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04화 (104/352)

〈 104화 〉 102. 세계수 3

* * *

아름다움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또 각자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아름다움에 정의도 다 다를 것이고, 하지만 지금 내 눈앞의 저분을 보는 사람이라면, 나의 감상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고결한 아름다움.

이실리엘이 풀꽃 같은 풋풋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의장님은 그래 고결한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분이셨다.

장엄한 예술작품을 대하는 기분이랄까?

에스미가라고 부른다는데 이실리엘보다 약간 나이 들어 보이는, 인간으로 치면 20대 후반?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데 분위기가 정말 주변을 압도하는 고결함이 흘러넘쳤다.

내가 그런 감상에 빠져있을 때였다.

‘그런가요? 고결한 아름다움? 대단한 평가군요. 감사합니다.’

“옛!?”

나는 화들짝 놀래서 큰 소리를 내고 말았는데 에스미가님이 나를 웃으면서 바라보고 계셨다. 내가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이자 로리엘이 다가와서 귓가에 조용히 말해 주었다.

“교감이라는 능력이다.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 오실 거다. 놀라지 말아라.”

‘아니, 이건 걸어오는 정도가 아니라 읽어가시는데?’

‘아뇨, 다 읽지는 못해요. 떠올리시는 것만, 읽을 수 있을 뿐. 엘프어를 못하신다기에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 그. 불경한 생각을 해서 죄송합니다. 그 러셀이라고 합니다.’

‘불경한 생각을 하셨던가요?’

‘아, 아뇨 그게….’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방법을 잘 아시는 분 같았다. 개구쟁이 같은 분이랄까?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는 헛생각이 떠올라 대화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후훗… 이래서 우리 수호자들이 당신을 좋아하는군요.’

들?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의장님. 같이 여행 갔던 친구들이 내 음식을 좋아하긴 하지만 의장님은 표현에 유의해주실 필요가 있었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가장 드높은 별 에스미가 멜팅 플레임입니다.’

‘오…. 이름마저 고결했다. 가장 드높은 별 이라니….’ 나는 머릿속이 읽힌다는 사실도 잊고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풉…”

그때 에스미가님의 입에서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에스미가님의 집무실 같은 곳에 들어섰던, 다른 모든 엘프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아니, 그게…”

한참 후 진정되신 에스미가님과 차를 마시며 인간들과의 교류 같은 문제부터 이실리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같은 이야기까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인간들이 저희를 위해서 그런 신경을 써주고 있었다니 몰랐네요. 저희도 나름대로 보답을 해드려야겠습니다. 러셀은 인간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알고 있을까요?’

‘아마 대산맥 쪽에서 내려오는 몬스터들을 막는 데 도움을 주면 좋아할 것 같군요. 백단목이나 엘프의 공예품이나 갑옷 같은 것도 좋아할 테고요.’

‘과연. 아, 그리고 이실리엘은 일단, 잠시 파견 임무를 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백 년 정도면, 그리 긴 기간도 아니니까요. 로리엘과 수호자 둘도 러셀 옆에 남고 싶다는군요. 요리가 너무 맛있다고… 부디 잘 부탁합니다. 그리고 요리…. 저도 한번 먹어보고 싶네요.’

에스미가님이 미소를 띄우며 머릿속으로 말씀하셨는데 역시 한 종족의 수장답게 통이 크신 분이었다. 백 년 파견이라니…

근데 수호자들이 막 자리를 비워도 괜찮나? 이곳 짬밥이 별로인가? 음식 때문에 탈영, 아니 파견을 신청하다니. 뒤돌아 로리엘을 바라보니 기쁜 표정으로 이실리엘 옆에 붙어있는 모습이 보였다.

모르겠다 안되는 걸 된다고 하진 않겠지.

‘그럼 혼인 식이 끝나고 연회에 뵙겠습니다.’

짧은 다과 시간이 끝나고 헤어지면서 에스미가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나와 이실리엘의 혼인 식이 끝나면 연회를 연다고 했다. 높은 엘프 열두 핏줄의 일원이 된 걸 축하하는 자리라고.

엘프들은 모계 사회니까 데릴사위 느낌이려나?

의장님과 대화가 잘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이실리엘과 로리엘이 달라붙어 호들갑을 떨며 이것저것 물어왔다.

“러셀! 에스미가님에게 무슨 말을 했기에 그렇게 웃으신 거죠?”

“에스미가님을 웃게 하다니! 러셀 대체 어떻게 한 것이냐!”

“그… 그냥?”

“아니, 이것은 큰 문제다!”

아니, 뭐가 큰 문제나 라고 생각했는데, 이실리엘과 로리엘의 설명을 들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에스미가님은 엘프의 장로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천 살도 훌쩍 넘었다는 것 분명 이십대 후반정도로 보였는데 말이다.

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이가 많은 엘프들은 아무래도 인간보다는 정령에 가깝게 변한다고 했다. 육체적 존재의 욕구와 마음에서 멀어진다나? 그래서 잘 웃거나 놀래거나 하는 감정 변화가 아주 적어지는데 저렇게 폭소하시니 무척이나 놀랬다는 것.

“그게 그냥 이름을 말씀해주는데 너무 고결하다고 한 것밖에….

”어떻게 말인가요?

