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95화 (95/352)

〈 95화 〉 93. 말괄량이 리젤다의 결혼 5

* * *

이실리엘은 결혼식이 시작되려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성의 가장 높은 탑 위로 올라갔다. 경비병들이 “엘프님께서 여긴 어떻게?”라며 물어왔지만 높은 곳을 구경하고 싶다는 이실리엘의 말에 그 누구도 이실리엘을 막아서지 않아 손쉽게 탑 위로 오를 수 있었다.

제일 높은 탑 위에 오르자 주변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굽이치는 구릉과 중간중간에 솟아오른 숲들 초지와 연못, 호수가 섞여 있는 북부의 자연경관은 이곳으로 오는 내내 보았지만 질리지 않는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리젤다가 겨울에는 눈이 온다고 했는데 겨울에도 꼭 방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얼어붙은 호수가 빛을 반사해서 마치 은처럼 빛난다고 했지?

이실리엘이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지만, 감상에만 젖어 있던 것만은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 온 사방을 확인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화이트 힐 영지는 부근에서 가장 높은 언덕을 중심으로 세워진 영지였다. 그리고 언덕의 가장 높은 위치에 성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성에서 제일 높은 탑이라는 조합 때문인지 탑을 중심으로 온 사방을 확인할 수 있는 드넓은 시야 때문에 이실리엘은 보다 멀리 사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실리엘이 사방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있을 때, 아래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아래를 확인하자 러셀이 사람들 틈을 지나 광장 중앙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실리엘은 이제 ‘리젤다와도 한 가족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리젤다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었다. 엘프들에 대해 아는 것도 많고 엘프어와 북부어, 중부 대륙어 까지 할 수 있어서 벨이 집으로 돌아갔어도 통역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관에도 또 한 명이 기다리고 있지.

이실리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러셀을 찾기 위해 인간 세상에 나온 것뿐인데 많은 인간 친구들을 사귀고 평생을 함께할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빠르고 역동적이고 열정적이었다.

세상에 자신에게 허락받겠다며 알몸으로 목에 칼을 들이대는 발레리의 모습이라니. 다시 떠올려보아도 자신이 다 부끄럽고 대단한 광경이라 생각했다.

대단했던 광경을 머릿속에서 털어내고 약간 붉어진 볼로 아래를 다시 바라보니, 헤럴드님이 결혼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위에서 바라본 리젤다의 모습은 마치 붉은 꽃잎처럼 보였다.

그리고 결혼식이 진행되는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내성 한 켠에서 시작된 양을 굽는 냄새는, 그 고소하고 기름진 향을 이실리엘이 있는 곳까지 밀어 올리고 있었다.

자신이 데려온 양이 구워지는 냄새였다. 양을 도축한다고 했을 때 조금은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원래 리젤다의 잔치의 음식으로 데려온 것이니까 감내해야 했다.

데려온 천 마리 양 중에 오십 마리나 아침에 불쌍하게 잔치의 음식이 되고 말았지만, 양은 다시 금방 늘어날 것으로 생각했다. 오늘 길에도 두 마리가 늘어났으니까 말이다.

양은 너무 귀여웠다.

그때였다. 아래서 헤럴드님의 결혼을 보증한다는 외침이 들리자마자 북쪽에 있는 숲이 조금 소란스러워지는 것처럼 보이더니, 두 발로 보행하는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숲을 헤치며 걸어 나왔다.

그리고 길게 목을 빼 하늘을 향해 긴 울음으로 울부짖었다.

­아우우우우~

걷는 늑대가 울부짖자 숲속 나무 사이사이에서 늑대들과 코볼트들이 하나둘 형체를 드러내더니 성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늑대들은 마치 움직이는 슬라임처럼 덩어리로 뭉쳐 밀려오고 있었다. 수백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늑대? 숲의 약탈자! 양을 잡아먹는 나쁜 짐승!

분명 저것들은 내 양을 노리고 오는 것이리라!

이실리엘의 가슴속에 두 마리 양을 잃었던 기억이 떠오르며 분노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러셀이 상급 정령을 소환해도 된다고 했었지?

싹 쓸어버리라고?

여관 홀을 청소할 때 쓰는 빗자루로 쓸어내듯이 말이지?

어떤 상급 바람의 정령을 소환하지?

‘몰라.’

지금 늑대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저것들이 성내로 밀어닥치면 자신이 선물한 귀여운 양들은 한 마리도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누굴 골라서 부를 때가 아니었다.

‘아무나 빨리 나와줘!’

이실리엘이 몸이 공중에 떠오르며 바람의 정령의 기운이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목소리가 들려왔다.

“롱 윈드!”

실리아였다.

­­­­­­­­­­­­­­­­­­­­­­­­­­­­

이실리엘이 공중을 날아 북쪽 성문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로리엘이 어디선가 날 듯이 나타나더니 내게 전통과 활 그리고 내 잡낭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내성 벽을 타고 올라 성벽을 넘어 북쪽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고마워 로리엘!”

멀어져가는 로리엘의 뒷통수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나는 활과 전통을 둘러메고 잡낭을 허리에 두른 후 리젤다에게 말했다.

“리젤다, 여기서 기다려 알았지?”

“하지만 러셀, 저도…!”

