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80. 하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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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서부의 귀족이나 왕들이 자신의 처나 첩들을 기거하게 하는 구역을 말한다. 남성들은 들어갈 수 없는 여성들의 영역.
하렘의 주인인 남성이 하렘에 여인들은 채워 넣는 것은 자신의 자유지만, 그 안에서의 여성들의 삶은 철저한 계급과 지위고하가 정해져 있으며, 그런 여성들의 계급체계 안에서 여성 각자의 행복은 본연이 여성 각자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다.
하렘 안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은 그 서열이 명백하게 나누어져 있기에 서열에 따라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
만약에 러셀의 어머니가 있었다면 모든 하렘의 권한은 그녀의 것이었겠지만. 러셀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으니 하렘의 최대 권력자는 첫째 부인 이실리엘의 것이었다.
발레리는 다시금 자신의 기억을 상기시키며 방에서 자신의 단검을 챙겨 품에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첫째 둘째 부인이 머무는 방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가슴이 두근두근 떨린다.
품에 넣은 단검의 감촉과 손잡이의 서늘함이 자신을 정신을 붙잡아준다.
그래 결심은 이미 했다.
며칠 전 첫째, 둘째 부인과 북부로 여행을 떠난다는 러셀의 말에 조금은 서운했다. 자신만 두고 간다니…. 하지만 둘의 본가를 방문해서 결혼식을 한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첫째 둘째 부인 둘 다 아직은 정식 결혼을 한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도 마음은 이미 러셀의 것이지만 몸까지 완벽하게 러셀의 것이 되려면 앞에 둘이 먼저 정식 결혼을 올려야 했다. 그래, 둘이 정식 혼인을 하면 곧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 테니 나쁜 일은 아니었다.
여관 하녀가 자신이 세 번째라고 주장하며 가끔 눈치를 주지만 첫째는 높은 엘프, 둘째는 북부 귀족, 자신은 서부 귀족이니 순서로는 밀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평민이야 첩실이 될 것이고 자신은 그래도 셋째 부인의 위치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뭐 러셀의 것이 된다면 첩실도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정실이 좋은 것이었다.
자신에게 여행을 이야기하던 러셀의 말이 떠올랐다.
“발레리 너는 내 분신이자 반쪽이나 마찬가지야. 내가 없으면 네가 모든 업무를 대행하는 거야 알았지? 늦어도 두 달 안에는 돌아올 테니 그동안 여관을 잘 부탁해.”
그래! 자신은 러셀의 분신, 러셀의 대행자 그의 반쪽. 그는 여행을 갈 때 자신의 모든 재산을 맡길 정도로 나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에 행복한 울림이 밀려왔다. 자신의 분신, 반쪽, 대행자...
하지만 러셀의 그런 말에 결코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발레리는 알고 있다. 그가 자신을 자신의 하렘에 넣어 자신의 소유로 삼았지만, 하렘 안에서의 서열은 명백한 것.
겸손하게 행동하여 윗분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아야 했다.
러셀의 첫째나 둘째 부인은 하렘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자신에게 너무 관대하기도 하고 뭐 높은 엘프와 북부 귀족이니 하렘을 접해보지 않아 그럴 수도 있다 싶었다.
그러니 똑똑하고 지식이 많은 자신이 이 하렘의 규율과 규범을 몸소 세울 필요가 있었다. 자신을 밑거름으로 말이다.
첫째, 둘째 부인에게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품 안에 넣은 단검이 자신의 결심을 굳게 해줬다.
둘의 방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후우
분명 자신과 함께 목욕을 하고 헤어졌으니. 지금쯤 잠옷을 갈아입고 잘 준비를 하고 있겠지? 노크를 해야 하지만 안에 다른 사람들이 깰 수 있으니 발레리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달칵
문 열리는 소리가 귓가에 천둥처럼 들린다. 안에서 첫째 부인인 이실리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로리엘?”
아마 같은 방을 쓰는 부관으로 보이는 엘프가 순찰을 나갔나 보다. 자신과 그녀를 착각한 것 같았다.
마력등의 그늘 때문에 자신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발레리는 한 걸음 두 걸음 걸어 나가 등 그늘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발레리?”
첫째 부인 이실리엘의 목소리가 들린다.
꿀꺽
목이 마른다. 갈증이 나는 것 같다. 잘할 수 있을까?
“발레리양? 무슨 일이죠?”
둘째 부인 리젤다가 물어왔다.
조금 더 앞으로 걸어 나가 자신의 품에서 빛나는 단검 한 자루를 천천히 꺼내 뽑아냈다. 단검은 은은하게 마력등의 불빛을 반사해 요요하게 빛을 흘려대고 있었다.
“발레리양? 이 무슨?”
빛나는 단검을 보고 리젤다가 깜짝 놀라 외쳤다.
“이실리엘님, 리젤다님…. 죄송합니다.”
“발레리!”
리젤다의 외침이 들려왔으나, 그래 여기까지 왔으니 물러날 수는 없는 것이다.
