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71화 (71/352)

〈 71화 〉 69. 내장까지 쏟아내고 가족이된 발레리 1

* * *

빗속의 상행.

“쏴아아아~”

시원하게 비가내리는 우기의 아침. 아침 성문이 열리자마자 그란폴에서 출발한 마차는 웜포트를 향해 사정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마차에는 마리나와 발레리, 마크가 타고 있었다. 어제 러셀의 부탁으로 물자를 매입하러 그란폴로 왔는데, 시간이 늦어버리는 바람에 그란폴에서 하루를 쉬어갈 수밖에 없던 것이다.

발레리는 어제 그란폴 여관에서의 하루를 생각하며 몸을 부르르 떨며 진저리를 쳤다. 우기로 인한 곰팡이 가득한 빵과 영원의 스튜, 벼룩과 이, 빈대가 들끓는 여관침대. 밤새 헐떡이는 남자의 음성과 여자의 교성.

두 달 넘는 시간동안 엘프의 눈물 여관만 있었던 발레리가 원래 여관이 그런 곳이란 것을 깨달은 것은 저녁으로 나온 영원의 스튜를 접했을 때였다. 분명 국자로 스튜를 퍼 담는데 스튜 안에 잘 익은 고양이로 보이는 생물의 머리가 보였던 것이다.

고기 사는 돈을 아끼려고 뒷골목에서 고양이라도 잡아넣었단 말인가? 스튜와 곰팡이 난 빵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그리고 여관이 원래 그렇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을 때는 이미 방으로 들어간 후였다.

단 한순간도 잠을 자지 못했다. 결국 마구간에서 마차를 지키던 마크에게 갔더니, 마크 옆에는 마리나가 벌서 자리를 잡고 잠을 자고 있었다.

‘이... 이 배신자!’

자기소개 할 때도 묘하게 경쟁을 걸어와 자신에게 엄청난 말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마리나! 요즘 정말 왜 이렇게 얄미운지. 마차에서 잘 거면 자기를 데리고 갈 것이지, 자기 혼자만 쏙 빠져나가서 마크 옆에 자리를 잡다니.

러셀의 여관에서 일이 끝나고 되돌아가면 다시 자신의 호위로 일해야 할 텐데, 이런 식의 행동은 곤란했다. 자신의 호위라는 본분을 까마득하게 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마리나를 어떻게 골탕을 먹일까 아니 혼을 내줘야 하나 궁리 중일 때, 앞에서 마차를 끌던 마크가 말을 걸어왔다.

“발레리누나 배 안고프세요?”

“응?”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냄새나는 트롤고기라도 지금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배고프지.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

“하긴 다른 형들 누나들도 그란폴 오면 아무것도 못 드시더라고요.”

“여기 육포라도 드세요.”

“앗 고마워!”

발레리는 마크에게 받은 가죽 주머니에서 육포를 꺼내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때 옆에서 손이 쑥 나오더니 마리나가 자신이 마크에게 받은 육포 주머니에서, 육포를 쏙쏙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상단 아가씨가 전 용병의 먹는 속도를 따라 갈수는 없었다. 발레리는 몇 개 먹지도 못하고 결국 마리나에게 육포를 다 빼앗겨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이! 마리나! 같이 나누어 먹어야지!”

“앗!”

“다른 생각 좀 하느라고 몰랐어요. 발레리님 죄송해요. 어쩌지 배고프셔서...”

마리나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지만 발레리는 그 미안한 미소가 엄청나게 얄밉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아저씨한테 돈을 준 것을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러셀의 여관 직원이 된 것도 마리나의 책임이 크지 않던가.

정말 밉상이었다. 이 개념 없는 호위 같으니! 자신의 안전은 확인도 않고 여관방에 혼자 두고 자신은 마구간으로 가질 않나. 밥을 먹지도 못한 자신의 음식을 뺏어 먹질 않나 호위 실격인 것이었다.

그때 마크가 지나가듯 말했다.

“비만 안 왔어도 전투식량이라도 먹고 갈 텐데.”

“전투식량? 그게 뭔데?”

“있어요. 러셀매형이 만든 간편하게 먹는 음식.”

“매형?”

“아 우리누나가 러셀 형한테 빠져가지고, 우리한테 매형이라고 자꾸 부르라고 강요해서. 입에 붙어버렸네요. 정말 돼지같이 가슴만 커서는...”

마크는 거기까지 말하고 발레리를 보고는 흠칫 하고 말았다. 가슴크기라면 현재 여관에서 1등이 발레리였기 때문이다.

“뭐 큼... 암튼. 우리누나가 우리한테 막 강요를 한다니까요!”

마크가 짜증이 난다는 듯이 말했다. 분명 마크의 누나면 애니 였을 텐데? 그런데 러셀을 노리고 있다고? 발레리의 생각보다 러셀은 여자들한테 인기가 좋았다. 예쁜 엘프들도 잘 따르고 며칠 전 셋째 첩 지원에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도 엉겁결에 손을 들 뻔하지 않았던가.

