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75화 (75/352)

〈 75화 〉 73. 전투식량과 이단 심문관 시트라 3

* * *

발레리는 여관에서 식사 중에 아주 불쌍한 사제를 만났다. 하루도 힘든 쓰레기 같은 여관에서 무려 두 달이나 갇혀서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니. 그녀의 얼굴을 보았을 때 깊게 내려온 눈그늘과 홀쭉한 볼이 두 달간 그녀의 고통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녀에게 따듯한 말을 해주고 음식을 대접해주었다.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먹는 그녀의 모습에서 애틋함이 느껴졌다.

밥 먹다 말고 신성력을 뿜어내서 깜짝 놀라긴 했지만 두 달이 얼마나 긴 시간이란 말인가…. 하루도 힘든 그 음식과 객실에서….

발레리는 복귀할 때 그녀를 데리고 가기로 약속했다. 지금 남은 방은 없지만 빈 침대는 있으니까 사제는 용병들이 귀하게 여기니 3인이나 4인실에 낄 수 있을 것이다.

길드에서 업무를 보고 돌아오겠다는 자신의 약속에 몇 번이나 약속을 다짐받는 그녀를 보면서, 자신이 좀 더 열심히 노력해서 러셀의 여관을 키워, 이 주변에서 가장 유명한 여관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발레리가 맨 처음 찾아간 곳은 용병, 모험가 길드였다.

길드 안으로 들어서자 용병들이 자신을 보고 휘파람을 불어댔다. 서부에서 무희로 잠깐 일할 때 흔한 일이었는데. 뭐 스승의 말로는 자기 신체는 가치가 높다는 평가였으니까 말이다.

용병들의 반응에 안쪽 한적한 접수대에서 아는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게 누구야 발레리양 아니야?“

“릴리아나씨!”

우기가 시작되자마자 그란폴로 돌아온 릴리아나였지만. 그란폴로 돌아오기 전에 발레리와 친분을 쌓을 수 있었기에 오랜만에 만난 둘은 반갑게 인사할 수 있었다.

“우기에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이제 집에 가는 거야? 저번에 말했던 것과는 다른데?”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발레리가 러셀에게 구매한 물건값을 지급보증하기 위해서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릴리아나가 물었다.

“아…. 그 저는 여관의 가족이 되어서…. 러셀 님의 대리인 자격으로 왔는데요….”

발레리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수줍게 말했다.

“뭐, 어?”

릴리아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자기가 있을 때는 그런 기색이 없었는데? 가족이 되었다고? 러셀 분명히 아내가 둘 아니었나? 거기 하나 더 생겼다고? 그것도 서부 상단의 후계자인 딸을? 얘들은 러셀의 가치를 아니까 꼬인 건가?

러셀의 가치는 외모나 무력에 있는 게 아니었다. 그 뛰어난 머리와 지혜…. 그는 지혜가 관능적인 남자였다. 몬스터와 생태계의 관계 그리고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남자 러셀.

그는 정말 릴리아나 인생에 최고라 생각되는 남자였다.

자신도 한두 살만 어렸어도 러셀에게 어떻게 해보았을 것인데 발레리가 부러워졌다.

“헤에…. 그래 축하해~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 때문에 온 건데?”

그런데 그때 둘의 반가운 인사를 훼방 놓는 방해꾼이 길드 2층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발레리 앞에 섰다. 그리고는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그 금발의 남자가 발레리의 손등에 키스하며 말을 걸었다.

“아리따운 숙녀분께서는 혹시 이름이?”

“하….”

릴리아나가 한숨을 쉬었다.

“이…. 이게 무슨.”

발레리는 당황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새끼가 감히 아가씨의 손등에 더러운 입술을!”

마리나가 화를 내며 칼을 뽑아 들었다. 마리나의 칼이 반짝이며 길드 내부의 빛을 사방으로 반사해 모든 길드원의 시선이 접수대로 집중되었다.

“마리나, 잠깐 참고. 내가 말할 테니까 잠깐 참아!”

릴리아나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마리나를 제지하고 멋 드려지게 차려입은 용병에게 말했다.

“야! 안톤 너도 호크 꼴 나고 싶냐?

마리나가 금발의 남자에게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귀찮아 죽겠다는 듯이 말이다.

“웬 호크? 그놈 게 한테 뒈졌다며…?”

웜포트로 게들이 난입했을 때 말뚝에 묶여있던 호크가 게 밥이 된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마리나가 길드에 보고해서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마리나가 검지를 들어 자신의 머리통 한가운데를 가리키자 안톤이라는 남자가 그걸 보더니 기겁하면서 말했다.

“히익... 화살꼬치? 그…. 그분이 왜?”

안톤은 길드 은 등급 삼위 파티의 리더로 붉은 초승달 토벌에도 참여했던 베테랑이었다. 당시 그놈들의 간부와 싸워본 적이 있었는데,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간부와 도적단 두목이 웜포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몰살당했다는 이야기는 쉽게 흘려들을 수 없는 정보였다. 나중에 길드에서 출발했던 조사단이 복귀했을 때, 그들이 가져온 절인 머리통은 화살을 하나씩 깊숙하게 품고 있었다. 거의 똑같은 자리에 일정하게 말이다.

조사원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이 상태로 죽어있었는데, 머리통을 관통하며 목뼈를 뚫고 나와서 이 상태로 가지고 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뭐? 다 이렇게 뒈졌다고?”

