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14화 (114/352)

〈 114화 〉 112. 수리아 나파로아 6

* * *

“어? 안 가봐도 되나요?”

‘저거 안 도와줘도 되나? 오우거라는데.’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 온 김에 그럼 오우거 잡는 모습이라도 한번 보여드려야겠군요.”

우리는 에삭스 성에 도착하자마자 수리아 왕녀의 손에 이끌려 성벽으로 향했다. 오우거 사냥 투어 뭐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성벽으로 가는 그사이 왕녀가 두 번이나 죽을뻔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탑에서 떨어질 뻔한 것 한번, 성벽에서 떨어질 뻔한 것 한번, 눈과 얼음의 여신은 진정 미친년이었다.

더군다나 성벽 너머로 굴러떨어질 뻔했을 때는, 그 모습을 보고 이실리엘이 깜짝 놀라서 바람의 정령까지 불러냈으니까 말이다. 붙잡지 않았으면 성벽에서는 분명 떨어졌으리라.

‘아니, 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지?’

“그, 왕녀님? 성벽이나 탑에서 이렇게 떨어질 뻔하시면, 대체 평소에는 어떻게?”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왕녀님 이러다 죽겠어요!’

“빨리 가야 할 때는 훈련된 말이나 나귀를 타거나, 앉아있는 의자를 병사들이 들고 이동합니다.”

왕녀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 저 마음 이해한다.

딱 봐도 공주기사 ‘큭 죽여라’ 이런 이미지인데 이상한 능력 때문에 이미지가 덜렁이, 푼수 급이다.

이실리엘은 그런 왕녀가 딱했는지 바람의 정령으로 왕녀가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어, 그 후에는 아무 일 없이 성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성벽은 혼란한 상태였다. 성벽으로 다가오고 있는 오우거 두 마리를 향해 병사들이 활과 석궁을 연신 발사하고 있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병사들의 훈련 상태가 명백히 괜찮아 보이는 게, 병사들의 화살이나 볼트가 오우거의 눈을 노리고 사정없이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병사 전원이 조준사격을 정확히 하고 있다는 것.

성벽 위를 확인하니 병사들이 아주 침착한 모습으로 활을 조준하고 있었다.

매서운 화살에 오우거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천천히 접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발사!”

그리고 그때. 준비를 끝낸 대형 발리스타에서 화살이 발사되어 오우거 한 마리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오우거는 고통에 괴성을 질러대더니 급하게 발리스타의 화살을 뽑아내고는 다시 산맥 쪽으로 부리나케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한 놈은 그사이 성벽으로 붙고 말았는데 놈이 성벽을 후려치려는 모습에 왕녀가 한 병사의 손에서 투창을 빼앗아 놈을 향해 던졌다. 디딤발이 미끄러우니 창이 제대로 날아갈 리 없었지만, 신기한 것은 왕녀의 손에서 창이 떠나자마자 오우거가 그대로 큰 소리를 내며 땅을 굴렀다.

­쿵

놈은 일어나려고 노력했지만 계속 땅을 구르다가 발사가 준비된 발리스타에 여기저기 몸을 뚫려 바닥에서 신음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또 직접 보니까, 능력이 생각보다 사기네?’

하긴 정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페널티인데, 저 정도도 안 되면 여신이 멍청한 게 아니고 나쁜 년이지. 대충 보니까 왕녀가 ‘너 적’이라고 생각하는 상대는 빙판 위에 올라가는 느낌이니까 말이다.

오우거가 아직 살아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왕녀는 지금까지 조심스러운 행동과는 다르게 정상인처럼 돌아다니며 설명을 시작했다.

“보통은 활과 석궁으로 저렇게 시야를 차단하고, 대형 발리스타를 쏘아서 잡아내는데, 저놈은 운이 좋군요. 성벽에 다가왔다 다친 놈들은 다시 접근하지 않으니 뭐 괜찮겠지요.”

성벽 앞에 엎어진 놈을 제외하고 이미 멀어지고 있는 놈을 바라보며 왕녀가 말했다.

그때 거대한 불화살이 도망가는 오우거의 뒤통수에 꽂히더니 오우거가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옆을 바라보자 로리엘이 활을 다시 등에 메며 말했다.

“다친 오우거는 난폭해진다. 잡아두는 게 좋겠지.”

역시 차가운 엘프녀 로리엘.

성벽 위에 병사들이 그제야 왕녀를 확인하고 깜짝 놀라 군례를 취하다 엘프들을 보고 다시 한번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왕녀는 훈련된 병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본데 로리엘이 자기 자랑만 해버린 꼴이었다.

성벽의 소란이 정리되고 왕녀가 성에서 하루 묵고 가기를 청했지만, 벨을 어서 빨리 만나고 싶은 이실리엘은 그녀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죄송해요. 친구를 빨리 만나고 싶어서요.”

­­­­­

수리아 왕녀의 말대로 벨의 집은 왕녀의 성에서 멀지 않았다. 에삭스 쪽은 대산맥을 두르고 있는 긴 성벽을 지원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에, 많은 귀족의 성이나 영지가 비교적 산맥과 가까웠고 작위가 높을수록 더 최전선에 가까웠다.

벨의 가문은 공작 가문이니 성 바로 인근에 있었다. 반나절 정도 말을 달리자 벨이 살고 있다는 공작가가 나타났으니까 말이다.

벨의 집은 요새였다. 하늘까지 닿을듯한 협곡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요새.

요새 문 앞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이실리엘이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하자 이실리엘의 금발을 본 병사들이 새파랗게 질려 요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이실리엘의 인간 친구 벨이 뛰어나왔다.

“이실리엘!”

“벨!”

딱 봐도 가택연금이라도 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뒤로 여자 기사들이 헐레벌떡 달려오는 게 보였으니 말이다.

