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78. 전투식량과 이단 심문과 시트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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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
어디?
누구?
시트라는 엠마의 당황스러운 말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자신이 저주받아 죽은 영주의 원한을 풀어주고 그 원인을 찾기 위해 파견된 임무지. 아베느 왕국의 파텔 영지.
엘프들을 납치해 악마 같은 짓을 저지른 사람이? 파텔 영주.
성국 지하감옥의 자물쇠가 열리듯. 시트라의 머릿속에 철컥하는 소리가 들리며 모든 비밀이 열어젖혀졌다.
두 달간의 개고생이 여관에서 만난 빨간 큰 가슴 그리고 그 가슴이 소개해준 여관에 있던 아주 해맑은(?) 후배 하나로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네? 파텔? 강 따라 올라가다 나오는 그 파텔 영지 맞나요?”
“예, 멀지 않다고 들었어요. 그 새끼가 엘프 이상성욕이라서 주변 마을이나 여행자, 모험가, 용병 중에 엘프만 끼어있으면, 납치하고 나쁜 짓을 했다고 평원 엘프들을 치료하며 들었으니까요.”
“평원 엘프들이 전부 그 피해자니까, 물어보면 대답해줄 거예요.”
엠마에 말에 시트라는 자신이 무저갱의 구덩이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성국에 실려 왔던, 그 씹 새끼가 그럼?
내가 두 달 동안 쓰레기를 처먹으며 견딘 것이…?
그럼 우리가 봤던 그건 저주가 아니라 어느 신의 처벌인 건가?
그 새끼는 불쌍한 피해자가 아니라 더러운 범죄자였던 것인가? 성국에서 저주를 풀기 위해 기도하는 수많은 사제들의 기도를 빨아 처먹고 있는 그것이. 추악한 쓰레기였다니….
내이 씻팔놈을!
성국에 어서 빨리 보고해야 했다. 기도를 멈춰야 했다.
자신이 동료들과 파텔 영지를 조사했을 때 파텔 영지 중앙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었다. 이단 심문관의 정보 조합으로 계산해보건대 눈꽃기사 삼십과 엘프 수호자 열 그리고 높은 엘프 수호 궁수까지….
꿀꺽….
아베느 왕국이 아직 왕국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니, 이걸 참았다고? 아니야 피해자를 먼저 치료하기 위해서 참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주동자 영주와 성안에 사는 사람들만 처벌했다고? 그렇게 관대한(?) 처벌을?
서부 대사막 가장 깊은 곳, 백사(白?)의 대지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눈같이 흰 모래만 있는 작은 도시 크기의 지역, 아무것도 살지 못하는 죽음의 땅. 엘프 노예 수백을 잡아 노예로 쓰던 도시 왕국의 흔적, 수백 년 전 엘프들의 분노에 사라진 곳.
하급 이단 심문관 시절 배웠던 그곳이 떠올랐다.
모든 궁금증은 ‘엘프’라는 단어 하나로 끝나버렸다.
생각에 잠긴 시트라의 품에서 엠마가 꼼지락대고 있었다. 시트라가 엠마의 꼼지락 속에 정신을 차리고는 품속의 엠마를 다시 꼭 끌어안고 말했다.
“우리 후배님 이분들은 얼마나 치료하셨죠?”
“어…. 그, 석 달쯤?”
“맙소사….”
이 아이는 돌봄이 필요한 아이였다. 어떻게 이런 지옥 같은 모습을 혼자서 석 달이나….
“돈을 받거나 하셨습니까?”
시트라의 가슴 사이에서 눈만 내놓은 엠마가 말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뭐가 잘못되었나?
“아뇨, 그 러셀님이 공짜로 묵게 해주시기도 하고, 이분들을 치료하고 돈을 받긴 그래서요.”
시트라가 엠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런 착한 후배의 눈망울을 대하니 진실을 말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저들을 치료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넷? 왜, 왜죠?”
엠마가 당황해하며 물었다. 이렇게나 순진하고 착한 후배라니. 시트라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단순한 정신적 붕괴라면 상관없습니다. 정신을 정화하면 얼마 안 돼 정신들을 차리겠죠. 그러나 신체 결손이 심한 분들을 깨웠을 경우. 자신의 변한 신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욱더 정신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큐버스나 음수들에게 끌려가 쾌락만 느끼는 신체나 출산체가 된 사람들의 말로를 많이 보았던 시트라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 그런….”
“아뇨, 실망하지 마십시오.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국에 요청해서 보다 전문적인 정신 치료 사제들을 부탁하겠습니다.”
“그…. 그렇게 까지요?”
시트라가 엠마를 품에서 풀어주고는, 아무 말 없이 여관 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걸어 나갔다. 그리고 여관 앞 넓은 공터에 서더니 꿇어앉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기적을….”
두꺼운 우기의 구름이 시트라의 머리 위에서 슬슬 비켜나기 시작하더니 하늘에서 눈부신 빛줄기가 쏟아져 내리며 시트라를 비추기 시작했다.
“광명(光?)?!”
엠마가 놀라 소리쳤다.
