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126. 황금마차 2
* * *
“황금마차요?”
“네, 안톤님, 혹시 지금 필요한 물품이 있으십니까?”
내 말에 안톤이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양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대체 저한테 왜 그러세요?’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안톤 님이라뇨! 편하게 제발. 아무렴요. 편하게, 제발 편하게.”
“아니, 그래도 초면인데 어떻게….”
“제가 불편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요! 형님! 제발 저를 아우로 삼아주십시오!”
아니, 얜 대체…. 뭐지? 뭔 초면에 호형호제를? 내가 인마 너를 어떤 놈인 줄 알고?
“아니, 그래도 초면인데.”
“제발!”
팔을 붙잡고 어찌나 사정하는지, 그래, 뭐 형님으로 모시겠다는데. 어쩔 수 없이 허락해주고 말았다. 그란 폴 은 등급 애들은 정상인 애들이 좀 드문 것 같다는 생각이 아주 많이 들었다.
호크인지 게 밥이 되었던 그놈도 그렇고…
“그, 그래. 뭐, 그래서 떨어진 물건이나 필요한 건 없고?”
내 말에 안톤이 아주 공손하게 대답을 해왔다. 좀 부담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저희는 마력석도 다 떨어져서 기름 등을 쓰고 있었는데, 그것마저 떨어졌네요. 식량도 이제 바닥이라서 늪에서 잡은 큰 개구리 구워 먹고 있는데 곤욕입니다. 질겨서.”
모닥불가에 앉은 놈들을 슬쩍 바라보자 그중 한 놈이 얼굴에 검댕을 칠한 모습으로, 모닥불에서 구운 고기를 입에 넣고 오만 인상을 쓰면서 껌처럼 씹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긴 모닥불에 그냥 구우면 큰 개구리 고기 엄청 질기긴 하지.
저건 얇게 잘라서 구워야 하는데 저렇게 통으로 구워서 결대로 찢으면, 결 하나하나가 다른 고기 힘줄같이 질기다.
“내가 식량하고 기름을 가져왔는데 첫 거래니까 그란 폴이랑 같은 가격에 줄게 어때?”
“지, 진짭니까? 그렇지 않아도 저희가 식량 때문에 야영지를 포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런데, 지금 저희가 현금이 별로 없는데…”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사냥한 가죽이나 부산물로도 받으니까.”
“예?!”
수인들이 매고 온 가방을 풀어 안에서 여러 가지 식량을 꺼내 안톤에게 보여주었다.
“우와앗!”
안톤의 일행과 야영지에 흩어져있던 용병들이 환호하며 음식을 둘러싸고 모여들었다.
그리고 시작된 쇼핑. 소시지, 육포와 딱딱한 빵 그리고 전투식량을 아는지 안톤은 전투식량까지 수십 개를 골라 쌓았다.
“오우! 전투식량까지! 몇 주는 이제 식량 걱정 없겠네요!”
“이걸 먹어봤어?”
내가 조금 의외라는 투로 물으니 호크가 도리어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어휴. 형님도, 지금 그란 폴에서 전투식량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나오면 나오는 날 다 사라진다니까요. 저희도 여기 올 때 스무 개 정도 가져왔는데, 금방 떨어져서….”
발레리가 길드에 납품하고 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그렇게나 잘 팔린다고? 발레리를 바라보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거래와 관련된 것은 똑 부러지게 잘하는 발레리였다. 발레리가 팔짱을 끼고 ‘나 잘했지?’ 하는 모습을 취하는데 팔 사이로 가슴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발레의 터질 것 같은 가슴을 가려주었다. 다들 음식이 빠져서 다행히 발레리는 보고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팔 건, 다 꺼내 와봐. 가격 괜찮게 쳐줄 테니까. 어차피 야영지에 놔두면 도둑맞을 거 아냐.”
내 말에 안톤의 야영지 사람들은 저마다 기쁜 표정으로 가죽과 부산물을 가지고 와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식량도 구했고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하락할지도 모르는 부산물을 그 자리에서 팔 수도 있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는 것.
용병 일하면 가장 기분 좋을 때가 현금 만질 때니까 말이다.
우리는 안톤에게 가죽 열다섯 장과 여러 몬스터의 뿔이나 부산물 등을 식량과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안톤은 아주 활짝 핀 표정으로 연신 감사의 인사를 해왔다.
“어휴 형님 감사합니다. 마을에 안 가고 이삼 주는 더 사냥하다 갈 수 있겠네요. 부산물 가격도 잘 쳐주셔서 감사해요.”
“어 그래, 여관에 한 번 들러 알았지? 맛있는 음식 해줄 테니까.”
“옛? 저, 정말로요?”
“아니, 뭔 여관에 오라는데 그렇게 놀래?”
“아, 아닙니다. 꼭 가겠습니다.”
뭔가 신나있는 안톤을 뒤로하고 안톤의 야영지를 떠났다. 뒤에서 “봤냐? 꼬치님의 여관에 초대받은 거? 어 이 새끼들이 이게 안톤 님이야 하하하”라는 안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꼬치라는 거 날 지칭하는 게 분명한데 또 무슨 소릴까?
