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00화 (100/352)

〈 100화 〉 98. 삼 과 계 1

* * *

“심! 심 봤다!”

엄청나게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성 남문으로 나가 언덕의 북쪽 사면에 있는 숲에는 산삼들이 엄청나게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산삼의 거대한 군락이라니!

역시 리젤다가 머리에 꽂고 온 것은 역시나 꽃이 아니라 산삼 열매였다. 여긴 숲이니까 숲 삼이라고 불러야 하나?

내가 산삼군락을 보며 기분 좋게 외치자 이실리엘이나 리젤다는 뭔가 좋은 일인 것 같아서 같이 웃으며 기뻐하고 있는데 영문을 몰라서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실리엘이 내가 진정돼 보이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러셀, 심이 뭔가요?”

“어 대수림에는 이런 거 안 자라나?”

아 삼은 약간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니 대수림에는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과 나무에 밝은 엘프들이 모른다면 본 적이 없다는 것이겠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어 이건 내가 살았던 곳에서는 약초로 사용했는데,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약초라고 보면 돼.”

“건강하게요?”

“어 꾸준히 먹으면 감기 같은 것에 잘 안 걸린다고 알려져 있거든.”

“러셀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신기한 것도 많이 알고.”

이실리엘과 리젤다는 내 손에 든 산삼과 나를 보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가끔 내가 이곳에서 태어나서 너희 둘을 만난 게 신기한데, 너희는 얼마나 신기하겠냐.

손에 든 산삼을 살펴보았다. 삼의 굵기가 아주 훌륭했다. 여긴 막 수백 년 된 약초도 자라는 세계니까 막 만년삼왕, 천년 삼, 이런 것도 있는 것 아니야? 라는 상상에 빠져보았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삼의 물결을 바라보며 망상에 빠져있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단 손에든 삼을 뚝 분질러 살짝 맛을 보았다. 크… 이 사포닌의 씁쓸한 맛. 삼 맞네! 맞아!

나는 웃으며 손에든 삼에 흙을 털어 허리춤의 단검으로 조금 잘라 이실리엘과 리젤다의 입에도 조금씩 넣어주었다.

둘이 조심스럽게 삼을 씹어 맛보더니.

“으엑….”

“크엑….”

귀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찡그린 얼굴까지 예쁜 두 새신부였다.

“너, 너무 써요!”

“러셀 정말 약초 맞아요? 독초 아니고요?”

독초가 아니냐는 리젤다의 물음에 이실리엘이 대답했다.

“그런데 약초는 맞는 것 같아요. 그 땅과 불의 정령의 기운이 안에 아주 많이 담겨있어요.”

이실리엘이 정령안으로 확인한 것 같았다.

“오 내가 살던 곳에서도, 이거 먹으면 몸을 따듯하게 해준다고 하기도 했는데, 이실리엘의 말을 들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나 보네.”

잠시 후 우리는 굵은 삼을 수십 뿌리나 캘 수 있었다. 물론 삼을 캐기 전에 전생에 봤던 대로 숲에다 절을 하고 ‘좋은 약초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더니, 이실리엘이 엘프들도 숲에서 좋은 걸 발견하면 마음속으로 숲에 감사한다며 기뻐했다.

내가 엘프처럼 정령활도 다루고 엘프 같은 행동을 하니까 좋아하는 건가?

이실리엘은 내 모습을 보고 하나 캘 때마다 한 번씩 절을 하려고 해서 나중에 한 번만 하늘 걸로 합의를 봐야만 했다. 삼천 배를 할 기세였기 때문이다.

제일 큰 산삼을 한뿌리 들어 외관을 확인해보았다. 굵직한 뇌두와 수직으로 뻗은 주근 잘 자란 산삼이었다.

삼이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인삼차도 만들 수 있고. 이걸 쪄서 건조한 후 홍삼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인삼정과나 꿀에 재울 수도 있고 말이다. 이실리엘도 보증한 약초이니 이걸 연금술사들에게 가져가 약효를 뽑아 올리면 새로운 포션이 나올지도 몰랐다.

뭐 연금은 잘 모르니까 그냥 희망 사항이지만 말이다.

발레리에게 서부에서 팔아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원래 인삼은 무역품이었으니까. 나는 이계에서 처음 만난 반가운 삼에 여러 가지 즐거운 상상을 하며, 두 아내와 삼을 들고 성으로 향했다.

삼을 가지고 남문으로 들어가는데, 성벽 위에 로리엘과 엘프들이 앉아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로리엘을 보자 아주 좋은 생각이 났기에 나는 바로 로리엘을 불렀다.

“로리엘!”

로리엘을 힘껏 외쳐 부르자 로리엘이 성벽을 달리다 주변 민가 지붕을 파쿠르 하듯이 밟고 이동해 내게 마치 묘기를 부리듯 달려왔다.

