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123. 대늪지 사냥철 7
* * *
크고 흰 가슴을 드러내고 엉엉 우는 발레리를 달래서 마을로 돌아왔다. 조금 더 배려심 있게 행동하라는 아내들의 눈총.
‘하… 힘들구나! 결혼 생활은….’
발레리가 끈적끈적한 장어의 점액을 씻는 동안 부엌에서 장어 손질을 시작했다.
“장어로는 어떤 음식을 해 먹는 건가요?”
장어 손질을 구경 온 리젤다가 물었다.
“장어는 고기는 구워서 먹고, 뼈는 튀겨먹기도 하고, 푹 끓여서 저번에 먹었던 삼계탕 같이 만들어 먹기도 해.”
쓸개는 소주에 넣어서 먹기도 했지?
일단 장어를 잡았다. ‘미끌미끌’ 전생 같으면 수산 시장에서 전기로 한 번에 ‘빠지직’ 일 텐데. 잡아서 죽이는 데 정말 한참이 걸렸다. 왜 이렇게 도망을 다녀!
한참을 씨름 끝에 잡은 장어를 깨끗하게 씻어 포 뜨기를 시도했다.
나도 장어 손질은 처음인지라 예전에 많이 보았던 영상에서처럼 장어를 죽인 후 머리를 도마에 꽂아 고정한 후 포를 뜨기 시작했는데, 장어를 고정할 못이 없어서 우리 집에 제일 흔한 걸로 장어를 고정했다.
뭐냐고? 화살.
도마 위에 화살로 고정된 장어의 모습이라니.
“러셀, 뭔가 손질부터 특이하네요. 장어는”
이실리엘의 감상이었다.
그런데 포 뜨기를 시도해보니 이게 쉬운 게 아니었다.
와 생각보다 미끄러워서 한 마리를 걸레짝으로 만들고 나서야 두 마리째부터 어느 정도 먹을 만하게 모양이 나올 수 있었다. 첫 번째 놈과 고기가 많이 붙은 뼈들은 그냥 탕이나 끓여야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아까운 단백질 덩어리.
그나마 장어가 크니 포 뜨기가 쉬운 편이었는데도 한 마리를 다 버리고 말다니.
어찌어찌 여섯 마리의 장어의 포를 뜬 후, 장어 고기와 뼈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실리엘이 이해가 안 된다는 투로 물었다.
“그런데 러셀, 왜 장어 꼬리는 버리지 않죠?”
하긴 대부분 물고기는 머리꼬리 잘라서 손질하니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실리엘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니 장난을 참을 수 없었다.
“이실리엘, 내가 살던 곳에서는 말이야, 장어 꼬리에는 남자에게 좋은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믿었거든. 그래서 장어를 잡으면 꼬리는 항상 집안 어른이나 남자에게 양보했지. 고기는 솔직히 그냥 맛만 좋을 뿐 진정 남자에게 좋은 것은 꼬리라는 말이 있었어.”
전생에 장어는 꼬리가 남자에게 제일 좋은 것이라며, 뭐 일본 사람들은 장어 꼬리를 좋아한다는 유언비어도 퍼졌었지. 어차피 꼬리야 다 같은 단백질이고 뭐 더 좋고 덜 좋은 것이 어디 있겠나.
“그, 그렇군요. 남자에게 좋은 장어 꼬리. 알겠어요!”
큰 비밀을 깨우친 우리 귀여운 엘프 아내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하는 모습에 자연스레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포를 뜬 장어는 꼬치에 끼워 껍질 쪽부터 숯불에 조심스레 구워주었다. 석쇠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 발레리를 통해 석쇠를 대장간에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숯불 향을 입히며 장어를 돌려가며 굽는다.
치익 칙
장어에서 기름이 숯불로 떨어져 좋은 향이 피어오르자 향이 너무 좋다며 다들 기뻐한다.
“향이 정말 좋아요.”
