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81화 (81/352)

〈 81화 〉 79. 하렘 1

* * *

다음날 마을에서 네 명의 이단 심문관과 두 명의 마법사가 들이닥쳤다. 몰려든 이단 심문관으로 마을이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엠마, 시트라의 보증. 평원 엘프들과 수인들의 증언으로 모든 사건의 정황이 이단 심문관들에게 전달되었다.

이단 심문관들은 사실을 접하고 경악과 충격에 빠졌고, 잿더미가 된 파텔영지의 공동묘지 한편에서 한 이단 심문관이 발견했다는, 수많은 엘프의 유골이 피해자가 얼마인지를 알려주는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수많은 마물과 이단, 악마들의 현장을 접한 이단 심문관들도 한나 아주머니댁에서 치료받고 있는 엘프들을 보자 참혹함에 분루를 흘렸다.

분노에 차 자신들의 핏줄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아베느 왕국의 수도와 성국에 탄원한 남작의 가족이 아직 수도에 있다며, 남겨진 영주의 가족들을 멸문시키겠다며 날뛰는 이단 심문관들을 마법사와 시트라가 말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아니, 무슨 종교인들이 저렇게 피에 미친 광전사 같지? 솔직히 여기서 나랑 이실리엘 리젤다 빼고는 다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사람들이 좀 감정이 너무 높고 낮달까?

하긴 이단 심문관들은 전생의 영화 같은 곳에서도 정상적으로 그려지진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그런 작품들이 고증이 뛰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기게도 말이다.

이단 심문관들은 모든 증언을 확보하고 결국 이실리엘을 통해 남작은 ‘정령에 버림받음’이라는 아우타 렐리아 (Auta lelya)라는 엘프들의 형벌을 받아 그런 상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엘프 사회에서 이 형벌에 당하면 숲을 헤매다 죽으니, 인간들이 한 번도 시신을 발견할 수 없었기에 벌어진 소란이었다고 결론 내려졌다.

그렇게 그간 있던 일들이 대부분 정리되고 우기가 끝나기 전, 마법사 넷을 꽁꽁 묶어 북부 기사들이 복귀했다. 아니 마법사 모시러 간 거 아니었어? 아니 진짜 잡으러 간 거였다고?

그중 한 놈이 엘프들의 정보를 팔아넘긴 나쁜 놈이고, 다른 셋은 그의 스승과 동문이라는데 이단 심문관이 그놈을 묵사발로 만들고, 다시 치료해 묵으로 만들고, 다시 묵사발을 만드는 희한한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저게 저렇게도 응용할 수 있구나? 정말 좋은 걸 배웠다.

며칠 후 이단 심문관들은 마법 문을 열어 범죄자들을 끌고 사라졌다. 우리의 북부 여행을 도와줄 마법사들이 전부 사라져서 난감했는데 다행스럽게 며칠 후 마법사 셋은 되돌아왔다. 혐의점이 발견 안 되어 석방된 것이라고 했다.

이단 심문관은 셋이 성국으로 복귀하고 둘이 남았다.

엠마의 선배 시트라는 엘프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남는다고 했고 희생과 헌신 교단의 이단 심문관이라는 할아범이 남아 우리 여관의 손님이 되었는데 조금 꺼림직했다.

왜 자꾸 날 보면 실실 웃는지.

희생과 헌신이라는 단어도 마음에 걸렸다.

설마 저 신이 날 이곳으로 환생시킨 그 새킨 아니겠지? 희생이라는 단어가 자꾸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불편하게 말이다.

나의 불편함과는 상관없이 창밖에는 우기의 긴 끝을 알리듯. 빗방울 축제에 춤추던 풀들이 조용히 잠들고 있었다.

다음날 떠오를 태양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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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은 우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발레리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다. 이제 우기가 끝났으니 러셀도 어서 빨리 장가가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실리엘과 첫날밤을 좀 당겨쓰긴 했지만 그래도 정식 절차라는 게 남아있었고, 리젤다의 가족들을 만나서 허락도 구하고 결혼도 해야 했다.

전생에서 결혼한다면 다들 왜 죽음과 사망의 길로 걸어 들어가냐며 말리는 친구들이 많았겠지만. 지금의 러셀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너희들 이실리엘이랑 리젤다 봤냐?

크~

즐거운 상상에 러셀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옆에서 잊고 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셀님, 그러니까 우기가 끝나면 엘프들의 숙소부터 지어 올리고, 가능하면 목책을 더 넓히는 걸 생각해보라는 말씀이시죠? 현재 목책을 두고 밖으로 이중 목책을 지으라는 말씀이시고요?”

“응 맞아. 그리고 그, 다음에 할 일은?”

“전투식량 판매를 매듭짓고 여관을 개보수하는 일입니다.”

“그래. 우선순위는?”

“엘프들의 숙소와 여관 개보수가 최우선이겠네요?”

