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06화 (106/352)

〈 106화 〉 104. 세계수 5

* * *

“후 훗…”

재미있는 생각이네요. 그런데 그 생각은 그런 것이랑 좀 달라요. 물론 러셀의 아이들은 좀 더 건강한 영혼을 가지겠지만 굳이 번식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예? 그럼?”

러셀이 이 세계에 살면서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는 감정만으로도 아주 충분하게 영혼의 풀은 건강해지니까요. 그러니 러셀이 모험가를 선택해서 많은 곳을 여행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준 것은 저희에게 아주 감사한 일입니다.

“아니, 근데 중요도치고는 저 좀 막 다뤄진 것 같은데요?”

내가 그녀에게 따져 묻자 그녀가 조금은 난처하다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그게 저희가 살고 계셨던 지구보다, 직접 하계에 힘을 내보일 수 있는 세계이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러셀에게 어떤 일을 강요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러셀의 행동을 유도하려고 했는데.”

“그게… 항상 어떻게 된 일인지. 자꾸 저희가 의도한 것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하셔서…”

뭐야 내 결국 탓이라고?

“아니,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건?”

“영혼의 분열이 한계치에 달한 두 분이라 아마 그대로 두셨어도 병으로 사망하여 영혼이 사라질 것이기에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급하게 상계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아마 마을에 며칠 더 계셨으면, 근처를 지나던 성국에서 온 성기사들의 눈에 들어 좀 더 편한 생활을…”

아니, 일단 성국은 패스. 어릴 때부터 종교 국가에서 자라는 건 거절이니까.

“그, 그럼 15년간 아무 능력도 받지 못한 것은?”

“그건 그… 아이들의 욕심과 격 때문에…”

“넷?”

욕심? 무슨 말일까? 격은 또 무슨 말이고.

“그, 예전에 정령과 계약을 하려고 하셨죠?”

내가 원하던 이능 중에 정령석과 정령사에게 까지 부탁해서 정식으로 시도한 일이었으니 당연히 기억한다. 몇 년 모은 돈 다 날렸지 아마…

“그… 소환술식은 완벽했어요. 관심 있어 하는 정령들도 많았고… 다만 그, 강력한 영혼의 소유자의 부름을 느낀 상급 정령들이 서로 싸우는 통에… 다른 아이들은 눈치만 보느라…”

“아마 한두 번 더 시도하셨으면 누군가 달려갔겠지만….”

뭣? 싸, 싸워?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 그래요. 그럼, 다른 능력들은?”

“다른 능력을 원했을 때는 격이 맞지 않았습니다. 러셀같이 보다 높은 영혼을 소유하고 있는 존재가 전사들의 신이나 궁수의 신, 암살자의 신 따위의 하위 신들에게 능력을 받다니요. 최소 종족신이나 그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지역이나 작은 개념을 다스리는 신들이 러셀을 차지한다니, 그건 저희 높은 신들이 결코 용납…”

그러니까 이 세계에 존재하는 영혼들보다. 높은 격의 원종의 영혼이라. 능력 받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원하는 어떤 능력이라도 받을 수 있었지만, 자기들끼리 날 가지고 경쟁하느라 높은 분부터 낮은 분까지 분쟁이 있으셨다는 말이구나…

‘이 씨바아알!’

나는 속으로 욕설은 내뱉었다. 그래 읽으려면 읽어라! 이 세계에서 아무 능력 없이 십오 년을 굴러야 했던 게 고작 단순한 그런 이유라니!

“러, 러셀 진, 진정하세요. 저, 저는 항상 러셀의 편이었어요!”

나의 불같은 분노에 세계수님이 당황하며 말을 더듬거리고, 그녀의 눈은 당황함으로 치켜 떠져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 그래요. 이실리엘!”

분노하던 나는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실리엘이라는 이름 덕분에 그나마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저는! 고생한 러셀이 너무 안타까워, 저희 아이 중에 가장 아름다운 이실리엘을 러, 러셀에게 보내주었어요. 저는 정말 러셀이 생각하는 것처럼, 러셀을 두고 그런 게 절대 아닙니다. 그! 정령들이 싸운 것도 제가 아주 엄하게 혼내주었어요!”

아니, 딱 봐도 거짓말 같은데. 번식도 안 해도 된다면서 제일 예쁜 이실리엘을 보내준다고? 상당히 저의가 의심되는 행동이었다.

신들은 결국 다 똑같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러셀, 정말 믿어주세요. 저는 사대 정령을 근원으로 하는 엘프들의 종족 신 세계수에요.”

어! 나 국회의원인데! 어?! 딱 이런 느낌이라서 믿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속이 타들어 가 앞에 있는 수액을 생각 없이 벌컥벌컥 마시고 말았다.

그러자 숨을 쉴 때마다 콧속에서 지독한 향이 올라오며 처음 이곳에 올 때처럼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이… 이게…”

흐려지는 내 시야와 멀어지는 귓가에 세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셀 아쉽지만, 나머지 이야기는 성국에서 다른 분들과 함께 나눠야 할 것 같아요. 지금도 항의받는 상황이라. 제 선물 이실리엘을 잘 부탁합니다.”

