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30화 (130/352)

〈 130화 〉 128. 황금마차 4

* * *

이실리엘이 앞에서 대답하는 틈에 남은 넷이 서로 엿 주머니를 미루며 숨기는 것이 보였다.

“이실리엘, 우리 마차에 쥐가 있나 봐!”

“쥐, 쥐요?”

내 쥐라는 말에 로리엘이 화들짝 놀라며 마차에서 물러났다. 로리엘은 확실히 쥐를 무서워하는 느낌이었다. 저번에도 에밀이 잡아 온 쥐 고기 손도 못 대고 도망치고 말이야. 쟤도 무서워하는 게 다 있네.

“응, 아주 큰 쥐가 다섯 마리나 있는 것 같아. 엿 주머니를 하나 물어갔지 뭐야!”

내가 아주 큰 일이 났다는 듯 익살스럽게 말하자 그 말에 셋은 얼굴을 붉히고, 못 알아들은 두 엘프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 모습에 폭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푸하하, 아니, 그냥 말하고 먹지 왜 숨어서 먹어.”

“그게… 조금 맛만 보려고 했는데… 너무 맛있어서 그만.”

하긴 전생에도 아가씨들이 단 음식을 좋아하긴 했지. 엿이 완성되고 먹으라고 따로 챙겨준 것도 있는데 그건 벌써 다 먹었나?

“처음에 챙겨준 건 다 먹었어?”

셋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로리엘의 엘프어를 들은 엘프들도 잠시 후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너무 많이 먹으면 이빨이 썩으니까 조심해야 해 알았지?”

“네, 러셀.”

여긴 치과가 없어서 썩으면 뽑아야 한다고요. 이빨 빠진 이실리엘을 상상해보았다. 음... 빙구 엘프인가?

다섯을 뒤로하고 마차 앞으로 나오자, 저 멀리 용병들의 야영지 쪽에서 백화점 세일기간에 몰려드는 사람들처럼 손님들이 밀려나오고 있었다. 맥주를 받아 간 사람들이 복귀하니 술 생각이 간절했던 다른 용병들이 몰려나오는 것 같았다.

“다들 적당히 먹고 준비들 해. 손님들 또 오신다!”

분주한 황금 마차였다.

2차까지도 역시나 황금마차는 대 호황이었다. 맥주는 워낙 용병들의 기호 식품이니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고, 엿도 한번 맛본 놈들은 사지 않는 놈이 없었다. 점심때 도착했는데 저녁때가 되니 물건이 벌써 다 동이나 버렸다. 혹시나 해서 가지고 온 밧줄이나 랜턴 기름까지 모두 다 팔아 치울 수 있었다.

마차 두 대에 가득 찬 물건들.

“다음번에는 맥주를 좀 더 가지고 오라고.”

늦게 도착해 맥주를 사지 못한 용병들이 울상을 지으며 부산물을 넘기며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용병들의 야영지는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늪지와 평원의 경계 대부분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예, 예. 알겠습니다.”

다음번에는 좀 더 많은 맥주를 용병들에게 약속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전투식량을 꺼냈다. 생각해보니까 발레리 말고는 전투식량을 먹어본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뭘 파는지도 인지시켜주고, 맛도 보여주기 위해서 전투식량을 꺼낸 것이다. 냄비에 넣고 죽처럼 끓여 먹는 것을 1형, 뜨거운 물 부어 먹는 일 인분짜리를 2형, 사각형의 보관을 개선한 것을 3형이라고 정하기로 했는데.

지금 꺼낸 것은 1형.

“이게 러셀이 파는 식량이군요.”

이실리엘과 로리엘이 딱 붙어 앉아서 자기들 앞에 있는 솥에 물이 끓어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집 노는 친구 일 번 로리엘은 맛난 음식을 좋아한다. 식사 시간이 되니 제일 먼저 모닥불 앞에 자리를 잡고 이실리엘까지 챙기는 모습.

“응,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다양한 재료를 많이 넣어서, 영양가도 충분하지.”

나의 설명에 이실리엘과 로리엘은 사료 그릇 받기 전의 강아지의 눈망울이 되었다.

잠시 후 솥에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전투식량을 다섯 개를 까서 넣었다. 아무래도 이 친구들 많이 먹을 것 같아서 말이다. 다섯 개면 이십에서 이십오 인분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남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잠시 후 맛있고 고소한 죽 냄새가 피어오르자 로리엘과 수호자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분명 넣을 때는 가루 같은 것들이 솥으로 쏟아졌는데 죽으로 변하니 신기했나?

“무슨 말이야 이실리엘?”

엘프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 이실리엘에게 물었더니.

“러셀의 음식은 항상 기대된다는 말이에요.”

나를 흐뭇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오늘은 그냥 전투식량보다는 소비자들이 개발한 레시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안에 버터를 크게 한 덩이 잘라서 넣었다.

원래 이런 건 야전에서 뛰는 놈들이 해 먹는 맛이 기가 막힌 법이다. 나도 군 생활 전에는 고추장소스와 참기름이 결코 그렇게 맛있는 것인지 몰랐으니까 말이다.

버터가 죽에 녹아들자 죽의 향에 고소한 버터의 풍미가 가미되어, 좀 더 농축된 풍미의 향기가 솥에서 솔솔 솟아올랐다. 다들 기대감에 눈을 반짝일 때 다들 한 국자씩 크게 떠 배식을 시작했다.

이실리엘을 선두로 나란히 줄을 서서 죽을 배급받는 엘프라니. 세상에 이렇게도 귀여운 생물들이 있단 말인가?

