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76화 (76/352)

〈 76화 〉 74. 전투식량과 이단 심문관 시트라 4

* * *

발레리는 릴리아나의 손에 이끌려 길드의 부길드장 헤럴드의 집무실에 와있었다. 전투식량의 맛을 본 릴리아나가 발레리의 손을 잡아끌고 달려온 곳이 부길드장 헤럴드의 집무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짧은 이야기 끝에 헤럴드의 앞에는 김을 모락모락 내는 전투식량이 준비되었고, 지금 부길드장은 그것을 눈썹을 꿈틀거리며 천천히 맛보고 있었다.

헤럴드는 그것을 맛보며 생각했다. 릴리아나가 좀 전에 빨간 머리의 가슴 큰 여자의 손을 잡고 자신의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을 때는 깜짝 놀라고 말았었다. 몰래 숨겨놓은 간식을 맛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이를 먹으니 자꾸 달콤한 것이 생각나는 헤럴드였기 때문이다.

“헤럴드 영감! 이것 좀 봐!”

그리고 쏟아진 릴리아니의 말과 이어진 ‘전투식량’이라는 물건의 시연.

“맛있군. 생각보다. 말린 청어나 육포 같은 것들보다. 훨씬 든든하기도 하겠어. 이걸 러셀님이 팔고 싶어 하신다고 하셨습니까?”

북부 기사들이 찾는 자. 북부 왕족의 사생아나 귀족일 수 있기에 헤럴드는 존칭을 붙여 러셀을 호칭했다. 그리고 앞에 여자는 그 남자의 대리인이라 했는데 미색이 뛰어난 걸 보니 행정관 같은 직책은 아니고 부인이나 첩실이겠기에 같이 존대해주었다.

“예, 상품의 가치는 아주 높다고 생각합니다. 관심이 있으십니까?”

관심이 있냐고? 차고 넘칠 지경이었다. 어떻게 이런 물건이 나왔을까? 자신들이 찾던 그런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남부는 우기에 습도가 많이 올라가는데 육포나 말린 청어, 구운 밀가루 반죽 같은 군사용 전략 물자들도 습기에 못쓰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건조한 제품들은 습기를 아주 잘 먹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란폴의 지배자 발트 가문의 사병과 기사들의 군량 창고는, 우기를 기점으로 큰 손해가 발생하고 또 그런 것들을 골라내서 처리하고 새것을 채워 넣는 과정에서 많은 자금이 소모되고 있었다.

가죽으로 쌓여있어 습기에 강하고 보존기간도 길다니.

“정말 좋은 물건입니다. 보관은 짚을 채워 넣은 상자에 적재하면 되겠지요?”

헤럴드가 4인용 전투식량이라는 쥐 가죽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네”

“그리고, 좀 더 원활한 적재를 원하시면 이것이.”

발레리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점토 벽돌이나 성벽의 깎은 돌 같은 사각형의 쥐 가죽이었다. 러셀과 개인용 전투식량을 만들던 중에 발레리가 러셀에게 딱 한 가지 아쉬운 문제점을 이야기하자 러셀이 즉석에서 해결해준 적재성을 끌어올린 전투식량이었다.

동그란 쥐 가죽은 평상시에는 별로 문제가 안 되지만, 대량으로 구매를 요구해서 운반을 위해 적재하려면, 쌓아 올릴 수 없기에 부피가 증가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혹시 운반 중에 쏟아지면 다 굴러가 버릴 것이고 말이다.

“그…. 러셀 님 이게 너무 동그란데 쌓아 올리기 쉽게 만들 수는 없을까요? 다 좋은데 약간 그게 아쉽네요. 적재 부피랄까?

“음…. 그래? 점토 벽돌 모양으로도 만들 수 있긴 한데?”

“네?”

러셀은 다음날 사각형의 틀을 몇 개 만들어 에밀에게 전해주며 말했다.

“에밀, 가죽 부풀릴 때. 가죽을 이 안에 넣고, 바람을 불어넣어 하루 이틀 말려서 꺼낸 후에, 입구를 풀고, 빈 갈대 꼽고 완전히 말려주겠어?”

“몇 개나?”

“일단 한 스무 개쯤?”

“알았어. 그런 거야 어렵지 않지~”

그리고 며칠 후 점토 벽돌 모양의 쥐 가죽이 완성되었다. 러셀이 안에 전투식량을 집어넣고 마무리해, 테이블에 그것을 쌓아 올렸을 때 발레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부족한 부분을 이야기해 주자마자 해결 방법을 떠올리는 명석한 두뇌와 실행력, 러셀은 대단한 남자였다. 상품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한순간에 해결 방법을 떠올려, 막힘없이 해결하는 러셀에 모습이 멋있게 느껴졌다.

발레리가 부길드장 헤럴드 앞에 쌓아 올린 사각형의 전투식량을 보고 헤럴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오…. 이것은….”

“뭐야! 이것은! 아까는 왜 안 보여줬어!”

릴리아나와 헤럴드가 동시에 감탄했다.

“이게 가격이 얼마라고?”

“4인분 짜리는 3동화, 개인용은 1동화, 사각형은 두 개 3동화 입니다.”