이어진 조사원들의 말에 안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한 명이 순식간에 몰살시킨 거라는 믿을 수 없는 말.

웜포트로 출장 갔던 릴리아나가 나중에 호크가 그분한테 덤볐다가 손 한번 못 쓰고 두 번이나 실신했고, 십오 년간이라는 엄청난 기간 동안 용병 생활을 했다는 정보와, 북부에서와 그란폴을 구원해줬던 눈꽃기사들이 은밀하게 찾던 분이라는 비밀 정보도 들려왔다.

그래서 용병들은 존경과 경외(?)를 담아 그분을 ‘화살꼬치’ 라는 다소 특이한 이명으로 부르며, 비밀 정보 때문에 대놓고 언급하지 않고, 정수리에 꽂힌 화살을 의미하는 손동작으로 그분을 지칭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근데 그분이 왜?”

“그, 네 앞에 아리따운 그 여자분이 그분의 ‘가족’이 되셨다는데? 감당할 수 있겠냐?”

“히이이익!”

실실 웃던 안톤의 얼굴이 새파란 잉크처럼 질려버렸다.

발레리는 한참동안 안톤이라는 놈의 공손한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혈기 왕성한 용병이 아리따운 아가씨를 보고 참지 못하고 벌인 일이니, 용서해 달라는 그놈의 말에, 뭐 좀 기분이 나쁘긴 했어도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러셀이 대단한 사람이라서 그의 가족인 자신에게 이렇게 사과를 하는 것이라니. 왠지 그의 소유가 된 것이 나쁘지 않은 것이라는, 그녀의 생각에 점점 확신이 들어가고 있었다.

결국 작은 소동 끝에 발레리는 길드에 방문한 진짜 용건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거 러셀님이 만드신 물건인데, 러셀님이 길드에서 팔아볼 수 있을까 하시기에 가져와 봤습니다.”

“러셀이?”

릴리아나가 받은 물건을 손에 들어보았다. 두 개의 쥐 가죽이었는데 하나는 빵빵하게 배가 부풀어 오른 것, 하나는 반쯤 부풀어 올랐는데 안이 반쯤 비어있어 사각사각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뭔데?”

“전투식량이라는 건데요.”

“응? 전투식량?”

러셀은 대화에 귀족들이 쓰는 화려한 수식어를 남발하는 남자가 아니고, 보다 직관적으로 이야기하는걸 좋아하는 남자니. 그가 이것에 이름을 붙였다면 이것의 사용법은, 이름과 같게 전투 중 또는 병사들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이라는 말인데?

“이거 어떻게 먹는 건데?”

“아, 이거 뜨거운 물이 필요한데요.”

길드 1층에서는 안주와 술을 팔고 있으니 화로도 분명 있었다. 릴리아나가 주방 쪽에 끓는 물 한잔을 부탁했다. 잠시 후 끓는 물이 나오고 발레리의 전투식량 홍보가 시작되었다.

발레리는 배가 빵빵한 녀석은 4~5인분짜리라며 일단 1인분짜리 전투식량을 꺼내서 가죽의 머리 부분을 칼로 찢었다. 그리고 그 안에 뜨거운 물을 삼 분의 이쯤 집어넣고 컵에 기대어 두었다.

그리고 잠시 후 부엌에서 받아온 그릇에 그것을 쏟아내자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죽(?) 같은 음식이 수북이 담겼다.

발레리가 그것을 한 숟가락 떠서 릴리아나에게 주었다.

“이렇게 먹으면 된다고?”

발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기에 릴리아나는 그것을 후후 불어 입에 넣었다.

“어?”

맛있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만에 뜨거운 물만으로 식사를 만들 수 있다고? 옆에서 발레리의 설명이 이어졌다.

“비가 와도 내용물이 젖지 않고, 물속에 들어가도 내용물이 상하지 않는데요. 오래 들어가 있으면 망가지는 게 생기겠지만... 보관도 이년까지는 보관 가능하다고 해요. 냄새는 나겠지만 먹을 수는 있다고….”

“뭐?”

릴리아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설명을 잘못 들었나? 습기에 상하지 않고 이년 보관?

구경하던 용병들이 맛을 본 릴리아나의 모습에, 군침을 다시며 발레리의 눈치를 보고 있기에 발레리가 말했다.

“맛보셔도 돼요.”

용병들이 몰려들어 손으로 뜨거운 전투식량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으뜨뜨….”

“허어…. 야. 먹을 만한데? 영원의 스튜보다야 백배 맛있는데?”

“이거 상당히 괜찮아 뜨거운 물만 끓일 수 있으면 아무 데서나 먹을 수 있다는 말 아니야?”

“오 이거 사냥 나가서 먹으면 좋겠는데?”

“오…. 맞네! 이거 몇 개 가져가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하잖아?”

전투식량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맛을 본 용병들이 저마다 칭찬하기 시작했다.

릴리아나는 발레리의 손을 잡아채고 길드 내부를 단숨에 달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졌기 때문이었다.

‘부길드장을 어서 만나야해!’

덕분에 발레리의 출렁대는 가슴을 본 용병들이 환호했는데, 이 층에서 안톤이 손가락으로 정수리를 가리키며 단 한마디를 하자 길드 내부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가족!”

‘화살꼬치님의 가족이시다.’라는 뜻이었다.

러셀이 들으면 싫어할 게 분명한 별명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