나는 엘프들에게 듬뿍듬뿍 죽을 떠주었다.

“다들 많이들 먹어. 뜨거우니까 조심들 하고.”

“고마워요. 러셀.”

죽을 호호 불어먹으며 소매로 연신 땀을 훔치는 엘프들. 사진기라도 있으면 담아두고 싶은 광경이었다.

“러셀, 우리가 만든 쥐 가죽이 이런 맛있는 음식에 쓰인다니 신기해.”

에밀이 죽그릇에서 얼굴을 꺼내며 말했다. 에밀의 입가에는 밥풀이 하나 붙어있었다.

‘에밀, 비상식량은 용납하지 않으니. 이 자리에서 드세요.’

다들 맛있게 식사하고 있는 모습을 살피는 며 부족한 죽을 더 챙겨주고 있을 때.

어두워지고 있어서 미처 눈치채는 것이 늦었지만, 아뿔싸! 나의 막내 아내에게 큰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슴이 어느 정도 큰 여자들은 가슴 밑 부분이 살과 살이 맞닿는 부분이라 그런지 몰라도, 땀이 쉽게 차는 것 같았다. 내가 유심히 관찰한 건 아닌데 그런 것 같더라고.

이실리엘은 엘프의 특성인지 세계수의 옷 때문인지 땀 차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발레리는 그 큰 가슴으로 인하여 가끔 가슴 밑이 젖는 듯한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오늘은 뜨거운 죽을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밑가슴부터 허리까지 흠뻑 젖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어찌해야 하나 심각히 고민했다. 분명 장어 사건 때 좀 더 배려심 있게 행동하라고 했었지?

‘발레리, 가슴 밑이 젖었어?’

아니, 이건 분명히 배려심 없다고 혼날 것이다.

‘발레리를 잠깐 불러서 알려줘?’

나쁘지 않은데?

“발레리? 잠깐만. 안 바쁘면 이리 좀 와줄래?”

“네?”

죽을 열심히 먹다 말고 내 부름에 발레리는 죽그릇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힉!”

그리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앉아서 먹을 때는 옷이 구겨져서 몰랐지만 일어서니 흠뻑 젖은 옷이 쫙 달라붙어 가슴 절반의 윤곽과 허리선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우야…”

나는 그 광경에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남자의 전용 감탄사를 흘려내고 말았다. 그리고 발레리한테 마구마구 혼이 났다.

“러셀 저는 볼거리가 아니에요! 부인이잖아요! ‘어우야’ 라니 저는 술집 무희가 아니라구요!”

“아니, 깜짝 놀라서 그냥 갑자기….”

“그, 밤에 단둘이서는 보, 보여줄 수 있지만 밖에서는 좀 참아주세요!”

“무희 옷도?”

“러셀!”

그래도 마구 혼이 나고 마지막에 발레리가 붉어진 얼굴로. ‘그래도 제가 부끄러운 모습 보일까 부른 거라니까. 그, 무희 옷… 돌아오는 밤에 뭐… 한 번쯤이면…’

이라는 말로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이런 혼쭐이라면 더욱 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더욱더 큰 혼쭐이 고픈 나이였다. 32세의…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바로 복귀 길에 올랐다. 굳이 노숙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 걸어서 하루 정도 걸리는 거리이지만 마차도 있고 빠르게 이동하면 아침에는 마을에 도착해서 집에서 자는 것이 더 나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노숙이 편해도 이슬 맞으며 자는 것보다 집이 좋으니까.

마차 두 대가 용병과 우리들의 이동으로 풀이 누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을 따라 이동을 시작했다. 밤이지만 등불은 켜지 않는다. 우리 일행 중에 밤에 보지 못하는 건 나랑 발레리 뿐. 엘프들은 야간에 뛰어난 시야를 자랑하고 수인들은 말해 무엇하리.

그렇기에 나와 발레리만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다. 이실리엘은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 마차 지붕 위에서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우기가 지난 후 초지의 풀들은 무릎 어림까지 자라나 있었는데, 그렇기에 비교적 위험을 알아차리기 쉬웠다. 풀숲에 엎드려도 어지간하면 다 보이니까.

­삐요요요욧.

이실리엘의 소리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이다.

이동 중에 벌써 서너 번은 들려온 소리. 마차가 가득 차서 딱히 사냥이 필요 없는 상태니, 한쪽에 매복해 지나가던 모험가를 노리는 맹수들을 쫓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잡지 않는 다른 이유도 있다.

“이실리엘 이번에는 뭐야?”

“늑대 일곱 마리요. 길 한쪽에 엎드려 있었어요.”

아마 길 한쪽에 매복해 지나가는 용병을 습격하려던 늑대인 것 같았다.

이쪽의 야수들은 사람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서슴없이 공격하는 놈들이 많은데, 늑대들도 수가 적으면 쫄보같이 행동하는데 숫자만 많아지면 언제라도 사람을 습격한다.

현재 나와 이 늑대를 비롯한 맹수들은 일종의 동업자. 이 길을 정리해두면 방해꾼들이 끼어들 것이 뻔하니 일부러 잡지 않는 것이다.

우리 흉내 내려는 놈들은 얘들한테 쓴맛을 단단히 보아야 할 것이고, 얘들이 무서워서 못 내려오면 우리는 사냥철이 끝날 때까지 무조건 독점이다.

그렇게 습격을 미리미리 피해 우리는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아침의 첫해가 떠오를 때 저 멀리 웜 포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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