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24화 (124/352)

〈 124화 〉 122. 대늪지 사냥철 6

* * *

이세계 전생 후 내가 느낀 것이 하나 있다면, 뭔가 굵직한 지식이 이곳에 사는 데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사소한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

개인적 청결이나 위생 같은 감염 방지를 위한 소독이나 물 끓여 먹는 사소한 그런 것 말이다.

뭐 뭘 큰걸 만들어 팔고 그런 건 세부적 지식이 없기도 했지만, 구현해내는데 재료부터 도구까지 전부 하나나 만들어내야 하니, 도움이 되려면 무척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내들의 등쌀에 떠밀려 장어를 잡으러 온 것만 해도 그렇다.

다른 물고기와 같이 물의 정령으로 쉽게 잡아낼 수 있으리라 자신만만했던 이실리엘이었지만, 돌 틈이나 물속구멍에 몸을 숨기고 있는 장어를 잡아내는 것은 무리였다.

애초에 낮에 잘 돌아다니지 않는 장어니.

결국 이실리엘이 건져낸 건 큰 잉어 같은 녀석 세 마리.

“러셀 그. 장어라는 물고기가 안 보여요. 물의 정령도 찾을 수가 없다고 하고.”

“원래 장어는 밤에 활동하는 물고기고, 낮에는 굴이나 돌 틈에 숨어있으니까 잡기 힘들 거야.”

“어쩌죠. 그럼.”

이실리엘이 울상을 지었다.

“예전에 우리 동네에서 쓰던 방법을 써봐야겠어. 리젤다, 이실리엘 먼저 갈대를 밑동부터 잘라서 가져와 볼래?”

“러셀 저는요!”

발레리가 기운차게 물었다.

이실리엘은 엘프 더군다나 수호 궁수, 리젤다는 말괄량이 귀족이긴 하지만 전 용병. 발레리는 전 무희이자 상가 후계자. 발레리는 야전에 나오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우리의 사기를 위해서 춤을 추라고 할까?

“어, 그래 발레리는 둘을 도와서, 갈대를 이리로 옮겨줘.”

나는 이실리엘이 잡은 잉어 같은 놈 두 마리를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내장도 포함해서.

그리고 이실리엘과 리젤다가 잘라 온 갈대를 묶어 한 아름되는 갈대 단으로 만들었다. 갈대 단은 아래, 위, 중간 세 군데를 단단히 묶어 풀리지 않게 만들고 자른 물고기를 갈대 틈으로 깊숙이 넣어준다.

그리고 이걸 돌을 묶어 가라앉히고 물가에 떠내려가지 않게 고정해준다.

“이게 뭐죠 러셀?”

리젤다가 갈대 단을 보고 물었다.

“이게 내가 살던 곳에 있던 전통 장어 잡는 방법인데… 이렇게 해두면 장어들이 갈대 사이로 파고들어서 물고기를 먹다가 이 안이 안전한 줄 알고 여기서 잠을 잘 거야.”

“러셀이 살던 마을은 참 신기한 마을인 것 같아요. 처음 듣거나 보는 게 너무 많아.”

리젤다가 웃으며 말하자 이실리엘과 발레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살던 마을 드립을 너무 많이 써먹은 것 같았다. 하긴 모르는 사람한테 한두 번은 몰라도 같이 사는 사람들은 여러 번 들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올 만했다.

그러고 보니 이실리엘에게는 세계수 방문했을 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종마 사건 때문에 너무 놀라고 흥분한 나머지 이야기를 못 했지.

다른 세계에서 살다가 종마로 뽑혀왔다고 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하. 그, 그렇지?”

장어 잡는 방법만 해도 실은 이거 전생에 방송에서 본 거야라고 할 수도 없고.

내용이 아시아 국가의 전통 장어잡이였는데, 거기서는 생대나무 단을 엮어서 미끼 없이 그냥 물에 던져두면 장어들이 숨을 곳을 찾다가 대나무 사이로 들어갔다가 못 빠져나오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여긴 주변에 갈대가 구하기 쉬우니 갈대로 한번 만들어 본 것이다. 뭐 꼭 잡아야겠다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이실리엘이 못 잡으면 좀 실망하겠지만.

일단 세 군데 갈대를 설치했으니 내일 아침에 다시 오기로 했다.

“러셀 진짜 잡힐까요?”

“뭐 안 잡혀도 어쩔 수 없지.”

“안 되는데….”

아내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

며칠 카운터에 앉아서 낮에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좀 그랬든지, 다행스럽게(?) 이날 밤은 아무도 같이 자러 오지 않았다. 이것이 고개 숙인 남편인가. 뭔가 슬퍼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찾아온 이른 아침.

강가로 향하던 우리는 물레방아 간 근처에서 호크씨와 마주쳤다. 아마도 이른 밭일을 나가시는 것 같았는데, 그런데 호크씨의 다크서클이 장난 아니고 손도 좀 떠시는 것 같은 느낌. 이틀간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지?

“호, 호크씨?”

“여어… 러, 러셀 아닌가?”

“어, 어디 아프십니까? 아니, 몸이 상태가 심하신 것 같은데?”

“아니네. 훌쩍, 어라…”

호크씨는 갑자기 훌쩍거리더니 한쪽 코에서 붉은 코피를 흘리셨다.

“호, 호크씨 피가!”

“코, 코피?! 괜, 괜찮네.”

그때 호크씨의 집 방향에서 호크 부인이 소리를 치르며 뛰어오셨다. 그리고 호크씨를 따라잡아 팔을 흡사 범죄자 연행하듯 잡아채셨다.

