고 마시는 맥주라니.”
용병 서넛이 맥주 통을 하나씩 어깨지 짊어지고 자기들의 야영지로 향하고 있었다. 입에는 엿을 우물거리면서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총 네 번의 황금마차를 운행했고 마차는 세 대로 늘어난 상태였다. 하나는 우리 여관 마차고 하나는 마을의 공용마차.
그리고 남은 하나는 오다 주웠다. 말 그대로 오다 주웠다.
이번 황금마차를 출발시켜 늪지로 가던 중 중간에 습격당해 말도 다 잡아먹히고 사람들도 다 죽은 상단 마차 하나를 발견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 누군가 이익을 보는 모습을 보이면, 따라 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게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처럼. 자신들의 능력 밖이면 이곳에서는 바로 목숨과 직결된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우리를 따라 황금마차 까지는 아니더라도 늪지까지 물건을 사러 내려가려 한 것 같았다.
그리고 결과는 비참했다.
끔찍한 광경에 나조차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런데 수인들은 이런 일이 흔한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차에서 내려 길 한편에 주저앉은 마차를 확인하고, 돈주머니와 무기 그리고 쓸만한 것들을 모았다.
“마차도 쓸만한데 말을 나누어 끌고 가는 게 어떻겠나요. 족장?”
이실리엘에게 구해졌던 아홉의 수인들의 대장인 소 수인 미우씨였다.
처음에 소 수인이라고 해서 전생에서처럼 젖소 수인, 가슴 크고 그런 이미지가 생각났지만 여기 소수인은 그냥 인간 여자에 귀만 소의 귀 그리고 뿔 꼬리 정도만 있다. 아기를 낳으면 우유가 많이 나온다고는 하는데 그건 확인 불가.
전생의 기억으로 따지면 발레리가 암소 수인에 더 가깝지 않을까?
원래 수인들은 종족에 따라서 습성이 매우 다르다. 그렇기에 종족이 다르면 잘 뭉치지를 못하는데, 험한 곳에서 구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동질감을 느끼는지, 종족이 다른 아홉의 수인임에도 미우씨를 대장으로 똘똘 뭉쳐 같은 오두막에서 다 같이 생활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구해준 이실리엘과 살 곳을 마련해준 나를 아주 은인으로 모시는데 가끔은 불편할 정도이다.
이렇게 족장으로 부르기도 하고 말이다.
“미우씨 그럼 부탁 좀 할까요? 마차가 더 필요하긴 했는데.”
“족장은 명령하면 돼요.”
잠시 후 미우씨는 수인들을 이끌고 주변을 정리하고 말을 나눠 매어 마차를 길로 끌고 나왔다.
시체도 한쪽 편에 쌓았는데 내가 기름 주머니 하나를 꺼내 시체 더미에 뿌리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앞에서 고개를 숙여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도해 주었다.
“뭐 하는 건가요. 러셀?”
이실리엘이 다가와 물었다.
“음….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던지, 다음에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길, 기도를 해주는 거야.”
우리 일행들은 내 말에 다들 고개를 숙였다. 전생이면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의 광경이었지만 익숙해져 있는 나 자신이 신기했다.
황금마차는 그 후에도 쭉 순항을 이어갔다. 그사이 마차도 두 대나 더 주울 수 있었고 마차만 보면 누가 보면 우리를 상단이라고 할 정도의 규모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빌린 마차를 반납하고도 네 대의 마차가 이동하는 긴 행렬.
그러나 장사가 잘되면 역시나 파리가 꼬이는 법.
여섯 번의 상행이 끝나고 부산물을 팔고 웜포트로 돌아오던 우리의 황금마차는 파리들의 습격을 받고 말았다.
그란 폴의 뒷골목은 요즘 뜨거운 소문 하나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웜 포트의 작은 여관주인이 이번 사냥철의 돈을 다 쓸어 담고 있다는 그런 소문.
여러 대의 마차를 끌고 늪지까지 직접 가 부산물을 용병들에게 매입하고, 마을에서 물건들을 사다가 용병들에게 되팔아 엄청난 돈을 번다는 소문이었다.