저 빨간 머리, 앙증맞은 입술, 그리고 포근(?) 푸근(?) 푹신(?)해 보이는 가슴, 유능한 직원 발레리의 말에 러셀은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지는 기분을 경험하고 있었다.

“발레리야, 내가 생각해보건대 네가 없을 때는 나 정말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다니까? 발레리 너는 내 분신 아니, 반쪽이나 마찬가지야. 이렇게 유능하고 착실한 직원이라니 하... 세상이 정말 아름답다.”

러셀의 말에 발레리는 부끄러움으로 볼을 새빨갛게 물들였지만, 그녀의 구릿빛 피부는 그런 사실을 자연스럽게 감추어 주었다.

발레리는 러셀과 요즘 매일 붙어 다니며 러셀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칭찬과 귀여움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아무에게도 이런 극상의 평가는 받아보지 못했는데 발레리는 요즘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가 자신을 손에 넣으려고 마수를 뻗칠 때 바보같이 울음을 터트렸던 자신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정말 자기 말대로 관대한 주인(?) 이었고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방법이(?) 다소 거칠긴 했지만 말이다.

“발레리야 두 달간 내가 없어도 잘해야 해 알았지?”

두 달간 러셀이 북부로 간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자 발레리의 기뻐하던 모습이 착 가라앉고 말았다. 러셀은 생각했다. 하긴 나같이 칭찬이 후한 사장이 사라지면 서운하긴 하겠지.

발레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러셀이 말했다.

“발레리, 너는 내 분신이자 반쪽이나 마찬가지야. 내가 없으면, 네가 모든 업무를 대행하는 거야 알았지? 늦어도 두 달 안에는 돌아올 테니, 그동안 여관을 잘 부탁해.”

“난 너를 누구보다. 믿고 있으니까 말이야.”

발레리의 가슴에 행복의 감정이 밀려 올라왔다.

“네, 저만 믿으세요.”

발레리는 다짐했다. 자신을 이렇게 믿어주는 러셀을 위해서 자신이 못 할 것은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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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로리엘은 순찰을 나갔는지 방에 없었고 벨은 이미 잠든 지 오래인지 입에 침까지 흘려가며 달콤한 잠에 빠져있었다. 여관의 잔업을 돕다가 자신의 방으로 올라온 이실리엘과 리젤다도, 이제는 쉬기 위해서 러셀에게 선물 받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우려 하고 있었다.

리젤다가 이실리엘의 방에 있는 이유는, 시트라가 온 후 리젤다는 이실리엘과 친해지겠다며 이실리엘의 숙소의 빈 침대에 합류했고, 엠마는 시트라와 한방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옆자리에서 리젤다가 잠옷을 다 갈아입고 이실리엘에게 인사했다.

“이실리엘님, 좋은 밤 되시길.”

“리젤다도, 좋은 꿈 꾸세요. 내일 북부가 기대되네요.”

둘은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이제 내일이면 북부로가 얼마 후 가족들을 만나고 러셀과 정식으로 결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리젤다는 자신의 부러움이 이제야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나도 머리에 꽃을 꽂을 수 있겠구나!’

러셀이 문어란 것에 납치되고 이실리엘과 러셀이 돌아온 다음 날. 머리에 자신의 머리통만 한 연꽃을 꽂고는, 그 꽃이 무거워 고개를 제대로 들지도 못하면서도, 한 달 내내 꽃을 자랑스럽게 꽂고 다니던 이실리엘의 모습이 생각났다.

자신도 얼마 후면 완전히 러셀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그 생각에 리젤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때 달칵하는 소리와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리엘?”

이실리엘이 로리엘이 돌아온 것인가 싶어 로리엘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이실리엘의 예상과는 다르게 머리맡의 마력등이 흘리는 은은한 빛 속에서 쓱 하고 나타난 얼굴은 로리엘이 아닌 러셀의 비서(?)라는 발레리의 얼굴이었다.

“발레리?”

여관 잔업을 끝내고 같이 목욕할 때도 아무런 말이 없던 발레리였다. 사람들이 뭔가 기운이 없어 보여 괜찮냐고 물었을 때 그냥 아무런 일도 아니라고 했는데, 자신의 방에는 무슨 일일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일까?

이실리엘의 부름에도 발레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발레리가 다가왔다.

“발레리양? 무슨 일이죠?”

리젤다가 발레리에게 물었다.

그러나 발레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둘의 침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리까지 걸어왔다. 그리곤 자신의 품에서 빛나는 단검 한 자루를 천천히 꺼내 뽑아냈다. 단검은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마력 등의 불빛을 반사하며 요요하게 빛을 흘려대고 있었다.

“발레리양? 이 무슨?”

빛나는 단검을 보고 리젤다가 깜짝 놀라 외쳤다.

“이실리엘님, 리젤다님…. 죄송합니다.”

단검에서 흘러나오는 번쩍거리는 빛이 이실리엘과 리젤다의 시야에 쏟아져 들어왔다.

“발레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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