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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in 여관-83화 (83/352)

〈 83화 〉 81. 하렘 3

* * *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우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났기에 땅도 어느덧 제법 마르고, 건조한 바람이 평원을 타고 불어오는 그런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오늘 아침은 조금 분주했다. 내가 없는 기간 동안 종업원들에게 해야 할 일을 전달해 두었는데,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밀, 평원 엘프들은 우기 끝나면 사냥이랑 채집을 이어가기로 했지?”

“응! 러셀, 그리고 나무는 어디다 심어?”

“나무? 아! 사과나무? 에밀이 심고 싶은데 아무 데나 심어. 여관 주변은 아무 데나 상관없거든.”

에밀은 내가 예전에 말했던 사과나무를 꼭 심으리라 결심했나 보다. 우기가 끝나 토란잎으로 만든 모자를 쓴 에밀을 더 이상 못 보게 되어 너무 서운했다. 여관 마스코트 같은 앙증맞은 귀여움이었는데. 뭐 내년에도 우기는 찾아오니까.

“쥐 가죽도 부탁할게”

“알았어. 러셀, 나만 믿으라고!”

에밀의 확인이 끝났다. 그럼 다음은 엠마를 찾아가야 한다. 에밀이 평원 엘프 몇몇과 사는 집에서 나와 한나 아주머니 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머리 위로 첫 태양이 높게 떠오르고 있었고 아침에 내린 이슬들이 반짝이며 사방으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맞으며 저 앞에 한나 아주머니 댁 앞에 엠마와 시트라가 한 엘프를 부축해서 산책시키고 있었다. 분명 걷기는커녕 말도 못 하는 엘프였는데 상급 사제가 대단하긴 한 것 같았다. 아 참 이단 심문관이라고 했지..

“여 엠마~”

“앗! 러셀님!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러셀님.”

내 인사에 둘 다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어제저녁에 이야기는 다 해두었지만. 마지막으로 확인을 해두는 것이다.

“나 없는 동안 엘프들을 잘 부탁할게. 시트라님께도 신세가 많습니다.”

“당연하죠. 러셀님!

“아닙니다.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시트라는 이단 심문관이라는데 며칠 전 광기에 빠질 때 말고는 정말로 성직자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머니 같은 모습이랄까? 엘프들도 착실히 돌보고 다친 상처를 어루만지는 모습이라니. 사람이 좀 다르게 보일 정도였다. 광기에 빠진 모습과 너무 차이가 크달까?

“러셀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괜찮으실까요?”

“예? 예 말씀하시죠.”

“그, 혹시 마을에 신전이 들어오는 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뭐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 사제 두셋 정도만 머물 수 있는 아주 작은 규모입니다. 아무래도 엘프들을 돌보려면 정신 치료 특화 사제들이 와야 하고 마냥 여관에서 머무를 수는 없기에, 성국 쪽에서 조용히 의사를 물어왔는데요.”

“조용히? 저에게요?”

“예, 그리고 언제 한번 성국에 방문해주실 수 있는지도, 성국 높은 곳에서 조용히 전달을 한번 해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이런 건 소질이 없어서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 물론 이실리엘님과 다른 아내들과 같이 입니다.”

아 제발! 나를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신전 들어오게 해달라는데, 왜 나한테 말하는 걸까? 촌장님이 계시는데….

“그, 신전은 그 촌장님께…?”

“아, 촌장님은 러셀님과 상의하라고 하시더군요.”

씹…. 아니, 촌장님 제가 많이 도와드렸는데. 이걸 저한테 이렇게 드랍하신다고요? 두통이 몰려왔다. 아니 이 세계처럼 신이 직접 권능을 막 보여주는 곳에서 신의 대리자들이 ‘뭐 좀 하겠습니다’ 하는데 ‘안 되겠는데요?’ 할 수 있는 간 큰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고….

“예, 예 그럼요 저희는 다 주신의 자녀인데 신전이 들어오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환영해야지요. 하. 하. 하.”

나는 마치 로봇처럼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진짜.

“그, 그러면 당연히 신전은 자애와 순결 교단의?”

다른 교단보다 차라리 처녀들만으로 이루어졌다는 순결 교단이 나을 것 같아서 물었다.

“저는 러셀님이 종교에 대해서 무척 많은 것들을 알고 계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군요.”

시트라가 나를 보고 씩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이 분.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신전은 통합 신전입니다. 모든 신을 모시는 신전이죠. 모험가 시절에도 한 번도 신전에는 방문 안 해보신 듯합니다? 저에게 얼마 전에 육체는 썩어 없어질….”

“하하하, 제가 그 마음만은 언제나 신실한데 먹고살기가 힘들다 보니….”

솔직히 안 해봤다. 다친 적도 드물고 포션을 마셨으면 마셨지, 양친을 다 잃고 맨땅 헤딩하는 놈이 무슨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서 신전을 찼겠나….

“예, 뭐 그러시겠죠…. 그럼 신전 건은 허락하신 거로 알고 그렇게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예 그러셔야죠…. 예….”

“그럼 성국 방문은?”

“그, 그건 제가 좀 생각을…. 정말 초대에 그 감사하는 마음이지만, 제가 그 성직자 알레르기…. 아니 그러니까 성국 그….”

그때 애니가 여관 쪽에서 애니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러셀? 거기서 뭐 해! 준비 안 해? 두 마님은 다 준비하신 것 같은데?”

오우 역시 나의 행운의 마스코트 애니! 크하핫.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애니가 도움이 될 때도 있구나. 상습 협박범 같은 녀석인데.

“저, 제가 지금은 조금 바빠서, 그건 그 북부 다녀와서 이야기해도 될까요?”