도시의 모든 쓰레기가 모이는 뒷골목인 만큼 이런 솔깃한 소문에는 군침을 흘리는 놈들이 생기기 마련.
빈민굴로 들어가는 입구. 냄새나는 뒷골목 한편 반쯤 부서져 기울어진 문이 달린 허름한 술집 안에서 술 취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웜 포트의 작은 여관 주인 새끼가, 사냥철 물품의 대부분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거야?”
“그렇다니까요! 상인들의 불만이 많더라고요, 이번 사냥철은 끝이라는 말도 있고.”
애꾸눈에 몸 여기저기 문신한 채 부하의 보고를 듣고 있는 남자의 이름은 헤론. 그란폴 뒷골목의 일인자. 도시에 흩어져있는 작은 조직들의 정점이었다.
“조금 믿기 힘든데? 여관주인 새끼가 무슨 돈이 있어서.”
“모험가 길드에 전투식량인가 뭔지를 판다던데요. 독점으로?”
길드에 물품을 납품하기도 어려운데 독점이라고? 조금은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모험가 부 길드 장은 자신도 아는 헤럴드 그 영감탱이. 뒷골목 정리한다고 몇 번이나 지랄을 떨어서 부하들이 몇 번이나 쓸려나갔었는데 그 깐깐한 새끼한테 독점권리라고?
“그 여관주인 새끼 마누라가 가슴이 엄청 크다던데, 모험가 길드 부 길드 장에게 대주고 납품 권리를 얻었다는 소리도 있고…”
하여튼 도움이 안 되는 새끼들이었다.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문이나 쳐 듣고 와서 정보라고 나불대다니.
“말 같지 않은 소리! 헤럴드 그 영감탱이는 뼛속까지 기사인데 뭐 대줘?”
두목의 표정이 썩어들자, 정보를 나불대던 놈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 그냥 들려오는 소문이 그렇더라고요…”
“뭐 돈 될만한 정보라길래 뭔가 했더니. 좀 더 확실한 정보를 물어오라고!”
쾅
헤론이 테이블을 내리치는 소리에 다른 테이블이나 카운터에 앉아있던 남자들이 깜짝 놀라 헤론의 테이블을 살폈지만, 곧 어디서 들려온 소리인 줄 깨닫고는, 각자 자기 앞에 놓은 술을 퍼마시거나 술집 여급의 가슴을 주무르며 음담패설을 이어갔다.
두목이 저러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헤럴드가 모험가 길드의 부 길드장이 된 후로 그란 폴의 범죄자들은 기를 펴지 못하는 중이었다. 사소한 소매치기꾼이 잡혀도 경비대가 빈민굴을 들쑤시기 일쑤고, 소매치기부터 상납받는 놈까지 잡히지 않으면, 모험가 길드에서 모험가가 현상금을 노리고 찾아들기 일쑤였다.
헤론의 오른팔도 몇 달 전 잡혀가 노역장에서 개같이 구르고 있었다.
발트 가문의 부 기사단장 출신의 개 같은 영감 헤럴드. 모험가 길드만 잘 관리하면 될 것인데 그 막대한 배경으로 도시 자경대나 기사단까지 움직여, 자신들을 도시 안에서 박멸하려 하고 있었다.
헤럴드가 부 길드장이 되기 전에는 매음굴 가장 으리으리한 곳에 자리를 잡고, 술과 여자를 끼고 풍족한 세월을 보냈는데 이젠 그것은 추억일 뿐이다.
상납을 받는 곳은 계속 줄어들고 얘들은 잡혀가기 일쑤. 악화일로로 치닫던 재정은 파탄 직전에 이르고 있었다.
쨍그렁
“개새끼들아! 가서 돈이라도 뜯어와! 매일 술만 처마시지 말고!”
헤론이 술병을 집어던지며 욕설을 내뱉었다.
술집 안에 있던 놈들은 주섬주섬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에이 씨발 저 지랄병 또 도졌네’ 하는 소리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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