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97화 (97/352)

〈 97화 〉 95. 말괄량이 리젤다의 결혼 7

* * *

에반이 한 놈을 처리하고 곧 엘프들과 숨바꼭질 중인 다른 놈에게 달려들 때였다.

사제 롤랜이 성스러운 기운 부여가 다 끝났는지 화살 세 발을 내 손에 건네주었다. 딱 봐도 은은한 빛을 뿌리는 게 무척이나 성스러워 보였다. 사제의 지친 표정에서 그가 상당한 신성력을 부여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나는 롤랜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등에서 활을 뽑아 들고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그리고 활을 통해 기운을 집중했다. 이실리엘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이분 재미 들이셨는지 지금 그게 중요하게 아닌데….

활에 집중하자 성과 성곽 너머 대지 위로 성큼성큼 성문으로 접근하는 놈의 형체가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지에 상처가 나고 있자 대지의 정령이 분노하는 게 느껴졌다. 하늘 위로 높이 화살을 쏘아 올렸다.

이번엔 어떤 바람의 정령일까? 기대감에 차 있는데 실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내가 옆에 있는데 왜 다른 애를 불러!”

실리아가 내 화살을 잡아채더니 화살에 번개의 기운까지 담아 성문으로 다가가던 놈의 뒤통수에 화살을 깊숙이 꽂아버렸다.

헐...

화살에서 뿜어나오는 벼락의 기운과 여신의 기운이 놈의 뒤통수를 타고 전신으로 뿜어졌다.

­콰지지직 콰자작

놈의 몸이 얼어붙으며 눈알과 입, 귓구멍으로 시커먼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놀라 소리쳤다.

“잡았나?”

‘아우 씹! 누구야!’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한 북부 주민들 덕분인지 놈의 몸에 붙은 얼음이 깨져나가고, 놈이 입에서 연기를 한번 쿨럭하며 토해내더니 다시 성문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도 안 된다고? 나는 빠르게 방법을 찾아야 했다. 북부 기사들이 몰려들어 얼려 깨트리면 되려나? 성벽 아래 해럴드 님께 다시 소리를 질렀다.

“헤럴드님 놈이 계속 다가옵니다. 정령력을 머금은 어떤 화살에도 부상을 재생시키며 다가오고 있어요. 트롤보다 더한 재생력입니다. 얼려서 깨트릴 수 있을까요?”

“한번 해보죠! 기사들 돌격 대형으로!”

헤럴드님이 성문 뒤에서 전마에 탄 기사들을 독려해 돌격 대형을 만드셨다. 에반이 성벽 위에 있으니 일곱의 기사의 돌격 진형이었다.

그때 무장이 끝났는지 내성 쪽에서 말 여러 마리가 달려와 눈꽃기사들의 뒤에 정렬했다. 장인어른과 에릭과 그의 기사들이었다.

“아니, 나만 빼고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왜 나한테는 먼저 말 안 해준 건데!”

“처남 그건 나중에 말하자고 좀 있으면 신나는 돌격을 할 수 있을 테니!”

에릭은 콧김을 훙 뿜더니 자신의 깡통 투구를 덮어썼다. 딱 봐도 이런 거 좋아하게 생기긴 했어. 조금 삐친 것으로 보이는 첫째 처남이 조금 걱정되었는데.

에반이 어느새 늑대를 처리했는지 내 옆으로 와서 말했다.

“신경 쓰지 마십쇼. 형님은 항상 저러니까요.”

이게 설마 되겠어 생각했지만 딱히 떠오르는것도 없기에 나는 잡낭에서 은화 세 개를 꺼냈다. 그리고 성벽 돌 위에 하나를 올려두고 단검으로 꾹꾹 눌러 화살촉 모양으로 잘라냈다. 이곳은 은화는 상당히 크고 무른 편이라서 자르는데 어렵지는 않았다.

그것을 화살 하나에서 화살촉을 분리해, 화살촉 대신 감으려고 하는데 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 은화로 화살촉을 만드시려고 하는 겁니까?”

고개를 들어보니 딱 봐도 뭔가 장인 같아 보이는 턱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의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 저놈의 머리통에 꽂아주려고요.”

“이리 주십시오 어르신, 제가 이 마을의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입니다요. 아가씨의 활도 제가 만들어 드렸습죠.”

어제 아침 먹고 리젤다에게 찾아가 슬쩍 보긴 했는데 제법 괜찮았지, 그 활? 그 정도 실력이라면 믿을 만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부탁이라뇨 명령만 내리십시오. 어르신 지금도 이렇게 저희를 위해서 애쓰고 계신 데….”

남자의 손에 은화와 화살을 건네주자 남자는 재빠르게 화살촉을 분해하더니 은화를 깎아 화살촉을 만들기 시작했다. 얼마나 능숙해 보이는지 그가 얼마나 그 과정을 반복했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콰직

그때 귓가에 나무로 된 성문이 망가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성문 앞에 다다른 놈이 손톱을 뻗어 두꺼운 성문에 구멍을 낸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뭔 성문이 푸딩이야?

그 광경에 살아있던 코볼트와 늑대들이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이실리엘! 실리아와 최대한 늑대들을 줄여줘!”

