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127. 황금마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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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마차는 아주 순조로웠다.
다음 날 새벽같이 몇 군데의 야영지를 들리고 저녁때 한 번 더 다른 야영지들을 방문하자 가죽과 뿔 등의 부산물로 마차가 가득 차버릴 정도로 말이다.
마차가 넘쳐 일부 부산물은 가방에 넣거나 등짐으로 만들어 조금씩 나눠 짊어져야 했다.
손님들에게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늪지 길목에 우뚝 서 있는 황금 마차의 깃발을 가리키며.
“열흘에 한 번씩 들릴 테니까, 필요한 것들 있으시면 말씀들 해주시고, 저기. 저 깃발들 보이시지? 저기 사람들 모여있으면 부산물들 가지고 찾아오셔, 저희가 또 약한 상인이니 여기까지 오기가 좀 무서워서.”
내가 가리킨 곳에는 펄럭이는 '황금마차'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푸르게 물결치는 초원 한가운데 나부끼는 깃발이 마치 여긴 전부 내 땅이라고 주장하는 느낌?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영화 파엔 어웨이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뭐 용병들의 주문품은 대부분 맥주였다.
하긴 맥주 생각 간절하긴 할 테지. 몇 주간 늪지에서 몸도 피곤하고 말이야. 하지만 맥주는 우리도 무거워서 많이 가지고 오지 못한다는 사실.
맥주는 십 리터 정도 되는 작은 오크통 한 개에 보통은 오 동화 정도 하지만, 운반과 프리미엄까지 붙여서 십 동화를 불렀음에도, 용병들은 누구나 주저 없이 맥주를 선 주문 했다.
“열흘 후에 진짜 오는 거 맞지?”
“아니, 웜 포트에 엘프의 눈물 여관 몰라요? 저희 거기서 나온 거라니까.”
“아니, 돈부터 받아 이거 닷새 후에 안 오면 가만 안 있을 거야! 맥주 두 통.”
성질 급한 놈들은 돈을 먼저 주기도 했다.
그 모습에 발레리는 장부책을 적으며 아주 행복한 모습이었다. 역시 상인은 상인.
이실리엘이야 돈이 없어도 행복한 분이지만 뭔가 잘되는 것 같으니 싱글벙글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아 보이는 엘프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주려고 물었다.
“이실리엘 우리 돈 많이 벌면 양이나 살까?”
“천 마리요?!”
엘프들의 숫자 개념 중에 가장 높은 수라고 했으니 많이 사달라는 뜻이겠지?
“그래 천 마리.”
즐거운 대화를 이어가며 마을로 향했다.
해가 질 때쯤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마을 근처에는 상인들의 마차와 임시 야영지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평소보다 마을이 두세 배는 더 커 보이는 모습이었다.
부산물을 잔뜩 실은 마차가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상인들과 용병들이 몰려들어 마차 주변이 인파의 물결로 가득했다.
“오 저건 늪지 카이만 악어의 가죽인가? 올해는 악어들도 잡히나 보군.”
“데로테로의 뿔! 저 크기면 수컷인가.”
“이거 되팔진 않을 텐가? 내가 가격 잘 쳐줌세.”
물건을 보고 탐을 내면서 아주 북새통이 벌어졌다. 아직은 본격적으로 모험가들이 복귀하기에는 조금 이른 기간이니 대량의 물건을 보자 눈이 뒤집힐 수밖에.
“자자 물러나세요. 지나갑시다. 안 팝니다. 안 팔아요.”
간신히 사람들을 헤치고 마을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 후에는 아주 바빠졌다. 남부의 가죽이나 부산물을 잘 다루는 평원 엘프들이 우선 가죽과 부산물의 손질을 맡아 일차적으로 가공했다. 가죽에 붙은 기름기와 고기들을 깔끔하게 떼어내고 소금을 치거나 펴 말리는 것. 그리고 다른 뿔이나 뼈 같은 것들은,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제거해 종류별로 분류해서 정리했다.
이걸 마차에 실어 그란폴로 가져갔다. 판매처는 당연히 길드였다.
발레리 말로는 그란폴의 가죽 가게나 부산물이 필요한 곳들이 전부 길드에 의뢰하니, 길드에 판매하면 대량의 물건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 약간의 수수료가 붙긴 하지만 우리라면 거의 받지 않을 수준이라고 했다.
그건 전투식량을 꾸준히 납품하고 있어서라나?
그렇게 준비된 가죽과 부산물들은 발레리가 로리엘과 수호자들 수인들을 데리고 그란폴로 가져가 팔았다. 마을의 공요 마차를 빌려 두 대의 마치에 한가득 싣고 다녀온 것이다.
그리고 되돌아온 마차에는 수많은 맥주 통과 치즈, 버터, 육포들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황금마차의 두 번째 출동.
혹시 몰라 촌장님에게 마을 공용마차까지 빌려서 두 대나 마차를 끌고 교환 거점까지 이동했다. 한참을 이동해 저 멀리 우리 깃발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법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뭐지? 누가 우리 거점을 먹었나?”
궁금함을 가지고 교환 거점으로 이동하자 용병들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외쳤다.
“아니, 열흘째 아침인지 저녁인지 말을 안 해줘서 새벽부터 기다렸네!”
이 새끼들 맥주가 마시고 싶어서 새벽부터 나와서 기다렸다고? 맥주는 용병들에게 이세계 초코 과자쯤 되는 듯싶었다.
마차를 세우고 거점에 자리를 잡고 맥주 통을 하나씩 내리자 용병들이 환호하며 몰려들었다.
“씨발! 내가 이걸 열흘이나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니, 사냥터에서 맥주 마실 수 있는 거 이거 진짜냐?”
