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07화 (107/352)

〈 107화 〉 105. 세계수 6

* * *

높은 엘프들의 연회.

엘프 중 높은 엘프 열두 핏줄의 엘프들이 여는 연회, 이곳은 금발 미녀들의 천국이었다.

모계 중심으로 돌아가는 엘프 사회인지라 연회에 남자는 몇 명 없었고, 참석한 대부분의 엘프는 여성이었다.

나는 열두 핏줄의 엘프들이 모인다기에 모일 사람이 몇백 명은 되는지 알았는데 어림잡아 이백 명쯤 될까? 열두 가문 모두 소개받으며 인사를 나눴는데 한 가문당 스무 명이 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세계수의 번식 제한은 무서운 것이었다. 하긴 엘프들은 짧게는 수백 년에서 천 년 이상을 사는데 이실리엘처럼 강한 엘프가 수천 명씩 있으면 말이 안 되긴 하지.

그리고 실리아가 그렇게 롱 윈드 번식에 연연하던 이유도 이곳에 와서 확인할 수 있었다.

롱 윈드 핏줄은 수가 제일 적었다. 열 명 남짓.

내 주변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롱 윈드의 엘프들을 보며 나는 내 책임이 막중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옆에서 엘프들과 대화를 나누며 나무 수액을 마시는 이실리엘을 보고 다짐했다. 이 내가 롱 윈드 가문을 부흥시켜 보겠다고 말이다.

‘오늘 밤도 노력하자!’

“러셀 이것 좀 드셔보세요.”

이실리엘이 자신이 마시는 것과 같은 나무 수액을 가져다주었다. 아까 조금 맛봤는데 그냥 딱 고로쇠 수액 맛이어서 마시지 않았는데….

이실리엘이 가져다주면 마셔야지.

“이실리엘, 근데 높은 엘프들은 다들 금발이야? 다른 머리 색이 없네?”

“아 러셀은 그렇게 보이겠군요! 잠시만요.”

이실리엘이 로리엘이 하던 것처럼 내 양쪽 눈을 만져 정령 안을 걸어주었다.

“윽….”

이실리엘, 이거 하기 전에 제발 말 좀….

잠시 후 눈을 뜨자 온 사방의 정령의 빛이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프긴 한데 할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정말 이 총천연색의 아름다움은 항상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제일 처음 들어온 것은 순백색의 빛.

그렇다 내 아내의 머리카락 순백색이었다. 은은히 빛을 내는 플레티넘 화이트라고 해야 할까?

“어 어떻게?”

“아 저희 원래 머리 색은 세계수 주변에서 정령안으로 봐야만 알 수 있어요.”

엘프들의 머리 색은 정말로 다양했다.

멜팅 플레임 (Melting Flame) 가문의 타오르는 붉은색, 루티드 어스 ( Rooted Earth) 가문의 칠흑처럼 어두운 검은색, (Eroding Water) 어로딩 워터 (Eroding Water) 가문의 푸른 코발트색이 가장 눈에 띄고 다른 가문들도 머리 색이 밝게 빛나긴 했지만, 이 네 가문처럼 밝고 선명하지는 않았다.

왜 엘프들이 사대 정령 가문을 우러러보는지 알 수가 있는 부분이었다.

그냥 딱 봐도 이건 남들과 전혀 다른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다 모아두고 보니 이건 뭐랄까? 크리스마스트리?

세계수를 배경으로 금발 아니, 총천연색 미녀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라…

뭔가 낭만적인 느낌이었다.

이실리엘과 여러과일과 수액을 맛보고 엘프들과 나누는 교류는 즐거웠다. 인간이라 배척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다들 호의적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연회의 막바지 나는 에스미가님에게 이끌려 연회장 한가운데로 끌려가 인사를 해야 했다. 연회 처음에 해야하는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엘프들의 순서는 좀 다른듯 했다.

중앙으로 인사를 하러 끌려 나간 자리. 문제는 내가 엘프어를 모른다는 것.

‘대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죠?’

‘그냥 러셀이 하고 싶은 인사를 하면 됩니다.’

‘머릿속으로 말씀드리면 통역을 해주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이런 자리 무척 불편해서 엄청나게 떨리는데 거기다가 인사까지 해야 한다니.

나는 에스미가님에게 한쪽 손을 잡혀 인사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그, 러셀이라고 합니다. 음… 환영해 주셔서 감사하고 이렇게 가족으로 맞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제가 인간이라도 엘프의 문화를 존중하고, 앞으로 이실리엘과 노력해서, 롱 윈드의 부흥에 힘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풉…”

에스미가님의 폭소 그리고 진정하신 에스미가님의 통역을 전달받은 엘프들이 다 같이 크게 웃었다. 물론 이실리엘의 얼굴은 새빨갛게 되었지만.

엘프들 감정이 적은 줄 알았는데 19금 개그는 어디 가나 먹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그날 연회의 최고 호감남이 되었다.

나중에 다들 이실리엘에게 와서 롱 윈드의 부흥이라는 부분이 아주 인상 깊었다는 소회를 밝혀 주어 이실리엘을 몇 번더 부끄럽게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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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제 끝.”

한밤중 발레리의 목소리가 러셀의 방에 나직이 깔렸다.