“기름기가 뚝뚝 떨어지는 게 정말 먹음직스럽게 보여요.”
구이는 간장 양념을 만들 수 없으니 소금구이를 하기로 했다. 꿀로 카라멜라이징을 한 소스를 만들어 요리 할 수도 있었으나 아무래도 장어는 양념장 맛이니, 차라리 담백한 소금구이가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옆의 냄비를 보니 장어구이를 시작할 때 올려둔 장어탕이 벌써 한참을 끓어오르고 있었다. 장어 뼈와 머리, 너덜너덜해진 첫 번째 한 마리를 넣고 자작 홍삼도 조금 넣고 푹 끓이기 시작했던 것. 고소한 향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재빠르게 뼈는 다 건져내고 여기에 대친 무청, 양파, 마늘을 넣고 간을 맞췄다. 맛을 보니 장어에서 우러나온 고소한 풍미가 입안에 가득했다.
이실리엘과 리젤다에게도 맛을 보여주니 칭찬 일색.
“엄청나게 고소해요.”
“기름기가 무척 풍부하네요. 입안에 기름기가 가득 차올라요.”
하. 이거 된장도 살짝 넣으면 좋은데. 올해가 가기 전에 목표를 세웠다. 된장, 간장 만들기. 이게 없으니 요리가 힘들다. 무슨 수를 내서라도 만들어야겠다.
내가 끓어오르는 탕을 보며 된장 간장의 아쉬움에 젖어있을 때 나에게 넘겨받은 장어를 굽고 있던 리젤다가 말했다.
“러셀, 장어가 노릇하게 익어가고 있어요.”
가서 보니 장어가 노릇하게 익어 오르고 있었다. 이때 곱게 빻은 소금을 골고루 뿌려줘 살짝 간을 해준다.
코를 찌르는 고소한 장어의 향이 부엌을 가득 메우고 밖으로 흘러나가고 있었다.
나는 장어를 넘겨받아 꼬치에서 뺀 후 일정한 크기로 잘랐다. 그리고 접시에 예쁘게 올리면 장어 소금구이 완성. 팔뚝만 한 장어 다섯 마리의 고기는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장어탕은 그릇에 적당히 담았다.
요리가 끝난 시간은 정오였다. 여관에 손님들이 없어 직원들도 손님이 올 때까지 쉬라고 해둔 상태. 점심을 먹지 않는 문화인데 이거 사람들을 불러야 하나 생각하다 반절 정도 덜어놓고 먹기로 했다.
음식을 홀로 가지고 나가니 발레리가 목욕을 다 하고 홀로 들어오고 있었다.
“씻어도 씻어도 미끄러운 느낌이랑 비린내가 안 없어지는 것 같아요.”
발레리는 아직도 울상이었다.
“이리 와서 밥 먹자 뭐든 좀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테니까.”
그렇게 테이블에 둘러앉아 장어를 먹기 시작하려 했을 때.
이실리엘이 외쳤다.
“잠깐만요!”
“왜죠? 이실리엘님?”
“왜 이리실리엘?”
영문도 모르고 다들 이실리엘을 바라보자 이실리엘이 내 접시에 조심스럽게 장어 꼬리 다섯 개를 덜어 올렸다. 그리고 다른 아내들에게 말했다.
“꼬리는 러셀에게 주어야 합니다. 러셀의 말로는 남자들에게 좋은 것은 다, 이 꼬리에 들어있다고 하더군요. 남편을 보살피는 것은 아내의 의무 아시죠? 다들?”
이실리엘의 말에 리젤다와 발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 그래. 고마워 이실리엘.”
챙겨주려는 이실리엘의 아주 고마운 마음이 담긴 장어 꼬리를 한점 입에 넣으려고 할 때, 여관 문이 열리고 벨릭과 마틴이 안으로 들어왔다. 사냥철에 맞춰 늪지로 사냥을 나간 것이니 장기간 사냥을 하러 간 것인데, 조금은 이른 복귀였다.