“여보! 여보! 어머, 어머 이 사람 웬 코피야! 아니, 그러니까 오늘은 집에서 좀 쉬시라니까. 오늘은 밭일은 애들 내보낸다니까, 새벽부터 왜 나왔어요! 얼른 가요 얼른. 어머 이게 누구야 러셀이랑 새신부들 아니야?”

“안녕하세요. 호크 부인.”

“러셀 어제 보내준 건 잘 받았어요. 효과가 확실히 좋더라고요. 모처럼 이이가 기운이 났다니까?”

아 어제 에밀을 통해 홍삼을 몇 뿌리 보내드리고, 호크씨에게 물에 넣어 끓여서 잘 챙겨 드시라고 했는데 남자에게 좋은 거라고.

호크 부인께서 나에게 왜 고마워하실…

“호크씨 설마?”

호크씨가 이미 죽어버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 장어와 홍삼을 먹고 자신감으로 어젯밤에 호크 부인께 도전했던 모양이다. 홍삼 잘 끓여서 한 달 이상 드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어째서! 아니, 홍삼이 무슨 비XX라 도 아니고 즉시 효과를 보시겠다고.

아니야, 아주머니께서 먹이고 쥐어짜셨나?

결국 선배님은 밭일을 나가시겠다며 저항하시다. 결국 아주머니 손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의 눈을 하고 끌려가셨다.

나의 미래가 저럴까. 두려워지는 모습이었다.

“호크씨 괜찮을까요? 어디가 많이 아파 보이시는데?”

이실리엘의 우려 섞인 목소리.

“괜찮을 거야. 아마도…”

호크씨를 뒤로하고 우리는 갈대 다발을 설치해둔 곳으로 가기 위해서 물레방아 간 옆의 작은 문을 이용해 목책 밖으로 나갔다. 목책 문 앞에 용병들과 상인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이쪽 문을 이용하는 것이다.

어제 갈대 다발을 설치해둔 곳은 내가 큰 문어에게 끌려갔던 그 위치.

첫 번째 갈대 다발을 설치한 곳에 도착했다. 갈대 다발을 물에서 끌어내 끈을 단검으로 잘라내자 갈대 다발이 흩어지며 안에서 물고기들이 튀어나왔다.

“옷! 네 마리나!”

처음 나온 것은 메기 네 마리. 아주 팔뚝만 하게 굵직한 놈들이었다.

“러, 러셀, 이건 머리 큰 장어인가요?”

발레리가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하긴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똑같이 미끈거리고 검고.

“아니, 이건 메기라고 하는데 살이 많고 아주 맛있어.”

“장어가 아니라니…”

들려오는 이실리엘의 실망스러운 목소리. 양 타령이 끝나니 이제는 장어 타령인가… 숲과 동물을 사랑하는 엘프라 그런가? 아니 뭔가 살짝 다른 것 같긴 한데.

“아직 두 개나 남았으니까.”

메기 네 마리를 바구니에 집어넣고 두 번째 갈대 다발로 향했다. 두 번째 갈대 다발을 꺼내려 하는데 갈대 다발 사이에서 살랑살랑 움직이는 생물의 꼬리.

“이실리엘 저거 통째로 물의 정령으로 물 밖으로 꺼내줘!”

장어의 꼬리를 본 내가 다급하게 외쳤다.

“알았어요!”

물의 정령으로 꺼낸 갈대 다발에서 나온 장어는 무려 네 마리. 심지어 굵기도 아주 좋았다. 평소에 사람들이 장어를 잡지 않으니 뭔 굵기가 팔뚝만 하네.

“우앗! 장어에요!”

세 아내는 얼싸안고 기뻐하며 말했다. 저렇게 기쁜가? 우리는 기뻐하며 곧바로 세 번째 갈대 다발로 향했다. 세 번째 갈대 다발에서 나온 것은 메기 한 마리와 장어 두 마리.

“메기 한 마리는 내가 미끼로 넣을 테니까, 장어는 바구니에 넣어줘.”

“알겠어요. 러셀!”

발레리가 신이 나서 대답했다.

항창 갈대 다발을 묶고 있는데 들려오는 뾰족한 발레리의 비명.

“꺄읏!”

“뭐, 뭔데?”

내가 화들짝 놀라서 뒤돌아보자. 발레리의 가슴골에 꼬리를 내밀고 파닥거리는 장어가 보였다.

“러, 러셀 장, 장어가! 꺄으읏!”

‘이, 이게 무슨 일이냐’

황당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자 이실리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레리가 장어를 바구니에 넣으려는데, 장어가 튀어 올라 발레리의 가슴 사이로 들어갔어요!”

발레리의 옷은 가슴 아래를 바짝 조이는 원피스 치마. 무슨 옷을 입어도 가슴골이 드러나는 발레리기에 아마도 튀어 오른 장어가 가슴골 사이로 쏙 들어간 모양.

장어는 이미 완전하게 발레리의 가슴골로 자취를 감추고 발레리의 큰 가슴이 불룩불룩하며 안에서 장어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발레리에게 달려들어 원피스 상의를 아래로 확 끌어내렸다. 장어에게 놀란 상태에서 상체가 벗겨지자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 비명을 지르는 발레리.

“꺄아아아악”

드러나는 발레리의 어깨와 크고 흰 가슴.

­툭 파닥파닥

떨어져 파닥거리는 장어.

“엉엉엉…”

나는 오늘도 발레리를 울려 버리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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