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87화 (87/352)

〈 87화 〉 85. 북부 4

* * *

내가 어젯밤 여관 이용에 부정적 견해를 보이자 헤럴드 님이 아그라프 한 마리를 더 구하겠다고 했다. 보급품과 식량 등을 새로 구한 아그라프에 싣고 가자는 것이었다. 여기서 리젤다의 집까지는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했으니 나쁘지 않은 생각이기에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다.

엘프들이 있으니 식량은 딱히 필요 없을 테지만 매일 고기만 먹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아그라프는 헤럴드 님이 구매했는데 우리가 산다니까 절대 안 된다고 난리를 쳐서 어쩔 수가 없었다.

영감이 고집이 황소 아니, 아그라프 고집이었다.

아그라프는 촌장이 소개해준 농민의 집으로 가서 직접 샀는데 세 마리중에 6살 수컷이라는 놈을 샀다. 리젤다가 직접 골랐는데 엄청나게 좋아하면서 이름까지 붙일 기세였다.

“이것 봐요. 러셀, 6살이면 아직 어려요!”

“이…. 이게?”

덩치가 우리가 탄 아그라프보다 좋았고 수컷이라 그런지 체격이 다부져 보였는데 어리다니…. 어리다는 녀석은 많은 짐도 아주 가볍게 지더니.

­미오우~

하고 울어댔다.

리젤다는 갑자기 두 마리가 된 아그라프에 신이 난 것 같았다. 털도 빗겨주고 머리도 연신 쓰다듬어주고 풀도 뜯어 먹이고 말이다. 근데 이거 털이 길어서 남부에서는 못 기를 것 같은데….

안되면 여관에 개라도 길러야겠다. 원래 식당에 짬 타이거랑, 똥개 한 마리씩은 기르니까 말이다.

아크라프를 샀던 농민의 집에는 양들도 보였는데 내가 물어보자 파는 양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이실리엘이 수를 열심히 새더니 실망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양이 매우 부족해요.”

그 말에 나도 리젤다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실리엘에게 양은 며칠 더 가서 리젤다의 집과 가장 가까운 도시나 마을에서 사는 게 좋겠다고 달랠 수밖에 없었다.

아그라프 두 마리에 눈꽃기사 넷, 엘프 수호자 열이 우리 여행의 동반자였다. 보급품 구매에 시간이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점심이 조금 지나서 마을을 떠나 다시 길을 재촉할 수 있었다.

일행은 구릉지에 난 길을 따라 북으로 계속 올라갔다. 수컷에 헤럴드님이 올라타서 우리가 탄 아그라프에는 여유가 있었는데, 셋이 아그라프의 등에 누워 하늘을 보니 북부의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하긴 지금 내가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나….

한참을 이동하다 해가 지려 해 야영지를 물색하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한번은 들었던 소리가 애타듯 들려왔다.

­부웅~ 부웅~

북부의 양각나팔 소리였다. 헤럴드의 외침에 북부 기사 넷이 소리가 울려온 방향으로 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확인해보도록!”

말 네 마리가 구릉지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소리 난 방향으로 대지에 깊은 자국을 남기며 달려 나갔다.

“무슨 소리죠?”

“도움을 요청하는 양각 나팔입니다.”

“그럼, 다 같이 가봐야 하는 게?”

“일단 중요한 분들을 모시고 있으니 기사들이 곧 상황을 파악하고 올 겁니다.”

헤럴드님의 말로는 비교적 몬스터나 마물이 많이 나타나는 북부에서는, 이렇게 양각 나팔을 이용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고 했다.

얼마 안 돼 저 앞에서 기사 한 명이 화급한 표정으로 말을 달려오며 외쳤다.

“갈기늑대! 십여 마리! 마차 행렬이 습격받고 있습니다!”

“뭣? 대산맥에서 어떻게?”

뭐지? 뭔가 큰일 난 상황인가? 기사의 외침을 들으니 뭔가 큰일이 난 분위기 같았다.

