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66. 실종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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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자신들을 위한 폭풍(?)들이 몰아치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실리엘과 러셀은 자신들을 위한 폭풍 속에서 폭풍 같은 밤을 보냈다. 그리고 지쳐 잠이 들고 말았다.
남부 늪지대의 긴 우기도 상급 정령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기에 감히 러셀과 이실리엘이 잠든 지상 섬에 구름을 드리우지 못했고, 둘이 잠든 지상 섬에는 비한방울 내리지 않는 맑은 하늘이 떠 있었다.
아침이 되자 첫 태양이 지상의 섬에 빛을 비추며 떠올랐다.
엘프의 신방 천장. 잎사귀 사이로 빛이 새어들어 잠든 러셀의 얼굴을 비추자, 러셀이 잠에서 깨어 눈을 떴다. 러셀의 눈에 맨 처음 보인 것은 황금색 물결이었다. 자신의 품에 금발의 발가벗은 요정이 잠들어있는 것이었다.
밤새 뜨거운 사랑을 나눈 후 이실리엘을 품에 안고 그녀의 로브를 같이 덮고 잠이 들었는데, 아직 이실리엘은 잠들어 있었던 것이었다.
러셀은 눈을 감고 이실리엘의 체온을 느끼며 어제를 떠올려보았다. 아름다운 밤을 말이다.
아침의 기상과 어제의 생각으로 러셀의 분신이 다시금 존재감을 과시하자, 자신의 하복부에 느껴지는 열기와 움직임에 이실리엘이 잠을 깨며 살포시 눈을 떴다.
“이, 이실리엘 잘 잤어?”
자신의 발가벗은 몸과 러셀을 보고 얼굴을 붉게 물들인 이실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러셀의 하반신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또... 또?”
어젯밤이 떠올랐다. 벨에게 듣기로는 분명 한두 번이라고 했었는데. 일곱 번이라니... 다리사이가 아직도 욱신거리고 있었는데, 러셀은 부족했던지 자신의 분신의 위용을 다시금 뽐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 아, 아니야 이건 그냥 아침이면 남자는 다, 다 그러는 생리현상이랄까...”
그때 밖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대단하다!”
“쉿! 조용히들 해라!”
러셀이 이상한 느낌에 옷을 재빨리 주워 입고, 이실리엘의 옷도 가져가 옷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자신이 옷 입는 걸 도와주자 이실리엘이 엄청 부끄러워하고 있었는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밖에서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너희들 때문에 아침에는 시작도 못하고 끝나버렸잖아!”
“인간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던데...”
“쉿! 조용히 하라고!”
둘이 옷을 입고 어제 들어왔던 입구 쪽의 가지에 손을 대자 스르륵 구멍이 만들어지더니 밖으로 나가는 문이 생겨났다. 러셀이 밖으로 나가자 실리아가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실리아와 비슷한 존재들이 한 이십여 개체나 공중에 떠있었다.
러셀은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 정령들인데 왠지 흐뭇한 미소를 떠올리고 있다는 느낌은 그냥 자신의 착각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이게 무슨...”
이실리엘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러셀은 어제 실리아가 이런 상황을 만들어 주었으니, 실리아 정도는 몰래 구경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이런 대규모 관람객 이라니. 옆에 이실리엘은 높은 엘프가 아니라 붉은 엘프족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전신이 붉게 물든 상태였다.
그리고 맑은 하늘로 높은 엘프의 높디높은 비명이 찢어지듯 솟아나갔다.
“꺄아악!”
잠시 후 정령들이 이실리엘의 분노를 피해 대부분 정령계로 사라지고, 실리아만이 남아 이실리엘에게 연신 사과를 하고 있었다.
“정말, 내가 그런 거 아니라니까! 이게 그러니까 설명을 하자면...”
실리아의 설명은 그랬다. 높은 엘프 중 사대 정령 핏줄은 정령들의 형제, 자매이고 그들 중 롱 윈드라는 성이 가진 핏줄은 자신들 바람의 정령의 친족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그래서 롱 윈드의 피가 일정량 이상 중간 땅에 흐르면, 자신들이 나타나서 감히 롱 윈드를 위험하게 한 놈들을 혼내준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 일정량이라는 게 너무 적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실리엘이 흘린 처녀 혈은 그리 많은 양이 아니었는데 다리를 타고 한번 주르륵 흘러내린 정도였는데 그것 때문에 정령왕이 긴급하게 모든 정령들을 호출했다니.
러셀은 실리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결심했다. 절대로 이실리엘은 주방 칼을 잡게 하면 안 되겠다고, 실수로 요리하다 손이라도 베인다면 주방이 날아가 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인간 남자랑 결혼하면. 롱 윈드들이 많이 태어날 거니까 좋아가지고...”
실리아의 말 중에 러셀은 궁금한 것이 생겨 이실리엘에게 질문을 했다.
