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72화 (72/352)

〈 72화 〉 70. 내장까지 쏟아내고 가족이된 발레리 2

* * *

“러! 러셀, 매... 아니, 러셀, 형!”

갑자기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에 이실리엘의 무릎에 누워 눈을 감고 있다가 화들짝 놀래서 일어났다. 마크가 아주 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어제 그란폴에서 복귀를 못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나는 벌떡 일어나 이실리엘의 방에서 나오면서 주변을 살폈다. 누군가 방을 나오는 나를 보지는 않을까 확인을 하는 것이다. 이게 좀 왠지 부끄럽네...

그리고 홀이 있는 일층으로 후다닥 내려왔다.

“마크 왜? 형 여기 있다.”

“빨리요 큰일이에요!”

밖에 내려가니 사색이 된 마크가 나에게 다가와 나를 잡아끌기 시작했다. 마크에 손에 끌려 밖으로 나갔더니, 밖에 마차가 세워져 있었고 마리나가 발레리를 부축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마차는 전투식량으로 보이는 것에 여기저기 난장판이 되어있었고.

발레리는 마치 어제 과음한 40대 아저씨처럼 구토를 하고 있었다.

“꾸에에에엑.... 꾸웨엑~”

발레리가 구역질을 할 때 마다 완벽한(?) 모습을 자랑하는 전투식량이 발치에 빈대떡을 한 장씩 만들어내고 있었다.

맙소사...

“얜 왜이래?”

“러... 러셀님... 꾸웨에엑~”

“도 도와주세요. 꾸웩 살 살려주세요, 우웨엑~”

발레리가 구토를 하며 울면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우워어엇...”

내가 기겁을 하면서 괴상한 소리를 내며 피하자 발레리는 빗물에 엎어져 그 상태 그대로 계속 토하기 시작했다.

“웩 웨엑 웨에에엑~!”

“얜 대체 뭘 먹은 거야?”

내 물음에 마크가 옆에서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 그러니까 어제 여관에서 밥을 못 드셔가지고 제가 그 육포를 드렸는데, 그... 그 마리나 누나가 다 뺏어먹는 바람에, 비가 안 오면 전투식량이라도 먹고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헥헥... 아쉬운 말을 했는데, 누나가 전투식량이 궁금하다고. 그, 그 확인해보게다고 하시더니 그걸 조금씩 입에 넣더니 다 드셔가지고... 헉헉”

마크는 무슨 랩을 하듯이 이야기를 마쳤다. 전생이었으면 대단한 실력이라며 칭찬을 해줬으리라.

대충 결론 내리면 배고파서 바싹 마른 4­5인분짜리 전투식량 한 개를 그냥 다 드셨다는 거네... 그리고 지금 뱃속에서 엄청나게 불어나며 양을 늘리는 중이시고...

“웩, 웨에엑~!”

발레리는 아직도 옆에서 토하는 중이었다.

하... 누군가 한번은 이런 사고를 치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벨릭도 아니고 발레리라니.

‘어휴... 내 팔자야’

나는 발레리를 일으켜서 허리를 구부리게 한 다음에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토하고 물을 먹고 다시 토하고를 하더니 발레리는 눈물 콧물을 다 빼며 나에게 안겨왔다.

“우아앙~ 러셀님 죽는 줄 알았어요!”

피하면 또 바닥에 처박힐까봐 피할 수도 없었는데, 다리 아래서 올라오는 토사물의 냄새와 비오는 바닥에 처박혀 흠뻑 젖어 붙은 발레리의 가슴. 입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와 미역처럼 젖은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

가슴이 압도적으로 부드럽긴 했는데 다른 모든 상황을 커버하지는 못했다.

‘아악! 정말!’

잠시 후 내가 한참을 들어오지 않자 나를 찾아 밖으로 나온 이실리엘이 날 안고 울고 있는 발레리를 보고 말았다.

착하게도 우리 이실리엘은 막장드라마 주인공처럼 “아니, 나를 두고 바람을 피다니!” 이라고는 하지 않고 무슨 일이냐고 조용히 물어서, 건조된 식량을 빈속에 너무 많이 먹어 속에서 양이 불어서나 토한 거 같다고 알려줬다.