헤럴드님은 기사의 보고를 듣자마자 아그라프에 묶여 있던 자신을 군마를 풀어냈다. 그리고 말에 올라타 달려 나가며 나에게 말했다.

“제가 처리하고 올 테니 기다리시죠.”

그리고는 기사 기사와 같이 구릉에 난 길을 따라 달려가기 시작했다. 영감님 연세도 생각하셔야지…. 나는 이실리엘에게 헤럴드님을 따라가 보자고 말했다.

“이실리엘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네!”

넷의 수호자만 아그라프 두 마리와 남겨둔 채 우리는 말을 타고 헤럴드님을 빠르게 쫓았다. 몇 개의 구릉을 넘자 언덕 너머에서 으르렁 거리는 늑대의 소리와 사람들의 고함이 들려오고 있었다.

“으아아악!”

“이 새끼들!”

우리가 언덕 꼭대기에 오르자 머리부터 꼬리까지 갈기가 긴 늑대 십여 마리가 마차 세 대가 있는 행렬을 습격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야 저게 늑대라고?”

무슨 늑대가 준성체 망아지만 했다. 이런 건 모험가 시절에도 못 봤는데?

“대산맥에서 가끔 넘어오는 마물이에요. 원래는 서너 마리 정도가 한 무리인데 이상하네요.”

이실리엘이 전통에서 화살을 꺼내며 말했다.

기사들이 말을 타고 늑대들과 싸우고 있지만 늑대가 얼마나 날렵한지. 기사들이 휘두르는 철퇴를 몸을 낮춰 슬쩍 피하거나 뒤로 훌쩍 뛰거나 하면서 기사들을 유인하고 있었고. 남은 놈들이 마차 행렬에 있던 손쉬운 사냥감인 용병이나 일반인들을 물어뜯으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먼저 달려간 헤럴드님이 노인네인 척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장검을 뽑아 들고 달리던 속도 그대로 말 위에서 도약하더니. 자신의 앞에 있던 늑대 한 마리의 목을 검 격으로 단숨에 잘라냈다.

헤럴드님의 검 격에 푸른 목초지 위에 붉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아니 영감님 걱정에 달려왔는데 혼자 무쌍을 찍으실 분위기였다. 하긴 기사단장이라고 했지. 누가 누굴 걱정했던 건가.

말에서 내려 화살을 쏠 준비를 시작했다.

몇 명은 말을 진정시켜야 했기에 실제로 화살을 쏠 수 있었던 건 나와 이실리엘과 로리엘과 엘프 둘 뿐이었다.

전통에서 화살을 하나 꺼내 이실리엘에게 선물 받은 활에 걸었다. 북부로 오기 전에 이실리엘이 한번 손을 봐주어서 상태는 예전보다 좋았다. 특이하게 세계수로 만들어진 활대는 평상시에는 시들 듯이 움츠러들어 시위와 활대를 보호하고 이렇게 손에 들면 다시 팽팽한 시위를 자랑했다.

비교적 빠르게 준비를 끝낸 나와 이실리엘 로리엘이 먼저 화살을 쏘았다.

­씨이익

우리는 한쪽에 뭉쳐있던 늑대 세 마리를 노렸는데 화살이 목초지 위를 미끄러지듯 날아 놈들에 몸에 꽂혀 들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쏜 화살은 놈들의 몸에 맞는 순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놈들의 몸에서 전부 튕겨 나왔다.

“뭐?”

“중급 이상 마물이다!”

로리엘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용병들이 신의 힘이나 마력, 정령력등 뭔가 한 가지를 체내에 받아들여 그들의 힘을 빌리거나 이용할 수 있게 되고, 그를 이용해 육체를 강화하거나 이능을 발휘해 인간 이상의 힘을 낼 수 있게 될 때 그들을 은 등급이라 인정해 준다.

그리고 자연 속에 흩어져 사는 몬스터들이 똑같이 마신, 악신등의 권능을 받아 자기 종족을 초월할 때 그들을 마물이라고 부른다.

