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89. 말광량이 리젤다의 결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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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걱정은 기우였던지 갑자기 사람들의 더 큰 환호가 솟아올랐다.
“우와앗!”
“역시 아가씨에요!”
당황해서 헤럴드님을 바라보자 헤럴드님이 다가와서 귓속말로 환호의 이유에 대해 알려주었다. 북부는 무력을 숭배하기에 강한 무력을 가진 사람을 동경하고, 또 다친 전사들을 예우해주는 문화도 있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여자들이 다치거나 은퇴한 전사들에게 시집을 가는 걸 상당히 명예로운 일로 생각한다나? 엄마의 품에 안긴 리젤다의 얼굴이 매우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휴.
리젤다의 아버지 앞에서 한쪽 무릎을 굽히고 예를 다해 정중하게 인사를했다. 후…. 말을 더듬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다. 와 진짜 떨리는구나! 이거.
“안녕하십니까? 러셀이라고 합니다. 따님과의 결혼을 허락받으려고 왔습니다.”
리젤다의 아버지가 미소 띤 얼굴로 나를 일으키더니 내 양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씀하셨다. 다행스럽게 “절대 안 되네! 평민 나부랭이에게, 내 소중한 딸을!”같은 반응은 없었다.
“환영합니다. 러셀님. 발크 화이트 힐이라고 합니다.”
에반이 먼저 와서 대충 이야기를 다 해두었던지 이름도 알고 계시고 인사는 간단했다. 중, 남부의 고압적인 태도의 귀족보다 북부가 훨씬 평민들에게 온건하긴 한데 그래도 이건 아마 이실리엘 때문이겠지?
그리고 리젤다를 품에 안았던 리젤다의 어머니가 웃으며 인사를 해오셨다.
“환영해요. 우리 리젤다를 위해서 준비해주신 선물 감사합니다. 철이 없고 나이도 많은 아이인데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아, 아닙니다. 아주. 아주 마음에 듭니다.”
사람들의 환성이 다시 한번 솟아오르고 리젤다가 자신의 어머니 뒤로 숨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에반의 형 에릭과도 인사를 나눴다. 엄청 덩치가 큰 사내였는데 머리카락은 남색이었지만 얼굴은 어머니를 닮았는지 순한 인상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에릭이라고 합니다. 매부 환영합니다.”
“하하하~. 그나저나 선물이 상당합니다.”
그는 상당히 호쾌한 사내였다. 그리고 그 호쾌함이 어머님의 등짝 스매싱으로 이어졌지만 말이다.
등짝을 문지르며 에릭이 영지민들을 향해 호탕하게 외쳤다.
“매부의 선물 중 오십 마리는 풀어 영지민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다 같이 리젤다의 혼인을 축하하자!”
에릭의 외침이 끝나자 사람들의 환호가 언덕을 메아리치며 흘러나갔다. 화끈한 남자 에릭 메모.
이후 안내받으며 성 쪽으로 이동하는데, 내 다리가 불편한 것을 알고 있던 에반이 말을 한 마리 끌고 와 나를 태웠다. 괜찮다고 했는데도 계속 권유해 어쩔 수 없었다.
말 아래로 리젤다의 어머니가 다가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그 암탉보다 아무래도 큰놈이 좋을 것 같아서 호수 오리를 잡아서 요리했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이게 무슨 소리냐? 하고 고삐를 쥐고 있는 에반을 바라보자 에반이 헛기침해댔다.
“크흠…. 큼….”
“예... 그, 가, 감사합니다.”
“사위가 마음에 들면 살찐 암탉을 준비한다고 하기에, 크면 클수록 좋을 것 같아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새를 구한 것이랍니다.”
그날 저녁 장모님의 사위 사랑이 듬뿍 담긴 요리가 운반되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호수 오리라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 컸다.
사람 둘이 접시 양쪽을 잡고 낑낑거리면서 테이블에 올렸으니까 말이다.
크신(?) 장모님의 사랑을 눈으로 확인하며 성대한 대접과 함께 리젤다의 집에서의 첫날이 저물어갔다.
리젤다는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의 방 창문을 열었다. 사용인들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고 저 멀리 지평선에 떠오르는 태양 빛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 돌아온 것이다.
배불뚝이 상인이나 누군가의 후처가 아니라 러셀이라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아내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몇 년 동안의 가출과 부모님이 원하는 결혼이 아니었음에도 혼나기는커녕 어제 칭찬만 잔뜩 받았다. 아무 생각 없는 머릿속이 검과 수련으로 꽉 찬 첫째 오빠마저도
“리젤다야 이런 가출이라면 환영이다.”
라며 놀리듯 말했으니까 말이다.
리젤다는 물통에 담긴 물로 세안을 하자마자 재빨리 옷을 챙겨 입었다. 집에서 항상 수련할 때 입었던 옷을 말이다. 옷은 아직도 잘 맞았다.
“아가씨 어디 가세요?”
문을 열자 지나가던 시녀 엘마가 자신을 보고 물었지만 북부에서 매일 아침 리젤다가 하던 대답은 항상 같았다.
“잠깐 나갔다 올게!”