“휴… 다행이었어…”

뭔가 급하게 도망치는 느낌과 함께 안심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의식이 끊어지기 전 내 귓가로 조용히 흘러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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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눈을 뜨자 은은한 불빛이 느껴졌다. 그리고 몸에 감각이 조금씩 돌아오자. 품 안에 따듯한 느낌이 천천히 밀려왔다.

눈을 떠 품 안을 확인해보니 잠든 이실리엘의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실리엘과 나는 완전히 알몸이었는데, 주변을 보고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우리가 이곳까지 입고 왔던 풀잎 옷이 모두 낱장으로 흩어져 신방 내부에 꽃잎처럼 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딱 봐도 저의가 의심되는 세계수의 서비스.

일단 화는 나지만 성의를 봐서 준비해 준 것의 맛은 살짝 봐주기로 했다. 호의를 거절하는 것은 사나이가 할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내 얼굴이 탐스러운 이실리엘의 앙가슴 사이로 뛰어들었다.

한참 후 새벽까지 나에게 시달리던 이실리엘은 결국 내 품에서 쓰러지듯 지쳐 잠들었다.

뭐 그 후에도 자꾸만 괴롭히고 싶어져서 이실리엘의 몸 여기저기 더듬다가 이실리엘의 투정 섞인 신음을 들어야 했기에 나도 그녀를 품에 안고 잠을 청했는데, 잠에서 깨어나니 엘프의 신방은 땅 아래로 내려앉아 있었고 이실리엘도 잠에서 깨어있었다.

“러셀, 저, 저희 옷이…”

생각해보니 세계수의 서비스는 나쁘지 않았는데 뒤가 없는 서비스였던 것이었다.

에이, 씨. 그럼 그렇지.

이실리엘을 품에 안고 난처함에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하고 있는데 뭔가 펄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궁금함에 문밖으로 머리만 빼서 내밀었더니 웬 거대한 나비가 문 앞에 내려와 앉고 있었다.

“헉!”

“이, 이실리엘!”

내가 깜짝 놀라 이실리엘을 부르자 이실리엘이 내 등 뒤에서 머리만 살짝 내밀어 밖을 보면서 말했다.

“고대 나비. 어머니 나무의 심부름꾼이에요.”

“심부름꾼?”

“네 그 세계수 잎이나 활 같은 거 만들 때 필요한 가지, 옷 만들 때 필요한 꽃잎 같은 걸 전해주거든요.”

그때 거대한 나비가 엄청난 가루를 뿌려대며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으아악.”

나비 가루의 폭탄에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자 다행스럽게 신방 문이 닫혔다.

“가루가 엄청난데?”

“가루를 모아서 약도 만들고 장식품 재료로도 써요.”

이실리엘의 설명을 듣다가 밖을 살펴보니 밖에 세계수 이파리로 싼 보따리 같은 게 보였다. 나비의 가루를 털고 안을 확인하자 이실리엘이 평소에 입었던 것 같은 옷 한 벌과 신발, 그리고 남자 옷 한 벌과 신발이 보였다.

“오! 아이템!”

“넷?”

“아, 아니. 그냥 좋아서”

세계수님이 미안했던지 서비스가 좋았다. 이실리엘이 받은 옷은 항상 입던 옷과 비슷했는데 다만 꽃잎이 붉은색이었고. 남자 옷은 남자 엘프들이 많이 입는 옷이었다.

“그 뭐 특별한 능력이 있고 그런가?”

“음… 그냥 옷 같은데요?”

이 세계에도 특별한 마법 아이템은 있다. 불타는 검이라든지 바람의 기운을 머금은 창, 성스러운 갑옷 등등 하지만 좋은 건 일반인이 구할 수 있는 레벨은 아니고, 나도 용병 생활하면서 그런 건 딱 한 번 구경한 적 있다.

세계수님이 준거라 기대가 컸는데…

아쉬운 감이 좀 있긴 했지만 어쩔 수 없지. 이실리엘과 빨리 옷을 입고 할머니 댁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둘 다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데 신발이 좀 특이했다.

꿈속에서 세계수님을 만났을 때 세계수님이 신고 있던 부츠처럼, 나무뿌리들이 발을 감싸 무릎 아래까지 휘감는 모습의 신발이었는데.

신속에 발을 넣자 뿌리들이 휘감기듯 발을 조였다.

“엇?”

“무슨 일인가요. 러셀?”

“신발이 움직이는데?”

이실리엘의 신발은 그렇지 않았던지 내 옆으로 와 이실리엘이 신기한 신발을 구경했다.

“신기해요. 꼭 살아있는 것 같아요. 아프지는 않아요?”

“응 적당히 딱 맞게 조이는 기분이야.”

신발을 신고 첫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발 그러니까 발을 휘감고 있는 뿌리들이 마치 사라진 인대를 대신하듯 걷는데 하나도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뛰거나 하는 과격한 움직임은 무리였지만 최소한 정상인처럼 걸을 수는 있었으니까.

“오… 이실리엘 이것 봐!”

“러, 러셀 다리가!”

내가 신발을 신고 걷는 모습을 보자 이실리엘이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하긴 자기 잘못이라고 계속 마음 한편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세계수님에게 품었던 의혹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좋은 아이템을 받았으니까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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