러셀은 위장병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제 온 손님이 자신의 위장에 심각한 고통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얼굴에 상처가 있어서 좀 매섭게 보였지만 인상은 나쁘지 않은 손님이었는데.
갑자기 식전 댓바람부터 하늘에서 빛줄기를 소환하는 이상한 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엠마를 통해 그것이 신이 내리는 기적중 하나라는 것을 들었을 때는 정말 기함할 뻔했다.
엠마의 말로는 무슨 광명인지 뭐라고 신의 기적을 직접 받는 거라는데, 뭐 엄청난 능력이 잠시 생겨서 주변 사람들 마음에 평안과 뭐 그런 걸 주는 거라는데.
완전히 순! 사기였다.
왜냐고? 내 마음이 이렇게 불편한데 평안? 기적은 무슨 기적!?
‘그래 종교는 다 사기야!’ 마음속으로 외치고도 왠지 눈치가 보였다. 젠장.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게 아주 멀리서도 보이고, 이단 심문관들이 곧 여럿이 들이닥칠 것이라고….
그래서 지금 내가 위장이 아파져 오는 것이다.
나는 신이 정말 불편한 사람인데, 이실리엘과 첫날밤을 가지고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또 선물을 보내시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거 딱 봐도 그거잖아? 첫날밤 당겨썼다고 경고 들어오는 거.
첫날 밤 좀. 좀 당겨썼기로서니. 딱 신의 사자를 보낸 걸 보면... 하아….
‘하. 아니, 첫날밤 좀 당겨서 쓸 수 있지!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러셀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개 쪼잔한 신 새끼들!’
“그래서 이게 다 무슨 일이라고요?”
시트라라는 여자가 자기 목에서 로자리오를 풀어 식탁 위에 올렸다. 붉은색을 앞으로 해서 말이다.
그 붉은 로자리오를 보고 리젤다의 오빠 에반과 북부 기사들이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애와 순결의 교단의 이단 심문관 시트라 라고 합니다. 제가 이곳에 온 목적은 파텔영지의 변고를 조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앞마당의 빛줄기를 따지려던 러셀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어…. 이게 아닌데? 첫날밤 때문이 아니야?
파텔은 그 이실리엘이 잡아 족쳤다는 그 엘프 변태성욕자 남작 새키인데…. 따지는 게 아니라 도리어 잘못하면 범죄자가 될 상황이었다.
“아하하하…. 그 이단 심문관님?”
“예? 말씀하시죠.”
“그, 저희가 정말. 종교! 맞다! 그 자애와 순결의 교단을 사랑합니다.”
“부인이 두 분이나 계신 분이…. 순결을?”
젠장 하필이면 처녀들만 믿는다는 자애와 순결의 교단이었다. 이걸 어쩌지?
“아하하하…. 그 무슨 섭섭하신 말씀을, 육체는 썩어 없어질 것. 마음은 언제나 순결합니다.”
시트라는 이 새끼가 여기 사는 여자들을 사이비 같은 상태로 만든 주범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이단 교주 같은 말을 어쩜 저리 능숙하게 할 수 있을까?
러셀은 시트라의 싸늘한 눈빛을 대하고는 옆에 엠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의 후배라는 엠마에게 자신들이 무익 아니 무해 한 사람이라는 것을 홍보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 그래요! 엠마 양. 저 저희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좀 심문관님께 말씀드려주세요!”
“옛? 예 그, 그렇죠? 나쁘다기 보단 좋은 사람이죠?”
영문 모를 말에 엠마가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러셀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에 에반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성국이 미치지 않고서야 높을 엘프를 범죄자로 몰아붙이지는 않겠지만, 이미 본국에 보고한 일. 아베느 왕국과 외교적인 일이 발생할 거라 생각은 했는데, 성국은 의외였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이단 심문관님. 파텔 영지는 저희가 저희 손으로 저지른 일. 저희와 이야기하시죠.”
“북부 눈꽃의 기사들이 말인가요?”
“예, 다 저희가 저지른 일입니다. 그러니 죄를….”
에반의 말에 시트라가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서 광기를 흘려대며, 흡사 광신도 같은 모습으로 외쳤다. 러셀이 전생의 게임에서나 보던 전형적인 광신도의 모습 말이다.
“역시! 북부와 눈꽃의 기사들에게는 아직도 정의가 살아있었군요. 그래, 그. 개같…. 아니, 어떻게 그것들을 도축하셨습니까? 갈가리 찢어발겼나요? 배! 그래요. 배를 갈라 내장을! 그 고통 속에 몸부림치게! 산채로 불에 태우거나! 죄에 맞는 피륙의 법으로 다스리신 게 맞겠지요? 설마! 안락한 죽음을 맞이하게 했다면! 성국에서는 그 북부 기사들에게 실망을 금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만?!”
“서, 선배님 지, 진정하세요.”
엠마가 화들짝 놀라 시트라를 붙잡으며 진정시켰다. 선배님은 비 오는 쓰레기 같은 여관방에서 두 달을 계시면서 너무 피폐해지신 것 같았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는 애틋한 선후배지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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