“아가씨 신랑분도 계신 분이, 돌아오자마자 그러시면 어째요!”
엘마의 외침을 뒤로하고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갔다. 집사나 시녀 장이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웃으면서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해준다.
그래! 매일 맞이하던 북부의 아침이다.
리젤다는 성 마구간으로 가 말을 한 마리 끌어내었다. 마구간 지기가 머리를 움켜잡고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이미 안장을 올리고 대기하고 있었다.
혀를 빼 날름 내밀어 준 후 말을 타고 달려 나갔다.
“아가씨 아침 먹기 전에는 돌아오셔야 해요! 집사님이 전해두라고 하셨어요!”
“알았어~!”
리젤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외치고는 말을 타고 열린 내성 문 쪽으로 달렸다. 경비들이 멀리서 말을 타고 달려 나오는 자신을 보자, 다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문을 열어주었다.
“안톤, 헤크 고마워~”
“아가씨 전 혼나도 모릅니다! 아니 이제 결혼까지 하실 분이!”
안톤이 툴툴거리며 말하지만 뭐 그게 언제나의 안톤이니까.
리젤다는 말을 달려 내성을 빠져나와 언덕 아래에 마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새벽 첫 빵을 꺼내 식히던 빵집 영감 제이크가 달려오던 자신을 향해 갓구운 빵을 하나 던져주었다. 리젤다는 능숙하게 빵을 낚아채고는 제이크에게 외쳤다.
“고마워 제이크!”
“설마 했는데 역시나 군요! 허허~ 이 시간에 말 달려서 나올 분은 아가씨뿐이죠.”
제이크의 목소리가 멀어져 갈때, 곧바로 빵을 입에 물고 준비한다. 머리 앞으로 날아오는 사과 한 개를 오른손으로 재빠르게 받아낸다. 그리고 양손에 사과와 빵을 쥐고 우측의 과일 가게를 향해 인사를 한다.
“에이미 고마워~”
“아가씨 축하해요~!”
그렇게 사람들의 인사와 꽃 음식 같은 걸 받아 말 안장에 걸린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고 리젤다가 도착한 곳은 성벽 앞이었다.
기둥에 재빠르게 말을 묶어두고 가죽 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다다다다닷
리젤다가 성벽을 재빠르게 뛰어오르자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과 기사 두 명이 리젤다를 보고 환호했다.
“아가씨! 역시!”
“자! 내가 이겼지? 동화 10개 내놓으라고!”
“아니, 결혼 전날에 여길 오신다고?”
다들 리젤다가 이곳에 나타날 것인가를 두고 내기라도 한 눈치였다. 의기양양한 몇 명의 모습 뒤로 머리를 움켜잡은 다른 경비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뭐야? 내기라도 한 거야?”
“아니 아가씨 결혼식 전에는 아니잖아요!”
한 병사에 넋두리에 다들 폭소가 터져버렸다.
“임마. 그건 네가 아가씨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지, 아홉 살 때부터 마님께 감금당하실 때 외에는 한 번도 빠진 적 없는 외출이신데 설마 결혼식 앞이라고 빠지시겠냐? 크헤헷”
늙은 병사 헤크먼이 익살맞게 웃으며 전통과 활을 리젤다에게 전해주었다.
자신의 활을 오랜만에 손에든 리젤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가출할 때 이 아이를 가져가지 못해서 얼마나 슬퍼했던가. 활은 그동안 잘 손질되어 있었던지 상태가 좋았다. 아마도 병사들이 번갈아 가면서 손질해둔 것 같았다.
“고마워 모두 활 상태를 보니까 얼마나 신경 써주었는지 알겠어.”
리젤다의 말에 다들 코를 긁적거렸는데 그중 한 명이 머쓱해 하며 말했다.
“아니, 뭐 당연한 거 아닙니까. 헤헤, 그나저나 저희는 활을 두고 가출하셨다길래 며칠간 믿지 않았다니까요! 아니, 아가씨가 활을 두고 가셨다니 그걸 여기서 믿을 놈이 어디 있습니까?”
그 말에 병사들과 기사 둘은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리젤다가 메고 온 가죽 주머니에서 빵이나 과일 같은 것들을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아가씨 없으니까 간식 챙겨줄 사람도 없고. 북부가 더 삭막했다니까요?”
머리가 벗겨진 병사 로튼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리젤다는 병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활을 쭉 당겨보았다. 오랜만에 당긴 활이 부드럽게 당겨지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내었다.
뿌드드드
활줄은 새것이었는데 아마 자신을 위해서 어젯밤이나 오늘 아침에 갈아둔 것 같았다. 리젤다는 익숙한 동작으로 전통에서 화살을 하나 꺼내, 저 멀리 보이는 한그루 고사목을 향해 활을 다시 겨눴다.
그리고 시위를 살짝 놓아주자.
씨이익
하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화살이 하늘을 날아 고사목의 정중앙에 꽂혔다. 그리고 타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기쁨에 찬 한 명의 환호성과 실망감 어린 다른 병사들이 목소리가 이어졌다.
“자자 다들 내놓으라고!”
선임 기사 애이든이 병사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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