“로리엘 엘프들과 놈에게 최대한 불화살을 먹여서 놈을 최대한 지연시켜줘!”

“다른 분들도 같이 최대한 늑대를 줄여야 합니다. 성문이 부서지고 기사들이 돌격해 나갈 것인데 숫자를 줄여두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내 목소리에 사람들이 큰 소리로 외치며 각자 자기 임무를 향해 흩어졌다.

“뒈져버려라! 늑대 새끼들아!”

“이 개새끼들!”

­꺼헝 퀘엑

­끄웨웨웨엑

­꽈르릉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꽂히고 화살과 투창이 성벽 아래로 쏟아졌다.

로리엘의 불화살과 다른 엘프 수호자들의 불화살이 성문에 달려든 놈의 머리통을 계속 지워버리고 있었지만, 놈은 천천히 그리고 착실하게 성문을 조금씩 부숴 내고 있었다.

“기름 기름은 없나!?”

내 외침에 병사 몇 명이 허리에 차고 있던 기름 주머니를 가지고 달려왔다.

“저놈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줍시다!”

병사들이 기름 주머니를 가지고 내 명령대로 성문 위로 올라가, 아래 난 구멍으로 놈의 머리 위로 기름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로리엘의 화살이 날아들자 놈의 전신에 불이 붙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길 속에서도 놈은 비명조차 토하지 않고 성 문짝을 뜯어내고 있었다. 마치 통증은 모른다는 듯이 말이다.

­콰직

“어르신 하나가 다되었습니다!”

장인의 내게 화살 한 발을 건네주었다. 그 짧은 시간에 뭘 어떻게 했는지 균형과 촉까지 제대로 다듬어져 있었다.

화살을 들고 아래로 뛰어 내려가려고 하자 이실리엘이 실리아를 불렀다.

“실리아!”

실리아가 나에게 잽싸게 날아들더니 나를 안아 들고 성문 안쪽으로 나를 내려주었다. 그런데 나를 품에서 내려주려던 그때, 실리아의 몸에서 미쳐 제어 못한 번개 조각이 튀어 올라 나를 감전 시켰다.

­빠직

“으악!”

“앗... 미안!”

이거 그냥 저번처럼 공중에 띄울 수 있는데 일부러 한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들었다. 팔목 위로 거미줄 같은 상처가 생겨났다.

“이거 일부러 그런 것 같은데?”

“아, 아냐 절대 아냐!”

실리아가 내 말에 재빠르게 하늘도 도망쳐 번개를 다시 날려대기 시작했다. 의심스러운데?

­우르릉

은 화살을 손에 들고 성문 입구 쪽을 바라보자 놈이 뚫어놓은 구멍으로 놈의 머리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의 가슴도.

어딜 쏴야 늑대인간이 뒈지더라? 심장이었나?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후우 후우”

가까운 거리. 백 미터는 될까? 심호흡을 한번 했다.

­뿌드득

화살을 건 시위를 당겨 화살 깃을 잡은 오른손을 입술 옆으로 가져왔다. 내 호흡에 맞춰 손끝이 오르내리는 게 보였다. 반 호흡 후 숨을 멈추고 놈이 뚫어놓은 구멍으로 보이는, 놈의 왼쪽 가슴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구멍 밖으로 보였다 사라졌다 하는 놈의 가슴이 확연히 드러났을 때, 엄지와 검지를 살짝 놓아주었다. 내 손을 떠난 화살은 아무래도 급히 만드느라 균형에 조금 문제가 있었던지, 살짝 휘어져 목표했던 심장이 아니라 놈의 오른 가슴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기름에 불타오르거나 머리통이 사라질 때도 한 번도 지르지 않았던 놈의 비명이 갑자기 놈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꾸어어어엉

그리고 내 화살이 꽂혀있던 놈의 오른쪽 가슴에서 검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게 된다고?!”

은 화살 두 발을 마무리해 달려온 장인에게 화살을 받아, 성문 구멍 너머 가슴을 움켜쥐고 주저앉은 놈의 머리와 심장에 마무리 화살을 박아 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우우우우우

결국 두 발의 화살을 얻어맞고 놈은 긴 울음을 토해내더니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 놈의 마지막 울음소리를 들은 늑대들과 코볼트들은 마치 최면에서 풀리기라도 한 것처럼 당황한 모습으로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부웅… 부웅부웅…

­부웅… 부웅부웅…

몇몇 사람이 그 모습에 양각 나팔을 꺼내 불기 시작했다. 언덕 위에서 시작된 나팔 소리가 높고 낮은 구릉에 울려 생긴 기묘한 떨림이 전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성문이 열리더니 눈꽃기사들과 화이트힐 기사들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병사들과 마을 사람들도 달려 나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늑대들과 코볼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돌격하라! 놈들을 놓치지 마라!”

헤럴드님의 돌격 함성이 열린 성문을 통해 밖으로 터져나갔다.

철퇴에 머리통이 터져나가는 늑대와 코볼트들의 비명이 구릉 낮은 곳으로 호수처럼 고여 들었다.

그리고 승리한 기사와 사람들의 함성이 피의 결혼식의 끝을 알리듯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시발 진짜 결혼 한번 더럽게 힘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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