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100. 세계수 1
* * *
엘프들과 처음 도착한 북서쪽 숲은 전형적인 북부의 숲이었다. 높은 침엽수림과 켜켜이 쌓인 낙엽들, 넘어진 고사목들, 다람쥐나 청설모 비슷한 생물들이 나무 위에서 우리를 보고 이리저리 도망치는 .
이 숲에서 얼마나 어떤 위치로 걸어가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리젤다의 집이 대수림과 대산맥 중간에 위치 해있고 최전방이 아닌 2선 정도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뿐.
이곳은 대수림과는 거리가 좀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가려고 하는 거지?
나는 그렇게 숲에 들어서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숲에 들어온 엘프들은 아닌 것 같았다. 로리엘이 몇 번 무엇인가 와 대화를 하는 것 같더니 빠르게 방향을 잡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긴 숲에서 길을 잃는 엘프라니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이었다.
나는 요 며칠간 틈이 날 때마다 깎은 목발을 가지고 엘프들을 열심히 쫓았다.
로리엘을 선두로 한참을 걸어가던 엘프들이 주변을 확인하더니 멈추어 섰다.
그리고 이실리엘이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꺼냈다.
“그럼 러셀도 이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볼까요?”
이실리엘의 그 말에 로리엘도 다른 엘프들도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으면서 이실리엘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몰려드는 엘프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이실리엘이 한 손을 하늘 위로 향하고 처음 듣는 언어로 무엇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숲속을 울리는 바람 소리 같기도, 모닥불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내는 소리 같기도, 계곡물이 흐리는 소리 같기도 한 정말 신비한 음성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한번 따라 해 보았다.
Yelseael sheml ral?
내 목에서 이실리엘과 낸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깜짝 놀라 목을 부여잡고 눈을 크게 뜨고 있는데 이실리엘과 엘프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떻게?”
뭐야 이거 아무나 못 하는 거야? 엘프들의 경악에 찬 눈동자를 바라보며 “어 이게 그러니까….” 하는 소리를 내뱉고 있을 때쯤
이실리엘이 나에게 매달리며 물었다.
“러셀 정령어는 어떻게 발음한 거죠? 대체?”
“이게 정령어라고?”
“네, 말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소리예요. 그, 러셀이 발음한 건 숲의 정령을 부르는 첫 소절이고요.”
난들 아나…. 그냥 하니까 된 건데…. 옆을 보니 엘프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자기들끼리 뭔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를 만져보다가 그러면서 저희끼리 신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너희들끼리 해라. 나는 좀 두고….
“뭐 어차피 세계수로 가는 길이니, 비밀은 다 풀리겠죠.”
이실리엘이 웃으며 말했다. 막 나 이상한 존재고 다른 세계에 태어났던 기억이 있다고 이혼당하고 그런 것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에 일단 도착하면 이실리엘과 단둘이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이실리엘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려주었다.
“제가 숲의 정령들에게 길을 열어달라고 하고 있었어요.”
“길?”
숲의 길이라고? 동물들이 다니는 오솔길 같은 건가? 하긴 동물들이 이용하는 길들을 이용하면 나뭇가지 같은 것들은 좀 피해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숲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며 내 눈앞에 마치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법한. ‘아 여기 판타지 맞지.’ 아무튼 그런 믿을 수 없는 현실이 펼쳐졌다.
뿌드드드
쏴아아
풀과 나무들이 빽빽한 숲 한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좌우로 벌려져 그야말로 길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이게….”
“엘프의 숲길이에요. 엘프들밖에 사용할 수 없는데. 러셀이라면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다들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어…. 엘프 아닌 사람이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데?”
내가 불안한 마음에 사로잡혀 이실리엘을 바라보면 묻자 이실리엘이 화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못 나와요.”
“응?”
“숲에 사로잡혀서 영원히 못 나와요.”
“영…. 영원히?”
이거 그것인가? 전생에서나 들을법한 보험금 타려고 남편 유인…. 아니 근데 여긴 보험금도 없는데? 영원히 못 나오는데 저렇게 맑게 웃으면서 저길 들어가자고 한다고?
“그…. 나 영원히 못 나오면 어쩌지?”
“러셀? 저를 믿으세요.”
저 예쁜 얼굴로 웃으면서 저러면…. 못 믿는다고 할 수도 없고.
그때 로리엘의 목소리가 반대편에서 들려왔다.
“설마 겁이 나거나 이실리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 러셀?”
얜 진짜….
“서…. 설마….”
“러셀이 다리가 불편하니 나와 이실리엘님이 부축해 주겠다.”
그렇게 나는 우측의 이실리엘 좌측에 로리엘에게 붙들려 열린 숲길로 끌려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 잠시나마 행복한 삶이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둘의 손에 이끌려 숲길이라는 것에 들어섰다.