“아 제가 너무 시간을 빼앗았군요. 여행 중 여신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어우 감사합니다.”

시트라에게 재빠르게 인사한 후 나는 부리나케 애니 쪽으로 뛰어갔다. 이번 생에서는 이상하게 거부감이 든단 말이야 종교는…. 전 생애에서는 달란트도 착실히 모으는 어린이였는데….

“오우 나의 귀염둥이 애니! 네가 날 살렸다!”

“어!? 귀염? 그, 그래?”

“그래 정말 고마워. 자 들어가자 한나 아주머니랑 어제 이야기했던 거, 다시 한번 확인하게”

내 칭찬에 어색해하는 애니를 데리고 여관으로 들어왔다. 내가 그동안 너무 발레리만 끼고 애니 한테 무신경했나? 사소한 칭찬에 부끄러워하고 그러네.

여관 안에서 한나 아주머니와 애니, 마리나의 일들을 다시 확인해 주었다.

여관업무는 여관을 운영해보신 한나 아주머니가 계시니 문제는 없었지만, 음식이 문제였다. 몇 가지 조리법은 알려드렸는데 내가 없는 기간 동안 여관의 식사가 단조로워질까 봐 그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그동안 했던 음식들의 레시피를 글로 남겼는데 문제는 여관 쪽의 한나 아주머니와 애니가 글을 모른다는 것. 그래서 시간 날 때 마리나에게 글을 배워두라고 말해두었다.

차선책으로 일주 일치 레시피는 발레리에게 주었으니 챙겨서 마리나에게 읽어주라고 시키라고 했다. 뭐 안되면 내가 끓이는 스튜는 한나 아주머니도 이제 전문가나 다를 바 없으니까 그것으로 대체 하라고 했고 말이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은 업무를 총괄할 발레리의 차례였다. 발레리와는 전투식량 계약 문제, 여관의 운영 창고관리, 엘프들의 복지 문제를 비롯해 수많은 일들이 넘겨졌다. 조금 양심에 찔려왔다.

“그 발레리?”

“예?”

“그, 너무 많은 일을 넘기고 다녀오게 돼서 미안해. 두 달만 잘 부탁할게.”

“그…. 저는 괜찮아요. 이제 가족이고…. 두 분 마님한테 허….”

“어 형님!”

벨릭이 자기 방에서 나오다 이층계단을 오르고 있는 날 보고 아는 채를 해왔다.

“너도 여관에 무슨 일 생기면 신경 좀 써줘. 그나저나 새로운 파티원은 구했어?”

“아우로라, 에우로라랑 브릴다, 에브리나까지 7인으로 다녀보려고요. 그 정도면 리자드맨 마을도 밀어버릴 수 있으니까.”

그간 생사고락을 함께해서 그런지 다들 아주 친해져서 파티를 합치기로 했나 보다. 리젤다도 결혼 후에 사냥하러 다니고 싶어 하던 눈치던데 위험해서 걱정이긴 한데 그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해봐야겠다.

“그래, 다녀올게.”

“형님, 아주 장가간다고 입이 찢어지네. 크크”

“새키, 임마. 그럼 좋지. 싫겠냐?”

벨릭과 헤어지고 삼 층으로 올랐다. 삼 층은 층 전체가 내 방으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삼 층에 도착하자 발레리가 물었다.

“여긴 왜?”

나는 문을 열고 방의 열쇠를 발레리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업무를 보려면 조용한 공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여긴 비교적 조용하니까. 여길 쓰도록 해.”

발레리가 자기 손에 남겨진 열쇠를 꼭 움켜쥐고 말했다.

“네...”

모든 준비가 끝났다. 방에 있던 가방을 메고 나오려는데 발레리가 잽싸게 낚아채더니 말했다.

“제가 아래까지 들어다 드릴게요.”

나는 빙긋 웃어 대답을 대신했다.

여관 앞에 우리를 배웅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여관의 손님인 용병들과 마을 사람들 조금. 인사를 나누고 게이트를 열고 있는 마법사들에게 향하려는데, 뒤에서 이실리엘이 발레리를 안아주며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발레리 저희가 없어도 여관을 잘 부탁해요.”

“네 이실리엘님.”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걸 명심하세요. 저희가 돌아올 곳을 잘 부탁드려요.”

이실리엘의 말에 발레리가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지금 말에 어떤 감동 포인트가 있는 거지?

혼자 남겨져 대량의 업무를 봐야 하니. 앞이 캄캄해서 그런가?

“발레리, 다음은 발레리의 차례니까, 저희끼리 다녀온다고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다음번에는 꼭 셋이 같이 입니다.”

리젤다도 발레리를 안아주며 말했다.

뭐지 뭘 같이 한다는 거지? 나 혼자 뭔가 이해를 못 하고 있는데 인사를 끝내고 이실리엘과 리젤다가 양옆에서 팔짱을 끼며 말했다.

“러셀, 앞으로 좀 더 발레리에게 신경을 써주세요.”

이실리엘이 말했다. 그리고 리젤다도...

“맞아요. 그렇게 업무만 맡기고 방치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넷? 방치요?”

마법 문이 열리고 기사들과 엘프들이 이동하는 통에, 나는 대답도 듣지 못하고 두 여자에게 붙잡혀 마법 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아니, 왜 둘이 웃기만 하고, 대답을 안 하는 건데?”

러셀의 목소리를 끝으로 마법문이 닫히고, 남겨진 발레리는 손바닥을 펴 손위의 열쇠를 보며 생각했다.

다녀오세요. 모두. 제가 이곳은 잘 지키고 있을 테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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