“엇?”
나를 발견한 벨릭이 외쳤다.
“형님!”
“큰형님!”
두 녀석이 나를 부르며 달려왔다. 남자는 취향이 아니지만, 너희라면 내가 안아줄 수 있지. 나와 벨릭과 마틴은 오랜만에 포옹하며 반가움을 나눴다.
그나저나 이 새끼들 냄새! 씻기는 한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늪에 물도 많은데….
“아니, 언제 오신 거유?”
“며칠 되었어. 사냥 다 끝난 거야?”
“아뇨, 식량이 떨어질 것 같아서 식량을 보충하려고 둘이 온 겁니다. 지금 빠지면 자리 잡은 야영지를 포기해야 해서, 당분간 이렇게 식량 보충하면서 사냥하려고요.”
사냥철이니 아마 장기 사냥캠프를 차린 것 같았다. 이시기에는 경쟁이 치열하니, 하긴 매번 다 같이 복귀하는 것보다 이렇게 두세 명이 식량을 보충하면 캠프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래 지금 뭘 잡고 있는데?”
“늪지 트롤 마을을 조금씩 깎아 먹고 있는데, 아 참. 발레리양 트롤 가죽이랑 피 두통 올 때 가져왔는데 마을 가는 편에 좀 팔아줘.”
아마 복귀할 때 부산물을 챙겨온 것 같았다.
“인마! 발레리라니. 셋째 형수님.”
“뭐요!?”
벨릭과 마틴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와 발레리를 번갈아 쳐다보자 발레리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아니, 언제? 대체?”
“아니, 무슨 여관 손님을 다 아내로 만들어? 여관 음식에 미약이라도 타는 거 아냐? 나도 그래서 자꾸 형님이 좋아지나?”
이 새끼 이거 위험한 발언 하네. 특히 마지막 발언. 닭살이 전신에 올라왔다.
“너, 요 새끼. 주둥아리 진짜.”
“형님, 그 저번에 여관 직원 하면 결혼시켜준다는 거, 아직 유효한 제안이죠?”
벨릭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이 새끼 이거 암튼. 실력은 얼마나 늘었는지 모르겠는데 주둥이는 확실히 늘었네.
“됐어. 인마 이미 마차 떠나갔어. 평생 용병이나 건강하게 해 먹어. 이 새끼야. 크흐흣”
“와… 동생도 장가 좀 보내주쇼!”
녀석의 장가 타령에 벨릭의 머리통에 알밤 비비기를 맛보여주려 쥐었다가 냄새에 화들짝 물러났을 때, 벨릭이 코를 벌름거리며 말했다.
“그래, 형님이 복귀했으니 맛있는 음식이 따라와야지! 아 이 좋은 냄새.”
“아 너희들 배고프겠다 앉아 같이 먹자.”
내 권유에 마틴이 후다닥 달려가 의자를 끌고 오려는데 벨릭이 마틴을 저지하며 말했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이다.
“마틴아 너는 진짜 어쩌려고 그러냐? 딱 봐도 형님이 예쁜 아내들 데리고 오붓하게 식사하시는데 거기 끼려고? 이 눈치가 없는 새끼. 넌 정말 구제 불능이다.”
“형님, 권해주시니 저희는 그냥 맛만 보고 갈게요.”
벨릭은 장어가 수북이 쌓인 테이블로 가서 노릇하게 구워진 장어를 보더니 말했다.
“하 이거 봐라 나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형님 또 아내들에게 좋은 부분 양보한다고 꼬리 같은 거만 드시려고 하셨네. 이건 제가 처리할 테니 다 같이 좋은 부분 드십쇼.”
벨릭은 그리고는 내 접시를 들어 장어 꼬리 다섯 개를 순식간에 자기 입으로 털어 넣었다.
“아! 안돼!”
“안 돼요!”
“멈춰 벨릭!”
세 아내의 찢어지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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