뽑은 단검을 바닥에 공손하게 내려놓는다. 그리고 입고 왔던 가운의 품에 있는 끈을 풀어 완전히 벗어 냈다. 그리고 완전한 알몸이 되어 그녀들 앞에 섰다. 자신의 모습에 둘의 눈이 황망하게 커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발레리는 천천히 내려둔 단검 뒤에 엎드려 준비된 말을 두 분 앞에 올렸다.
“저 발레리 루테니아 부족한 몸뚱이지만 러셀님의 소유물이 되어 러셀님과 두 분을 평생 모시고 싶습니다. 부디 허락을...”
“옛?”
“네엣?”
그렇다 러셀의 완벽한 소유물임을 인정하고 두 분 첫째, 둘째 아내에게 인정을 받아내야 했다. 어차피 나는 그녀들과 함께 그의 하렘에서 생활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녀들과 러셀이 북부로 떠나기 전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종업원에게 전 재산을 맡기고 가는 것이니, 발레리 자신이 완벽히 영혼과 육체마저 러셀의 사람임을 두 분에게 고백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두 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죄로 이 자리에서!”
발레리가 자신의 앞에 단검을 움켜쥐더니 자신의 목덜미에 대며 말했다. 서슬 퍼런 단검의 검날이 발레리의 목에 닿자 붉은 핏방울이 단검의 날을 타고 한 방울 스르륵 흘러내렸다.
“자 잠시만요!”
“발레리양 멈추세요!”
이실리엘과 리젤다가 마력등 불빛에 비친 단검의 날에서 핏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더니 놀라 외쳤다.
둘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러셀을 모시고 싶다고? 그러니까 러셀의 아내가 되고 싶다고? 아니, 딱히 러셀이나 발레리의 모습에서 둘이 어떤 애정을 나누는 교류를 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는데? 러셀이 가끔 발레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긴 했지만... 그건 그냥 일을 잘했다는 칭찬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목숨까지 걸어오니 이실리엘과 리젤다는 서로 얼굴만 보고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이게 그러니까? 러셀의 아내가 되고 싶다는 건가요?”
“감히 미천한 제가 어디. 첩실 아니, 성노예라도 평생 모시고 싶습니다.”
발레리의 마음은 진심인 것 같았다. 그녀도 러셀의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구나... 마치 엘프의 사랑 같지 않은가? 이렇게 목숨을 걸고 자신들의 허락을 구하러 오다니. 이실리엘의 마음이 고동쳤다.
하지만 무작정 결단을 내리기에는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옆의 리젤다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인지 연신 대답 없는 질문을 던져대고 있었다.
“그러니까 러셀의 세 번째 부인이? 아니 대체 언제? 그가 멋진 남자긴 하지만 대체 왜? 부인이 둘이나 있는데?”
이실리엘은 이럴 때는 이 방면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인간 친구 벨 말이다. 자신의 침대에서 꿀같이 단잠을 자는 벨의 입가에 흐른 침을 이불로 살짝 닦아주며 벨을 조심스레 깨웠다.
“벨…. 벨…”
“후앗… 흠…”
“벨~ 벨~ 잠시만 일어나봐요.”
“후아앗!”
벨은 이실리엘의 손길과 목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깨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모습에 이건 무슨 말도 안 되는 꿈이지? 하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리젤다가 자신의 침대 앞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는 발레리가 알몸으로 자기 목에 단검을 들이대고 있었던 것이었다.
“꿈이 진짜 말도 안 되네?”
잠결에 벨이 다시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이게 무슨?!”
잠에서 홀딱 깨어 리젤다와 이실리엘에게 사건의 정황을 듣게 된 벨은 자신의 침대에서 발레리를 보았다. 결심에 찬 눈동자 벗은 몸, 제법 도리와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자세가 아닌가.
얼굴도 나쁘지 않고, 건강해 보이는 적당히 그을린 피부, 가슴이…. 맘에 들지 않게 자신보다 컸지만….
이실리엘과 리젤다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흰 구름 같은 착한 친구 이실리엘, 그 옆에 눈매는 날카로운데 이실리엘과 다를 바 없이 순한 리젤다. 그리고 앞에 알몸으로 엎드린 자신의 처지를 명확하게 알고, 아랫사람의 도리를 아는 것으로 보이는 좀 배운 듯한 발레리.
자신이 그동안 옆에서 러셀을 지켜보건대, 러셀을 좋아하는 여자는 늘어날 가능성이 충분했다. 여관 안에 다크 엘프 둘도 러셀을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수석 하녀 애니의 모습은 분명 사랑에 빠진 모습이었다.
늘어나는 여자들 사이에서 분란이 없어지려면 서열 정리는 필요했고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망각하지 않으면서 자기 친구와 리젤다를 잘 모실 사람이 있다면?
이거 좋은데?
“둘의 의견은 어떤데?”
벨이 물었다.
“저는...”
“그러니까...”
이실리엘과 리젤다가 벨의 물음에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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