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18화 (118/352)

〈 118화 〉 116. 대늪지 사냥철 1

* * *

남부의 긴 우기는 늪과 메마른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우기가 끝나고 몇 주가 지나면 평원에 마른 풀들이 생명을 얻어 바람에 날려 춤추고, 수많은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풀과 나무, 들꽃들로 대지에 생명이 풍성해지니 당연히 초식동물들이 그 기간에 맞춰 번식을 시작하고, 그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육식 동물들이, 늘어난 초식동물들을 잡아먹으며 살을 찌운다.

그리고 이때 대습지에 사냥철이 도래한다.

만물이 풍성하고 몬스터와 마물들이 번식하는 이때가 사냥의 적기이기 때문이다. 몬스터와 마물의 가죽에 윤기가 오르고 살이 올라 부산물의 가치가 높아지니 용병, 사냥꾼, 모험가들이 앞다투어 대늪지를 찾는다.

그렇기에 지금 웜 포트는 몰려드는 상인들과 용병, 모험가들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발레리님 목책 밖에서 또 용병들이 소란을….”

“발레리님 엘프들의 거주 구역에서 도난 사고가….”

“발레리님 상인들이 마을에 들어오는 비용을 물어오고 있는데요?”

그래, 러셀도 생각 못한 문제, 사냥철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들 줄 예상을 못 한 것과 그 인간들이 벌일 사고를 예상 못한 것이었다.

“으아아아…!.”

발레리는 러셀의 방에서 사람들이 계속 가지고 오는 문제를 멍한 얼굴로 보고 받다, 결국은 소리를 지르며 책상 위에 엎드리고 말았다.

발레리에 그런 모습에 보고를 위해 달려왔던 사람들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 밖으로 사라졌다.

“이, 이런 말은 없었는데요. 러셀님….”

발레리는 책상 위에 엎드려 소심하게 러셀을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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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이 조금 넘는 시간. 여러 곳을 여행하며 많은 일들은 겪은 우리는 느끼지 못했지만, 백일이 넘는 시간은 상당히 긴 시간이었던 것 같았다. 남부 웜 포트 마을에는 말이다.

여행을 다녀온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화살같이 지나간 시간이었는데, 웜 포트의 광경은 정말 몰라보게 바뀌어 있었으니 말이다.

발레리가 생각보다 일을 잘했다는 증거였다.

벨의 집인 윈터 폴을 떠나 마법 문을 통해 우리가 도착한 곳은, 새로 지어지고 있는 성전 한편이었다.

그곳에서 마법사 셋과 시트라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다녀오셨나요. 러셀님.”

헤어질 때만 해도 뭔가 날카롭고 짜증 섞인 얼굴이었던 시트라가 자애롭고 따듯한 미소를 가진 천사가 되어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난 상처 자국이 어울리지 않게 말이다.

“이거 이곳 생활이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얼굴이 좋아 보이시네요.”

내 말에 시트라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네, 따듯한 곳이네요. 여관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성전이 지어지기 전까지 내 여관에서 계속 묵을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런데 성전이 작은 성전이라고 하지 않았나? 뭔가 내가 생각했던 그것보다 크고, 석재로 본격적으로 지어지고 있는 느낌인데?

“어, 근데 성전이 작은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성전 크기에 놀라 시트라에게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이 놀라웠다.

“예, 제일 작은 신전 맞습니다. 러셀님.”

헐. 내가 생각하는 작다는 것과 시트라가 생각하는 게 작다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생각했어야 했는데 뭐 성전이 있으면 성수도 구할 수 있으니 나쁜 건 아니니까….

“제,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좀 크군요.”

“어머, 저는 러셀님이 종교에 깊은 이해와….”

“아하하하 그, 그럼요. 그 그럼. 이따 여관에서 뵙겠습니다.”

나는 또 이단 사이비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재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종교인은 아직도 꺼려진다니까.

성전의 위치가 마을 광장 근처였기에 여관으로 향하던 우리는 목책 입구에 사람이 몰려있는 걸 확인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니 나를 확인한 마을 사람들이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어? 러셀, 언제 왔나?”

“아, 버튼씨 오랜만입니다. 지금 막 도착했어요.”

“여어, 러셀 결혼식은 잘 하고 왔나?”

“오, 촌장님. 예, 덕분에요. 무슨 일이죠. 근데?”

촌장님은 이마를 훔치며 넌덜머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아, 이번 대늪지 사냥철에 이상하게 우리 마을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왔네, 보통은 그란폴에 자리를 잡는데, 이상하게 마을로 몰려들어서, 안에 자리가 없다는데도 기어코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이지.”

그리고 보니 목책 밖에서 껄렁껄렁한 용병 놈들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 좀, 안에 들어갑시다!”

“아니, 돈 낸다니까 그러네!”

아니 이 새끼들이 진짜. 마이 홈 타운에서 소란이라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땐 역시 로리엘이다.