이실리엘은 울고 있는 발레리를 데리고 조용히 목욕탕으로 갔다.

아! 나도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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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는 발가벗겨졌다. 누구에게? 첫째 마님에게...

그리고 씻겨 졌다. 어디를? 아주 구석구석.

너무 오랜 시간 토해서 그런지 탈진해 몸을 가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씻기는 걸 돕기 위해서 마리나와 애니도 들어왔다.

마사지용 테이블에 누워 눈물만 뚝뚝 흘렸다. 너무나도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흑... 흑...”

“아가씨 그만 우세요. 괜찮아요.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있고...”

생각해보면 다 마리나 때문이었다. 얘가 내 육포를 빼앗아 먹지만 않았어도!

“다! 다 마리나 때문이야 엉엉... 나 어떡해. 이제 시집도 못가겠어! 엉 엉.”

“이 이렇게 다 벗겨지고... 만져지고... 어흑...”

“여자들끼린데 어때요...”

"하읏..." 꼼꼼한(?) 이실리엘의 손길에 더욱더 슬퍼지는 발레리였다.

“자자. 그만 뚝하세요. 발레리는 지금 아픈 거니까 다 이해해요. 아플 때는 그럴 수 있어요.”

이실리엘이 머리를 쓸어주며 말했다. 발레리는 그 부드러운 손길에 간신히 눈물을 그칠 수 있었다. 이실리엘의 손길은 사람을 안정시키는 능력이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러셀이 옷을 갈아입는 걸 확인하고 올 테니, 두 분은 이제 발레리양을 방으로 부탁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마님.”

이실리엘이 러셀이 옷 갈아입는 걸 봐준다며 사라지자 애니가 말했다.

“마리나씨는 다녀오셔서 힘드실 테니 목욕을 하세요. 제가 혼자 부축해서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어 괜찮겠어? 혼자서?”

“이 정도는 충분합니다. 발레리씨도 기운이 어느 정도 돌아오신 것 같고,”

왠지 애니의 목소리가 쌀쌀맞다고 느꼈지만, 마리나는 토한 발레리를 씻기느라 짜증이 났나보다 생각하며 생각 없이 애니와 발레리를 방으로 보냈다.

애니가 발레리를 부축해 발레리의 방까지 도착했다. 애니가 발레리를 침대에 다소 거칠게 눕히더니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주고는 귓가에 조용히 말했다.

“마님 두 분께는 양보했지만 당신은 아닙니다! 당신은 네 번째에요! 그깟 고깃덩이 좀 크다고 새치기는 곤란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리고는 문을 쾅 닫고는 나가버렸다. 발레리는 애니가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아까 러셀을 끌어안고 통곡하고 있는 자신을 보았던 것 같았는데, 눈물이 다시 안구에 맺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탈진한 몸으로 쫒아 내려가 해명을 할 수도 없었다.

“흑... 흑...”

다시 눈에서 눈물이 올라왔다. 구토와 함께...

“우웨엑~”

‘아니! 뭐가 네 번째냐고요?’

발레리는 일인분을 더 토해내고, 올라온 마리나가 자신을 닦아주고 나서야 간신히 잠이 들 수 있었다. 애니에게 네 번째라는 꼬리표를 달린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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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는 다음날 여관 일을 할 수 없었다. 몸의 탈진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데 러셀이 찾아와 무단결근(?)은 월급에서 제하겠다는 이해 못할 말을 하며 발레리를 놀리며 말했다. 발레리는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세 여자에게 몸을 구석구석 씻김당한 수치는 발레리의 정신줄울 놓아버리게 하기 충분했던 것이었다.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어...’

발레리가 자신의 농담에 반응을 안 하자 러셀은 ‘그간 너무 놀려먹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부잣집 아가씨라 정신력이 약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조금은 다정하게 대해줄까 하는 생각에 침대 옆에 앉아서 말을 걸었다.

“그래 전투식량은 왜 한포를 혼자 다 먹은 거야? 그거 마크가 말 안 해줬어?”

“네... 다 먹고 나서... 사오인분 이라고... 흑...”

“아 울지 말고 진정해...”

