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92화 (92/352)

〈 92화 〉 90. 말광량이 리젤다의 결혼 2

* * *

어제의 시끌벅적한 환영 만찬에서 리젤다의 아버지는 북부의 전통주를 맛보여 준다고 산딸기로 만든 술을 권해주셨는데, 이게 달콤하니 맛있어서 한잔, 두 잔 마시다가 목이 말라 깨어보니, 어제 안내받은 방이었고 옆에는 이실리엘이 잠들어 있었다.

어떻게 침실로 왔지? 이실리엘이 데리고 왔나? 무슨 실수는 안 했나?

일단 이실리엘의 이마에 키스해주고 일어나 테이블에서 물을 한잔 따라 마셨다. 필름 끊어질 때까지 마신 건 정말 오랜만인데.

그나저나 첫째 부인과 함께 잤으니 둘째 부인이 잘 잤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와 전생에 술탄들은 어떻게 수십 명의 부인을 챙겼을까? 나는 둘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애니가 자꾸 들이대지만, 더 늘어나는 건 결코 지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것 같아.

세숫물로 얼굴을 씻고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오니 하녀가 대기를 하고 있기에, 그녀에게 안내받아 리젤다의 방으로 갔다. 그런데 리젤다의 방앞에 오자 지나가던 다른 시녀가 우리를 보고 말했다.

“아가씨 방에 안 계시는데….”

그러자 날 안내했던 시녀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그러자 리젤다가 부재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던 시녀가 슬픈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날 안내했던 시녀가 자기 이마를 탁 소리 나게 치더니 외쳤다.

“아니 시집가실 분이. 어떻게 또 오자마자!”

“이게 무슨 소란이지?”

저 멀리 복도 끝에서 시녀들의 소란을 들은 에반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녀들이 에반을 보고 복도 옆으로 물러나 고개를 조아리자. 에반이 다가와서 나에게 인사를 하며 시녀들에게 주의하라며 말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러셀님. 러셀님 앞에서 다들 행동을 주의하도록! 그래, 무슨 일인데 아침부터 이렇게 소란스러웠지?”

하녀 한 명이 개미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게 아가씨가….”

“설마?”

에반도 자기 이마를 손바닥으로 '탁' 치더니 나에게 말했다.

“그, 잠시만 기다리시면. 제가 리젤다를 잡아 아니, 데리고 올 테니, 방에서 잠시 기다리시겠습니까?”

뭐지? 나의 둘째 부인은 가출에 취미가 있는 것인가? 어딜 갔길래 이런 반응이지?

“그 처남?”

“옛? 예 옛! 형님!”

에반이 나의 말에 군기가 바짝 든 듯이 대답했다. 딱딱한 우리 처남 딱딱이를 풀어줘야지.

“그래, 이제 식만 올리면 한 가족이니까 편하게 하자고…. 그 리젤다 찾으러 갈 것 같은데 같이 가지, 나도 구경하고 싶으니까. 우리 어여쁜 아내가 어디서 뭘 하는지.”

내 말에 시녀 둘이 입을 가리고 호들갑을 떨었다.

“어째! 어여쁜 아내라고 하셨어!”

“어머 마님한테 말씀드리면 좋아하시겠어!”

이분들 다 들리거든요? 나는 바짝 긴장한 에반을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마구간에 오자 마구간 지기가 웃으면서 말을 두 마리 준비하고 있었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가죽 주머니를 하나 손에 쥐여 주었다.

“이건?”

내가 가죽 주머니의 용도를 물어보자 마구간 지기가 말했다. 미소가 가득 담긴 얼굴로 말이다.

“마을 나가시면 쓰시게 됩니다요.”

에반과 말을 타고 내성 문으로 가자 경비병 둘이 에반과 나에게 아는 척을 해왔다.

“에반님 아침에 오랜만에 나가십니다. 역시 아가씨가 돌아오신 티가 나는군요.”

“그 아가씨의 남편님도 길을 잘 기억하셔야 할 겁니다. 헤헤”

“아니! 이 사람들이!”

둘은 에반의 역정에도 실실 웃으며 내성 문을 열었다. 우리 아가씨 진짜 말괄량이였나? 내가 이해가 안 가 에반에게 물었다.

“그런데 처남 아니, 그 얌전하고 순수한 리젤다의 평가가 좀 이상한 것 같은 느낌인데?”

그러자 옆에서 대폭소가 터져 나왔다.

“얌전! 순수! 푸헤헤헤헤”

“아니, 정말. 이 사람들이! 문이나 빨리 열게!”

에반과 말을 타고 언덕을 내려가며 거리로 들어서니 갑자기 면상으로 빵이 날아왔다. 고삐를 잽싸게 한 손에 쥐고 빵을 잡아챘다.

빵집에서 영감님 한 분이 웃으며 외쳤다.

“아가씨를 잘 부탁드립니다!”

빵을 시작으로 사과와 과일들 육포 그리고 꽃 같은 것들이 면상으로 날아들었다. 결혼을 축하한다는 덕담과 함께 말이다. 리젤다의 고향은 아주 따듯한 곳이었다. 근데 이거 잘못 맞으면 낙마하겠다?

