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19화 (119/352)

〈 119화 〉 117. 대습지 사냥철 2

* * *

“러셀 언제 왔어!”

“아 지금 막 도착했지. 그런데 이놈들은 뭔데 네 멱살을 잡은 거지?”

에밀은 떠날 때보다 더 건강해진 모습이었다. 들풀 같던 머리카락에서는 싱그러운 윤기가 흐르고 마치 우기가 끝난 평원의 풀들이 생기를 머금은 느낌이랄까? 우기는 평원과 함께 평원 엘프였던 에밀에게 생기를 불어넣은 듯했다.

팔다리에도 살이 좀 더 오른 느낌이고.

에밀의 건강해진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너 이 새끼!”

나의 분노의 이단 옆차기를 처맞고 날아간 놈이 몸을 일으켜 달려들고 있었다. 그냥 처박혀있으면 그나마 사지는 멀쩡할 텐데 곧바로 나의 기대감을 배신하지 않고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이잉

“끄아악!”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달려오던 놈의 비명과 함께, 놈의 오른발이 날아든 화살에 그대로 땅 위에 고정되는 것이 보였다. 발등을 파고든 화살 틈으로 붉은 피가 흘러나오며 흙바닥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놈은 오른발을 감싸 안으며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댔다.

“끄아아악! 이, 이 새끼들!”

“빌!”

비명을 지르는 놈의 동료로 보이는 두 놈이, 피를 흘리며 주저앉은 놈을 보고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들었으나. 다시 날아든 두 발에 화살에 단검을 든 오른손이 꿰뚫리며 똑같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잘했어 로리엘. 도둑놈 새끼들은 손모가지를….”

“이실리엘?”

분명히 화살을 쏜 것은, 우리의 차가운 엘프녀이자 행동대장 로리엘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실리엘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자신의 활을 들고 놈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분노를 최대한 참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분명 맘먹고 쐈으면 뚫리는 게 아니라 손발이 날아갔겠지?

그리고 놈들에게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부족원에게 위해를 가하려 하다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에밀 무슨 일인지 확실하게 설명하세요.”

부족. 그거 그냥 에밀의 착각 아니었나?

“넷! 이실리엘님! 저희가 사냥해와서 말리고 있던 늪지 뿔소 가죽을, 저놈들이 저희 구역까지 들어와서 도둑질했습니다. 분명 저희가 사흘 전에 사냥해와서, 직접 기름기 제거하고 틀에 고정해서 말리고 있었는데 말이죠.

도둑질한 것을 가지고 나오다가 저희에게 들키기까지 했고, 저희가 저희 사냥감 표시까지 해두었는데 자기들 것이라고 계속 우기고 있었어요!”

에밀의 말이 계속될 때 멀쩡한 놈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 도망치려는 모습을 보이자 이실리엘이 벼락같이 소리쳤다.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면, 다음은 손이라 발이 아니라 머리입니다!”

오우야. 단호박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이실리엘이 여간해서는 이렇게 화를 내는 사람 아니, 엘프가 아닌데, 뭔가 단단히 화가 난 느낌 이었다. 하긴 엘프는 귀가 좋으니 아까 멀리서부터 들려왔던 소리를 다 들었겠지? 아마 에밀에게 다시 상황 설명을 시킨 것은 확인 정도일 것이리라.

더군다나 도난 문제라면 엘프들의 말을 백 프로 신뢰할 수밖에 없다.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 엘프들인데 남이 사냥한 가죽을 자신의 것이라 우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실리엘?”

나는 이실리엘은 조용히 아니, 조심히 불렀다.

“네, 러셀?”

이실리엘은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나에게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대답했다. 잠깐 사이 휙휙 변하는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를 보고 나는 결코 이실리엘을 화나게 하지 말아야겠다 결심했다.

“응, 조, 조금 진정하라고….”

“네, 알겠어요. 에밀이 붙잡히는 걸 보니 화가 나서 그만….”

그렇네? 그렇지 않아도 인간들한테 험한 꼴 많이 본 애를 또 저렇게 대하다니. 그러고 보니 열이 더 오르네? 그런 꼴을 당하고 저렇게 밝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 애를 또 괴롭게 하다니! 이 새끼들을 그냥!

“근데, 이 새끼들을 진짜!”

나는 그대로 달려가 멀쩡한 새끼의 정강이를 발로 차고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은 놈을 발로 연신 걷어찼다.

‘그냥 죽어버려 이 새끼야! 이 쓰레기 같은 놈들!’

­뻐억

“크헉…. 용, 용서해주세요!”

“러, 러셀 참, 참아!”

에밀이 곧장 달려와서 말리지 않았으면 오늘 송장 하나 치르는 건데, 너희들 오늘 운 좋았다.

그때 평원 엘프 하나가 울상을 지으며 땅바닥에 널브러진 가죽을 들고 왔다. 가죽은 딱 봐도 틀에서 단검으로 잘라서 떼어내느라 가죽이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가죽이….”

평원 엘프들이 다 같이 가죽을 보고 울상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다시 달려가 발로 걷어차려다가 에밀이 허리를 붙잡고 늘어져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이거 정리해야 하니까, 누가 가서 촌장님을 모시고 와.”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간신히 말했다.