꿀꺽
나의 침 삼키는 소리가 엘프의 숲길 입구에서 메아리쳤다.
두려운 마음을 진정시키며 둘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숲길은 기이한 광경이었다.
밖에서 볼 때는 그냥 나무와 풀이 벌려진 숲의 공간처럼 보였는데 안에 들어오니 내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온갖 기이한 풀, 하늘까지 솟은 나무, 나보다 더 색색의 버섯이 여기저기 자라고 기이한 꽃과 화초들이 만발해 엄청난 향을 여기저기 뿌려대고 있었다.
마치 신비한 신의 정원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이게….”
“한 번도 숲의 존재들 이외에는 손길이 닿지 않은 숲이라고 불러요.”
원시 처녀림 뭐 그런 건가?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에 빠졌을 때 이실리엘의 나직한 경고가 들려왔다.
“이상한 건 절대 만지시면 안 돼요.”
“그래…. 무서워서 못 만질 것 같아.”
나는 이 대단한 광경에 사로잡혀 멍하니 이실리엘에게 대답했다.
“확실히 숲길이 거부하지 않네요.”
“이실리엘님, 확실히 그냥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러셀을 전혀 숲 이외에 존재로 보지 않는 것 같네요. 신기하게도.”
이실리엘과 로리엘이 한참을 이야기할 때였다. 둘의 말을 부정이라도 하듯. 한쪽 수풀에서 긴 넝쿨이 날아오더니 나를 휘감았다.
“엇! 이 이건!”
내가 당황해 넝쿨을 떼어내려 몸부림을 치려고 하자 이실리엘이 외쳤다.
“수호자예요. 가만히 있으세요. 러셀!”
수호자는 로리엘이 수호자 아니었나? 이게 수호자라고? 이실리엘의 말을 이해 못 하며 로리엘을 바라보자 로리엘도 이실리엘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숲길을 지키는 문지기 같은 것이다. 잠시 기다려라, 너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숲에 들어와서는 안 될 것이 있는 것 같다.”
넝쿨이 몸을 휘감는 기이한 감각에 소름이 돋고 있었다.
넝쿨은 내 몸을 여기저기를 더듬더니 내 잡낭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리고 내 잡낭 안에서 동전이 들어있던 주머니를 꺼내 숲길 입구 쪽으로 휙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몸을 풀어주고 다시 덤불 속으로 사라졌다.
“후우...”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동전 주머니였죠? 제련한 광물은 숲으로 가져올 수 없나 보네요.”
“그 이제 다른 건 없겠지?”
나는진 빠진 얼굴로 이실리엘에게 물었다.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나는 이실리엘에게 부축받으며 세계수로 향하는 길에 숲길이 무엇인지를 들을 수 있었다.
“숲길은 정령계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중간쯤에 있는 끼인 공간에요. 모든 숲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세계수의 힘이 조금이라도 전달되는 곳에서만 쓸 수 있거든요. 북부라서 당연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역시. 이러면 리젤다가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다행이겠어요.”
엘프들이 쓰는 축지법 같은 건가 싶어 거리도 줄어드나 물었지만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실제 이동하는 공간을 일직선으로 이동하게 해주는 것뿐이라고 로리엘이 말해주었다.
그렇게 며칠을 걸었다. 숲길 안에는 기괴한 생물들도 많았다. 몸 전체가 돌로 된 물고기라든가 불로 된 잠자리, 물처럼 투명한 개구리.
그렇게 며칠을 야영과 이동으로 보냈지만, 신기하게도 배고픔이나 피곤함은 심하지 않았다.
“며칠이나 밥을 먹지 않았는데 왜 배가 고프지 않지?”
나의 물음에 로리엘이 대답했다.
“숲길은 보다 정령계에 가까우니 육체적 제약을 덜 받아서 그렇다. 아마 밖으로 나가면 그동안의 배고픔이 밀려올 거야.”
“너희들도?”
“그렇지 우리도 일단은 중간 땅의 존재니까 말이야.”
로리엘의 설명을 들으면 한참을 걸어가는데 앞에서 엘프들이 무어라 외치기 시작했다.
“거의 다 도착했어요. 러셀”
이실리엘의 목소리가 들리고 저 앞에 거대하게 솟은 나무가 천천히 시야에 들어왔다. 구름도 없는 이 공간에서도 하늘 위까지 솟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나무. 그 압도적인 모습에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저게?”
“네 세계수네요. 정령계와 중간 땅 그리고 이곳 틈새까지 가지와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예요.”
저걸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웅장함? 거대함? 딱히 어떤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정말로 엘프의 땅에서 그동안 보고 싶어 했던 세계수가 저 멀리 눈앞에 그 웅장한 자태를 천천히 드러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