놓치지 않고 던져주는 것들을 다 잡아채서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 마구간 지기는 생각보다 유능한 자였다.

“그 에반? 이게 상당히 일상적인 느낌인 건, 내 느낌일 뿐이겠지?”

에반이 마른 세수를 하면 얼굴을 쓸어내더니 나한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형, 형님?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리젤다와 결혼을 하실 것이죠?”

“어? 그, 그렇지 결혼 같은 중대한 일을, 어떻게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하겠나. 내가 다시 태어나도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아마도?”

에반에 반응에 뭔가 가슴이 졸려와 나도 모르게 아마도를 말하고 말았지만 해야지. 결혼하러 왔는데 당연히 해야지.

“그 그럼 제가 안심하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북부 최고의 기사들만 될 수 있다는 눈꽃기사가 될 수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야 처남이 재능이 있으니…?”

“아닙니다! 형님! 다 리디를 잡으러 다니고, 제압하려고 하다 보니 이리된 것입니다!”

에반의 애절한 외침과 말을 타고 가면서 들은 내용은 그간의 리젤다의 모습을 알고 있던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설마 우리 아가씨가 내숭 천 단 이었다니.

리젤다는 아홉 살 때부터 온 성내를 돌아다니며 말썽을 피우는데 천재였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성벽에 가서 활을 쏘고, 기사들에게 부모님 몰래 검술도 배우고, 실력이 늘자 몰래 성안의 남자아이들과 말을 타고 사냥을 나가는 등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녔다는 것.

에반은 열몇 살 때인가 부모님의 명으로 리젤다를 잡으러 나갔다가 땅바닥에 패대기쳐진 충격에, 이를 갈면서 리젤다를 잡아 제압하기 위해 수련을 하다 보니 실력이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어느새 기사가 되고 눈꽃을 달게 되었다는 것.

리젤다만 잡아 제압하면 눈꽃 확정이냐? 뭐 계기를 말하는 것이었겠지만 이해가 안 되었다.

“아니, 이해가 안 되는데 말수도 적고 얌전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말에 에반이 안에 그간 담겨있던 울분을 토하듯이 말했다. 뭔가 엄청나게 쌓인 느낌이었다.

“아이가 말수가 적고 얌전해 보이는 건 사실이죠. 그런데, 그런 모습으로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니. 사람들이 믿지를 않고 홀랑 넘어가 버린다니까요. 형님!”

에반은 뭐가 그리 답답한지 가슴까지 탁탁 치며 나에게 말했다. 우리 딱딱한 처남은 어느새 물렁이가 되어있었다.

에반의 신세 한탄을 들으며 말을 달려 성벽 가까이 오자 성벽위에서는 무슨 축제라도 열린 양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악 안 됩니다요. 아가씨! 에이든님 없었으면 그때도 제 눈알 빼버릴 뻔하셔놓고!”

“아니, 나만 믿으라니까? 나 은 등급 용병이라니까?”

위에서는 죽는시늉하는 남자의 목소리와 웃음기 가득한 리젤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반이 말에서 내려 버럭 소리를 지르려는데, 내가 에반의 입을 잽싸게 틀어막았다.

“기다려 이런 꿀 잼을 왜? 조용히 올라가자고”

“예? 뭔 잼요?”

나와 에반은 살금살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단을 거의 다 올라 성벽 위쪽을 머리만 내놓고 빼꼼하게 살펴보니, 거기에는 서커스가 열리고 있었다!

리젤다가 신발을 벗고 물구나무를 서서는 병사의 머리에 사과를 올려두고 발로 활을 잡고 화살을 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거 분명 전생에 서커스에서나 보던 그건데?

내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에반을 바라보자. 에반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르는 건 절대! 절대! 없습니다. 형님!”

나는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리젤다?”

내 부름에 리젤다가 나를 보고 물구나무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태엽 인형처럼 달칵거리듯이 움직이며 조심스럽게 활을 내리고 물구나무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고 조용히 나에게 다가왔다.

리젤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머릿속에 ‘달칵달칵’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리젤다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러, 러셀, 오, 오셨어요.”

심지어 나에게 걸렸는데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지도 않았다. 리젤다 맞니?

에반이 옆에서 리젤다에게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내 그간 너의 만행을 형님께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고했으니. 다 소용없을 것이다!”

“쳇….”

내가 뭘 잘못 들은 것인가? 착하디착해서 엘프들만 걸린다는 ‘가시’에도 걸리는 우리 리젤다가? 쳇? 체엣?

내가 황망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리젤다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말하는 에반의 정강이를 후려 차 에반을 계단 아래로 굴려버렸다. 에반은 비명을 지르며 계단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지다 계단 중참에 있던 상자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처박혔다.

“으아악!”

­쿠당탕

리젤다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러셀, 우리 아침 먹으러 가죠. 저 멍청이는 빼고.”

“그…. 그, 그럴까?”

전생에서 보았던 공포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나는 도끼부인과 결혼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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