촌장이라는 말에 바닥에 주저앉은 놈들의 표정에 절망이 떠오르고 있었다. 공백지 마을에서 촌장은 검사이자 판사 그리고 도둑질 같은 것은 손목을 자르거나 추방.

어지간해서는 둘 다 죽기 딱 십상이다.

“죄, 죄송합니다.”

“살, 살려주세요, 저희가 가죽에 눈이 멀어서 그만.”

“제, 제발!”

밖에서 소란이 커지자 여관에서도 사람이 한둘 밖으로 나와 구경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람들 틈에서 애니가 튀어나와 ‘도도도’ 달려오더니 나에게 뛰어들었다.

“러셀! 언제 왔어!”

“커흡…. 지금 막 왔어. 지금…”

어휴 얘들은 왜 다들 달려와서 이래, 정말 허리 나가겠다 정말. 이제 그 책임이 막중한 허리에 대한 걱정이 무척이나 들었다.

“첫째, 둘째 마님도 다녀오셨어요?”

애니와 아내들이 인사를 하는 틈에 몰려나왔던 사람 중, 한나 부인과 마리나가 우리를 확인하고 몰려나와 인사를 했다.

그때였다. 여관 입구. 그 사람들 틈에서 새빨간 머리카락이 보인 것은, 워낙 도드라지는 색이라 한눈에 들어오는 새빨간 머리. 발레리였다.

“러셀님!”

발레리가 한껏 반가운 표정을 드러내며 거대한 공 두 개를 좌우로 흔들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좌우로 흔들리는 그것에 시선을 빼앗긴 것도 잠깐, 저렇게 뛰어와서 달려들면?

비교적 몸집이 작은 에밀이나 애니가 달려들 때도 허리에 무리가 왔는데, 저 압도적 풍만감의 발레리가 달려든다면?

내 허리는 백 퍼센트 나가버릴 것이 확실했다.

반가워서 저러는데 받아줘?

아냐, 허리가 나가는데 피해?

발레리가 달려오는 그 잠깐의 순간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리고 발레리가 공중에 떠오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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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에 엎어져 있던 발레리가 정신을 차린 것은 창밖에서 엘프들과 용병들의 소란이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을 때였다.

아까 분명 도난 사건이라고 했었지?

이젠 정신을 차리고 빨리 나가 봐야 했다.

엘프들이 남의 물건을 탐할 리는 없으니 분명 또 용병들이 엘프들의 물건을 손댄 것이리라. 사냥철이 오고 남이 사냥한 물건이나 가죽을 탐내는 버릇 나쁜 용병들이 자꾸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벌써 엘프들의 물건을 손댄 사건만 해도 세 번째였다.

엘프들의 거주지는 원래 마을을 감싸던 둥그런 목책에 작은 원형을 덧붙인 형태. 그렇기에 입구가 좁다. 첫 도난 사건 이후 밤에는 엘프들이 그곳에 둘씩 경계를 서니 문제가 없었는데, 그 후에는 몰래 목책을 넘어와 도둑질한 사건이 두 번이나 벌어졌다.

오늘은 경계가 없는 대낮에 엘프 구역으로 침입한 것 같은데, 이젠 밤낮으로 경계를 세워야 할 것 같았다.

러셀의 방문을 닫고 3층 복도로 나왔다. 러셀의 방 너머 이번에 새로 만든 방을 바라봤다.

여관을 확장하면서 3층에 방을 4개 더 만들었는데, 러셀과 그 아내들을 위한 방이었다. 저 방 하나는 내 것이 되겠지? 발레리는 행복한 생각에 볼을 살짝 붉게 물들였다.

행복한 미래에 관한 생각과 ‘그나저나 러셀은 언제 오는 걸까?’라는 아쉬운 의문이 머릿속에서 교차 될 때쯤이었다.

밖에서 ‘러셀’ ‘러셀’ 하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환청같이 들려왔다.

‘설마? 설마?’

설마설마하며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가자 저 앞에 엘프 구역 앞쪽에 자신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러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

‘진짜? 진짜 러셀님 이라고?’

“러셀 님!”

달렸다. 붉은 머리가 휘날려 시야를 가려도 달렸다. 그리고 반가운 마음과 보고 싶었던 마음으로 한껏 부풀어 오른 가슴으로 러셀 님의 품으로 날 듯이 뛰어올랐다.

공중에서의 러셀님의 품으로 날아드는 그 잠깐이 영원같이 느껴졌다.

그때 들려오는 러셀님의 다급한 목소리.

“발레리? 안돼!”

­철퍼덕

“꺄욱….”

러셀의 품 안으로 날아든 발레리가 느낀 것은 따듯한 러셀의 품이 아니라 딱딱한 땅바닥의 느낌이었다. 가슴과 코에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후둑 후두둑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에 멍해진 정신으로 바닥을 보니 흙바닥에 빨간 핏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씩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발레리!”

첫째, 둘째 마님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발레리의 귓가에 들려왔다. 러셀의 어쩔 줄 몰라 하는 목소리도.

“발레리 미, 미안. 이게, 그게, 아니. 피하려고 한 건 아닌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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