발레리는 아는 것 같은데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현자 같은 별명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전생의 판타지 소설 같은데 보면 무슨 별이 현자, 검의 주인 좋은 별명도 많은데 꼬치? 현자는 닭살이 돋는 정도인데 저건 무슨 꼬추도 아니고 젠장…
내 별명이 맞으면 만든 놈은 가만 안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안톤과 헤어지고 얼마 안 돼 다른 곳에 들르지 못하고 마차로 돌아와야 했다. 해도 지고 있었고 안톤과 거래한 물품들이 생각보다 무게가 많이 나가서 다른 캠프들을 둘러볼 수가 없었다.
행렬의 맨 뒤를 따르며 물건을 지고 이동하는 수인들과 엘프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행렬은 마치 히말라야 포터의 행렬을 보는 것 같았다. 줄지어 짐을 등에 메고 초장을 이동하는 현지인 포터. 그렇게 줄지어 이동하는 우리의 꼬리를 물고 해가 지평서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야영지로 돌아오니 엘프들이 모닥불을 피워두고 사슴을 한 마리 잡아 손질하고 있었다.
“오! 웬 사슴이야?”
“근처 갈대밭에서 갑자기 튀어나왔습니다.”
무엇인가에 쫓겨 갈대밭에서 뛰어나온 것이, 마차 쪽으로 달려와 수호자들이 활을 쏴서 잡은 것이라고 했다.
“러셀 무엇을 해줄 것이냐?”
식탐 많은 엘프 로리엘이 입맛을 다시며 다가와 물었다. 평소의 무심한 눈이 아닌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말이다.
그러나 나는 로리엘을 실망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준비해온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어, 그냥 삶아 먹어야겠는데?”
“뭐?!”
로리엘은 전투 중 예상 못 한 상황이 터져도 저렇게 놀라진 않았는데, 지금까지 중에 가장 놀란 표정과 목소리였다.
“하하. 일찍 나오느라고 아무것도 준비하질 못해서…”
로리엘이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수호자들에게 엘프어로 몇 마디 하자. 사슴을 손질하고 있던 두 수호자도 사슴을 손질하던 단검을 털썩 떨어트리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뭔 큰 잘못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음식에 너무 길든 것인가?
하긴 맛난 음식 먹겠다고 온 애들인데…
잘못하면 애들 울 것 같아서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좋아. 할 수 없지! 로리엘! 강가로 가서 빈 가방에 돌을 두세 가방 정도 가지고 와. 에밀이 따라가서 근처에서 허브를 따오고, 어두워져 위험하니까 수호자 둘을 데려가! 아, 그리고 평원 엘프 두셋 정도를 더 데리고 가서 갈대를 잔뜩 잘라 와줘.”
“알았다!”
로리엘은 사람들을 데리고 언제 기운 빠진 모습을 보였냐는 듯 재빠르게 강가로 달려갔다.
딱히 지금 가진 재료나 도구가 없으니.
전생에서 원주민들이 조리도구 없이 고기를 조리하는 방식으로 음식을 하려고 한다. 약간 허르헉과 비슷하게 달군 돌로 조리하는 방법인데.
별건 없다.
불이 피어오르는 모닥불에 돌을 달군다. 돌이 달궈지면 돌을 반 정도 꺼내고 모닥불 가운데를 파내 갈대를 깔고 그 위에 고기를 올린다. 그리고 다시 갈대를 덮고 돌을 위에 올리고 풀로 덮어서 기다리면, 고기가 돌에서 나오는 열기에 구워지는 것이 아니라. 풀에서 나온 수분에 삶아지는 것.
바라크 바투, 원주민식 찜 요리이다.
뭐 다른 것이라면 우리는 여기다 신선한 허브를 사이에 넣어 향을 넣을 것이라는 게 다를까?
로리엘이 복귀하고 준비된 재료로 요리를 시작했다.
강가 근처에 풀숲에 있던 야생 마늘 잎사귀를 에밀이 많이 따와서 허브는 그것으로 대신했다. 달군 돌이 갈대에 열을 전달하고 갈대는 수분과 증기를 내뿜으며 고기를 익히는 것. 고기가 쪄지는 고소한 향이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독특한 향이 나요.”
풀 향기와 고기가 익는 냄새가 솟아오르자 이실리엘이 그 향기를 들이키며 말했다.
“달군 돌에서 나오는 열기가 갈대랑 허브에 전달되고, 거기서 수분이 나와서 고기가 구워지는 것이 아니라, 쪄지는 거야. 저번에 북부에서 먹었던 사슴 배속에 달굴 돌을 넣는 음식과 비슷하지만 이건 풀 향기가 듬뿍 배서 향은 더 좋을 거야.”
내 설명에 다들 눈을 빛내며 기대했다.
그리고 두 번째 달이 떠오른 조금 이른 밤. 우리의 고기 요리가 완성되었다. 다들 조금은 허기진 모습이었지만 어쩔 수 있나 여러분들이 원한 음식인 것을…
풀 향기와 야생 마늘의 향이 풍부하게 밴 사슴고기.
“러셀 너무 맛있어요!”
“북부에서 먹었다는 것도 저도 한번 먹어보고 싶어요.”
고기를 뜯으며 이실리엘과 찬사와 발레리의 아쉬움 섞인 말이 들려왔다.
“러셀, 다음부터는 우리를 놀라게 하면 안 된다.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으면서!”
우리 행동대장의 분노에 찬 경고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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