나는 자신도 가겠다는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것으로 보이는 리젤다의 입을 막아버렸다. 내 입과 혀로 말이다. 그녀의 허리를 뒤로 눕히고 그녀의 입으로 맹렬하게 돌진한 것이다.

장미 향이라도 뿌렸던지 그녀의 품에서는 장미 향이 확 올라왔다. 부드럽고 달콤한 혀가 휘감기고 짧지만 긴 시간이 단숨에 지나갔다.

그녀와의 첫 키스가 떠올랐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결혼식 끝에 키스해야 부부가 되는 거야.”

“그리고 신부는 첫날밤 전에 손에 피를 묻히는 게 아니야. 내가 살던 곳에서는 그랬어. 예쁜 차림으로 방에서 기다려 알았지?”

목덜미까지 새빨개진 리젤다는 눈을 내리깔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해주었다.

“나도 이 정도 권리는 있다고?”

리젤다의 눈이 황망하게 떠지며, 목덜미까지 붉어졌던 그녀가 손끝까지 붉게 물드는 것이 보였다.

리젤다의 그 모습에 장인어른이 눈을 크게 뜨고 ‘우리 딸이 맞는가?’라며 말씀하시다 장모님께 팔뚝을 꼬집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위를 보니 역시 용맹한 북부인들인지 병사들이 내성 무기고를 열어 남녀를 불문하고 무기를 나누어주고 있었고 무기를 받은 마을 사람과 병사들은 북문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장인어른도 장모님의 꼬집기에 정신을 차리셨는지, 시녀 둘과 기사 하나를 데리고 갑옷을 입기 위해서 성안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 말을 탄 에반이 말 한 마리를 더 끌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의 뒤로는 말에 탄 두 명의 눈꽃 기사들이 보였다.

“형님!”

“가자!”

“헤럴드님과 눈꽃 기사 네 명은 이미 북문으로 향하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피해 말을 타고 달리고 있을 때 에반이 상황을 전달해주었다.

저 멀리 북쪽으로 향하는 길 끝에 헤럴드님으로 보이는 다섯의 기사무리가 먼지를 일으키며 북문으로 향하고 있었고, 언덕 아래 민가 지붕에는 엘프들이 마치 파쿠르를 하듯 지붕에서 지붕으로 뛰어넘으며 북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아까부터 하늘에서 들리던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더욱더 커지더니.

­콰과광

공기가 진동해 피부로 느껴질 만큼의 천둥소리와 함께, 북문 밖 너머로 눈이 멀 정도로 밝은 빛을 뿌리며 번개 한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빛이 사라지자 저 멀리 북문 밖 하늘에서 몸에서 맹렬한 전기를 뿜어내고 있는 실리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 이실리엘의 모습도 말이다.

근데 이실리엘이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건 그냥 내 느낌뿐이겠지? 화날 이유가 있었나?

아! 그리고 분명히 실리아 빼고 다른 상급 정령을 소환하라고 말했었는데 왜지?

궁금함을 가지고 말을 내달려 북문 앞에 이르자 헤럴드님이 기사들을 모아 성문 뒤에서 돌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러셀님 늑대와 코볼트들로 이루어진 오백여 마리 이상은 되어 보이는 무리입니다. 성벽으로 뛰어오르지는 못하고 있지만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우르릉

­콰과광

“일단 밖으로 나가는 건 보류해보시죠. 엘프 수호자들도 성벽에 자리를 잡은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성문이 깨질 수도 있으니 일부 병사들도 뒤에서 대기하도록 하죠.”

“성문이요? 설마?”

헤럴드님이 내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씀하셨지만 난 장담할 수 있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겁니다.

나는 헤럴드님을 뒤로하고 곧바로 성벽 위로 뛰어 올라갔다.

병사들과 엘프 궁수들이 아래를 향해 활을 쏘아대고 있었고, 그때마다 한두 마리씩 늑대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우르르릉

­콰과광 콰광

“러셀 중간중간에 마물들이 섞여 있어서 병사들의 화살을 튕겨낸다!”

활을 쏘아대던 로리엘이 나를 확인하고는 소리쳤다.

병사들과 일부 마을 주민들도 성벽 아래로 화살을 쏘아대고 있었지만 섞여 있는 늑대들 틈에 확실히 마물이 섞여 있는지 튀어 오르는 화살이 눈에 들어왔다.

“이실리엘!”

머리 위의 이실리엘에게 소리치자 이실리엘이 빠르게 다가와 말했다.

“러셀 분명히 걸어 다니는 늑대가 있었는데 무리에 섞여서 보이지 않아요.”

“걸어 다닌다고? 두 발로?”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늑대라고? 이쪽에서는 늑대인간 라이칸 같은 건 못 들어봤는데 뭐지? 이실리엘의 말을 듣고 있을 때 실리아의 짜증 섞인 목소리도 들려왔다.

“늑대들이 이상하게 번개를 잘 피하는 것 같아! 짜증 나게 말이지!”

성벽 밖에는 여기저기 벼락이 떨어진 흔적이 보였지만, 가장 멀리 있는 벼락의 흔적 주변 외에는 쓰러진 늑대들이 많지는 않았다.

내가 나설 때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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