“결혼식은 잘했어?”

“응, 벨 이제 나는 완전히 러셀의 것이야!”

“리젤다도?”

“네, 벨님…”

“둘 다 축하해! 어서들 와. 윈터 폴에 온 것을. 환영해!”

벨을 따라 요새 문 안으로 들어가자 비탈 위 요새 뒤쪽으로 벨이 살고 있을 법한 저택과 마을이 죽 늘어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벨의 설명으로는 앞에 성이 뚫렸을 때 인간의 마지막 보루라고 했다.

“여기가 윈터 폴이야!”

한쪽에서 검을 수련하는 기사들의 함성과 양쪽에 솟아오른 협곡에서 맹금류가 길게 울부짖는 소리가 협곡에 울려 길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벨의 안내를 받아 요새 뒤쪽 그녀의 저택으로 갔다. 저택 근처에 다다르자 벨과 같은 파란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부인과, 몬스터의 손톱자국이 이마부터 턱까지 길게 이어진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남자가 걸어 나왔다.

“숲의 첫 번째 자녀에게 영광을. 윈터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밀튼이라고 합니다.”

“비비안 입니다.”

저택 앞에서 벨의 부모님과 인사를 나눈 우리는 안으로 안내되어 짐을 풀고, 응접실에서 다과를 접대받았다.

“그래서 왕녀님을 따라왔어, 왕녀님이 성으로 가시는 마법 문을 이용했거든.”

이실리엘은 지금까지 일들을 벨에게 보고하듯이 말하고 있었다.

“아 그래서 빨리 올 수 있었구나. 리젤다 결혼 소식은 들었는데 찾아갈 수 없었어… 그, 방에 갇혀…”

“크흠…”

벨의 아버지가 벨이 무슨 소리를 하려고 하자 목을 가다듬는 척을 하며 눈치를 주셨다. 그러자 벨이 입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잠깐 다녀온 것뿐인데.”

“부모님 몰래 가출했으니, 반성을 시간을 가져야 했겠지. 당연한 거다.”

내가 그래서 벨의 아버지께 사이다 한잔을 대접했다. 벨은 아직 반성이 부족한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이익… 러셀은 정말… 베~”

벨이 혀를 내밀다 아버지의 눈총에 곧 얌전해졌다.

내 말에 벨의 아버지는 속이 시원한 느낌이신지 나를 보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물으셨다.

“며칠이나 계실지 알 수 있을까요 러셀님?”

“어휴, 말씀 편히 하시지요. 아내의 친구면 제 친구기도 하고, 친구 아버지이신데요.”

“그, 그래도 됩니까?”

“제가 귀족도 아닌데 그런 존대는. 불편합니다. 아버님.”

내 말에 벨의 아버지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럼 여자들끼리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하고 자네는 나랑 가세. 윈터 폴의 협곡 요새에 왔으면 요새 구경을 해야지!”

벨의 아버지의 안내를 받으며 협곡의 요새를 구경했다. 벨 아버지의 말로는 윈터폴 가문은 뛰어난 검가라고 했는데 그래서 벨의 오빠 둘은 둘 다 현재 성벽에서 복무 중이라고 했다.

“아니, 남부가 어디 뒷동산인가? 대륙의 끝에서 끝이네! 그런데 가출하다니 안 그런가?”

“맞습니다. 거기가 어디라고 높은 엘프를 따라서 가출한단 말입니까. 부모님들 가슴이 얼마나 걱정으로 힘드셨을지 저는 짐작하기도 힘듭니다.”

“이 친구 정말 말도 시원하게 해주는구먼.”

벨의 가출 때문에 그간 걱정이 많으셨었나 보다. 나는 벨의 아버지를 열심히 위로해야 했다. 진짜 거기가 어디라고 가출하냐. 그 가출 덕에 도움을 많이 받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아버님을 닮아서 그런지 벨 영애가 아주 영특한 것이, 남부에서 참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영애가 없었으면 제가 이실리엘과 결혼을 할 수 있었을지…”

“감사합니다. 아버님.”

내 감사에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벨의 아버지가 물었다.

“아니, 왜 나한테 감사를?”

“다, 아버님이 벨 영애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줘서 제가 도움을 받았으니, 전부 아버님의 덕, 아니겠습니까?”

“뭐라고? 하하핫! 이 사람 무척 재미있는 친구구만.”

벨의 아버지는 한참을 웃더니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번에 왕녀와 함께 왔다고?”

“예, 왕녀님 정말 볼 때마다 걱정돼서,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그 능력만 아니라며 국왕이 되셔도 될 분인데. 아, 자네가 현자라는 칭호가 있다고 했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자네 고견을 들어보고 싶구만.”

벌써 현자 타령이 북부에 소문이 다 난 것 같았다. 제길.

벨 아버지의 입에서 왕녀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현재 에삭스의 국왕은 노환 중이고 유일한 계승자는 수리아 왕녀라고 했는데, 에삭스의 국왕 위는 남자 계승 원칙이라고 이라는 것.

“혼인이라도 한다면 사내아이에게 왕녀의 성을 물려주는 조건으로, 왕위를 계승할 수 있겠지만 그 능력 때문에… 더군다나 왕녀께서는 그다지 왕좌에 욕심이 없으시네.”

결혼을 하는 데는 딱히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이곳 사람들 생각은 다른가?

더 큰 문제는 차기 계승권자가 그녀의 사촌 오빠인데 문제는 무력이 전무 하고 전선에 한 번도 선적이 없다는 것. 심지어 후방의 영지에서 연회 때 빼고는 얼굴을 볼 수 없다나?

북부의 대부분 여론은 무력도 약한 놈이 정치에만 매달려 왕위를 얻으려는 쓰레기 같은 놈이라는 평가라고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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