저 새끼들처럼 말이다. 저 새끼들 털가죽은 칼도 잘 박히지 않는데 목을 잘라도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갈기늑대는 하급 이상이 거의 없는데 이상합니다.”

옆에서 이실리엘이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리고는 시위에 화살을 걸지 않고 시위를 팽팽하게 당겨 시위를 튕겨냈는데, 이실리엘이 겨누던 곳 저 멀리 서 있던 갈기늑대 한 마리가 갑자기 머리에 해머라도 맞은 것처럼 혀를 빼물고는 바닥으로 처박혀 버렸다.

“오...”

바람의 화살 같은 건가? 이실리엘의 이능에 놀란 것도 잠시, 옆에서 갑자기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로리엘이었다.

그녀는 불꽃의 화살을 시위에 걸고 있었는데 화살 한 대가 마치 창처럼 보일 정도였다. 엘프들은 불을 다루는 권능을 잘 쓰지 않는다는데 확실히 로리엘은 특이한 엘프였다.

브라한이 언젠가 맥주에 취해서, 조용히 귓속말로 로리엘을 조심하라고 여자의 XX에 YY 해봤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항문 쏘기가 특기라고 했던가?

술김에 한 음담패설이나 농담인 줄 알았는데 알아보니 피해자가 조금 있었다.

며칠 후 벨릭이 기쁜 얼굴로 “형님, 엘프님이 XX에 YY 해봤냐고 물어보는 건 저한테 관심이 있다는 건가요? 아니, 그걸 해보자는 건가?”라며 물어왔을 때 머리가 아팠으니까 말이다.

벨릭의 첫 경험을 XX에 YY로 시킬 수는 없기에, 그 뒷말은 XX에 화살을 넣어줄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의 말이라고 일러두었다.

실망 섞인 벨릭의 뒷모습은 처량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의 창을 활대에 건 로리엘이 자신의 불화살을 목표를 향해 쏘아 냈다.

그녀의 목표는 우리에게 등을 보이는 늑대였는데 방패를 들고 쓰러진 용병을 앞발로 내리누르고 있었다. 로리엘의 손에서 떠난 화살은 공중을 불꽃으로 아름답게 수놓으며, 용병을 맛보기 직전 신이나 놈의 추켜올려진 꼬리 아래로 쏙 빨려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놈의 배가 불룩거리더니 항문에서 연기가 나고, 입으로 핏덩이를 토해내며 눈알이 돌출되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서 바로 죽어버렸다.

그, 그래, 거기가 급소긴 하지….

로리엘은 자신의 목표가 침묵하는 걸 보더니 나를 보고는 씩 웃었다. 헐...

그런데 그 미소를 보니 왠지 식은땀이 났다. 브라한이 뭘 조심하라고 했는지 약간은 이해가 갈지도?

쓸데없는 생각을 뒤로하고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활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활에서 퍼져나가는 기운에 감각을 집중했다. 머릿속에 목초지 위로 흩어진 갈기늑대들과 쓰러진 사람들, 기사들이 마치 사차원 지도를 보는 것처럼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중에 한 마리를 고른다. 기사의 철퇴를 재빠르게 피하며 기사를 유인하는 검은 갈기를 가진 놈.

검은 갈기의 늑대 놈을 표적으로 화살 두 발을 시위에 걸어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렸다. 하늘에서 장난기 많은 바람의 정령이 웃으며 내가 날린 화살을 잡고 목표로 인도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대지에는 땅의 정령이 움직이는 늑대의 위치를 계속 알려주고 불의 정령은 놈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열기를 확인해 준다.

늑대가 철퇴를 휘두르고 자세가 무너진 기사에게 도약하려 몸을 웅크릴 때 내가 쏜 두 발의 화살이 늑대의 두 눈알에 빨려 들어갔다.

­커겅

놈이 큰 신음을 뱉어내고는 그 자리에서 굴러대자 눈꽃기사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철퇴로 머리통을 부숴버렸다.

반격의 시작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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