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23화 (123/352)

〈 123화 〉 121. 대늪지 사냥철 5

* * *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 월광의 깊은 밤. 이실리엘의 적극적인 자세로 시작된 뜨거운 밤.

두텁게 하늘을 가리던 구름이 살포시 걷히고 방 창가로 달빛이 조용히 부어졌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붉디붉은 머리카락.

이실리엘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며 키스해주려는 찰나였다.

“발? 발레리!?”

“네…. 흐응… 러셀 님.”

발레리가 여운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머릿속에 모 영화에서 봤던 것 같은 흰 불빛이 반짝하고 켜지고 머릿속의 모든 것이 순간 날아가 버렸다.

그래 생각해보니 가슴이 커진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그날이 가까워지면 조금 커지기로서니 이렇게 몇 컵 커지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렇게 몇 번을 안았는데 이실리엘과 다른 여자 구분도 못 한다니.

‘나는 병신인가?’

자괴감이 밀려왔다.

고개를 내려보니. 하…. 그나저나 이거 어떻게 하지. 이실리엘 리젤다에게는 뭐라고 말하지?

결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다른 여자를?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지?

신 이 새끼들 뒤에서 무슨 수작 부리는 거 아냐?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관 손님도 어떻게 대부분 여자만 오냐고. 남자 새끼는 벨릭이랑 마빈 빼고는 마을주민. 그러고 보니 접촉하는 남자가 너무 적었다.

아냐, 아니겠지 너무 나간 거겠지? 세계수님이 이실리엘을 보냈다고 했지만, 그저 내 앞에 보낸 정도고 우리 사랑은 우연과 필연이 겹친 그런 느낌이니, 리젤다도 딱히 종교 같은 건 없고 능력도 사냥의 신이라는 분에게 받았다고 했으니.

“하…. 이실리엘 리젤다에게 뭐라고 말하지….”

극도의 혼란 속에 혼잣말을 내뱉자 발레리의 믿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셀님, 그, 허, 허락받았는데….”

“뭐? 무슨 허락…?”

‘뭐? 뭘 받아? 누구에게 무엇을?’

허락받았다는 발레리의 이상한 주장에 더욱더 머릿속이 카오스에 빠져들고 있을 때 이어진 발레리의 이야기.

“이실리엘님과 리젤다님에게 세, 셋째 아내가 될 수 있는 허락이요. 저는 러셀님이 저에게 전투식량 제조법을 알려주실 때, 아 나는 이제 꼼짝할 수 없이 저분의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러셀님이 원하신 대로요. 러셀님은 제가 싫으신가요? 저는 직원으로만 쓸모가 있는 건가요?”

뭣?! 아니 레시피 알려준 거로? 전투식량 레시피 뿌리고 다니면 삼천궁녀도 어렵진 않겠다 발레리야.

그래 조금 아슬아슬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나는 일단 유부남이니까 발레리의 연애 대상에서 제외 아니었나?

“허, 허락받았다고? 이실리엘과 리젤다가 허락했다고?”

“네, 이방 들어올 때, 방 앞에까지 데려다주셨는데….”

“정말? 사실이라고?”

아니, 뭔 부인을 내 말도 안 들어보고 자기들끼리 결정을 하는 거지? 아니 근데 이게 믿을 수가 없는데.

이어지는 발레리의 설명.

“그, 제가 요 며칠 이실리엘님과 리젤다님께 교육받았어요. 아내의 밤 교육을요. 그, 이실리엘은 러셀님이 가, 가슴을 좋아하신다고 했어요. 크, 큰 가슴을요. 그리고 리젤다님은 다리를 쫙 편 자세나. 서서 다리 하나를 하늘로 들고 하는 그런 자세를 조, 좋아하신다고.”

그래, 그런걸. 좋아하는 건 아닌데 아니, 좋아하긴 하지. 분명 둘과 침대에서 있었던 은밀한 내용들이 섞여 있었다. 아니 그럼 진짜로 허락받았다고?

귓가에 뜨거운 김이 부어지고 발레리가 속삭였다.

“러셀님, 걱정하지 마시고 발레리를 마음껏 러셀님의 것으로 삼아주세요.”

붉게 타오르는 머리카락 아직도 코끝에 남은 상처. 발레리가 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였다. 압도적 풍만감의 그녀 가슴과 달콤한 그녀의 고백.

밀려오는 안락감과 그녀의 열기에 내 분신이 다시금 기운을 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 참, 우리 아직 합체 상태지. 발레리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

두꺼운 구름 사이로 살짝 드러났던 달빛이, 창문으로 지켜보는 우리 둘의 모습이 부끄러웠던지 곧장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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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두 아내를 어찌 보아야 하나 걱정했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 아침을 먹으며 셋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이미 북부로 가기 전부터 계획된 것이라고….

발레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반쪽과 분신이라는 내 드립과 자신을 소유하기 위해서 중요한 비밀을 알려줘, 자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못 하는 나의 거친 소유욕(?)에 사로잡혀 버렸다고?

이세계 친구들은 조금 위험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벨 같은 귀족 집안 아가씨들은 조심해야겠다 생각했다. 애들의 상식이 뭔가 비틀려있어.

그리고 우린 가족이니까요….

그게 그런 의미였다니.

당사자인 나는 이 엄청난 사건에 당황해 셋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다음에는 이런 일이 있으면 꼭 나한테 상의해줘 알았어?”

“다음에요?”

“러셀, 또 다른 여자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는 건가요?”

“러셀, 이제 조금 뻔뻔해지시는 것 같아요.”