“구경해 보실래요?”

마크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동그란 가죽 덩어리를 꺼내주었다. 신기하게 생긴 물건이었다. 이걸 먹는다고? 배 터지기 직전의 쥐 같은 모습의 이걸?

“이걸 어떻게 먹어?”

“아, 그거 끓는 물에 윗부분을 잘라서 쏟아 넣고, 끓여 먹으면 돼요.

발레리는 호기심이 동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신기한 물건을 접했을 때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라는 건 아버지께 배운 교훈이었다.

“이거 너무 궁금해서 그런데 한번 확인해보면 안 될까?”

“뭐, 그러세요.”

마크는 너무 순순히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발레리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마크에게 받은 전투식량이라는 것의 머리 부분을 조금 잘라보았다.

안에 보리, 귀리, 밀 같은 여러 가지 곡식과 말린 채소, 고기까지 아주 골고루 들어있었다. 발레리가 그것들을 조금 손가락으로 집어 입안에 넣어보았다. 간도 적당히 되어있는 것 같았다. 이걸 물에 넣고 끓여먹는다고?

‘이렇게 간편하다니!’

분명 군대에는 보존 식량은 필요했고 사용하고 있는 보존식량들도 있었다. 육포나 염장고기, 견과류나 구운 밀가루 반죽 같은 것들 말이다.

그냥 먹기도 하지만 보통은 큰 솥에 넣고 끓여먹는데 구운 밀가루와 육포나 염장고기를 넣고 끓여먹는 죽은 최악의 맛을 자랑했다. 엄청나게 짜거나 밍밍하거나... 구역질나거나...

발레리의 생각에는 이게 상당히 괜찮은 상품으로 모였다.

이름도 ‘전투식량’ 군이나 용병들이 사용한다면 얼마나 간편할까? 포장된 재질도 가죽, 아마 에밀이라는 엘프가 계속 잡아다 말리는 그 쥐 가죽으로 보였는데. 손가락을 안에 넣어보니 비 오는 날에도 내부가 건조했다.

자신들이 이곳까지 가죽을 사러왔던 이유도 상단을 확장하기 위해 신용을 쌓아 군납 상인 자격을 얻기 위해서였다. 보통 영주나 국왕이 허가하는 군납 상인이 되면 독점적으로 물건을 공급할 수 있기에, 쉽게 세력 확장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발레리의 상단은 원래는 사치품을 취급하는 곳인지라 군납용 물품을 취급 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백단목으로 군납자격을 따낸 후 이걸 영주나 국왕에게 보여주고 안전하게 공급한다? 상회만의 독점 상품으로? 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그리고 그걸 여기서 러셀에게 받아서 본토로 공급해준다? 이 장사가 잘된다면 당분간 책임자로 이곳에 남아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발레리의 상인의 머리가 어떻게 하면 수익이 날 수 있나가 아닌, 어떻게 하면 여기 더 남아있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분주하게 계산을 시작했다.

발레리는 더운 서부보다 기후도 좋고 물도 풍부하고 목욕도 매일 할 수 있는 이곳이 너무나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는 와중에 입에 넣었던 전투식량 알갱이들이 침에 불어 먹을 만해졌다. 발레리는 그것을 꼭꼭 씹어 삼킨 후 조금 더 입에 넣었다. 끓여 먹는 거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마치 지금을 자신의 기분처럼 자신의 미래를 축복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의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야금야금 전투식량을 침에 불려 먹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야금, 야금...

한참 마차를 달리게 하던 마크가 발레리를 확인했을 때는 발레리가 전투식량의 대부분을 먹어치운 후였다.

“어? 그거 다 드셨어요?”

“응,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그거, 한 사 오인분 정도 되는데, 엄청 잘 드시네요.”

“에이. 이게 무슨 사오인 분이야 나 혼자도 다 먹을 수 있던데.”

마크는 발레리가 대식가라고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긴 가슴이 크니까 큰 만큼 많이 먹을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다소 이상한 결론이었지만 말이다.

마차는 웜포트를 향해 계속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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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가 웜포트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부터 발레리가 조금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갈증이 난다며 물을 찾더니 한참 물을 들이켜고는 가슴이 답답한지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가씨 어디가 안 좋으세요?”

“아, 아니, 그냥 가슴이 좀 답답하네.”

“왜 그럴까요? 불편하시면 좀 기대실래요?”

그때였다!

“어. 아. 아니야... 그게... 우.... 우.... 우... 우웨엑~”

발레리의 입안에서 완성된(?) 전투식량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웨에에엑~”

“꾸웨에에에엑~”

“아! 아가씨! 이... 이게 무슨! 괜찮으세요? 마크! 빨리 마을로!”

“이, 이게 무슨 꽉 잡으세요. 이럇! 이럇!”

마차가 전투식량을 마차 밖으로 쏟아내며 윔포트로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차의 뒤로는 발레리의

“우웨에엑~”

“꾸웨에엑~”

하는 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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