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64, 65. 이실리엘의 첫날 밤. (미성년 판) 특별화.
* * *
이실리엘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분위기가 더 어색해져 버렸다. 첫날밤을 치르라고 강제로 갇힌 꼴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꿀꺽”
러셀의 침 삼키는 소리가 천둥같이 신혼방(?) 내부에 울려 퍼졌다. 러셀은 자신의 침 삼키는 소리에 이실리엘이 움찔하고 놀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이런 상황에서 갇혀서 첫날밤을 강제 받는 상황이 되자 자신조차 어색한 것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러셀은 이실리엘을 곁눈질로 슬쩍 보았다. 이실리엘은 부끄러운지 바닥만 보고 있었는데 세계수의 꽃잎으로 만들었다는 푸른색의 투명한 로브를 입고 눈을 내리깔고 있는 모습이 마치 아침이슬 머금은 꽃잎에서 물방울이 한 방울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이 보였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뒤집어 쓴 로브가 마치 면사포처럼 보여 첫날밤 침대위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신부라고 해도 누구도 의심치 않으리라 생각했다.
정말 아름다운 사람... 아니, 엘프였다.
그런 그녀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리고 잠시 지나온 삶을 떠올랐다.
이전의 생의 희생, 이생에서의 양친, 자신의 한쪽다리와 맞바꾼 그녀였다.
그런데 나를 여기에 환생시킨 ‘신’ 이 새끼들은 날 어제 결혼도 하기 전에 문어의 입속에 처넣으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여관에서 출발해서 북부로 그리고 세계수까지 긴 여정을 거쳐야 그녀와 결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긴 여정 중에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뇌에 번개가 치듯 생각이 들다.
‘없었다.’
나의 인생을 이렇게 굴려대며 웃고 있을 지도 모르는 ‘신’ 은 분명이 성격이 안 좋은 것이 확실했다.
결혼까지 얼마나 더 사건들이 이어질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실리엘과 리젤다를 이제는 내 앞에 딱 데려다놓고 줄 듯 말듯 뭔가 약 올리는 기분이랄까?
‘신 새끼의 계획에 이젠 더 어울려주지 않겠어.’
더군다나 밖에는 폭풍의 정령 진이라는 무시무시한 언니가 눈을 부라리고 우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상황까지 만들어준걸 보니 확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부끄럽게 몰래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안전한 기회가 또 있을까?
이실리엘도 굳이 북부까지 가지 않아도 여기에서 결혼? 혼약? 아니 첫날밤을 맞아도 좋다는 듯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여기서 뺀다고? 혹시라도 북부로 가서 결혼 전에 죽더라도 내가 죽고 긴 시간을 혼자 남겨진 이실리엘을 위해서 분신(?) 이라도 하나 남겨야 하지 않겠나?
극도의 자기위안과 자기합리화에 빠져 허우적대는 러셀이었다.
‘그래! 전생에서는 혼수로도 장만해 가는 커플도 많았는데.’
결심이 서버렸다.
용기를 내기로 했다.
실리아는 감격과 감동에 젖어 지금 러셀과 이실리엘의 교미를 천장 너머 나뭇잎 구멍으로, 몸을 투명화 한 채 감상하고 있었다.
‘그래! 이거라고!’
자신의 정령인생 수천 년 동안에 최고의 업적이 될 것이라 의심치 않는 결과가 탄생한 것이다.
잠깐 분위기만 깔아줬는데! 역시 인간 수컷! 장하다 인간수컷! 대단하다 인간수컷!
한번 바람 길을 열어주었으니 이제는 그 바람 길로 강력한 돌풍이 몰아치리라!
바글바글해질 롱 윈드를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감격에 차 이제는 여운에 잠긴 둘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의 정령계에 엄청난 호출이 날아왔다.
정령왕이 모든 바람의 정령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었다.
‘엇!’
물질계에 있다가 정령왕 에리얼 (Ariel)에게 강제로 소환당한 실리아는 무슨 영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도착한 장소에는 동서남북풍의 정령들과, 북풍, 돌풍, 미풍, 칼바람, 높새바람, 천둥과 번개의 정령들까지 바글바글하게 모여서 에리엘과 함께 맹렬하게 분노하고 있었다.
“감히! 우리의 롱 윈드의 피가 중간 대지에 흘러들었다!”
“이제 모두 열린 정령의 문으로 나아가, 주변에 롱 윈드의 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찢어발겨라! 그리고 롱 윈드를 위협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중간계의 생물들에게 알게 해주어라!”
‘뭐? 롱 윈드의 피가 흘렀다고?’
‘아니 어느 롱 윈드가? 잠깐...’
실리아는 아까 롱 윈드와 인간 수컷의 교미 장면을 떠올렸다. 그중 한 장면을 말이다. 롱 윈드의 처녀 혈이 흘러 맹그로브 줄기를 따라 흘러 땅에 떨어지던 그 장면!
‘맙소사’
안 된다! 막아야했다!
“자 잠시 만요!” 실리아가 앞으로 뛰어나가며 소리쳤다.
“실리아 이게 무슨 무례냐! 여왕의 앞인데! 더군다나 롱 윈드의 피가 흐른 이 다급한 상황에서!”
급한 성격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상급 천둥의 진이 실리아를 막아섰다.
“아닙니다. 오해라고! 그 피가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냐!”
그때 정령왕 에리얼이 나서서 실리아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실리아 설명해보세요.”
“저기 그게...”
실리아는 에리얼 앞에 자신의 성과를 가감 없이 보고하기 시작했다. 다른 바람의 정령들도 실리아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했는데.
실리아가 인간과 결혼한 롱 윈드가 생겼고, 그녀가 자신의 작은 도움으로 지금 첫 교미중이며 땅에 흐른 피는 그녀의 첫 처녀 혈이라는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5명이상의 롱 윈드의 핏줄을 낳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자 바람의 정령계는 환호하기 시작했다.
“맙소사 하급 바람의 정령들에게 심술만 부리던 실리아가 이렇게 깊은 생각을...”
정령왕조차 감격해 실리아를 칭찬했다.
“저를 빨리 돌려보내 주셔야 합니다! 주변을 지키고 있었는데 제가 없어져서 문제라도 생기면!”
정령왕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저런! 큰일입니다.!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최대한 기척을 지우고 이 첫 교미가 끝날 때 까지 주변을 삼엄하게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정령왕은 롱 윈드의 처녀 혈이 흐른 곳으로 상급 정령들 수십을 급파했다.
실리아가 다시 자신이 있던 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자신이 없어져 놀란 드라이어드들이 안에 있다는 높은 엘프를 지키기 위해서, 주변에 풀들을 소환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오 다행이다. 드라이어드들이 일을 잘하고 있었어!”
드라이어드들은 갑자기 사라졌던 실리아가 수십의 상급 정령들을 끌고 다시 나타나자 화들짝 놀래서 셋이 모여 공포에 몸을 벌벌 떨어댔다.
그런 드라이어드들을 뒤로하고 실리아가 다시 폭풍을 소환하여 주변을 이전과 같이 만들었다.
그리고 안을 조심히 살피자 역시 인간 수컷이었던지. 수컷은롱 윈드와 뜨거운 교미를 이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이다 아직 잘되고 있는 것 같아.”
실리아의 말에 주변에 수십의 정령이 모여들었다.
실리아의 주변 수십의 정령이, 천장을 이룬 이파리 사이사이를 통해 구경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서로의 육체에 흠뻑 빠진 이실리엘과 러셀의 첫날밤이 깊어갔다.
* * *