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124. 대늪지 사냥철 8
* * *
벨릭은 여전히 벨릭이었다.
세 아내의 외침에 대체 갑자기 왜? 라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끔뻑거리는 벨릭.
“하하…. 벨릭이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검은 연꽃도 찾아왔었는데,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리, 리젤다의 목숨을 구해줬다는데, 다, 당연히 장어 꼬리 정도는 아깝지 않죠.”
“베, 베릭님 많이 드세요.”
벨릭은 그래도 그간의 선행으로 구박 면제권이 있었다.
세 아내는 어색하게 웃으며 인내심을 끌어올리는 모습이었다. 결국 내가 꼬리는 그냥 그런 미신이 있고, 실제로는 다른 부분과 다르지 않다는 설명을 하고 나서야 다소 안심(?)된 모습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어휴 이거 정말 맛있네.”
“그리게 역시 형님이 여관에 있으셔야 한다니까.”
두 놈도 음식은 더 있다니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장어구이와 장어탕을 먹는 중이다.
“그래, 많이 먹어라.”
식사 중에 물어보니 벨릭은 전투식량과 약간의 기호식품을 사러 온 것이라고 했다. 저녁에는 사냥한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는데, 아침에는 따듯하고 든든하게 전투식량을 먹고 사냥에 나가는 게 좋다나?
하긴 아침부터 질긴 고기 뜯는 것보다야, 부드럽게 죽처럼 끓여 먹고 나가면 몸도 따듯하고 좋긴 하지.
그리고 벨릭은 전투식량에 버터를 넣어서 녹여 먹거나 치즈를 넣으면 맛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전투식량과 함께 버터 치즈를 준비해달라고 했다.
전생에 군 생활을 할 때는 ‘맛있나’ 같은 고추장소스나 참기름, 참치 같은 걸 훈련 나갈 때 군용 백 팩에 잔뜩 사서 나가곤 했는데 그런 느낌인 것 같았다.
사람 사는 곳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투식량과 버터, 치즈는 발레리가 창고를 확인해서 내일 아침에 가지고 갈 수 있게 물량을 준비해준다고 했다.
식사가 끝나고 일단 이놈들이 하루 쉬고 내일 일찍 출발한다기에 방을 하나 내줬다.
“야! 너희들 방으로 올라가기 전에 일단 목욕탕부터 들러. 아, 이 새끼들 냄새. 밖에서 노숙할수록 더 잘 씻어야 해! 이 새끼들아 몬스터들이 냄새 맡고 습격해온다고!”
“예 예. 여기만 오면 씻는 거로 너무 힘들게 한다니까. 가자 마틴”
“별 냄새 안 나는 것 같은데? 갑시다. 씻고 한숨 자야겠어! 저녁 먹기 전까지.”
두 놈은 내 눈치를 보더니 빠르게 목욕탕으로 향했다. 진짜 북부야 추운 겨울이 있다 해서 그렇다 쳐도, 남부는 더울 때는 땀이 뻘뻘 나는데, 안 씻는 새끼들 정말.
“냄새나면 방에 못 올라가게 할 테니까 깨끗하게 씻어!”
나는 둘의 뒤통수에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자 이실리엘이 탕 온도를 맞추기 위해서 벨릭에게 따라붙는 모습이 보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벨릭과 이야기를 나눴다. 뭐, 사냥은 잘 되고 있냐. 방패 흘리기는 잘 쓰고 있냐 뭐 그런. 어딜 내보내도 불안한 녀석. 날 대신해 리젤다를 위해 내준 눈알을 볼 때마다 마음이 쓰이는 녀석.
그러니 최소한 어디 가서 객사는 하지 않게 만들어두고 싶은 것이다.
이쪽 세계 용병들의 전반적인 문제라면 그냥 괜찮은 신급 존재에게 이쁨받아서 좋은 능력 받으면 중간 구간을 씹어먹으면서 보다 높은 경지로 올라갈 수 있으니 경험이나 비결, 기술들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다 보니 능력에 비해 실력이 좀 모자란 애들이 많다.
벨릭도 그런 상태였고, 훈련을 계속하긴 했지만 여러 가지 일들이 있어서 지속해서 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
이번 기회에 좀 더 벨릭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보고 제대로 된 도움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한 번도 벨릭이 가지고 있는 힘에 관해서 물어본 적이 없기에 이번 기회에 물어보기로 했다. 뭔 능력인지 알아야 맹약과 서약이라도 걸라고 하지.
“야 근데 벨릭아 넌 근데 무슨 존재한테 어떤 능력을 받은 거냐? 전사의 신 그런 건가?”
“거, 혀, 형님만 조용히 알고계슈…. 그러니까 오, 오….”
“아니, 오 뭔데?”
자꾸 오, 오거리는 벨릭에게 재촉하자 벨릭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오크 신이요!”
“뭐? 그거 종족 신 아니었어? 오크들에만 힘 빌려주는?”
내가 깜짝 놀라 벨릭에게 되물었다. 이 새끼 하프 오큰가? 아닌데 여긴 하프라는 개념이 없던데. 뭔 인간이 오크의 신에게 힘을 받아?
“사냥 중에 자꾸 계약하자고 그래서 생각 없이 했는데, 알고 보니 오크 신이라고…. 젠장 리젤다 형수가 알게 되면, 또 머리가 나쁘니 어쩌니 할 테니까 비밀입니다. 알아보니까 용맹한 전사들한테도 가끔 힘을 내려준다고 하는데, 힘세지는 그거 말고는 잘 모르겠수.”