나쁘지 않았다. 말린 청어는 육포보다야 저렴하지만 구운 밀가루나 육포는 가격이 비싼 편이다. 우기에 손실되는 비용을 생각하면 어쩌면 더 저렴할 수 있는 것이다.

“대량 구입을 원하시면, 안에 들어가는 재료를 공급해주셔야 합니다. 가공비만 받고 제작해드릴 용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웜포트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는 한정적이니까요. 그리고 길드에서 상품을 판매해주신다면 8:2 정도로 정산 비율을 정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희가 8입니다.”

전부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아니 좋은 조건이었다. 모험가 길드의 주력 판매 상품은 모험가들이 사용하는 소모품이나 포션 정도인데, 연금 길드나 잡화점에서 구매하는 모험가도 많으니 독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상품을 판매한다? 독점으로?

또한 헤럴드의 생각으로는 군사용으로 가능성이 아주 커 보였다. 영주에게 보고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음…. 좋네…. 아주 좋아…. 러셀 님에게 아주 좋은 상품을 식견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주십쇼. 일단 군사용 문제는 영주님과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계약서는 러셀님이 오셔야 합니까? 아니면 대리인께서?”

“저도 러셀님과 진행된 이야기를 하고 오도록 하죠.”

둘이 이야기를 끝내고 나가려 하자 옆에 있던 릴리아가 급하게 헤럴드에게 말했다.

“아니! 영감탱이야. 그냥 보내면 어떻게 해. 수정구 있는 마법사랑 우리도 대행인은 한 명 따라가야 할 거 아니야. 러셀한테 돌아가는 상황도 알려주고, 언제 만나자고 알려주기도 해야 하잖아!”

“아 참…. 그렇군.”

“그게 진행이 빠르겠군? 영주님에게 보고하고 우리회의를 해야 할 테니 시간은 걸릴 테고, 발레리양이 다시 찾아왔을 때 회의가 더뎌지면, 또 방문하셔야 할 테니 번거롭겠군?”

“그래!”

발레리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그럼 우린 누굴 보내지?”

헤럴드가 고민하자 릴리아나가 소리를 빽 지르면서 말했다.

“누굴 보내긴 누굴 보내! 내가 가야지! 러셀이랑 친한 내가 당연히 가야지! 그리고 내가 가면. 거기 에브리나한테 사정 설명해서 통신을 부탁하면, 마법사는 안 가도 되잖아!”

“아니, 생각해보니 그렇긴 한 데...”

헤럴드는 뭔가 속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웜포트에서 복귀한 뒤 매일 웜포트로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릴리아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또 릴리아나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기에 딱히 뭐라고 말하기도 힘들고 러셀님이 누님이라고 부른다고 했던가? 릴리아나가 딱 맞긴 한데….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헤럴드는 일단 릴리아나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그럼 숙박비랑….”

헤럴드가 자신의 서랍에서 릴리아나의 숙박비를 주기 위해 주머니를 꺼내자, 릴리아나가 주머니를 확 낚아채고는 안에서 은화 몇 개를 골라내더니. 나머지를 헤럴드의 탁자에 탁하고 내려놓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나가며 발레리에게 말했다.

“일 층에서 기다려! 짐 싸서 올게!”

뒤에 남겨진 헤럴드는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발레리는 낑낑거리며 짐을 가지고 내려온 릴리아나를 도와 마차에 짐과 릴리아나를 싣고 어제 묵었던 여관으로 이동했다.

여관 밖 비가 들이치는 테라스에는 또 다른 일행인 시트라가 자신의 짐을 가지고 초조한 모습으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리곤 자신들을 발견하자마자 빗물을 맞으면 마차로 달려왔다.

“자매님! 늦으셔서 설마 저를 두고 가신 건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초조했던 얼굴이 한껏 풀어져 시트라가 말했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여관에 남겨지는 건 아닌가 하는 공포가 그녀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요! 길드에서 이야기가 좀 길어져서요! 제가 사제님을 두고 갈 리 있나요.”

발레리의 말에 시트라의 발레리에 대한 평가가, 빨간 가슴 덩어리 년에서 빨간 가슴 큰 착한 년으로 상향되었다.

시트라가 마차에 오르자 처음 보는 여자가 하나 앉아 있었는데 신경질적으로 생긴 년이었다. 이년은 이제 신경질쟁이 년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단 심문관은 인물 평가를 잘하고 분류도 잘해놔야 하니 이렇게 틈틈이 라벨을 달아두어야 했다.

“안녕하세요. 사제님 자애와 순결의 교단 사제시군요. 반갑습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자애와 순결 교단의 사제 시트랍니다.”

자신의 엠블렘을 알아보다니 좀 배운 년 같았다. 설마 자신이 이단 심문관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짐을 싣고 마차에 오르자 신경질쟁이 년이 외쳤다.

“아 정말 그리웠다! 길드 숙소도 러셀의 여관만큼은 못하지! 자 천국으로 출발!”

그러자 옆에 있던 발레리도 웃으면서 외쳤다.

“천국으로 출발!”

그 소리에 시트라는 심각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나 이년들한테 어디 이단이나 악마교로 납치당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하나같이 정상인 년이 없는 것 같지?

시트라를 태운 마차는 천국(?)을 향해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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