러셀이 북부로 두 명의 부인을 데리고 떠난 후 여관의 모든 업무는 발레리의 차지가 되었다. 뭐 작은 여관이라 상단에서 일하던 때보다 훨씬 편하게 일하고 있지만, 러셀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발레리는 손을 들어 자기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잘한 일이 있을 때 자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러셀의 손길은 참으로 따듯하고 컸는데.

러셀이 주고 간 장부.

러셀이 가르쳐준 장부 기록법으로 기록한 장부는 기록할 때는 조금 손이 많이 가도, 나중에는 아주 편하게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아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단순히 수입 지출뿐만 아니라 그 원인을 기록하는 방법이라니. 러셀은 정말 대단한 사람.

자신이 그런 대단한 남자의 것이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신의 큰(?) 가슴을 벅차게 할 수 있는 존재라니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은 것이다.

책상 옆에 러셀의 침대를 바라보자 이실리엘님과 리젤다님이 떠나기 전 해주었던 약속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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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당신의 결심은 알았어요. 일단 칼을 내려두고 이야기해요.”

“그, 그래요. 발레리 저희는 다 이해해요. 러셀은 정말 좋은 사람이니까요. 그렇죠?”

분명 러셀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말한 사람은 리젤다 한 명이었지만 방안에서는 셋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실리엘, 리젤다, 발레리 셋 말이다.

“발레리 언제부터인가요?”

리젤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발레리의 어깨에 다시 가운을 덮어주며 물었다.

“그…. 러셀 님이 직원으로 삼아주시고 미천한 저에게 중대한 비밀들을 알려주시는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러셀 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요.”

“어머 어머 어머! 운명! 운명을 느낀 것이군요!”

벨이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다. 북부 소녀에게 연애 이야기란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운명?”

이실리엘이 되묻자 벨이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를 셋에게 자신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

“운명이란 덫과 같은 것.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영혼을 속박해 오는 것이지.”

“마! 맞아요. 벨 님!”

발레리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했다. 그래 분명히 그랬다.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러셀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보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북부 공작가 출신이라고 하셨던가? 위대한 가문인 만큼, 벨님은 역시 높은 엘프의 친구가 될만한 위대한 지식을 소유하고 계셨다.

“그렇군요. 운명이라니. 그러고 보니, 저도 어느샌가 그에게 빠져들고 만 자신을 발견하고 말았죠.”

리젤다의 고백이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자신도 러셀에게 운명 같은 것을 느꼈으니까 말이다.

“맞아요. 그저 잠깐 별거 아닌 시간을 같이 보낸 것뿐인데, 그가 자꾸 떠오르고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면서 행복하고, 이것이 운명?”

이실리엘이 두 손을 모으고 공감한다는 듯이 말했다. 러셀이 자신을 구해준 순간 자신의 영혼은 그에게 속박되었으니까 말이다.

다 같이 벨이 했던 말을 되뇄다.

“운명은 덫과 같은 것.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영혼을 속박해 오는 것.”

“운명은 덫과 같은 것.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영혼을 속박해 오는 것.”

“운명은 덫과 같은 것.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영혼을 속박해 오는 것.”

“아아… 운명은 위대한 것이군요,”

이실리엘, 리젤다, 발레리 셋은 어느새 같이 손을 잡고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해주고 있었다.

이실리엘이 발레리의 가운 깃을 여며주고 목에 난 피를 손으로 훔쳐주며 말했다.

“그래요. 우리 모두 운명의 끌림을 느낀 것이었어요.”

“그래 너희 셋은 같은 운명으로 묶인 것이 확실해. 대단한 일이라고!”

발레리가 호들갑을 떨면서 소리치자 이실리엘, 리젤다, 발레리 셋이 동시에 말했다.

“운명”

­­­­­

러셀의 방에서 그때를 생각하며 발레리가 혼자 조용히 말했다.

“운명….”

그리고 이실리엘님과 리젤다님의 약속을 생각했다.

정실 두 분께서 돌아오시면 최대한 빨리 자신과 러셀의 신방을 차려주신다고 했으니, 그걸 생각하면 오늘도 가슴이 설레는 발레리였다.

발레리는 러셀의 침대에 엎어졌다. 그리고 숨을 한껏 들이켰다. 내일 또 여러 가지 업무를 하려면 기운이 필요했고 러셀의 냄새는 자신의 기운을 나게 해주는 특효약이었다.

그리고 지금 특효약을 들이켜고 싶었다.

­흐읍

하지만 한껏 들이킨 러셀의 침대에서 러셀의 향이 오늘은 나지 않았다. 분명 오늘 여관 이불 빨래를 하는 날이었는데 애니 고것이 이불을 가져가서 빨아버린 것 같았다.

정말 도움이 되지 않는 애니였다.

‘에휴…’

발레리는 할 수 없이 숨겨둔 러셀의 셔츠를 꺼냈다. 출발하는 날 러셀이 벗어둔 것을 서랍 속에 숨겨둔 것이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업무를 위해 러셀의 책상을 사용하려고 왔다가, 셔츠를 발견하자마자 책상 속에 숨겨버렸다.

그리고 그때의 선택을 지금의 발레리는 칭찬해주고 싶었다.

­하읍

러셀의 향이 진하게 콧속으로 스며들고 발레리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졌다.

잠시 후 러셀의 방 문틈으로 작은 발레리의 신음이 나직이 흘러나왔다.

“하웃…”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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