참, 저 같은 놈한테 능력을 받았네. 이거 리젤다한테 알려주면 백 년 놀림감이었다. ‘오, 오크의 신이라고? 그래, 벨릭이 좀 오크랑 비슷하긴 하지.’ 리젤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일단 능력은 나도 좀 알아볼게. 어떤 식으로 키우는 게 좋은지, 맹약이나 서약은 어떤 식이 좋을지.”
“어휴, 형님이 신경을 써주시면 저야 좋죠.”
벨릭 녀석이 씩 웃어 보였다. 웃지 마! 이 새끼야 정들어!
“근데, 너희 전투식량은 얼마나 들고 가려고? 더 필요한 건 없고?”
“어휴 뭐든 있으면 좋지만 다 가지고 갈 수 있나? 인원도 그렇고…”
“아니, 뭐 필요한 거 있으면 가져다주려고 했지.”
“오! 그럼 맥주?”
벨릭의 말에 마틴까지 입맛을 다시며 날 바라봤다. 아무튼 이 새끼들은 진짜.
“안돼, 이 새끼들아! 누가 야전에 나가 술을 처마셔. 아주 그냥 이 새끼들은 틈만 나면.”
쿵 쿵
“끄헉! 아니, 형님 거 줄 것도 아니면서.”
나의 핵 꿀밤을 처맞은 벨릭이 눈물을 찔끔거리며 항변했다. 이 새끼들 내가 다 너희 오래 살라고 그러는 사랑의 마음이야.
“술은 안되고 다른 건? 아가씨들은 필요한 거 없대?”
“여자들은 필요한 게 있으면, 번갈아 가면서 들어와서 목욕하고 올 때 가지고 온다고 했는데 뭐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수. 그런데 어떻게 가져다주려고, 나야 눈깔 한쪽이지만 형님은 다리도 불편한 분이…”
걱정은 참. 덩치에 안 맞게 세심한 놈이라니까.
“걱정하지 마! 이놈들아. 인마 우리 집에 노는 애들 셋이나 있어.”
“옛?”
그날 밤 나의 방에서는 전 직원회의가 열렸다.
원래는 우리 집 노는 애들 셋인 엘프 수호자 셋을 이용해서 사냥터로 식량 배달 서비스를 하려고 했는데.
벨릭과 이야기하다 보니 꽤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황금마차!’ 상인들이 대늪지 사냥철에 웜 포트를 찾는 이유. 그것은 현지에서 복귀하는 용병들에게 조금 더 저렴하게 물건을 사들이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용병들은? 빨리 사냥한 물건 처분하고 식량이나 필요한 물품 챙겨서 자리 뺏기지 않게 복귀해야 하는 것, 사냥철에 바짝 사냥해야 하니까 말이다.
상인들이 대늪지 근처까지 못 가고 웜 포트에서 진을 치는 이유는? 대늪지가 위험하기 때문에 그리고 마차가 대늪지 경계까지 못가기 때문에 길목에 있는 웜 포트로 모여드는 것.
그런데 현지에 가서 캠프를 하는 용병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건네주고 물물교환으로 사냥한 부산물을 받아올 수 있다면?
이거 백프로 남는 장사다!
물론 중간에 마차 캠프를 하나 세워야 하고 인원들이 대늪지 경계까지 도보로 물건을 지고 가 교환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엘프들과 수인, 세 명의 수호자가 있어 무력과 인원이 충분하고.
현지에서 물건을 사들이려면 물건 가격을 잘 알고 있어야 하지만 유능한 발레리가 있으니 준비는 끝.
“벨릭 저희랑 같이 중요한 할 이야기가 있다는 건 무엇이죠?”
“내가 사업하나 벌려볼까 하는데?”
“사업이요?”
“아, 장사, 장사를 벌려볼까 하는데.”
“무슨 장사요? 저희는 여관도 하고 있고 전투식량도 그란폴 성에 납품하고 있는데요?”
발레리가 이미 장사는 두 가지나 하고 있는데 또 무슨 장사 이야기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름하여 한 철 장사 ‘황금마차’를 운영하는 거지.”
나는 직원들을 보며 가혹한 자본주의 사장의 미소를 떠올렸다.
일단 다음날 출발하는 벨릭을 따라 로리엘과 수호자들을 정찰을 보냈다. 현지 상황을 좀 알아보고 오라는 것.
이틀 후 복귀한 로리엘이 보고를 시작했다.
“대늪지 경계 어림 여기저기에 중소규모의 캠프들이 이곳저곳 흩어져있었다. 서로 모여서 불침번 이익도 보고 습격에 대해 대비도 하는 듯했다.”
“도난 같은 것은 어때 보였어?”
“내가 갔을 때도 가죽이나 뿔 같은 것을 두고 분쟁이 있었다. 서로 자기 것이라 우기기도 하고 사냥을 나간 사이 누가 훔쳐 갔다고 하기도 하고 말이다.”
용병 새끼들 하는 짓이 뻔하지. 서로 훔치고 없어지면 또 훔쳐 오고, 이래서 내 사업 아이템이 더 잘 먹힐 것이다. 어차피 가지고 있어 봐야 도난당하니, 빨리 팔아버리고 돈으로 몸에 지니고 있거나 식량으로 바꾸는 것이 나으니까 말이다.
다음날 우리의 마차는 마차 앞뒤로 깃발을 하나씩 추가했다.
‘황금마차’라는 노란 실로 수가 놓인 깃발을 말이다.
그리고 발레리와 나, 이실리엘, 로리엘, 엘프 수호자 둘, 에밀과 평원 엘프 여섯, 수인 넷이 그 마차를 호위하며 늪으로 향했다.
사냥철 엘프의 눈물 여관 ‘황금마차’의 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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