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89화 (89/352)

〈 89화 〉 87. 북부 6

* * *

그날 밤 둘러앉은 모닥불에서는 엘프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얼마나 격렬한 토론이었는지 기사들과 헤럴드님이 한쪽에 따로 모닥불을 피우고 자리를 피해줄 정도였다.

“엘프들이 이렇게 정렬 적인 종족인 줄 몰랐습니다. 허허”

헤럴드님의 농담 섞인 말은 완전히 무시당했다. 토론에 빠진 엘프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기 바빴거든.

엘프들의 토론 주제는 내 정령력과 관련된 이야기였는데 한참의 토론 끝에, 세계수로 가서 장로인 이실리엘의 할머니를 통해서 알아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엘프가 육체의 반은 이 세계에, 반은 정령계에 걸치고 있는 존재기에 정령에게 사랑받는다는데, 나는 사람인데 정령들이 좋아한다니 엘프들도 이해할 수 없어 했다.

중간에 고위 정령에게 물어보겠다며 이실리엘이 가장 친한(?) 정령인 실리아를 소환하려고 해서, 로리엘이 기겁하며 이실리엘을 말려야 했다. 나도 이실리엘의 말에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왜 작은 롱 윈드는 옆에 없는 것이지?

인간 너무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가?

그녀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또 신방을 차려준다면 감사할 일이긴 하지만 주변이 남아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한밤에 엘프들의 대토론회가 끝나고 초반 평화롭고, 아름답고, 한적하기만 했던 우리들의 여정은, 다음 날부터 더욱더 출몰하기 시작한 몬스터들로 힐링 여행에서 생존 여행으로 슬슬 변화하고 있었다.

­컹

기사의 메이스에 머리통이 터져나간 코볼트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사방에 널려있는 코볼트가 서른 마리쯤 되었는데, 아직도 따듯한 놈들의 시체에서 코를 찌르는 개 냄새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개 머리의 아인 몬스터. 개 수인과 다른 점은 말이 안 통한다는 것과 사람고기를 좋아하고 이쪽이 좀 더 개에 가깝다는 것이다. 개 수인이 인간에 개의 귀와 꼬리, 갈기 정도를 가진 모습이라는 이쪽은 인간 모양의 육체를 가진 개랄까?

하급 몬스터라 강하지는 않은데, 이쪽도 야수 기반이라서 민첩성이 높고 다수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여행객을 습격한다.

“윽 개 냄새!”

내가 코를 막으며 소리치자 피가 뚝뚝 떨어지는 헬멧을 벗으며 기사들이 웃었다. 오늘은 벌써 두 번째다.

숲 쪽으로 들어갔던 로리엘도 장갑을 벗어들고 내 쪽으로 인상을 쓴 채 걸어오며 말했다.

“숲에 두무리가 있었는데 한 무리가 죽으니 나머지는 도망쳤다.”

“수고했어. 다 못 죽인 거 보니까, 흩어져서 도망갔나 보네?”

엘프들이 목표를 추적했는데 도주했다? 그건 뭔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로리엘 정도 되는 엘프가 목표물이 도망쳤다고 말하는 건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는 것.

“멍청한 코볼트답지 않게 첫 무리가 공격당하자마자 사방으로 흩어져서 도망갔다.”

정말 엄청나게 신기한 일이다. 코볼트가 무기도 사용할 줄 알고 갑옷도 입지만 그렇게 뛰어나게 머리를 굴리는 종족은 아닌데 엘프들이 숲 쪽으로 습격해오자 흩어져서 도망갔다니.

뭔가 엄청 구린 냄새가 났다.

“이상하네요. 이쪽은 비교적 안전한 곳인데요.”

리젤다가 가죽 물주머니를 꺼내서 로리엘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인근 몬스터 생태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몬스터 생태계가 뭔가요?”

이실리엘이 눈을 반짝거리며 물어왔다. 우리 문과생에게 어떻게 쉽게 설명해준다?

“그러니까 생태계란 말이지 어떤 지역에 사는 생물들은 어떻게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거든? 서로 먹고 먹히는 그런 과정에서? 그런 걸 생태계라고 하는데. 그게 몬스터들이 사는 일정한 지역이라면, 그 지역에 사는 몬스터들의 서로 간의 영향 관계를 몬스터의 생태계라고 하는 거야.”

이실리엘은 이게 무엇? 이런 눈치였고, 어느새 옆에 온 헤럴드 님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그래 숲에 사는 어떤 쥐가 있다고 하자. 쥐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를 먹고 사는 거지. 그런데 어느 해 날이 너무 좋고 비도 많이 내려서, 나무에 도토리가 엄청나게 많이 달려 늦가을에 수없이 떨어져 내린 거야.”

“그래서 쥐들은 그 도토리를 겨우내 실컷 먹고 봄에 엄청나게 불어났지. 그런데 쥐를 먹고 살던 여우랑 매들도 숲에 쥐가 많으니까 그해 그것들을 잡아먹으면서 많이 불어나게 되는 거야. 신기하지?”

“아, 숲에는 도토리만 늘어났을 뿐인데. 그것 때문에, 쥐가 늘어나고 쥐가 늘어나서, 그걸 잡아먹는 여우와 매가 늘어나는 결과가 나왔다는 거군요?”

리젤다가 내 이야기를 꼼꼼하게 듣고 있다가 말했다.

“그렇지!”

옆에 이실리엘은 손가락을 꼽으면서 쥐가…. 여우랑 매가…. 이러면서 뭔가 계산을 열심히 하는 중이었다.

한참을 그러더니 헤실헤실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뭔가 어려워요. 러셀, 헤….”