“머릿속으로 ‘가장 드 높은 별 에스미가 멜팅 플레임입니다.’ 이러시길래 ‘오…. 이름마저 고결했다. 가장 드높은 별 이라니….’ 이렇게 감탄했거든.”

내 이야기를 듣고 이실리엘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고결하다는 말씀이 마음에 드셨던 걸까요?”

“하긴 대놓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던 용감한 엘프는 없었죠. 숲길을 들어설 때는 그렇게 겁많은 모습을 보이더니, 여자들 앞에서는 항상 용감한 모습입니다. 러셀은.”

저 엘프가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었다. 여자들 앞에서만이라니!

그런데 묘하게 이실리엘도 수긍하는 눈치라니. 억울했다.

그간 함께했던 엘프 중 일곱의 엘프와는 이 자리에서 작별 인사를 나눴다. 다들 아쉬워하는 눈치였는데 남부로 올 일 있으면 꼭 여관에 와서 밥을 먹고 가라고 했다. 참고로 30년이 넘으면 내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인지시켜주었다.

또 엘프들의 시간개념으로 백 년, 이백 년 지나서 찾아오면 곤란하니까 말이다.

나중에 남부로 우리를 따라가겠다는 엘프들과는 이실리엘의 할머니 집에서 며칠 후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그간의 고마움과 이별을 뒤로하고 이실리엘과 둘이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의장님이 계신 마을 한쪽에 있는 이층집이었는데 독특하게 큰 나무에 줄기 안이 집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넝쿨과 꽃들이 나무 여기저기 휘어 감겨 피어있는 것이 친환경으로 보이는 주택이었다. 이실리엘의 말로는 엘프들이 가장 좋아하는 집이라고. 엘프들의 강남 아파트 같은 건가 보다 생각했다.

문 앞에 도착해 이실리엘이 문을 두드리자.

이실리엘의 언니로 보이는 분이 문을 여셨다.

둘이 얼마나 비슷하게 생겼는지 엄마인 줄 알았지만 저렇게 젊은데 언니가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이실리엘에게 가족관계를 물어보지 않았지? 부모님 돌아가신 것만 들었으니.

나는 이실리엘의 언니분께 ‘안녕하세요. 러셀이라고 합니다.’라고 오면서 짧게 배운 엘프어로 인사를 했다. 언니분은 활짝 웃으면서 나를 환영해주셨다.

“이실리엘 할머니는 안 계셔? 언니분만 계시나 보네?”

내가 할머니가 안 계신 것을 보고 이실리엘에게 물어보자. 이실리엘이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언니가 없어요. 앞에 계신 분이 할머니세요.”

“뭣?”

이런 사기 같은 종족, 엘프 종족 같으니. 어딜 봐서 저 사람 아니, 저 엘프가 할머니란 말인가! 아무리 봐도 이실리엘과 몇 살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이는데, 나도 이왕이면 엘프 같은 걸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럼 이실리엘과 한 천년쯤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하긴 지금까지 신 새끼들 하는 걸 보니. 고블린, 오크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했지만 말이다.

이실리엘의 할머니는 엘프의 장로여서 그런지 몰라도 교감 능력을 사용할 수 있으셔서 다행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러셀이라고 합니다.’

‘어서 오세요. 고결한 영혼이여. 저의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제는 이실리엘에게서 도망치면 안 됩니다. 아시겠나요?’

‘옛? 예! 물론입니다!’

엘프의 큰 누님들은 사람을 난처하게 하는 방법을 줄줄 꿰고 계신 것 같았다. 짓궂은 누님들 같은 말씀만 하신다니….

근데 고결한 영혼은 뭐지? 좀 전에 고결하게 아름다운 누님을 뵙고는 왔는데.

‘그 고결한 영혼이라는 건?’

‘세계수로 가게 되면 알게 될 테니. 너무 궁금하지 않아도 됩니다. 러셀.’

‘가족이 된 걸 환영합니다. 부디 이실리엘을 잘 부탁해요.’

‘옛! 알겠습니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 우리는 식당으로 안내되었고, 뭔가 ‘허허허’ 도인 같은 말씀을 하신 할머니와 저녁을 먹으며 이실리엘은 밀린 이야기들을 나눴다. 막 손을 이렇게 저렇게 표현하는 걸로 봐서는 내가 문어에게 끌려간 걸 이야기 하는 것 같은데, 비슷하게 생긴 둘이 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같이 웃다가 하니까 쌍둥이 자매 같은 것이 아주 귀여웠다.

저녁 메뉴는 이실리엘의 할머니가 준비해주신 엘프들의 음식을 먹었다. 엘프들의 식사는 자연식 위주의 조리가 적은 아주 깔끔한 식사였다. 과일과 열매들 구운 고기, 생선 같은 음식이었는데 신선한 허브로 향을 내 아주 먹음직스러웠다.

자기전에 이실리엘이 식사하면서 내가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활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나, 정령들이 부탁을 들어주는 것들을 할머니에게 물어보려 했다는데, 할머니는 웃으면서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고만 하셨다며 답답하다고 이야기했다.

이실리엘의 할머니의 환대 속에 세계수가 있는 숲에서의 첫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실리엘과 나는 내일 있을 엘프의 혼인식을 위해서 한 침대에서 손을 잡고 잠자리에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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