진짜 민첩성 하나는 엘프 엘프하면 민첩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생에 엘프들이 살았으면 파쿠르 대회는 전부 이분들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뭐지 러셀?”

이상하게 요 녀석 북부 오기 얼마 전부터 내 말을 엄청나게 잘 듣는다. 마치 엘프 특급 심부름센터 직원처럼 말이다. 어떨 때는 이실리엘보다 내 말을 잘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내 앞에서 다소 거만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로리엘에게 조금은 솔깃한 제안을 했다.

“어때, 이제 슬슬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싶지는 않은가?”

“무…. 무엇이지? 무엇이 준비된 것인가?”

로리엘은 말을 더듬으며 흥분했다. 딱히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로리엘은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눈썹을 움찔한다거나, 맛없는 음식을 먹게 되면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떠올리는 것을 몇 번 보았기에, 나는 로리엘이 음식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음식을 위해서 뭘 준비해야 한다면 말없이 사라졌다 가져오곤 했으니까 말이다.

“부탁이 하나 있어. 재료 한 가지가 부족하다!”

“무, 무엇이냐! 내가 수호자들과 갈 것이다!”

“뇌조! 또는 꿩이 필요하다!”

“얼마나 필요한 것이지?”

“많을수록 좋다. 시간은 마지막 해가 떨어지기 전.”

로리엘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엘프들을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휘익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다른 엘프들도 성벽을 달려 로리엘과 똑같이 파쿠르 하듯 내 주위에 모여들었다. 로리엘이 그들에게 엘프어로 무엇인가를 말하니 다들 나를 보고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해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아니 무슨 새 사냥 가면서 특수임무 맡은 것 같은 장엄함이냐고.

그리고는 그녀들은 우릴 뒤로하고 다들 성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실리엘이 날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러셀은 엘프 수호자들을 너무 잘 다루는 것 같아요. 특히 로리엘이 저렇게 인간의 말을 잘 듣는 걸 다른 수호자가 알면, 깜짝 놀랄걸요? 로리엘은 인간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뭐 다른 엘프들도 비슷하지만 로리엘은 좀 더한달까?

“로리엘이?”

내가보기엔 인간에 엄청 관심이 많은 엘프로 보이는데? 내가 잘못봤나?

“네.”

더군다나 잰 뭔가 나사 빠진 엘프인데. 누가 재랑 XX로 YY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놈은 참 불쌍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문에 미친 엘프라니….

이실리엘과 리젤다의 엉덩이를 무심코 바라보았다.

새신부에게 하기에는 너무 거친 플레이겠지? 어우야…. 재빨리 고개를 휘젓고 성으로 향했다.

오늘 저녁 우리 성 요리사는 나니까 말이다.

성으로 들이닥친 우리는 저녁 요리를 우리가 할 것이라고 전달했는데, 그렇게 내가 저녁 요리를 한다는 소리가 성안에 퍼지자 성에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에반과 눈꽃기사들만이 ‘오! 오늘은 그럼 오랜만에 과식하겠군?’ 이러면서 배를 꺼트린다고 대련을 하고 몸을 움직이자, 내성 광장에서 한창 잔치 중인 사람들까지 다들 이게 무슨 일인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내가 본격적으로 성 주방에서 요리를 시작하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부엌에는 하녀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다른 사용인들까지 기웃대고 있었다 마구간지기나 심지어 양치기까지. 결국 장모님이 내려오셔서 나를 말리셨는데 나는 그녀를 한방에 무너트릴 방법을 알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해버렸다.

“엄마, 아들이 꼭 맛있는걸… 대접하고 싶어서 그래요. 이제 결혼 후에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데….”

눈물까지 글썽이며 도와줄 건 없냐고 하시다가 장모님은 내 만류에 결국 위로 올라가셨다.

우리 장모님….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리젤다가 주방 구석에서 배를 부여잡고 쪼그리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나도 부끄러웠다고!

닭죽은 찹쌀이 없으니 쌀과 밀을 삼대일 정도로 섞어 약간 걸쭉하게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은행이나 잣 같은 견과류가 많은 북부니 이런 것들을 좀 섞어 넣어 쌀을 씻어 불렸다.

큰 가마에 물을 펄펄 끓이면서 마늘과 삼도 잘 씻어 잘라서 준비했을 때 로리엘이 수호자들과 나타났다.

그녀들에 손에 들린 가죽 포대에는 무엇인가가 가득 차 있었는데, 다들 몰려와 부엌 한쪽에 포대를 쏟아내자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꿩과 뇌조 오십여 마리였다.

역시 로리엘은 신용 높은 엘프였다.

“러셀 오십 마리 정도면 충분한가?”

“충분하다! 수고했다. 로리엘, 너는 역시 대단한 엘프다!”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로리엘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러셀?”

“왜 그러지 로리엘?”

“난… 두, 두 마리를 부탁한다.”

로리엘은 생각보다 식탐 많은 엘프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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