러셀은 발레리를 살살 달랬다. 직원관리차원에서 말이다. 여긴 판타지 세계니까 직원 관리도 사장의 몫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장사꾼으로 내 전투식량이 어땠어?”

상인을 비하하는 장사꾼이라는 단어를 쓰긴 했지만 발레리는 그 ‘전투식량’의 가능성을 보았기에 조금은 기운차게 말했다.

“대, 대단했어요! 그 편리함과 보관성! 그거 얼마나 오래 보존할 수 있나요?”

“음? 뭐 한 일이년? 그 이상은 전 내가 날 거 같고.”

“세상에 그렇게나 보존성도 높다니... 만드는 법이 엄청 궁금해요.”

“뭐 별건 없어... 야채를 데쳐서 말리고, 고기도 구워서 말리는 거지, 지방은 다 제거해 줘야해, 기름이 들어가면 변하거든, 들어가는 보리나 귀리는 다 익혀서 말리는 거야. 그걸 적당한 비율로 섞고, 소금으로 간하고. 쥐 가죽 안에 넣는 거야.”

“쥐 가죽 만드는 건 저번에 봤지? 털을 다 뽑은 후에, 안에 바람을 불어넣어 묶어 말리다가, 굳어지면 묶은 끈 풀어서, 속빈 갈대로 입구 묶어서 더 말리는 거?”

확실히 저번에 러셀이 발레리에게, 발레리의 업무는 러셀의 보조니까 다 알고 있어야 한다면서 보여주긴 했다.

어?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전투식량이라는 제품의 레시피를 이렇게 쉽게 다 알려준다고? 이런 가치 있는 상품의 모든 것을?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쉽게? 자신이랑 계약도 하지 않았고, 잠시 숙박비 때문에 일하고 있는 자신에게?

무슨 의미일까? 상인은 지나가는 말이라도 허투루 듣지 않는다. 발레리는 이렇게 자신에게 레시피를 알려주는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번뜩 생각이 떠올랐다.

들어 본적 있다! 중대한 비밀을 알려 준다는 것은 한식구로 맞아들인다는 의미. 지, 진짜? 이렇게 비밀을 알려줘서 자신을 잡아두고, 저, 정말 네 번째로?

하긴, 자신은 가치 있는 처녀니까... 외모도 나쁘지 않고, 가슴도... 그, 크니까...

더군다나 인간이 이런 제품을 만들어 낼 리 없으니, 이건 높은 엘프님의 물건일 것이다. 그런 높은 엘프의 비밀을 알았으니 나는 이제 영원히 볼모 가 된 것인가? 강제로 한식구가 되어서?

도망가도 잡아들일 자신이 있는 것이겠지. 그 막 첫째마님이라는 분은 하늘도 날아다녔으니까...

아마도 완벽히 자신의 영혼까지 한식구가 되기 전에는 영원히 여기서 살아야 하는 것이겠지... 아니, 여기 사는 게 나쁘진 않은데... 아니, 그래도 이렇게 강제로?

러셀은 전투식량이 비교적 간단한 레시피로 이루어져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따라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에 아무 생각없이 발레리에게 알려준 것이었는데.

상인으로 자세한 레시피를 전달받는 발레리의 상인의 뇌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던 것이다.

오해 속에 발레리가 울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흑... 저... 저, 이제 집에는 못 가나요? 흑...”

‘뭐야 벌써 향수병인가?’

하긴 아프니까 집 생각이 날수도 있긴 하겠다싶어 러셀이 말했다.

“뭐 가고 싶은 마음을 알겠는데, 당분간은 힘들지 않겠어?”

러셀이 말한 의미는 ‘백단목 값 주기 전에는 힘들지 않겠어?’ 라는 의미였는데.

“흐으윽... 죄 죄송해요. 우, 울려고 한건 아닌데... 그, 근데 누, 눈물이... 흐흑흑...”

발레리는 참으려고 했지만 더욱더 울음이 터져 나왔다. 발레리가 듣기에는 러셀의 ‘당분간 힘들지 않겠냐’는 소리가 완전한 내 사람이 되기 전에는 힘들지 않겠냐는 소리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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