“야! 난 선주문 했다고 다들 비켜봐.”
그리고 몰려드는 용병 중에 벨릭과 에브리나, 브릴다가 끼어있었다. 아니 얘들도 맥주 사러 왔나?
“야 너희들은 뭐야?”
“강한 인간 남자 러셀 우리도 맥주를 줘라!”
브릴다가 예의 이상한 말투로 맥주를 요구했다. 아니,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위험하니까 안 되는데. 재들은 나랑 모르는 애들이니 뒤져도 되니까 파는 거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
벨릭 요시키. 분명 안 된다고 했는데. 벨릭은 내 눈길을 살살 피하고 있었다.
내가 벨릭에게 한마디 하려고 했을 때.
“아, 러셀 오랜만이에요.”
옆에 있던 에브리나도가 인사를 해왔다. 벨릭 너는 잠깐 있다가 보자.
“어, 그래 너희도 오랜만. 뭐 필요한 거 있어?”
에브리나에게 인사를 하고 뭔가 필요한 게 없나 물었는데.
“뭔가 달콤한 게 먹고 싶긴 한데 있을까요?”
하, 이분. 잘 찾아오셨어, 없긴 왜 없어. 있지 당연히.
군 생활 하루 이틀 해보겠어? 당연히 훈련 나가면 단 게 당기는 건 당연지사 발레리가 사람들을 끌고 그란폴을 오가며 물건을 팔고 모을 때 나는 그럼 여관에서 놀았느냐?
에이, 남편이 그럴 수 있나 팔 물건 만들어야지.
그래서 달달한 음식을 팔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곳에 설탕은 있는데 아주 고가이다. 이걸 녹여서 사탕을 만들 수도 있지만 너무 고가인데 팔리겠어? 당연히 차선책.
엿!
엿이라는 게 생각보다 노력이 많이 들긴 하는 데 만들기 어려운 음식은 아니다. 재료도 쉽게 구할 수 있고 말이다.
엿을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재료는 역시나 쌀, 그리고 싹튼 보리. 모두 다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싹튼 보리야 맥주를 만들 때도 쓰니 마을에 매우 흔한 재료이고, 쌀이야 곡물 중에 비싸긴 하지만 못사 먹을 정도로 비싼 건 아니니까 말이다.
우선 싹튼 보리를 잘 말려 엿기름으로 만든다. 그리고 쌀과 엿기름을 일 대 일 비율로 준비하고, 쌀로 살짝 덜 익은 고두밥을 지어 준비한다.
엿기름은 물을 넣고 박박 주물러서 물을 우려내 가라앉히고, 위의 맑은 물을 고두밥과 섞는다. 여기서 무를 채를 쳐서 추가해준 후. 한나절 정도 은근한 불 근처에서 따듯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밥알이 마구 떠오를 때 한번 푹 끓인 후, 모두 면포에 넣어서 국물만 걸러내 계속 눌어붙지 않게 저어주며 다리면 조청이 완성되고, 그보다 더 한참을 다리면 엿이 되는 것이다.
엿은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볶은 콩가루를 발라 늘어 붙지 않게 해두었다.
“요리 딱. 요리 딱. 오셔봐. 잘 찾아오셨어, 아주 그냥.”
나는 가죽 주머니에서 엿을 한 알씩 꺼내 에브리나와 브릴다 벨릭의 손에 하나씩 올려주었었다.
“입 안에 넣어봐.”
내 말에 셋이 조심스럽게 엿을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고 입안에 엿을 넣고 혀를 굴려 맞을 음미 하더니 눈이 크게 뜨고 말했다.
“오옷! 달아요. 형님! 이건 꿀입니까?”
“아, 어멋! 너무 달콤해요. 이, 이건 얼만가요? 이건 꼭 사야 해!”
아 참. 깨물어 먹지 말라고 해야겠다. 이빨 빠질라.
“아 먹을 때 깨물어 먹지 말고 살살 혀로 녹여 먹….”
내 말이 끝나갈 때쯤 브릴다가 자기 얼굴을 쥐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우아앗! 이비뷰텨벼린겻 걑댜!”
셋의 반응에 홍보는 이미 끝. 맥주를 사려고 몰려들었던 용병들이 몰려들어 맛 배기 엿 하나씩을 맛보더니 다들 앞다투어 엿을 주문했다.
“열 개에 동화 두 개라고? 나는 그럼 스무 개!”
“나도 스무 개!”
“나는 이거 눈이 침침했는데, 이걸 먹으니까 눈이 번쩍 떠지는 것 같아! 열 개만 줘봐!”
뭔가 이상한 후기까지 있는 것 같은데.
아무튼 엿과 맥주는 아주 불티나가 팔려나갔다.
첫 번째 손님의 파도가 사라지고 어느 정도 한가해진 시간. 한 주머니 다 팔린 엿을 다시 보충하기 위해, 엿이 든 주머니들이 든 상자를 열었다.
엇? 분명 다섯 주머니였는데, 한 주머니 어디 갔지? 혹시, 내가 정신 팔린 틈에 발레리가 팔았나?
나는 마차 뒤로 돌아가 발레리를 찾았다.
그런데 마차 뒤에서는 이실리엘과 로리엘, 수호자 둘을 포함한 엘프 넷과 발레리가 옹기종기 모여앉아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얼굴에 다들 미소를 지으며 신이나 있기에 뭐가 그렇게 재미나는가 해서, 바로 뒤로 다가가 이실리엘을 불렀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기에, 내가 뒤로 다가갈 때까지 아무도 모르지?’
“어? 이실리엘?”
“눼! 뤠셸?”
이실리엘이 화들짝 놀라 입을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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