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21화 (121/352)

〈 121화 〉 119. 대습지 사냥철 4

* * *

여관으로 복귀한 날 저녁. 우리의 결혼과 복귀를 축하하는 우리만의 작은 연회를 열었다.

사냥철이라 그런지 몰라도 우리 여관에서 많은 일을 함께했던 벨릭 같은 친구들은 대부분 사냥을 나간 상태였고, 평원 엘프나 수인들도 절반은 늪지까지 사냥을 나간 상태라고 했다.

여관 손님들은 다들 처음 보는 손님. 그것도 많은 것은 아니고 일곱 명 정도였는데, 점심이 지나고 다들 늪지대로 향했다.

발레리의 말로는 요즘 손님은 다들 뜨내기손님이라고 했다.

사냥철이니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그란폴에서 여기까지 걸어와 여관에서 컨디션 끌어 올린 후 늪지로 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그렇기에 모처럼 한가해진 여관의 식구들과 남은 평원 엘프들을 모아 작은 파티를 연 것이다.

오늘 파티의 주요리는 갈비찜.

오늘 낮에 도둑놈들을 끌어들였던 늪지 뿔소의 가죽, 그 고기가 창고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며칠 전에 에밀과 친구들이 늪 입구까지 나가서 잡아 왔다는데 살이 아주 잘 오르고 지방질이 잘 분포된 것이, 아주 맛이 있어 보였다.

딱 보자마자 스테이크 같은 게 생각났지만, 이곳에서 굽는 요리는 너무 흔하니 갈비찜을 하기로 한 것이다.

뭐 결혼식 피로연은 갈비탕이 국룰이지만 우린 얼마 전에 먹었으니.

“그러니까 토마토, 양파, 무, 양배추, 당근, 호박 정도가 먹을 수 있는 크기라고 했어, 마을 주민들이.”

고기를 다듬는 내 옆에서 에밀이 연신 이런저런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마을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어떤 채소를 마을 주민들에게 구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있다.

비교적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도 활발한 엘프 친구로 통하는 에밀은 엘프임에도 친화력이 좋아서 마을 주민들이 좋아하는 친구이다. 그렇기에 마을 주민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은 것 같았다.

그래선지 고기 다듬는 내내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어느 집 누가 아이를 낳았는데 사내아이라더라, 누구네 집 텃밭에 꽃이 피었는데 예쁘더라, 마을 창고에 고기를 넣다가 봤는데 무가 많더라 등등 말이다.

“어, 그러면 양파, 무, 당근, 양배추, 호박을 좀 받아다 줄래?”

“알았어. 러셀!”

대답과 함께 에밀이 여관 밖으로 엘프 둘을 데리고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에밀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 귀여운 여동생 같은 녀석이라니까?

마을에서는 잉여 농산물을 마을 공동 창고에서 보관하니 필요하면 창고 안에서 꺼내 먹으면 된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우리야 엘프들이 고기를 떨어지지 않게 창고에 보급해주고 있으니 채소 정도야 언제라도 가져다 먹을 수 있는 것.

비타민이 풍부한 채소는 이곳에서는 약간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 정도로 취급받는다. 혹시 몰라 키우긴 하지만 선호도는 높지 않은 것, 대신 고기는 뛰어난 가치를 지닌다. 그렇기에 엘프들이 사냥으로 마을 창고에 고기를 주기적으로 공급해주니 촌장님이 채소는 언제든지 꺼내 먹으라고 했단다.

“러셀 뭐 도와드릴 건 없나요?”

“토란을 좀 까주고 에밀이 양파랑, 무, 당근, 양배추, 호박을 가지고 올 거니까 그걸 씻어서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좀 잘라줘.”

“알겠어요.”

도울 건 없는지 이실리엘이 주방을 기웃거리며 묻기에 채소 손질을 부탁했다. 이실리엘이 여관 문앞 에서 에밀을 기다리는 사이 나는 밥을 준비하기로 했다.

쌀은 비싸니까 항상 쌀로만 밥을 할 수는 없고, 오늘은 보리랑 귀리, 밀, 쌀을 섞어서 약간 영양 잡곡 느낌으로 만들기로 했다.

귀리나, 보리, 밀 등은 불러두지 않으면 빨리 조리가 되지 않는데. 물을 넣은 솥에서 한참을 끓여주다가 건져내 이것을 쌀과 섞어서 밥을 하면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속까지 익은 밥이 된다.

솥에 잡곡들을 삶고 있을 때.

여관 입구에 에밀이 채소들을 들고 들어섰다.

“이실리엘님 양파는 오늘 따둔 거라고 하셨어요. 진액이 뚝뚝 떨어지는 게 아주 맛있을 것 같아요.”

에밀이 신이난 목소리로 말했다.

이실리엘도 신선한 채소를 보더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자 그럼 우리도 러셀을 도와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볼까요?”

이실리엘의 진두지휘로 채소 다듬기가 시작되고 나는 간장이 없는 곳이기에 포도주와 사과 양파와 마늘 그리고 꿀과 소금으로 갈비찜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소스는 색을 내기 위해서 꿀을 캐러멀라이징을 하고 간 양파와 사과 포주를 주재료로 만들었다. 잡내를 잡기 위에 허브도 좀 추가하고.

잠시 후 이실리엘이 애니와 가지고 온 다듬은 채소를 한번 씻어 각을 뜬 뿔소의 고기와 우리가 항상 스튜를 끓이는 큰 무쇠솥에 넣고 나무로 된 뚜껑을 덮었다.

이제 불을 줄여서 남은 잔열로 은근히 익힌다.