“로리엘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것 없을까? 겁먹을만한?”

“이런 것 말인가?”

로리엘이 슬쩍 손짓하자 로리엘의 손가락 끝에서 시작한 불꽃이 빠르게 그 크기를 키워 가더니 대형 견만 한 불타는 도마뱀으로 변했다.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놀라 다들 로리엘의 주변에서 물러났는데 정작 로리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우와앗! 로, 로리엘 이런 걸 할 때는 제발 말을 먼저….”

“아, 알았다 미안하다 러셀.”

“아, 아니 미안한 것까지는 없고.”

이실리엘의 할머니 집에서 있었던 그날 밤 이후, 이상하게 풀이 죽은 것 같은 로리엘 이었기에 나는 당분간 로리엘의 기분을 잘 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

“촌장님 문 여시죠.”

내 말에 촌장님의 지시로 목책이 열리자 반대편에서 득의양양한 목소리가 들리며 용병 몇 놈을 선두로 사람들이 마을 입구로 들어섰다.

“진작 그럴 것이지 아무튼 촌놈 새끼들은….”

물론 그 말이 끝까지 이어지진 못했지만 말이다.

“어떤 새끼들이 공백지 마을에서 소란이고 행패냐? 공백지 마을에서는 촌장의 말이 곧 법인 것 알지?”

“아무튼, 한 번 더 소란 피우는 새끼들은, 우리 강아지랑 잠시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자고?”

내 말이 끝나자 로리엘이 부른 중급 불의 정령이 긴 채찍 같은 불의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몇 발짝 앞으로 나서며 놈들을 위협했다.

“으어어어….”

“그럼 앞으로 조용하리라고 믿는다? 알겠냐?”

“예 옛!”

놈들은 빠르게 분노가 조절된 모습을 보이며 근처로 흩어졌다.

“역시! 러셀이 있어야 마을이 좀 굴러간다니까. 하하. 러셀, 그러지 말고, 촌장도 자네가 하지 그러나. 나는 이제 나이를 먹어선지 쫓아다니기가 힘들어.”

아니, 이분이 얼마 전에 도둑 세 명 곤봉으로 피죽을 만드셔놓고 죽는시늉은? 귀찮아서 나한테 드랍 시키려는 속셈이 뻔히 보이는데.

“어휴, 원래 마을 촌장은 연륜과 인품이 훌륭한 촌장님 같은 분이 맡는 거죠. 저 같은 일개 은퇴 용병 나부랭이가 어떻게….”

“아니, 이 사람 자네처럼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연륜은 어차피 다 나이를 먹게 되어있는 것이고.”

잠시 이어지던 우리의 논쟁은 내가 도주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아무리 해도 끝나지 않을 상대방 얼굴에 금칠하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관 쪽으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 여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관은 일자였던 건물이 기역 자로 확장되어있었고, 목욕탕 건물도 두 배는 넓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삼 층에는 내 방만 있었는데, 삼 층이 건물 절반 정도까지 크기가 확장되어 방이 서너 개는 더 생긴 듯했다.

역시 발레리는 인재였다. 여관의 바뀐 모습을 보니, 외상 돈 가지고 와서 발레리랑 바꾸자고 하면 돈 대신 발레리를 받을까? 하는 고민까지 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여관 쪽으로 걸어가자 여관 뒤쪽 목책이 넓게 확장되어있는 모습이 보이고 엘프들의 거주지가 그곳에 들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다소 시끄러운 소리가 엘프들의 거주지 앞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가죽은 우리 것이 확실하다. 여기 엘프들의 표시가 있지 않나! 우리가 건조 시키던 가죽이 분명한데 왜 도둑질을 한 것이냐!”

“이년이 이건 그냥 상처라고 우리가 밖에서 잡은 거라니까 그러네!”

에밀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에밀의 목소리가 화가나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하디순한 에밀이 화를 내다니! 토란잎으로 만든 모자를 뒤집어쓴. 우리 귀염둥이 에밀인데! 어떤 새끼들이 감히. 우리 여관의 영원한 여동생, 우리 여관 정원사이기도 한 에밀을!

나는 다리를 절룩이며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엘프들의 구역으로 들어가는 목책 입구에 용병 서너 명과 엘프 서너 명이 말다툼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달려가는 사이 흥분을 참지 못한 용병 놈이 에밀의 멱살을 틀어쥐는 게 보였다.

아니? 저 개새끼가?

나는 그대로 날아올라 군대에서 태권도 시간 아니, 축구 시간에 배웠던 이단 옆차기를 놈의 옆구리에 꽂아 넣었다.

­퍼억

“멈춰! 이 새끼야!”

“이년이! 커 헉….”

­쿠당탕

“이 새끼들이. 오늘 아침 뭘 먹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너희들 마지막 식사 다 알겠냐!?”

내가 포효하듯 외쳤다.

“러셀!”

그리고 에밀이 날 듯이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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