누가 그랬냐? 엘프의 아름다움이 차갑고 도도한 아름다움이라고? 진짜 엘프의 미는 백치미였다. 그리고 백치미 엘프는 심장에 해로운 존재였다.

머릿속에 ‘저 엘프는 해로운 엘프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면 코볼트들이 저렇게 몰려다니면서 행동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는 말이군요?”

왠지 안경을 살짝 끌어 올리면서 대답할 것 같은 리젤다 학생의 만점짜리 답변이었다.

“그래 그거야, 우리 얼마 전에 한번 겪었잖아? 도둑놈들이 늪지를 쑤시고 돌아다니니까 몬스터들의 서식지가 변경되고. 그러니까, 게들이 마구 번식하고, 또 게를 잡아먹으려고 깊은 바다에 살아야 하는 문어가 강까지 올라오고.”

내 말이 끝나자 리젤다가 게 사건의 생각이 났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긴 리젤다는 그때 아마도 황천길 초입을 구경했을 테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저것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옆에서 리젤다 학생과 열심히 수강 중이던 헤럴드님이 옆에서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글쎄요. 첫날 갈기늑대라고 했던가요? 그리고 다음 날 코볼트 무리 한번, 그다음 날 숲 늑대 무리 한번, 그리고 회색늑대 무리 두 번, 오늘 코볼트 무리 두 번까지, 공통점이 있네요.”

“공통점이요?”

“네 전부 늑대랑 개 같은 개과네요.”

“개과가 뭔가요?”

생물분류가 안되있는 세계니까 하나하나 다 설명해야 하는구나.

“그러니까 인간이랑 엘프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서로 다른 종족이잖아? 그런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지?”

“네...”

이실리엘이 왠지 볼을 발갛게 물들이고 대답했다.

“개나 늑대도 서로 비슷한 종이라서 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날 수 있거든. 원래 서로 아주 다르면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새나 인간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개과는 늑대, 여우, 너구리, 코볼트 같은 애들이 개과라고 할 수 있겠네.”

다들 오…. 그렇구나! 하면서 대단해요! 막 이런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 늑대 비슷한 것들이 이렇게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건, 그럼 무슨 뜻이죠?”

분명 주변에 우리가 모르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먹이가 늘어났다거나, 포식자가 유입되었다거나, 서식지에 어떤 변화가 있다면, 이렇게 한 종이 아닌 여러 종이 목격되어야 하는데, 현재 숲에서 목격되는 건 개과 뿐.

그러면 개과들이 이렇게 집단으로 주변을 습격하는 건 어떤 이유일까?

“글쎄 아직까진 정보가 많지 않아서 모르겠네. 개과를 통솔하는 지능 높은 마물이라도 있다면 뭐 다 설명이 되겠지만.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큰 의문만 남긴 채 끝이 났고, 잦은 몬스터의 습격과 사라진 사냥감들로 인해 우리는 절대로 원치 않던 근처 가장 큰 성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악! 영원의 스튜라니! 나의 결심에 다시금 금이 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의 방문을 알아차린 영주가 여관이 아닌 영주의 성으로 우리를 초대해 접대해주었다는 것이다.

영주의 접대는 훌륭했다. 리젤다의 말로는 북부 엘프들의 대수림과 근접한 곳일수록 엘프에 대한 경외가 남다르다고 했는데 그것은 정녕 사실이었다.

이실리엘의 금발을 본 영주는 북부 눈꽃기사 단장 헤럴드님과 인사를 하던 중, 헤럴드님을 헌신짝처럼 버리더니, 날 듯이 이실리엘 앞으로 와 최대한 정중하게 한쪽 무릎까지 꿇고 이실리엘을 영접했다.

“위대한 숲의 높은 엘프시여 저의 초라한 성에 방문해 주심이 저희 가문에 무한한 영광입니다.”

“이실리엘 롱 윈드라고 합니다. 환영해 주시고 하루 묵어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실리엘은 이럴 때만 뇌가 풀 가동 되는지 아주 도도한 모습으로 영주의 환대를 자연스럽게 받았다. 영주는 저녁에 아주 테이블 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만찬을 차려두고 우리를 대접했다.

따듯한 물에 목욕하고 싶다는 말에 따듯한 물도 준비해주고 원래 하루만 묵어가려고 했는데 엄청난 환대를 받고 다음 날 떠나려니 영주가 너무 실망스러운 표정을 보여서 우리는 하루를 더 묵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나는 날 우리를 배웅하며 영주가 이실리엘에게 물었다.

“이실리엘님 혹시 불편했던 것이나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신지요?”

이실리엘은 영주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옆에 있던 리젤다가에 도리어 질문을 던졌다.

“음…. 여기가 리젤다의 집으로 가기 전, 가장 큰 도시라고 했나요?”

“예, 이실리엘님 여기서 나흘만 가면 이제 저희 영지에 도착해요.”

이실리엘이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백작이라는 영주에게 말했다.

“그,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예 무엇이든 말씀해 주십시오. 이실리엘님의 부탁이라면 제가 저희 가문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영주는 이실리엘이 뭔가를 부탁한다니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것이 부탁받는 사람의 모습이라니. 뇌에서 뭔가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의 감상을 ‘쨍그랑’하고 깨트리는 이실리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이 필요해요.”

“예? 야, 양이요?”

“네, 천 마리만 말이죠.”

“넷?”

“그 풀 뜯어 먹고. 메에 메에 우는, 그 양 말씀이시죠?”

“네, 맞습니다.”

이실리엘의 부탁(?)을 전해 받은 영주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실리엘은 양 천 마리를 얻기 전까지는 절대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 그녀는 집요한 엘프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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