밥은 이미 익히고 있으니 갈비찜을 위해서 좀 기다려볼까?

부엌에서는 끓어오르는 갈비의 향이 솔솔 흘러나오고 여관의 홀 테이블에 저마다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들려오고.

“그러니까 북부에서는 큰 늑대를 잡았어요! 아, 그 가죽이 방에 있는데 구경시켜 드릴까요?”

“북부에서 리젤다가 물구나무를 섰데요.”

“이실리엘님 그건 제발.”

내가 바라고 생각하던 은퇴 후의 여관의 일상이었다.

여기에 플러스 알파, 베타로 이실리엘과 리젤다가 추가되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은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없던 사이 있었던 여관의 일상을 사람들에게 듣거나, 북부에서 구하거나 벨에게 선물 받은 물건을 구경시켜주고 나누어주는 과정이 끝날 때쯤.

요리가 완성되었다.

큰 접시에 퍼 올린 갈비찜이 달콤한 향을 퍼트리며 홀로 운반되자 다들 군침을 흘리며 기뻐했다.

“러셀의 음식 너무 먹고 싶었어!”

“러셀이 없을 때 제가 식사를 책임지긴 했지만, 손님들이 좀 아쉬워하는 눈치더라고요?”

애니와 한나 아주머니의 목소리와 이어지는 발레리와 마리나 시트라의 찬사.

“흐음…. 고기가 너무 부드럽고 달콤해요. 천국!”

“그래요. 이 맛이에요. 제가 여관 도착해서 느꼈던 그 맛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이렇게 찬사를 들을 수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여관 주인은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비찜과 맥주가 어우러진 우리들의 복귀와 결혼을 축하하는 작은 연회는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연회가 끝난 이른 밤 오랜만에 따듯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목욕을 했다.

연회가 끝나고 여관의 모든 여자가 목욕탕으로 몰려가 목욕을 했고 나는 그들의 목욕이 끝나고 혼자 느긋한 목욕을 시작했다.

여행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

목욕탕의 모습을 둘러보았다.

두 달만의 내 목욕탕은 아주 멋들어지게 바뀌어 있었다. 일단 두 배나 커진 것을 제외하고 내 거대한 솥으로 만든 탕이 사라지고 목재로 만든 탕으로 바뀌어 있었다.

발레리의 말로는 그 무쇠솥이 녹이 나기 시작해서 창고로 치워두고 향이 좋고 물이나 곰팡이에 강한 목재로 바꾸어 놓았다고 했다. 전생의 히노끼 같은 느낌이려나?

그러고 보니 은은한 향이 올라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여관 손님은 무료지만 목욕을 원하는 사람들은 별도로 2 동화를 받고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할인해 준다고.

역시 발레리는 상인의 딸이었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유료 목욕탕 서비스를 시작하고 현지인 할인까지 해준다고? 참 어떤 놈인지 몰라도 남편은 진짜 가만 앉아서 전생으로 치면 셔터맨만 해도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큰 목욕탕에서 느긋하게 혼자 목욕을 하고 내방 침대에서 이실리엘의 머리 냄새를 맡으며 복귀 후 첫날 밤을 맞이했다.

안락한 침대의 포근함과 이실리엘의 체온이 주는 안정감 속에서 첫날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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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후. 일곱 개의 달이 모두 떠오른 한밤중임에도 구름이 두껍게 끼어 아주 어두운 밤이었다. 창가로 달빛이 비치지 않으니 방안에 사물을 보기 힘든 그런 밤.

어두운 밤임에도 나는 잠을 뒤척이고 있었다.

오늘은 이실리엘도 리젤다도 같이 자러 오지 않았다. 둘이 모종의 협상이 있었는지 벨의 집에서도 이틀이면, 이틀. 하루면, 하루 번갈아 가면서 내 방으로 오는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둘이 잔다나?

그 여성들만 찾아오는 한 달에 한 번 그 마법사가 되는 그날인가 싶어서 그냥 잠을 청하기로 했는데. 옆에 사람이 있다가 없으니 쉽게 잠이 오지 않았던 것.

이게 누군가를 안고 자면 엄청나게 따듯한 느낌에 잠이 솔솔 오는데 오랜만에 혼자 자니 좀 추웠다.

그렇게 뒤척거리다가 잠이 들락말락 할때쯤.

­끼이익

내방 문 열리는 소리가 나기에 잠결에 물었다.

“누구? 이실리엘? 리젤다?”

인영은 대답도 하지 않고 내 침대로 걸어왔다.

­스르륵

그리고 옷자락 떨어지는 소리가 잠결의 귓가에 들리더니 누군가 침대의 이불 한쪽 편을 들추었다. 이불을 들추고 잠깐 멈칫하는 것 같던 인영은 곧 이불속으로 파고들어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한쪽 팔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여체의 감촉.

나는 이실리엘인지 리젤다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을 돌려 그녀의 뒤를 품에 꼭 안았다. 한쪽 팔은 목 아래, 한쪽 팔은 허리 위.

가슴에 그녀의 맨살이 느껴지고 따듯한 가슴과 유...

“어!?”

나는 멍청한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알, 알몸?’

알몸으로 침대로 파고든 그녀 덕에 잠이 화들짝 달아나버렸다.

‘헛…. 누구지?’

이렇게 대담하게 남편의 침대에 알몸으로 파고들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느껴지는 이 가슴의 풍만감. 설마 이, 이실리엘? 나는 그녀의 위로 올라 재빠르게 가슴 사이로 파고들었다.

‘에로프여! 훌륭한 도발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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