“아니, 그게 그런 의미가 아니고…”

괜히 말 꺼냈다가 나는 결국 본전도 못 찾고 혼나기만 했다.

아침 내내 셋에게 혼쭐이 나고 눈치를 보다가 마을주민들에게 복귀 인사를 하자는 핑계로 셋을 데리고 나왔다. 더 있었으면 셋의 난타에 정신이 피폐해질 뻔했으니까 말이다. 셋의 구박은 매섭고 싸늘했다.

그렇게 구박하더니 또 인사하러 나와서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일이 없다는 듯 번갈아 가며 팔짱까지 껴는 셋의 모습을 보니….

이세계 여자들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셋과 인사를 다니던 와중 현재 자경대 대장을 맡고 계셨던 호튼씨와 만나 인사를 나눴다.

“아름다운 부인이 둘이라니, 러셀 나는 하나도 힘든데 말이야. 하하하 이 친구”

호튼씨는 뭔가 대단하다는 표정과 넌더리 난다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셋이에요 호튼씨.”

내 뒤에서 들려온 리젤다의 목소리.

“뭣?!”

리젤다의 말에 눈을 부릅뜨고 놀란 호튼씨가 내 뒤에 서 있던 셋을 바라보더니, 내게 어깨동무를 하셨다. 그리고 조용히 셋에게서 멀어지더니 귓가에 속삭였다.

“자네 대체 어쩌려고 그러나?”

“예?”

“허어…. 이 사람 자네가 아직 뭘 몰라서 그러나 본데, 지금은 좋겠지만, 여자들은 나이를 먹으면 성욕이…. 자네, 그러다가 죽어! 죽는다고!”

호튼씨는 뭔가 영혼이 담긴 것 같은 외침을 귓가에 토해내셨다. 그 목소리에 호튼 부인의 얼굴이 생각났다. 항상 반질반질한 그 얼굴. 설마!

그리고 그때 나를 부르는 이실리엘의 목소리.

“러셀?”

뒤를 돌아보자 이실리엘의 엘프 귀가 쫑긋거리고 있었다. 다 들었겠지? 엘프는 귀가 밝으니까….

“하하, 호튼씨 농담도 참….”

나는 이야기를 얼른 무마시킨 후 인사를 마무리하고 호튼 씨와 헤어졌다.

호튼씨와의 인사 후 멀어지는 선배(?)님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의 영혼 담긴 조언에 걱정이 가슴속에 스멀스멀 올라왔다. 분명 전생에서도 여자들은 나이를 먹으면 성욕이 올라간다고 했지. 삼십 대였나?

전생에 이십 대 후반에 삼십 대 초반 동네 누나와 결혼했던 내 친구가 결혼 삼 개월 만에 십 킬로가 빠졌다며 한탄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실리엘은 제외하고 리젤다나 발레리는 십 년도 안 돼서 그 나이가 될 것이 확실한데….

나의 미래가 핑크빛에서 잿빛으로 물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때 발레리, 리젤다가 양쪽 팔에 매달리고 이실리엘이 여관 쪽으로 앞장서며 말했다.

“이제, 여관으로 가죠.”

­꿀꺽

이실리엘의 그 목소리가 지금 세계의 여관이 아닌, 전생의 여관이나 모텔이라는 단어와 매치되며 절로 침이 삼켜졌다.

그, 그래, 그래도 기운을 내어보자. 아, 아직 신혼이니까…

­­­­­

며칠 후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한창 여관 일이 바쁠 때. 호튼씨가 둥그런 바구니를 들고 여관을 찾아오셨다.

“러셀 이것 좀 보게. 이거 먹을 수 있는 건가?”

갈대로 엮은 바구니에서 뭔가 질척한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자. 안에는 길고 미끄러운.

“장어?”

강에 장어가 있었던가? 마을 사람들이 물고기를 많이 잡긴 하는데 장어는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아, 이번 우기 때 하류 물길이 달라진 건 아나? 그, 마을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서부터 구불구불하던 물길이 바다까지 길게 뻗어나가게 바뀌었지, 하류 모래톱도 물에 쓸려 사라졌는지 바다에서 물고기가 마을 근처까지도 가끔 올라온다네.”

분명 우기 때 물길이 바뀐 거라면? 아! 실리아였다! 이실리엘이 나를 찾겠다며 물길을 바다 근처까지 일자로 내버렸지…

“강에서 오늘 잡은 건데 이놈이 끼어있어서 말이지? 뱀인 것 같기도 하고.”

“이거 장어라고 푹 고아 먹을 수도 있고 고기도 기름기가 풍부해서 맛있어요. 어, 제가 살던 곳에서는 남자에게 좋다고 그, 정력에…”

“뭣!”

호튼 선배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지, 진짠가?”

“예, 뭐 다들 그렇게 믿었죠.”

호튼씨는 나에게 건넸던 바구니를 낚아채더니 여관 밖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

“러셀 미안하네. 원래 자네 주려고 가지고 왔는데, 일단 자네보다 내가 급하네!”

달려 나가는 호튼 선배님을 보며 내일 날이 밝으면 홍삼도 몇 뿌리 가져다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선배님이 매우 힘드신 것 같았다.

그때 ‘스윽’ 다가온 리젤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셀? 그 말이 사실인가요?”

“무슨 말?”

“남자 몸에 좋다는?”

“어, 그렇지?”

“저희도 내일 물고기를 잡으러 가죠. 오랜만에. 러셀 몸을 잘 돌봐야 하는 건, 아내의 의무니까.”

리젤다의 말에 내가 요즘 좀 부실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 며칠 낯에 좀 꾸벅꾸벅 졸긴 했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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