“이실리엘, 그런데 나는 하프 엘프를 한 번도 본적이 없는데, 인간과 엘프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하프 엘프가 태어나는 거 아니야?
“하프 엘프가 뭔가요?”
“어... 그러니까 인간이랑 엘프가 반반 섞인 인간도 엘프도 아닌...”
이실리엘의 눈이 하늘에 뜬 첫 태양만큼 커졌다. 뭔가 그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생명체인가 하는 느낌이랄까?
옆에서 실리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인간들은 모를 수도 있지. 인간과 엘프가 결혼하면 엘프나 인간 둘 중 하나가 태어난다! 엘프는 모계 사회니까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그러니까, 인간과 롱 윈드 사이에서 태어난 엘프는, 당연히 엘프면서 어머니 성을 따르니까 롱 윈드다!”
뭔가 설명이 그럴 듯하면서... 그러니까 전생에 이스라엘 같은 나라가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아버지는 상관없이 유대인으로 인정해준다고 그랬던가?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그리고 이실리엘을 닮은 아기 엘프라... 그건 쫌 대단할지도...
“인간 꼭 많은 롱 윈드를 부탁해!”
실리아의 부탁에 러셀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 정령은 뭔가 아는 정령이었다. ‘신’ 놈 따위보다 훨씬.’
“그래, 힘닿는 데 까지!”
이실리엘의 얼굴이 러셀의 말에 다시 붉게 물들었다.
로리엘은 이실리엘이 상급 정령을 불러내 하류로 바람같이 날아가자 촌장과 마을 주민들을 데리고 일단 마을로 복귀했다. 간단한 수색용 차림으로는 이실리엘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상급 정령은 자연현상을 조종할 정도의 능력이 있으니, 괴물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이실리엘과 러셀을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자신들이 높은 엘프이신 의장님의 명령을 받고 이곳에 이실리엘을 지키기 위해 온 것은, 이실리엘을 인간들의 사악한 술수에서 보호하기 위함이지 저런 괴물은 포함되지 않는다. 누가 누굴 걱정한단 말인가. 이실리엘이 아까 그 괴물을 못 이기면 어차피 자신들이 가봐야 소용없는 일인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실리엘이 못이기는 몬스터가 있을까? 북부의 뱀의 왕이나 산맥의 주인, 용이면 몰라도...
촌장이 러셀과 이실리엘을 구조하러 가야 하는 건 아니냐고 물었지만 로리엘이 말했다.
“상급 정령이 소환되었으니 이실리엘님이 알아서 할 것이다.”
로리엘과 일행들이 마을로 돌아오자 헨슨씨 집 주변에 몰려있던 사람들은, 피 뭇은 옷가지를 손에 들고 망연한 얼굴로 마을로 들어서는 헨슨씨를 보고, 그와 그의 가족들을 위로해주었다.
사람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헨슨씨네 집에서는 가슴을 찢는 두 부모의 울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우기의 하염없이 내리는 빗소리가 그마져도 흩어버리고 있었다. 참혹한 죽음은 이세계의 흔한 일상이었다.
로리엘이 여관으로 들어섰을 때는 홀에 사람이 바글바글 했다. 다들 소란에 일어나 있었던지 기사들과 용병들, 평원 엘프들이 장비를 챙겨 입고 몸의 물을 닦으며 따듯한 스프를 마시고 있었다.
여관으로 들어서는 로리엘을 보고 카운터에 앉아있던 리젤다가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어떻게? 아이는 찾았나요?”
“음... 강변에서 피 뭇은 옷가지만 발견되었다.”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변방 마을에서 몬스터에게 사람이 희생되는 일은 이곳에서는 일상이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하는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실종자가 얼마 전 성인이 된 아이라면 말이다.
리젤다가 무엇을 찾는 듯 로리엘의 뒤를 살피더니 로리엘에게 다시 물었다.
“러셀과 이실리엘님은요?”
“러셀은 괴물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네에?!”
리젤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변사물이 리젤다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얻어낸 러셀인데...
리젤다가 주저앉는 모습과 로리엘의 말에 깜짝 놀란, 엠마와 벨릭 그리고 리젤다의 오빠 에반이 뛰쳐나와 리젤다를 부축하며 물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엘프들도 로리엘의 주변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형님이 어떻게 되었다고?!”
벨릭은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갈 것 같은 모습으로 로리엘을 다그쳤다.
“아니, 그 인간 같지 않은 활솜씨의 형님이, 한낱 괴물 따위에게 잡혀갔다고?”
벨릭은 믿을 수가 없었다. 무슨 강 속에 용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러셀이 잡혀 갈리는 없다고 믿고 있는 벨릭 이었으니까 말이다.
“강변을 수색하던 중 강 속에서 괴물이 다리를 잡아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로리엘의 이어진 말에 리젤다는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간신히 손에 넣은 사랑이었는데... 세상을 다 잃은 리젤다였다.
“리젤다!”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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